―더글러스 애덤스에게


   돌고래: 유선형의 몸에 매끄러운 피부, 뾰족한 입을 가졌으며, 바다에 산다는 상상 속의 동물. 명랑하고 영리하며 사람을 따르기를 좋아하고, 오징어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물속에선 이상하고 신비로운 노래를 불러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전설에 의하면, 원래 지구상엔 돌고래가 많았는데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No. 21 ‘돌고래의 기원’에서



   No. 117 주문진

   밤. 리조트 창가엔 한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어른들은 모두 카드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이는 무척 심심하고 지루했다. 바다 같은 건 정말 재미없어. 오빠는 저쪽 방에서 닌텐도에 빠져있고, 아무도 이렇게 작은 아이와는 놀아주지 않았다. 아이는 검은 밤바다를 하염없이 보았다.
   이상해. 낮엔 하늘이 파랗고 바다도 파랬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잖아. 모두 다 깜깜할 뿐이야.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바다를 보던 아이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물 위로 반짝이는 것들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엄마, 저기 봐, 바다에 말이야, 별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어.”
   “그래, 하늘로 별이 솟아오른다고? 와, 정말 예쁘겠네.”
   엄마는 그저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이는 다시 창으로 가서 얼굴을 유리에 붙였다. 차가운 밤공기 때문에 유리도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늘로 올라가는 건, 물고기들 같았다. 아주 큰 물고기들.
   물고기들은 달빛 아래서 그 부드럽고 날렵한 유선형의 몸을 반짝이며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아이는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하늘을 보았다. 그 커다란 물고기들은 깊은 밤하늘로 솟구치더니 점점 작아지고는,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는 마지막 한 마리 물고기가 달을 향해 날아갈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침을 준비하며 웃고 있었다.
   “엄마, 어제 날아간 물고기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아이가 묻자 엄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 꿈꿨구나?”

   No. 763 두 개의 지구

   그렇게, 세상의 모든 돌고래들은 하늘을 날아 어디론가 가버렸다.
   엄밀한 의미에서 지구는, 즉 돌고래가 살고 있던 바로 그 지구는 이제 없다. 돌고래가 없는, 그리고 어쩌면 원래부터 없었던 새로운 지구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도 돌고래가 지구에 살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제 돌고래는 인어나 불사조처럼 상상 속의 동물이 되었다. 아니, 돌고래는 처음부터 상상 속의 동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뾰족한 입에, 매끄럽고 반짝이는 몸을 갖고,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날렵하고 우아하게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동물이 바닷속에 살았다는 것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믿어지지 않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지구엔 돌고래라는 신비로운 동물에 대한 전설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다엔 돌고래라는 동물이 살고 있었단다. 노인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돌고래는 노래를 불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 노래로 어떻게 이야기를 해요? 아이들이 물으면, 할머니들은 노래를 들려줬다. 가사라곤 없는 그냥 곡조. 마치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것 같은 구슬픈 가락이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

   그녀는 돌고래의 전설에 관심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그랬다고 했다. 그녀의 방엔 돌고래에 관한 책과 포스터가 가득했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역시 돌고래 그림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돌고래를 본 적이 있다고 자주 말했지만, 그건 분명 꿈일 거라고, 그는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는 동물원에서 돌고래를 보았다고도 했다. 그는 그 동물원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건……”이라면서 얼버무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돌고래를 봤다던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엔 지금까지 한 번도 돌고래를 들여온 적이 없었다고, 그에게 이미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공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족관 담당자들은 “돌고래…… 라고요?”라고 반문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진지하게 한번 더 물으면, 약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던 것이다.
   그녀는 어느 겨울엔가 주문진 바닷가에서 죽은 돌고래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닷가 포구를 따라 난 길을 걷는데, 문득 옆을 보니 가게 앞에 돌고래가 있더라는 것이다. 돌고래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검고 더 윤기나고 더 유선형이었다고, 그녀는 열광적으로 말했다. 그 죽은 돌고래의 얼굴엔 빨간 고무 대야가 덮여 있었는데, 주인아저씨가 대야를 들추고 보여줬을 때, 고래의 눈에선 피가 고여 흘러내리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기웃대면서 구경을 하니까, 아저씨가 묻더라고. 회를 떠 줄 수도 있다는 거야.”
   그는 그녀가 너무 진짜같이 그런 이야길 하면, 정말인가 싶어 약간씩 헷갈렸다.
   그녀는 답답해하며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왜 다들 돌고래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 정말 이상해.”
   그녀의 말에 의하면, 죽은 돌고래를 본 그날 이후, 세상의 모든 돌고래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냥 사라져버리기만 한 게 아니라, 아무도 지구에 돌고래라는 동물이 살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돌고래들은 사라지면서, 그들 자신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다 가져가버린 걸까? 그런데, 대체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가? 그는 돌고래가 정말로 있었다고 자신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당장 나와 봐, 보여줄 게 있어.”
   카페에서 그녀가 내민 것은 한 장의 시디였다.
   “이걸 봐, 특히 첫 장면을 잘 보라고. 그럼, 내 말을 믿을 수 있을 거야.”
   그는 밤에 컴퓨터에 시디를 밀어넣었다. 무성영화처럼 소리가 전혀 없는 시디였다. 화면 속에선 한 떼의 사람들이 뭔가를 구경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커다란 수영장처럼 보이는 곳에 모여 있었다.
   그때 갑자기, 수영장의 푸른 물결 속에서 진짜 살아있는 돌고래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서, 그는 깜짝 놀랐다. 돌고래들은 마치 사람처럼 물 위에 꼿꼿하게 서서 조련사들과 장난을 치거나 그들이 내미는 먹이를 받아먹었다. 둥근 고리를 서커스 하듯 통과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줄곧 노래라도 하는 것처럼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면은 달이 환히 뜬 어두운 바다로 바뀌고, 돌고래들은 달을 향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날아서, 어디론가 영영 사라져버렸다. 시디는, 여기서 끝이었다. 어떤 영화의 도입부 같기도 한 그 장면을 그는 다섯 번이나 다시 보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디, 어디서 구했어? 라고 물을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라고 시작하는 멘트를 서른 번째 듣다가, 그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집은 주택가 골목길의 작은 빌라 2층이었다. 그는 대충 차를 세워놓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이미 예감했던 대로, 안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자, 계단 아래에서 한 여자가 올라왔다. 여자는 자기가 이 빌라의 관리인이라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데, 걱정이 되어서요.”
   관리인 여자는 머릴 손으로 긁으며 “이상하다, 거기 원래 아무도 안 사는데.”라고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며칠 전에도 여기 왔었다고요.”
   여자는 열쇠를 가져와 201호의 문을 열었다. 어두운 계단에서 갑자기 환한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눈이 부셔 자기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빛에 눈이 익자, 그에게 낯익은 작은 거실과 미닫이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침실, 그리고 욕실이 보였지만, 벽 전체를 덮고 있던 푸른 돌고래 그림도, 하얀 침대도, 그리고 노트북이 언제나 펼쳐져 있던 벽을 향한 책상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마룻바닥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먼지가 하얗게 묻어났다. 마치 아주 오래도록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최대한 천천히 그 집에서 나왔다.

   *

   “나도 영주를 못 본 지 오래됐어요.”
   영주의 오랜 친구라는 여자가 보낸 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영주와는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그런데, 걔는 사실 그렇게 사라져버리고도 남을 애예요.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거죠…… 난 놀라지도 않았어요. 영주가 사라졌다는 얘길 듣고도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영주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그건 이상한 얘기였지만, 그 이야기 어디에도 그녀가 사라져 버릴 것을 예감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나 또한, 거기엔 그녀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만한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녀는 반 친구들 몇 명과 함께 학교 옥상엘 올라갔다. 누가 더 담력이 큰지 내기를 하게 된 것이었다. 학급 반장이던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겁이 없고 대담한지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들은 옥상 난간에서 양팔을 똑바로 비행기 날개처럼 벌린 채 평균대를 걷듯 걸어가기로 했다. 거기서 진짜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었다.
   다들 호기롭게 옥상으로 몰려갔지만, 선뜻 나서는 아이는 없었다. 막상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겁을 먹은 것이다. 그때 그녀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가 올라가서 걷는 걸 잘 봐.
   그녀는 겁도 없이 옥상 난간에 조심스럽게 발을 올려놓았다. 친구들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그녀는 난간 위에 똑바로 서서 양팔을 펼쳤다. 왼쪽 아래는 까마득한 운동장이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팔을 들고 한 발씩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평균대 위의 체조 선수처럼 난간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그녀가 걸어가는 동안, 모두 숨을 죽이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이제 한 발만 더 걸으면 저 끝에 닿을 거라고 모두가 생각하는 순간,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때 다들 영주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건지 궁금해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이상해요.”
   메일 속에서 여자는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그 높은 난간에서 평균대 위를 걷듯이 걸어가던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졌다면, 그건 당연히 밑으로 떨어진 거잖아요. 하지만 우린 모두 그 애가 떨어졌다고는,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어요. 그 애가 양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너무도 당당하게 난간 위를 걸었기 때문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운동장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든 아이들이 모두 난간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아래 화단 잔디 위에 영주가 쓰러져 있었어요. 우린 모두 그 애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자애들은 벌써 울먹이고 있었죠.”
   그러나 그녀는 살아있었다. 중간에 나뭇가지에 몸이 한 번 걸렸고, 땅바닥이 아닌 잔디 위로 떨어진 덕분이었다. 다만,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는데, 그후로 한참 동안 깨어나질 않았다.
   “그런 걸 코마라고 하나요? 아니면 혼수상태?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영주의 자리는 오래도록 비어 있었고, 우린 그 자리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까봐 두려웠지요.”
   하지만 두 달 뒤 그녀는 깨어났고, 다시 학교에 나왔다.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어요. 정신을 잃기 전과 말이에요. 때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적이 많아졌다는 것만 빼면요. 아, 그래요, 그때부터 영주는 돌고래에 빠져들었어요.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동안 아주 긴 꿈을 꿨다는 거예요. 그곳엔 정말로 돌고래가 있었어. 연습장에 돌고래를 그리면서 영주는 혼자 중얼거리곤 했지요. 하여간, 내가 들려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에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네요. 그런데, 다시 한번 하는 말이지만, 너무 걱정하진 말아요. 걔는 다시 나타날 테니까요. 어릴 때처럼 말이에요. 그냥 그런 예감이 들어요.”
   그는 고맙다는 답장을 썼지만 보내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한동안 가만히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메일을 삭제했다.

   그날부터 그는 한동안 돌고래만 찾았다. 온종일 돌고래를 검색하고, 도서관마다 돌아다니며 돌고래에 대한 책들을 뒤졌다. 그러자니 정말 원래부터 이 지구란 곳엔 돌고래라는 동물이 살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 그는 ‘돌고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란 인터넷 카페를 찾아냈다. 모든 글은 정회원만 읽을 수 있는, 지극히 비밀스러운 카페였다. 그는 가입 신청을 했다. 신청 마지막 단계엔 이런 질문이 떴다.
   “돌고래가 정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요?”
   왠지 꽤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그는 ‘YES’에 커서를 갖다 대고 엔터를 쳤다.
   가입 승인이 나자마자, 카페의 모든 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는 소위 ‘정회원’이란 이들의 얼굴이 궁금했다. 길을 가다가도 혹시 그중에 ‘돌고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 뒤돌아볼 정도였다. 그들은, 마치 돌고래라는 동물이 실제로 존재하기나 하는 듯 열성적으로 모습을 묘사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주로 우리나라 해안에 많이 나타난다는 상상 속의 참돌고래에 관한 글을 읽으며, 그는 세상이 두 개의 공간으로 정확히 나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며,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공간과 오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또 하나의 공간.
   ‘정회원’들은, 상상 속의 공간에 더 열정을 쏟는 이들이었다.

   카페에 올라와 있는 글을 다 읽은 밤, 그는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창을 열자 검은색 밤이 땅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밤이라서 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새글쓰기’를 클릭한 뒤에도, 한동안은 키보드에 손을 얹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글 번호는 1721번이었다.

   *

   No. 1721 돌고래가 없는 세상

   일요일 아침, 그녀는 동해로 향했다. 갑자기 바다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주문진항이었다. 항구엔 갈매기가 많았다.
   “갈매기가 보통 몇 살까지 사는지 아니?”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아마 갈매기 전문가나 조류학자, 혹은 생물학자가 아니라면) 십 년, 이십 년, 혹은 삼십 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갈매기는 오래 살기로 유명한 새다. 그들의 평균 수명은 육십 살이고, 운 좋은 갈매기는 칠십 살까지도 산다는 것을, 그녀는 얼마 전 어느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다. 저 갈매기들 중엔 나보다 훨씬 오래 산 갈매기도 있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은 아마도 바다에 대하여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겠지.
   항구엔 고깃배도 많았다. 다들 물결에 출렁이며 천천히 흔들리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녀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배 위에선 그물을 손질하느라 분주했다. 그녀는 바로 앞에 있는 오징어잡이 배에 달린 등을 올려다보았다. 이따 밤엔 저 등에 불이 환하게 켜질 테고, 배는 새벽에 오징어를 가득 실은 채 돌아올 것이다.
   포구를 따라 난 길 쪽으로, 그녀는 걸었다.
   조용하고 한산한 것이 좀 전에 본 주문진 수산 시장과는 딴 세상 같았다. 그녀는 가게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주로 건어물을 파는 가게들인데, 한 곳에 ‘고래고기’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고래는 일부러 잡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어쩌다 그물에 걸려들면, 그건 팔 수 있다고 전에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그때 문득, 발아래, 크고 검고 반짝이며 유선형인데 마치 돌고래처럼 생긴 무언가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돌고래였다.
   아니, 돌고래 모형이라고 생각했다.
   모형인지 진짜인지 궁금해서 살짝 꼬리지느러미를 만져보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가게 안에서 비닐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걸어나왔다.
   “그거, 진짜 돌고래 맞아요. 오늘 아침에 잡힌 겁니다. 이 집은 고래고기를 파는 곳이거든요.”
   남자는 돌고래 모형(이라고 생각한 진짜 죽은 돌고래)의 얼굴 부분을 덮어놨던 빨간색 고무 대야를 들춰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진짜 돌고래였다. 돌고래는 죽었고, 눈엔 피가 고여 있었다. 죽은 돌고래는 이상하게 낯익었다. 그리고 돌고래의 얼굴을 바라볼 때, 그녀는 돌고래 역시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그녀는 일어서서 다시 걸었다.
   죽은 돌고래는 정말 처음 보는 것이었다. 빨간 고무 대야로 덮인 채 발밑에 누워 있는 고래라니. 갑자기 그녀는 돌고래가 무슨 꿈을 꾸다 잡혔을지 궁금해졌다. 돌고래는 노랠 부른다는데, 그리고 노랠 불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데, 잡히기 전에 그는 무엇을 노래하고 있었을까?
   암만 생각해도 그 돌고래는 그저 콘크리트 위에서 잠든 채 바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돌고래뿐일까. 수산 시장의 좌판에 누워 있는 모든 물고기들은 잠든 채 바다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고등어도, 삼세기도, 도치나 장치, 대구도, 도루묵이나 소라, 키조개들도 말이다.
   바닥에 물이 철벅이고 문어가 아무 때나 물을 뿜어대는 수산 시장에 서서, 그녀는 갑자기 물고기를 아주 많이 사서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무슨 고기를 사야 하지? 난 생선을 싫어하는데. 그리고 요리하는 법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냉동할 만한 공간이 많지 않아.
   생선 대신, 그녀는 주문진 바닷가의 하얀 모래사장에서 조개껍데기를 주웠다. 기왕이면 커다란 소라를 찾고 싶었지만, 바닷가엔 아무도 없고 춥고 바람이 많았다. 그녀는 조개껍데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저녁이고 바다 반대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그날 밤, 꿈에서 그녀는 돌고래가 없는 지구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돌고래가 있는 지구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그녀가 꿈을 꿨던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돌고래들의 모습이 담긴 시디를 주었다. 그러다 퍼뜩 잠에서 깼을 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 세계인지 깨닫는 데 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김희선

엄청나게 긴 시간이 흐른 뒤엔 인간 대신 거대한 오징어가 지상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길 읽은 적이 있다. 진화를 다룬 과학 서적이었는데, 소설을 쓰면서 찾아봤지만 안타깝게도 제목을 기억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진짜 돌고래가 존재하는지 아니면 사실은 그 모든 게 우리가 꾸고 있는 집단적 꿈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021/01/26
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