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정말 아니지 않나, 하고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었을 때 엄마는 입고 있는 원피스의 가슴께를 가볍게 펄럭이면서 모래를 삼킨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녁으로 먹은 꽃등심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차주인 내가 괜찮다는데도 차에 타자마자 시트 걱정부터 하면서 차창을 전부 내리게 했는데, 그러고 한참을 달렸는데도 여전히 고기 탄내가 거슬리는지 내가 한 말을 듣고 싶은 대로 오해하기까지 했다.
   그치, 이러고 가는 건 민폐겠지? 너는 어떻게 차에 페브리즈 같은 것도 하나 없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나는 차창을 한꺼번에 닫은 다음 말을 이었다.
   거길 굳이 가는 건 염치없는 짓이 아닌가 싶다고.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참으려는 건지 알 수 없는 태도로 입술을 달싹이는 사이, 나는 앞차의 제동등을 확인하고는 속도를 줄였고,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차들과 멀찌감치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을 괜스레 눈에 담으면서 갑작스러운 정적을 흘려보냈다. 문득 속이 더부룩한 건 단지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엄마의 옛 연인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10여 년 전 국내의 명산을 찾아다니는 동호회에서 엄마와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렸던 남자. 다단계에 빠진 아내 때문에 꽤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다 이혼했다는 남자. 하지만 어째서인지 엄마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의 아내와 재결합했다는 소식을 전해온 남자. 언젠가 그 남자는 내게 대뜸 전화를 걸어와 나는 연숙씨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산다고 목놓아 울었는데, 그 눈물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결국 그 연숙씨와 헤어지고도 무려 여덟 해를 더 살다가 어젯밤이 되어서야 죽었다. 사인은 알 수 없었다. 그 남자의 이름으로 도착한 부고 문자에는 남자의 사망 일자와 시간, 장례식장 주소와 발인 시간, 그리고 실제 발신자로 추정되는 남자의 아들 이름과 연락처, 계좌번호 등은 있었으나 사인은 없었으니까.
   거기 가면 그분 와이프랑 자식들이랑 다 있을 거 아냐. 없을까?
   있겠지.
   근데 간다고? 알아보면 어쩌려고?
   어쩌긴 뭘 어째. 내가 무슨 죄졌니.
   나는 그건 분명히 죄는 아니지만 도리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과 괜히 찾아갔다가 험한 꼴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고, 역시 오늘 엄마를 만난 건 실수였다는 결론을 공글리게 됐다.
   오늘 만남을 강행한 건 나였다. 저녁에는 장례식장에 가야 해서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사람을 붙잡은 것도, 딱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저녁만 먹고 깔끔하게 헤어지자고 조른 것도 모두 점심 무렵의 내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벌인 일이었다. 엄마는 얘가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거듭 물었는데, 다행히 무슨 일 같은 건 없었고 애인이 오늘은 본가에서 자고 오겠다기에 알았다고 답장을 하고 나니 문득 엄마가 떠올랐던 것이다. 애인은 모친이 갑상샘 수술을 받은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갑자기 효자로 거듭나더니 부쩍 본가를 찾는 횟수를 늘렸고, 본가에 갈 때면 내게 엄마에게 잘하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내가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도 일 년에 한두 번, 그것도 명절이 아니면 굳이 엄마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하는 소리였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엄마와 나는 좋지 않았다. 다른 날이라고 해서 특별히 좋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날은 보통의 다른 날보다도 분위기가 별로였다. 엄마가 밥을 먹다 말고 반년 전부터 시행된 그 법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나와 내 친구들의 가장 큰 염원이었던 법.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기로 약속한 두 사람에게 국가가 여러 법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 엄마는 입법 과정 내내 동성애 합법화와 결부되어 가시밭을 걷더니 가까스로 시행이 된 다음에도 잡음이 끊이질 않는 그 법과 그 법으로 인해 양분된 사회적 분위기를 의식한 듯 나와 내 애인의 계획을 궁금해했다.
   엄마가 우리의 다음을 궁금해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만난 지는 햇수로 9년째, 함께 산 지는 6년째였으므로 그 법은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엄마에게는 나를 걱정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엄마의 갑작스러운 관심에 어떤 저의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건 왜 묻느냐고 날을 세웠다. 그러고는 네 일인데 너한테 묻지 그럼 누구한테 묻느냐며 황당해하는 엄마에게 당연히 물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점이 무례한 거라고 억지를 부렸다.
   돌이켜보면 그 이후에 이어진 엄마의 응수, 그러니까 어디서 뺨을 맞고 와서 나한테 짜증이냐는 진단은 꽤 정확했다. 왜냐하면 내가 엄마에게 화를 냈던 건 그 전날 애인과 그 법 때문에 말다툼을 벌인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그 법이 발의되고 통과되기까지의 그 지난한 시간 동안은 한마음이었으나 막상 시행이 되고 난 다음부터는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였고, 그건 날이 갈수록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제도가 성 소수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 소수자를 분류하거나 낙인찍는 데 활용될 여지가 없지 않다며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고 했는데, 나는 그가 재직 중인 학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라는 걸 십분 이해하면서도 그 조심스러운 태도의 이면을 자꾸 가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정성껏 갖춰 입은 모습이었다.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원피스에 앞이 뾰족한 검은색 에나멜 구두, 그리고 각이 반듯하게 잡힌 검은색 토트백까지. 누가 봐도 오늘의 동선 어디쯤에 장례식장이 있으리라는 걸 알 수 있는 차림새.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완벽에 가까워 보였던 그 옷차림에는 뜻밖의 흠이 생기고 말았는데, 그건 엄마가 이 집 냉면이 최고라면서 나를 도심 한복판에 있는 냉면집으로 불러놓고도 막상 주문할 때가 되자 선심을 쓰듯 꽃등심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요즘 회사 일이 힘드냐고 묻더니 먼저 고기를 권했고, 결국 저녁을 먹는 내내 내가 이렇게 아무 생각이 없다고 자책하면서 옷에 배는 냄새를 걱정했다. 나는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건가 싶어 고인의 정체에 대해 다시 물었다. 낮에 전화로 물었을 때는 그냥 친구가 죽었다며 어물쩍 넘어가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실제로 만나서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냥 친구는 아닌 것 같았다.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그 사람, 이라고 말하는 즉시 그 남자를 떠올렸고, 그건 내가 시간이 괜찮으면 장례식까지 데려다 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 남자는 나와 인연이라면 인연이고 사연이라면 사연이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요즘도 본의 아니게 이따금 그 남자에 대해서, 아니, 정확히는 그 남자로부터 파생된 어떤 우연에 대해서 생각하곤 하니까. 나는 장례식장이 있는 일원동이 우리 집과는 정반대 방향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을 정도로 마음이 산란했고, 그 남자를 만나기로 했으나 결국 만나지 못했던 그날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난입해 운전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엄마가 거길 가는 게 맞나 싶은 생각과 1, 2분에 한 번꼴로 반복되는 엄마의 킁킁 소리 때문에 하릴없이 산만해지기도 했고.
   얼마쯤 지났을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내다보던 엄마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얘, 얘, 하면서 손짓했다. 퇴계로에서 동대입구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넘어 어느 교차로에 멈춰 섰을 때였다.
   여기 거기 아니니?
   나는 눈앞의 표지판과 내비를 차례로 살피고는 동네 이름을 확인했다. 언젠가 애인이 이 동네의 유명한 찜닭집과 곱창집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어 내게는 맛집이 많은 동네로 각인된 곳이었다.
   여기가 내가 처녀 때 살던 동네잖아.
   처녀 때?
   응, 결혼 전에.
   불광동 아니고?
   그건 신혼 때고. 내가 이 동네에서 일 배웠거든. 이 근방에 수선집이 많았어. 만날 동대문까지는 와도 이쪽으로는 잘 안 넘어오니까 훤해진 줄도 몰랐네.
   엄마는 원래 이 자리에 엄청나게 큰 고가가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둥, 저기 저 던킨도너츠가 있던 자리는 예전에도 빵집이었다는 둥, 저기 있는 금은방은 이름이 그대로인 걸 보니 주인이 안 바뀐 것 같다는 둥 말이 많아졌고, 급기야 뭔가 떠올랐는지 잠깐만 차를 세워보라면서 오른편을 가리켜 보였다. 내가 갑자기 여기서 어떻게 세우냐고 난감해해도 잠깐이면 된다면서 막무가내였다.
   내 기억에 저기 시장 뒤편에 양장점이 하나 있었거든.
   아, 거긴 왜.
   왜긴 왜야. 이대로 냄새 풍기면서는 못 가. 그래, 이건 아니지.
   나는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차선을 두 개나 가로질러 연석 쪽으로 차를 바짝 붙였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바로 보이는 골목으로 우회전했다. 내비가 띠링띠링 경고음을 울리며 경로를 재탐색했으나 길이 좁아진데다 차 앞으로 사람까지 지나다녀서 더는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은데도 자꾸 이쯤 아무 데나 세우면 된다고 훈수를 두는 엄마를 무시한 채 한참을 빙빙 돌았고, 엄마는 일찌감치 안전벨트를 풀고선 이불 가게와 신발 가게와 옷 가게가 모여 있었다는 어떤 골목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2.

   그날 나는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엄마의 연인이라는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시작은 아마도 착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약속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아무런 기별이 없자 나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쯤이시냐고 물었고, 3층 한가운데에 위치한 내 자리를 설명했다. 혹시 들어와서 층을 헤맬 수도 있으니 먼저 일러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때 남자로부터 돌아온 말은 다소 황당했는데, 왜냐하면 자신은 이미 30분 전에 도착했으며 여기에 3층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싶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손을 흔들어달라는 주문을 하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가 서로 다른 스타벅스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얘기를 듣고 보니 남자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곳은 광화문점이 아니라 무교점이었던 것이다. 무교점과 광화문점 모두 광화문역 근처에 있으니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남자는 광화문 스타벅스라기에 당연히 여긴 줄 알았다면서 민망해했고, 금방 그쪽으로 갈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면서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분이 지나도록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통화를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었고 오고 계시느냐는 문자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남자로부터 콜백이 온 건 한참 뒤였다. 이번에는 착각이 아니라 사고였다.
   아, 이걸 어쩌죠. 미안합니다. 내가 접촉사고를 내서…… 큰일은 아니어서 금방 끝날 것 같기는 한데. 좀 더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나는 고작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근거리를 왜 차로 움직인 건지 알 수가 없어 갸웃했고, 어쩌면 이 사람은 이 근방 지리를 전혀 모르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전날 밤 남자는 내게 엄마의 실종을 알리면서 아이처럼 울었다. 남자에 따르면 엄마는 나흘째 행방불명이었는데, 그동안 여러 번 다투고 화해했지만 이렇게 오래 연락이 안 된 건 처음이어서 내게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남자는 혹시 최근에 엄마와 연락한 적이 있는지, 엄마가 지낼 만한 곳을 아는지, 엄마와 가까운 친구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는지 등을 물었고, 내가 그 어느 것에도 대답하지 못하자 행여나 연숙씨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을까봐 무섭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더는 눈물이 나지 않게 되었을 때쯤 혹시 내일 자기를 좀 만나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만나서 긴히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다음날 나를 바람맞히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절박한 목소리였다.

   그날 스타벅스에서 내가 옆자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건 그날의 주요 뉴스를 모두 확인하고 카페 한쪽에 구비되어 있던 잡지를 전부 다 훑어봤는데도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은 예닐곱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목이었는데, 호탕한 척하는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따라 옆으로 눈을 돌리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아까 전 통화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 자리는 비어 있었으므로 아마도 그들은 내가 잠시 뉴스 댓글이나 잡지 화보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등장한 듯했다.
   나는 단번에 그들이 게이라는 걸 알았다. 그들 중 특별히 나는 게이입니다, 라고 써 붙여놓은 것 같은 스타일은 없었지만, 내가 게이이기에 감지할 수 있고 그들이 게이이기에 감지될 수 있는 어떤 미묘한 공기가 테이블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두 사람을 힐끗거리게 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과연 내 촉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으나, 나중에는 그들의 관계와 상황, 대화에 호기심이 일었다. 토요일 점심 무렵 도심 한복판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아이스라떼, 그리고 어색한 긴장감을 사이에 두고 존댓말로 100문 100답 같은 얘기나 나누고 있는 남자들이라니.
   그들이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는 건 그들이 게이라는 것만큼이나 자명해 보였다. 그즈음 어떻게든 새로운 사랑을 찾겠다는 일념하에 닥치는 대로 사람을 만났던 나로서는 그들이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자 애써 연출하는 그 모든 표정과 자세와 몸짓 들이 익숙했으니까. 어떻게든 끼는 숨기고 남자다운 척해보려는, 나는 이렇게 티가 잘 안 나는 사람이라고 어필하는 듯한 일련의 노력들. 두 사람이 종로3가나 인사동을 두고 굳이 광화문에서 만난 것 역시 내게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였는데, 물론 그건 게이들이 즐겨 찾는 그 동네와 나를 잠시나마 구분 짓기 위해서 첫 만남 장소로 광화문이나 서촌을 선호해왔던 내 역사에 기인한 해석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니 그들의 상황은 보이는 것처럼 순조롭지는 않았다. 아니, 순조롭기는커녕 어쩐지 좀 애달프고 쓸쓸하기까지 했다. 묻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이 고정되어 있는, 핑퐁으로 치자면 핑만 있고 퐁은 없는 일방적인 대화였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보통 무엇을 하는지, 최근에는 어떤 영화를 재밌게 봤는지, 운동을 한 지는 얼마나 됐는지, 이쪽 친구들은 많은지, 굳이 나누자면 이태원파와 종로파 중 어느 쪽인지 연신 묻는 건 내 쪽에 앉은 남자였고, 건너편에 앉은 남자는 주어진 모든 질문에 대답은 하면서도 결코 되묻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상황은 뻔했다. 이쪽은 저쪽에 끌리나 저쪽은 이쪽에 끌리지 않는 것. 이쪽은 갈급하나 저쪽은 아쉬울 게 없는 것. 나는 여러 번에 걸친 곁눈질로 두 사람을 유심히 살폈고, 물감이 번진 듯한 요란한 무늬의 남방에 공들여 손질한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는 내 쪽의 남자보다는 집에서 잘 때나 주워 입을 것 같은 흰색 티셔츠에 밤톨 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건너편의 남자가 훨씬 더 일틱해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따로 떼어놓고 보니 내가 건너편의 남자를 게이라 확신했던 건 순전히 그가 내 쪽의 남자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매 순간 정성을 다하느라 자꾸 어색해지는 내 쪽의 남자와 달리 건너편의 남자는 시종일관 느긋하고 편안해 보였다. 자신의 남성성을 애써 부풀리거나 연출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외형적 조건이 남자를 이따금 미소 지으며 대답만 해도 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듯했다. 그래봤자 게이이므로 그건 정말이지 같잖은 기득권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그런 사람에 끌렸고 그런 사람으로 비치길 원했으며 그게 잘 안 되어서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는 게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이쪽 세계의 작동 방식에 적잖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데이팅 앱에서 쪽지를 주고받고 다른 사진 몇 장을 더 교환한 다음 실물을 확인하는 이 바닥의 루틴에 환멸을 느낀 지 오래였고,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겨우 시작한 연애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두 달을 못 가는 통에 질리도록 낙담했다. 실제 성격이나 가치관은 모른 채 일단 서로의 외모나 체형에 끌려 만날 때가 많으니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운 건 어쩌면 당연했으나, 이런 연애 같지도 않은 연애가 반복될 때마다 자존감이 바닥나고 외로움이 극심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를 가장하는 일에도 완전히 지쳐 있었다. 남자다운 분 선호합니다, 여성스러운 분 죄송합니다, 운동하는 분이 좋습니다, 끼순이는 사양합니다, 라고 적혀 있는 수많은 게이들의 데이팅 앱 프로필 문구를 볼 때마다 다들 참 양심도 없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나를 자꾸 점검하게 됐고, 어쩌다 연이 닿아 누군가를 만날 때도 진짜 내 모습을 들켰다가는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 때문에 자연스럽지 못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고자 이 바닥에 나온 것이면서도 자꾸 나를 내가 아닌 것처럼 포장하려 드는 내 모습에 서글퍼졌고, 과연 내가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아니, 계속한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 암담해졌다. 그리고 이런 게 게이 라이프라면 연애를, 아니, 게이를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했다. 물론 그런 비장한 결론에 도달한 날에도 어김없이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눈을 돌렸지만.
   나는 내 쪽에 앉은 남자의 마음이 뭔지 알았다. 가망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 보려는 마음이 뭔지도 알았고, 기적을 믿는 것처럼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보려는 마음이 뭔지도 알았다. 여기서 더하면 더할수록 자신만 초라해질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버티는 마음. 차라리 상대의 동정심이라도 자극해서 오늘밤은 혼자 잠들고 싶지 않은 마음.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나는 어째서 우리의 만남은 이런 식일 수밖에 없는지, 어째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면 정육점 쇼케이스 안의 벌거벗은 고깃덩어리처럼 나를 노골적으로 전시해야만 하는 건지, 어째서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함부로 안겨주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견뎌야 하는 건지 억울해졌고, 결국 이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저런 세계는 잘 모를뿐더러 나와는 아예 상관이 없는 것처럼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3.

   엄마는 결혼 전에 살았던 집을 한번 보고 싶어 했다. 역 근처의 재래시장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잡화점과 양장점이 있던 골목이 맥주 골목으로 바뀐 것을 확인하더니 어떤 감상에 사로잡힌 듯했고,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 집을 한번 찾아가 보자고 했다. 당시에도 헐고 너절했던 집이 과연 아직 남아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래도 궁금하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너머로 보이는, 듬성듬성 불 밝힌 창문이 모여 있는 언덕이 엄마가 살았다는 동네였다.
   나는 처음에는 시간도 늦었는데 그냥 차로 돌아가면 안 되냐고 뻗댔으나, 일단 걷다 보니 숨이 좀 트이는 것 같기도 하고 속이 좀 편해지는 같기도 해서 잠자코 엄마를 뒤따랐다. 물론 지은 지 오래된 다가구 주택들로 빼곡한 눈앞의 풍경보다는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점멸하는 어떤 기억들, 이를테면 그날 스타벅스에서 내가 훔쳐보았던 남자들의 기류나 끝내 대면하지 못한 채 파투나버린 그 아저씨와의 약속, 그리고 서대문역 쪽으로 걷다가 마주친 뜻밖의 인연 같은 것들에 집중하면서.
   한번 같이 보자니까 그러네.
   서너 걸음쯤 앞서 있던 엄마를 따라잡자 엄마가 말했다.
   그 친구 말이야. 내가 진짜 맛있는 거 사주고 싶은데. 그렇게 오래 만났다면서 어쩜 한 번을 안 보여주는지.
   맛있는 거 뭐? 꽃등심?
   엄마는 자신의 원피스 소맷부리와 내 분홍색 옥스퍼드 셔츠의 어깨 부분에 차례로 코끝을 가져가더니 이내 표정과는 다른 말을 했다. 그래도 걸으니까 좀 낫네.
   사실 내가 내켜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애인은 전부터 엄마를 만나고 싶어 했다. 내가 일찌감치 엄마한테 커밍아웃을 했고 엄마가 그걸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여전히 신기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건 다 엄마가 나한테 지은 죄가 많기 때문이라고, 엄마가 자기 인생을 살겠다며 고작 아홉 살이었던 나를 아빠에게 버리고는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사실 엄마는 내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지분이 거의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인 모자 관계가 아니라고 우리 집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해도 그에게 돌아오는 말은 그래도, 였다. 그는 내가 스물셋 무렵 다시 만난 엄마에게 커밍아웃부터 한 게 일종의 복수였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 얘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도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신 거잖아. 너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를 거야.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고, 너는 진짜로 감내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지만, 그런 마음은 가급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서로에게 진실한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내게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미 본 것들을 못 본 척하거나 알게 된 것들을 모르는 척해야 한다는 걸 체득한 지 오래였으니까. 그래,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데.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근데 그때 그분이랑은 왜 헤어진 거야?
   오르막이 시작될 때쯤 나는 덩굴이 비늘처럼 뒤덮인 어느 집 담장을 일별하던 엄마에게 물었다. 물론 오늘 같은 밤이 아니었다면 굳이 묻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그냥 뭐……
   또 엄마가 버린 거지?
   나는 그 말이 내가 듣기에도 못된 것 같아 멈칫했으나 순간적으로 나를 버렸던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하지 않나 싶어 사과하지 않았다. 웃는 척하는 건지 웃으려 애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동그란 이마를 만지작거리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맞아, 내가 버렸지. 그럼 차였겠니?
   왜 찼는데?
   뻔하지. 성격 차이.
   엄마가 한 박자 쉬었다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결혼을 원했거든. 그게 다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 왜? 어차피 같이 사는데.
   내가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까. 그리고 그게 그거랑 같니?
   나는 그거와 그거는 같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어쩐지 엄마가 하는 말이 다 가진 사람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려서 다를 건 또 뭐냐고 투덜댔다. 한 번 할 수도 있고 두 번 할 수도 있으며 그 모든 걸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엄마는 생각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 전부터 내가 좀 변했어.
   엄마가 말했다.
   그 사람, 우리가 함께였던 2년 중에 처음 1년은 소송 중이었거든. 아내가 회사 사무장인가 하는 남자랑 바람이 났으면서도 절대로 인정은 하지 않는데다가 재산 분할에도 이견이 있어서. 사실상 이혼한 상태였기는 했지만 법적으로는 아니었던 거지. 근데 얼마 뒤에 법적으로도 홀가분해지니까 어째서 그런 건지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예전 같지가 않은 거야. 뭐랄까 우리를 지탱해주던 어떤 게 사라져버린 것 같달까.
   그게 뭔데?
   엄마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어쩌면 그건 이혼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을 고쳤다. 그냥 우리가 다 된 걸지도 모른다고. 만날 만큼 만나서 시시하고 재미없어진 걸 수도 있다고. 그뿐이라고. 나는 엄마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지만,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는 건 내 마음을 훼손하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침묵으로 물러섰다.
   내가 그날을 소환한 건 엄마가 여기가 아닌 것 같다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제법 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계속 오르게 되는 걸 보니 언덕은 역에서 올려다봤을 때보다 훨씬 더 높은 듯했고, 우리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추억 속에 갇혀 있는 순간들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그분이 나한테 울고불고 난리 쳤던 거 기억나? 엄마 어디 있는지 아느냐면서.
   무슨 소린가 싶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엄마가 피식 웃었다.
   술만 먹으면 그렇게 울었지. 한번은 동네 개를 붙잡고 울었다니까.
   그 당시 엄마는 그 남자가 내게 전화를 한 건 잔뜩 취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다음날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것도 착각과 사고를 운운하며 상황을 모면한 것도 모두 전날 밤 자신이 취중에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해서일 거라고 했다. 내가 우리의 통화 내용을 상세히 전하며 그런 게 아니었다고 말해도 엄마는 그 사람은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라면서 코웃음 쳤다.
   그날 좀 재밌는 일이 있었어.
   그날?
   그분이랑 만나기로 했던 날 말이야.
   나는 이제껏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말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봐 오래도록 혼자 간직해온 이야기를.
   그분한테 먼저 가보겠다는 문자를 남긴 다음에 이리저리 배회하듯 한참을 걸었어.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더니 카페 밖으로 나오자마자 좀 걷고 싶더라고. 볕이 유난히 좋은 날이었거든. 근데 걷다 보니까 어떤 남자가 대로변 한쪽에 고개를 숙인 채 주저앉아 있는 거야. 과호흡이 온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면서. 그냥 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괜찮으신 거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남자가 힘겹게 고개를 들더라. 얘기를 들어보니 길을 가다가 눈앞이 핑 돌아서 넘어졌다고 하더라고. 몇 분 전에 저쪽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차에 살짝 부딪혔는데, 충격이 크지 않기도 했고 특별히 다친 데가 없기도 해서 괜찮은가보다 했더니 그게 아닌 것 같다고.
   어머, 그래서?
   부축해서 응급실에 데려다줬어. 바로 그 근처에 대학병원이 있었거든.
   잘했네, 원래 그런 사고가 더 무섭다고 하더라. 겉은 멀쩡한데 안에서 피가 줄줄 새는 거지. 운전자한테 연락은 했고?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냥 가시라고 했대. 전화번호도 안 받고.
   아이고, 바보네. 바보야.
   나는 엄마에게 그 바보가 9년째 만나고 있는 내 연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남자에게 다가갔던 진짜 이유는 그 남자가 방금 전까지 내가 앉아 있던 스타벅스에서 누군가에게 성실히 구애를 하던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반년쯤 뒤에 내가 데이팅 앱에서 그 남자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우리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려고 보니 어쩐지 그 모든 일들이 이제는 좀 시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고, 전부 다 말을 한 게 아닌데도 벌써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것만 같은 허탈함이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건 운명이라기엔 좀 억지스러웠으니까. 그날의 사고와 사고는 서로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결국 그 지긋지긋한 데이팅 앱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그때 내가 해야 할 말을 전부 다 하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는지 엄마가 물었다.
   근데 뭐가 재밌다는 거야? 재밌는 일이 있었다며.
   아, 재밌는 일이 아니라 신기한 일인가.
   엄마는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이 이마를 살짝 구겼고, 내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옛 동네를 둘러보는 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좁다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집들과 그 집 대문이나 담장 옆에 걸려 있는 빨간 깃발들을 눈에 담더니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이 골목 저 골목을 둘러보다 멈춰선 곳은 구멍가게 앞이었다. 새시 문 양옆으로 공병이 담긴 박스와 빛바랜 평상, 헤집어진 종이상자들이 널브러져 있는 동네 슈퍼. 엄마가 또래로 보이는 주인 여자에게 길을 묻는 동안, 나는 가게 밖에서 핸드폰을 확인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내 담당은 아니지만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업무 메일 몇 개를 읽었고, 음식 사진과 카페 사진, 셀카 따위로 뒤덮인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어봤으며, 나중에는 카톡을 열어 지금쯤 본가에서 쉬고 있을 애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나 그렇듯이 밥은 먹었니, 라고 물었는데, 정말이지 그게 궁금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면서 번번이 왜 그렇게 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 사람은 뭘 하는데 카톡도 확인하지 않는 걸까, 왜 엄마랑 만난다는 날에는 어김없이 연락이 두절되는 걸까, 아니, 지금 같이 있는 사람이 정말 엄마이기는 한 걸까 싶은 생각을 두서없이 하면서 메시지를 다시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하는데, 언제 가게에서 나왔는지 엄마가 내 앞으로 까만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 싶어 얼떨결에 받아들자 하늘색 분무기가 보였다. 상쾌한 향. 세균으로 인한 냄새 제거. 페브리즈였다. 나는 왠지 모르게 졌다는 생각에 헛웃음을 내뱉으며 봉지 안에서 페브리즈를 꺼냈다. 그리고 엄마에게 물었다.
   알아냈어?
   응?
   살던 집 말이야.
   엄마가 벌써 흥미를 잃은 듯한 심상한 얼굴로 말했다.
   아, 더 위쪽이었어. 아까 지나오면서 축대 봤지? 원래는 거기서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어서 더 올라가는 건데 그 뒤가 다 밀려서 아파트가 된 거야. 저 아줌마 말로는 여기도 관리처분인가 떨어져서 내년이면 싹 다 밀릴 거라네.
   나는 엄마를 따라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몇몇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길 위의 무언가를 찾다 실패한 것처럼 멈춰 있었고, 그 길옆으로 길게 세워진 난간 너머로 동네의 야경이 펼쳐졌다. 어느새 한밤을 품은 하늘과 어스름한 달빛이 내려앉은 초록색 옥상들, 그리고 점처럼 박힌 가로등을 따라서 선처럼 그어진 골목들. 그때 엄마가 내 손에 들린 페브리즈를 낚아채듯 가져가더니 허공에 가볍게 분사했다. 칙 소리가 마음에 드는지 한번 더 뿌렸고, 반짝이듯 흩뿌려지는 찰나의 물안개가 마음에 드는지 다시 한번 뿌렸다. 나는 인공적인 꽃향기가 부유하는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엄마의 말소리에 눈을 돌렸다. 엄마가 있지, 하고 운을 떼더니 자꾸 뜸을 들였다.
   아 뭔데, 그냥 말해.
   그만 집에 가자고.
   집에? 거긴 안 가고?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거 같아.
   뭘 했다고.
   너 만났잖아.
   ……
   집에 데려다줄 수 있지?
   엄마는 그렇게 묻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러고는 내 뒤에 가려져 있던 누군가를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엄마에게는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걸 들켜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잠시 멈칫하다가 문득 내 안에 단단한 동상처럼 자리하고 있었던 어떤 다짐이 부서져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부서져 있었지.

   4.

   애인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장례식장 건물 밖에 외따로 서 있는 ATM 부스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내가 어쩌자고 여기까지 온 걸까 싶은 생각과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조문이나 하자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한여름도 아닌데 부스 안이 숨이 턱 막힐 만큼 더웠다. 나는 이제야 답을 하는 그가 괘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굴욕적이게도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엄마랑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답장도 못해? 뭐 커밍아웃이라도 하셨나?
   나는 제발 좀 그러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해왔으면서도 비꼬아 말했고, 그렇게 말해버리고 나서는 어김없이 후회했다. 그가 편하게 누워 있을 때만 나오는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야, 오늘 엄마 안 만났어.
   안 만났다고? 왜?
   몰라, 얘기하자면 길어.
   그는 내가 뭔가를 궁금해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얘기하자면 길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막상 만나서 사정을 들어보면 그 얘기라는 게 길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있었나. 아니, 없었다.
   무슨 일인데?
   내일 장학사 오는데 갑자기 수업 시연을 나더러 하라고 해서 여태 자료 만들다가 왔어.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믿기지도 않은 걸 억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가 이런 거짓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원래는 본가에서 하룻밤 잘 거라는 핑계로 외박을 하려 했으나 그게 어긋나버린 상황들을. 이를테면 만나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거나 만났더니 기대와는 너무 달라서 마음이 식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쪽은 마음이 동하는데 저쪽은 그렇지 않아서 외박 같은 건 필요 없어진 그런 흔하디흔한. 방금 전 내 머릿속을 스친 장면이 상상이 아닌 실제였다는, 그러니까 그건 수년 전 내가 직접 목격한 장면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따갑게 찌르는 사이 그가 물었다.
   근데 넌 어딘데? 왜 안 와?
   아, 내가 어디냐면……
   나는 몸을 돌려 부스 밖을 내다봤다. 장례식장 건물 바로 앞에 서 있는 택시가 보였고, 잠시 후 택시에서 내리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창문 위로 겹쳐지는 내 모습도.
   나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조문할 때 분홍색 입어도 되나? 분홍색 남방에 청바지인데.
   조문? 누가 죽었어?
   어, 장례식장이야.
   이 밤에? 누가 죽었는데?
   나는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건 진짜로 얘기가 길지만 나까지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다가 혹시 지금 이쪽으로 와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굳이 해야 한다면 이건 얼굴을 보고 해야 하는 얘기였고 지금 해야 하는 얘기였으니까. 그가 뭔가를 감지하려는 것처럼 숨을 죽이더니 지금이 몇 신 줄 아느냐면서 볼멘소리를 했고, 나는 곧바로 적립식 펀드 광고와 신용대출 광고가 반복 재생되고 있는 ATM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자리한 디지털 시계가 어느덧 우리가 하루 끝에 와 있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었다.
   그래서 안 온다고?
   아, 누가 죽은 건데 그래.
   나는 우리의 시작, 이라는 대답을 잇새에 깨물었다 삼켰고, 그 대신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을 묻기로 했다. 내가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유치하게 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드디어 우리 두 사람이 도망칠 수 없는 사각으로 몰린 것 같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다, 오지 마. 안 와도 돼. 대신 이거 하나만 솔직하게 말해줘.
   뭐?
   오늘……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정말 엄마였어?
   나는 그제야 내가 왜 오늘 무리해서 엄마를 만난 건지 알 것 같았고, 그렇게 묻기 전까지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정이 나를 제압하는 동시에 풀어놓는 걸 체감하면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부스 안의 공기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을 머금은 채 뜨겁게 달아올랐고, 내 얼굴 위에 덧씌워져 있던 가면 같은 것이 조금씩 녹아서 땀처럼 흘러내렸다.
   그때 그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침묵을 깨고 말했다.

김병운

받아들였다고 해서 갈등이 해소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쉽지 않았던 사람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2020/10/27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