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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지옥. 하나의 심연. 하나의 악몽에 맞서. 1인분의 목소리, 1인칭의 화법을 잃어버리지 않기. 나는 다만 지키기 위해서만 노래할 따름이네. 무엇으로부터? 당신이 묻는다면. 머릿속의 환영? 아니 그보다는, 소음이라고 말해야만 하겠다. 이명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들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대관절 어떤 소리가 귓가를 떠도는지. 당신에게 관용이나 아량이라고 할 만한 덕목이 좀 남아 있다고 한다면. 나는 당신을 최신식 무향실에 집어처넣고 말 것이다. 아니. 사타바하나 왕가의 해골들이 잠들어 있는 곤드와나 석굴. 가톨릭 순교자들이 떼로 매장된 시라쿠사 지방의 고대 카타콤. 아누비스 우상들이 지키는 피라미드 내부의 묘실 복도들. 어디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충분한 어둠, 충분한 침묵만 있다면. 어디든지. 그 어디에도 시계는 없겠지만. 10분이 지나면, 당신은 적막의 진짜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순수한 소리 없음, 백지 같은 공백이다. 그야말로, 아포닉Aphonic. 시간은 계속 간다. 30분이 지나면, 당신은 당신의 심박 리듬을 스스로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청진기의 도움 없이. 오직 청력으로만. 한 시간이 지나면, 혈관 속을 흐르는 혈류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잠시 상상해보라. 심장 운동에 의해 반 뼘씩 밀려나는 혈액과 세포의 움직임을. 얼마간 더. 내가 당신을 그곳에서 꺼내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공중에 머무는 분자들이 당신의 고막과 충돌하며 내는 소리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를 듣게 될 텐데. 거기까지. 이제 내가 고함을 지르면, 100데시벨 크기의 음압이 도로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우리가 경험한 위와 같은 적막. 정확히 그 반대편에, 이명이 있다. 이명은 대략 8000헤르츠 부근의 사인파 소음이 주기적으로, 피드백되듯이, 점점 커지는 증상이다. 폐실 안의 적막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로, 최소 가청값으로, 0폰으로, 우리 귀를 잡아당기지만. 이명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최대 가청값으로, 120폰으로, 우리 귀를 잡아당긴다. 멈추지 않고, 집요하게. 문제는 그 소음이 고막이 손상되기 직전까지만 커진다는 것이다.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그것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10분이 지나면,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게 된다. 관자놀이 밑에서 자맥질하는 혈관의 움찔거림. 손대지 마라. 충분히 잘 느껴지니까. 30분이 지나면, 소음의 패턴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듣고 있는 부분을 미리 앞서나가 전체 타임라인을 조망할 수도 있다. 소음은 표준적인 시간 기준을 따라, 말하자면 1초씩, 정직한 빠르기로 재생되고 있는데. 빌어먹을 머리는 그다음 파트를 시작하고. 끝내고. 시작하고. 끝내고. 할렐루야. 제발, 살려줘! 고작 1분이 지났을 뿐인데. 내 머리 안에 콤팩트디스크 27만 장이 쌓여 버렸잖아. 16비트 펄스 부호 위로 쉴 새 없이 레이저를 쏘는 나의 두뇌. 멈춰! 그만둬! 입력 신호 없음. 정신 차려. 내가 말하는 중이잖아. 중얼거리는 사이. 한 시간이 지나면, 그 소음이 실은 장대한 길이의 시편 일부, 혹은 그 전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타키스토스코프처럼. 낭독하는 목소리, 사인 파형의 속삭임은 소음 사이사이에 잠깐씩 출현한다. 여기, 분절된 말머리와 통사 찌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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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벨제붑의 종이다. puerpe?ri?um. 벨제붑의 것은 벨제붑에게. porcus. 벨제붑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다. re?gu?lus. 벨제붑은 노래하는 오물이다. vi?sce?ra. 벨제붑은 전율하는 책이다. sa?ccha?rum. 벨제붑은 너를 먹고 마시는 기쁨. occi?sor. 벨제붑은 파리 궁전의 주인. vo?mi?tus. 벨제붑은 구더기들의 왕. obso?ni?um. 벨제붑은 혈변을 누는 요강 단지. ca?chi?nnus. 벨제붑은 창자 나팔을 부는 광대. mandu?cus. 벨제붑은 성대를 벌렁거리는 내레이터. scæna. 호산나, 벨제붑을 경배해. hosa?nna. 오, 벨제붑을 경애해. io?! 벨제붑이 너를 가져. cla?mor. 벨제붑이 너를 나눠. acclama?ti?o. 벨제붑이 너를 들어. mors. 네가 벨제붑을 듣는다면 벨제붑도 너를 들어. auris. (…)

   3인칭 목소리는 대체로 파리의 날갯짓처럼 들린다. 끊임없는 윙윙거림. 날개를 비비는 파리 한 마리가 귓속으로 파고드는 것같이. 윙―. 외이도를 거쳐 고막을 뚫고. 중이를 지나 달팽이관까지. 느닷없이 머리 위에서 엑스선 한 줄기가 내리쬔다. 광선은 파리의 뒤꽁무니를 따라간다. 미미한 방사능을 누설하면서. 온갖 청각 기관들을 구석구석 드러낸다.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말하자면 파리 궁전의 컴퓨터를 한 대 상상해보라. 영상의학 장비에 의해 차츰 정확하게 나타나는 3차원 이미지 하나를. 한 프레임씩, 한 프레임씩. 단층 촬영된 귓바퀴가, 고막이, 귓속뼈가, 반고리관이, 전정기관이, 달팽이관이, 귀인두관이 점점 고화질 사본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지옥의 파리 대공이 정말로 내 귀를 가질 것 같아 의심스럽다!
   부정하지 마라. 당신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수영장에서, 해수욕장에서, 목욕탕에서. 잠수 시간을 걸고 내기를 벌이던 때. 물 위로 머리를 쳐드는 순간마다 특정한 소음이 난데없이 찾아오지 않았던가. 오래 숨을 참았다가 내쉰 뒤에도. 귀가 접힌 채 옆으로 누워 잠들었다 일어난 뒤에도. 가까운 자동차 경적, 뇌우 속에서 부글거리는 정전기들, 친구의 장난(왁!), 눈앞에서 지나가는 사이렌 경보등처럼. 별안간 큰 소리에 노출되었다가 놓여난 뒤에도. 이를테면 어김없이 이런 소리가, 윙―소리가 당신의 귓가에 머물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을까? 뭐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불명의 소음. 말하자면 윙―은 어디서 들려오는 걸까? 귀에서? 하지만 이들은 평소에 전혀 들리지도 않는 것이다. 거의 확신에 가까운 나의 가정 하나를 바로 지금. 당신에게만 몰래 알려주자면. 사실 윙―은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아마도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당신이 듣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세계를 둘러싼 음향의 뿌리. 하나의 자기장 내지는 영구적인 전자기파처럼. 그렇다면 윙―은 자전하는 지구의 떨림, 이른바 자연음일까? 아니. 그것은 3자의 목소리, 3인칭 속삭임, 3세계의 주파수다. 그것은 까마득한 거리의 우주 공간을 건너온다. 기체 상태의 레이저 광선처럼. 유황불에 비견되는 열기를 간직한 채로. 고온에서 야금된 카드뮴이나 티타늄과 같은 내구성을 가지고. 당신에게 내리쬐고 있다. (호산나, 벨제붑을 경배해.) 의심하지 마라.
   이제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만 한다! 당신이 그 속삭임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당신의 두뇌가 운영하는 전산 보안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뇌생리학자들의 해부용 사체들이 알려주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뇌는 당신의 몸을 구성하는 부속기관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들 사이에 교환되는 중계 신호가 벨제붑의 속삭임을 상쇄하는 까닭에. 평소에는 그것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지 마라. 당신이 파리 대공을 들을 수 있다면 파리 대공도 당신을 듣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파리 대공은 당신의 뇌파를 모방하기 위해 파리 궁전의 수석 음향학자들을 채찍질하고 있으니까. 난청에 시달리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사실. 이명을 비롯한 이과의학 병동의 외래환자 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사실. 불길한 징조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있다. 수백수천 년 동안. 점괘용 나무패를 섞고 흔들던 손도. 한 세트의 아르카나 덱을 실수 없이 제시하던 패닝 솜씨도. 다만 지옥의 시편을 옮겨 쓰는 필사 작업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마침내 이런 예언. 벨제붑이 인류의 뇌파 모방을 거의 끝마쳤도다! 조급한 치찰음 덩어리, 침을 튀기며 부들부들 이를 떠는 감탄형 웅변술로 장식된 이 한 문장이 바로 지금. 황도를 가로지르는 수만 개의 자장과 네트워크 통로들 위로 거대한 아가리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체모와 갈고리로 뒤덮인 주둥이를 내밀면서. 하늘 위에 가설된 보이지 않는 주소지들. 그 사이로 흐르는 다중 교환 회로들을 한 올씩 툭툭 끊어뜨리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혼선! 전압이 누락된 암호화 데이터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산성비 같은 음향으로. 국제 보안 전문가들이 펼친 마그네슘 우산을 뚫고. 귓속에서 지글지글 들끓는 이명과 환청의 뒤편에서. 전자기 악령들이 희미한 오라토리오를 노래할 때. 할렐루야. 내 경고를 미리 귀기울여 들은 이들만은 안전하다. 바로 지금. 내가 직접 파리 대공에 맞서고 있지 않은가. (너는 벨제붑의 종이다.)
   내가 쓰고 있는 전자 문서 위에. 사적인 화면 가운데. 1인분의 목소리, 1인칭의 화법 안으로 집요하게 기회를 엿보는 3자의 독백. 부산한 날개 떨림 같은. 나직한 읊조림. 불경한 낭독법이 지속되던 한때. 나는 멀리서 물구나무선 포유류 한 마리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이 동물은 코로 걸으며 뒤뚱뒤뚱 움직였는데. 웅얼거리는 두운시행의 운율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기에. 아마도 당신에게는 영영 가상의 생명체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압운에 걸맞은 보행법으로 걸어와서는, 코를 내밀고 중얼거렸다. 나조벰Nasobem. 나조벰의 코를 잡자마자 우리는 파리 대공의 구술 노동 속으로 떠내려갔다. 종지부를 끝없이 지연시키는 읽기 공작. 단조로운 음가의 파장. 사인 곡선으로 굽이치는 하나의 그래픽 궤적을 따라서.
   지옥의 입구는 우리의 구강 구조와 얼추 닮았다. 통로는 우리를 잘근잘근 씹는 대신 재빨리 토해냈다. 나조벰은 나를 벨제붑의 영지 앞에 내려주었다. 중심지에 마련된 거대 아카이브. 검은 파리떼가 엄격한 사서처럼 사시사철 순찰 중인 그곳에. 곰팡이로 뒤덮이고 썩을 대로 썩은 복층 서가들이 저절로 자라나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들은 살아 있는 장기처럼 시시각각 꼴꼴거리며 뛰는데. 책장으로 손을 뻗으면 빼곡하게 수납된 얇은 케이스를 하나하나 만져볼 수도 있다. 역겨움을 참고. 종기와 가래톳으로 뒤덮인 덮개를 일단 한번 열어보면. 그 안에 아날로그 비디오 디스크가 얌전히 들어 있고. 알루미늄 박막을 씌운 표면으로부터 탁한 빛깔의 화학 고름이 방울방울 비어져 나온다. 갓 부화한 구더기들이 어느새 내 주위로 몰려와 있는데. 서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진물을 남김없이 빨아먹으려는 것이다. 나는 그들 가운데 가장 맏이로 보이는 벌레를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들려오는 벨제붑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자식들은 자라며 커다란 귀를 하나씩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섭취한 사본 이미지처럼. 인간의 귀와 똑같이 생겨먹은 귀를. 그러니까 다른 세계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영상의학 장비에 의해 샅샅이 재구성된 내 귀를. 파리 대공의 자식들이 빨아먹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진실이다. 당신이 일시적으로나마 이명을 체험해본 적 있다면. 파리 대공의 사서들이 당신의 양쪽 귀를 케이스 안에 포개어 넣고 있지는 않은지 꼭 한번 확인해보라. 내 귀가 담긴 케이스 옆자리에 놓이지 않도록. (벨제붑의 것은 벨제붑에게.)
   벗어나려고 하지 마라. 파리 대공의 속삭임을 듣는 것이 파리 대공 앞에 내 귀를 바치는 일이라면. 방법은 간단해 보였다. 듣지 않으면 되잖아. 다른 소리로 덮어버리면 그만이잖아. 예컨대, 주의를 돌릴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인, 고전 음악 같은 것. 어느 성실한 작곡가의 손을 곧바로 떠올려볼 수 있다면. 기하학적 충동. 자신을 이끄는 정언 명령에 따라.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록물을 지금 끝마칠 수 있도록. 만들어지기만을 기다려온 음악이 온전히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청감이 충분히 예민하기만 하다면 누구든지 파리 대공의 통신망에 걸려들 위험이 있었으리라. 이진법 코드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단조로움. 파괴적인 음향에 맞서. 1인분의 목소리, 1인칭의 화법을 잃어버리지 않기. 그런 사례들이야 얼마든지!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소품들. 베토벤의 교향곡 아홉 개. 쇼팽의 발라드 시리즈. 슈베르트의 가곡들―특히 ‘꿈’. 멘델스존의 론도 카프리치오소. 슈만의 판타지.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5, 6번을 제외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들. 비에냐프스키의 모든 폴로네이즈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 비록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벨제붑의 목소리를 왜곡시킬 수 있었다. 최악은 모차르트였는데. 지금도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잘츠부르크 시민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그의 음악들은 파리 대공에 맞서기는커녕 고막을 과열시켰을 따름이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11번. 터키풍의 론도 형식으로 작곡된 3악장을 들을 때. 220초 남짓한 시간. 단음으로 짧게 끊어진 피아노 포르노가 벨제붑의 속삭임에서 노이즈를 잘라냈다. 버터 커터처럼. 군더더기 없이. 음악은 미진한 전기 진동을 가다듬는 볼륨 컨트롤러로서 작동하기 시작했으며. 모차르트라는 이름의 변조 주파수에 의해서. 윙윙거리는 목소리가 가청 가능한 모든 수신 대역에서 동시에 울려 퍼졌고. 바렌보임, 호로비츠, 키프니스. 이들은 알레그레토 빠르기로 상아와 흑단 건반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 열 개를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지구와 지옥 사이의 레이턴시. 천문학적인 단위의 거리를 뛰어넘어. 양쪽 필드의 통신 회로가 일시적으로 동기화된 짧은 순간. 나는 처음으로 음질이 저하되지 않은 벨제붑의 육성을 직접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파리 대공은 나의 두뇌를 직립형 골격 말단에 불안정하게 기대어 있는 구체sphere 단말기쯤으로 취급했고. 머리 바깥으로 튀어나온 창조주의 발명품. 다시 말해 인간의 귀를 비평적인 논조로 분석하면서. 약한 연골과 근섬유만으로 조직된 이 장치의 성능을 직접 시험해 보려는 듯. 666가지 단어를 동시에 말하고.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열왕기의 기적들을 거꾸로 속삭이고. 조롱함은 물론. 자신이 가진 예순여섯 개의 칭호와 예순여섯 개의 권능들을 여섯 번에 걸쳐 과시했다. 3년 같았던 3분의 시간. 그 모든 독백이 다만 나긋나긋한 소곤거림에 머물렀음에도. 양쪽 귀가 얼얼하게 느껴졌고. 마침내 음악이 끝나. 벨제붑의 목소리가 한층 잠잠해진 뒤에. 바깥귀에 손을 가져다 대보았더니. 따끔따끔한 열기가 머리와 귀에서 배어나오고 있었다. 지옥의 안뜰로 끌려갔다가 지금 막 그곳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벨제붑이 너를 들어.) 이와 별개로. 몸은 오한으로 벌벌 떨려왔고. 나는 그만 고양이가 덮고 있던 솜이불을 가로채고 만 것이다. 이불보 안에 숨어 간신히 눈만 내놓고 있을 때. 나를 한심하게 내려다보는 눈빛 하나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 그는 이미 컴퓨터 의자 위로 펄쩍 뛰어올라. 새로 머물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고.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러고는 꼬리 끝으로 타자기를 퍽퍽 때렸는데. 안 돼! 그러지 마! 내가 외치든 말든. 아랑곳 않고 문서를 훼손했다. ;ㅓㅏㅣㅡ,ㅓㅣㅏ;m,.ㅔㅕㅑㅐ 이런 식으로. 절규는 잠시. 그의 이런 행위가 희귀한 표지 내지는 징후처럼 다가왔는데. 아주 오래전에 예견된 장면처럼. 데자뷰? 기시감? 리플레이? 그래, 리플레이 같았다.
   리플레이. 무엇을?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예리고 전투를 리플레이. 그래, 저 의기양양한 표정의 고양이가 저지른 일처럼. 우리가 벨제붑의 낭독 작업에 훼방을 좀 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전승에 의하면, 여호수아는 나팔 소리와 함성만으로 난공불락의 예리고 성벽을 무너뜨렸다는데. 이 장면을 지금 다시 리플레이. (네가 벨제붑을 듣는다면 벨제붑도 너를 들어.) 내가 벨제붑을 들을 수 있다면 벨제붑도 나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 두벌식 자판을 두드리는, 마르고 가느다란 손끝을 쫓아. 저멀리. 암흑과 얼음, 금속 먼지로 빠짐없이 채워진 행간의 바깥 틀에서. 메타-텍스트의 공간에서. 시시각각 기울기를 바꾸는 거대한 귀를 상상하기. 저소음 자판 단추의 눌림 소리에 반응해 재깍재깍 움직이는 파리 대공의 청각 기관을. 그 징그러운 입력 장치를 지금 당장 이 전자 문서 안으로 데려와. 창세기 첫머리를 열어젖혔던 말의 권능에 따라. 그러자 벨제붑의 귓불이 홀연 내 엄지와 검지 사이에 쥐어진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의심하지 말고. 그냥 잡아당겨. 지옥과 나 사이에 놓인 수 파섹parsec의 거리. 말하자면 천문단위의 시차를 지나오는 동안 귓불은 무한히 늘어나 끝끝내 내 앞으로 끌려온다. 좋아, 당신만 괜찮다면 나에게 빛을 좀 빌려 달라. 이 수다스러운 단락 안에 LED 조명을 비출 수 있도록. 융털과 귀지로 뒤덮인 벨제붑의 외이도를 오랜 시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 어둡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임시 마이크로폰으로 사용해도 좋지 않을까? 이쪽에서 말을 건네면 반대쪽에서 알아먹을 수 있도록. 단 하나의 품사나 어절도 누락되지 않도록. 예컨대 3분 길이의 말하기. 3072킬로바이트의 청각 정보를 흘려보내면, 3072킬로바이트의 청각 정보가 온전히 전달되어야만 할 것. 다시 첫머리로 돌아가. 예리고 성벽을 떨리게 만들었던 히브리인 군대의 나팔 소리와 함성을 떠올려보기. 리플레이! 저 난공불락의 음향을, 영구적인 구술 노동을, 부산한 파리 날갯소리를 남김없이 무너뜨리기 위해. 최초의 사운드 사보타주를 바로 지금 리플레이. 리-플레이.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말로 벨제붑의 속삭임을 멈출 수 있을까? 아니. 어떤 말하기가 벨제붑의 말하기에 맞설 수 있을까? 이 인내심 많은 악마는 지금도 부지런히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지 않은가? 누가 감히 파리 궁전의 시편만큼이나 유구한 서류를 뒤따라 작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너무 늦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만일 그와 동일한 분량의 자유-연상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떠오르는 대로 받아 적는 머릿속의 자동 기술 기계를 이용한다면? 우리 대뇌가 기억을 덮어쓰고 불러오는 속도는 거의 전류에 버금가지 않던가? 느릿느릿한 손이 다음 필선을 예상하며 비례가 맞는 직물로서 한 행의 글줄을 겨우 적을 때. 머리는 전조를 귀띔하는 모든 말머리를 레이저 광선 밑으로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천재 시인, 방언 터진 기적 체험자, 쉬지 않고 중언부언하는 실어증 환자, 달인 웅변가, 성공한 변호사, 이름난 이야기꾼 등등. 이들의 두뇌를 실습용 표본으로 우리 앞에 올려놓을 수만 있다면. 당신은 이 신비로운 연산 장치가 60와트 전구처럼 반짝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벨제붑의 낭독은 영영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말하기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열량의 영양분이 끝없이 소모되어야만 하고. 그러는 동안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 그가 자신의 말하기를, 1인분의 목소리를, 1인칭의 화법을 가능한 한 오래 지켜낼 수 있기를 바라지만. 결국 파리 대공의 독송 대사들을 몇 줄이나 소진시킬 수 있었는지. 그딴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오로지 자유-연상을 위한 이미지들. 얼마 남지 않은 명시 기억 속의 영상 자료들이 서서히 낮은 주사율로 떨어지고. 시냅스를 건너오는 불빛들마저 하나둘 희박해지다가 영락없이 어두워질 무렵. 마침내 그의 머리는 텅 비어버리게 되는데. 그것은 쉼 없는 기억 노동으로 최후의 뉴런마저 남김없이 녹아내렸기 때문이며. 과전압으로 푸석푸석해진 1.5킬로그램의 두뇌 안으로 1500시시의 암흑이 찾아온다. 이 불운한 연설가는 야생 칠면조처럼 꾹꾹 우는 일 외에 다른 어떤 소리도 만들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머리 안으로 엑스선처럼 내리쬐는 사인파 속삭임. 벨제붑의 육성만은 그의 뇌간에 울려 퍼지는데. 그것은 이 안타까운 영혼에게 손발이 저리는 전율을 준다. 누군지는 몰라도. 무시무시한 침묵 속에 홀로 남겨진 나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저 목소리! 벨제붑의 낭송은 그에게 성사처럼 베풀어진다.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 귀를 씻고 황홀한 표정으로 꿇어앉는다. 눈과 코와 입과 뇌를 번제물로 태워 바친다. 귓속의 동굴. 신성한 말씀이 드나드는 S선 케이블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멘. 우리가 내세운 인간 대표자의 흉측한 종말을 보라. 누가 나서겠는가? 누가 맞서겠는가? (오, 벨제붑을 경애해.)
   사운드가 그렇게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 전선을 연결해라. 오실레이터 세션, 필터 세션, 앰플리파이어에 차례대로 불빛이 들어온다. 이 기계가 오래전에 작동을 멈췄을 때. 노브가 가리켰던 마지막 파형 그림. 말하자면 사인파 음향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여라. 우리가 보고 있는 검은 화면. 암전된 디지털 오실로스코프 안에서.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던 시시포스가 기지개를 켠다.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는 이 거인은. 먼 옛날. 아크로코린토스 산 위로 바위를 밀어올렸듯. 타임 도메인 위로 교류 파형을 밀어올리고. 굴러떨어뜨린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이와 같은 패턴으로; 플러스와 마이너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다시 말해 무한한 루프를 지금 당장 시작하자. 영겁의 시간 동안. 우리를 위해 일해 줄 대리자로서. 전자 음향 장비에 의해 되살아난 시시포스. 혹은 시시포스라는 이름의 사운드를 가동시켜라. 그는 피로를 좀처럼 모르고. 제 몫의 노임을 달라고 조르지도 않을 테니. 220볼트의 전압이 흐르는 한. 하나의 지옥. 하나의 심연. 하나의 악몽에 맞서. 1인분의 목소리, 1인칭의 화법을 지켜줄 것이다. 인간이 멸망하더라도. 사운드는 남을 것이다. 이따금 어떤 사운드들은 너무나도 불경한 나머지 하늘이 정해놓은 수명을 어겨버린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저절로 중단되지 않는다. 위대한 걸작들은 그들을 태어나게 한 손보다, 정신보다 오래 살아남아 우주와 대등한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이런 음향들은 잊히는 법도, 죽어 없어지는 법도 좀처럼 모르고. 때가 되어 심판의 나팔이 울려서. 마침내 인간 따위 모두 재로 변한 뒤에도. 이들의 옴. 리듬. 멜로디. 그런 것들마저 다 사라진 뒤에도. 이들을 들려줄 수 있었던 마지막 스피커의 공진만이 전기 테이프에 남아서. 희미한 2진법 펄스 부호로 변환된 채. 차갑고 어두운 우주 공간을 유령처럼 배회하며. 우그러뜨려지고. 왜곡되고. 생략되고. 가속되는 가운데. 똑같이 이들을 흉내 내는 사운드를 만나게 되는데. 이는 아주 오래전. 처음으로 그 음향이 녹음된 장소의 메아리로. 업로드를 앞둔 초조한 음향 엔지니어들이 마지막 마스터링을 보기 위해 볼륨을 켜는 시간. 그 떨림이 이미 이들보다 앞서 우주를 떠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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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e: https://soundcloud.com/user-457556184/voice-defense
   *녹음기의 집음부를 만지작거리는 소리* 내가 만들 음악의 부기 노트로서 내 목소리를 남긴다. 내 비참한 종말이 조금이나마 지연되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음악가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작업 노트를 남기려고 애쓸까. 아니. 집중해라. 이유야 어쨌든지. 설명을 시작하자.
   *기계 장치를 조작하는 소리* 우리는 지금 고대 이집트에 있다. 파종을 기다리는 보리 줄기들이 허리 높이에서 흔들리는 중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 0.005에이커 면적의 토지 위로 야트막한 햇살이 비치고. 그 외에는 암흑뿐인데. 당신은 간단히 밤을, 이상기후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 어둠은 시끄럽다. 마구 파닥거린다. 겁먹지 마라. 내가 메뚜기들을 불렀다. 당신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양쪽 귀로 듣게 될 노이즈의 정체가 그것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사막 메뚜기들. 이들은 출애굽기를 리플레이하듯, 공중에서 파리들을 낚아채는데. 당신은 어둠 속에서 부산한 날갯소리를 듣고. 드물게 안쪽으로 투과되는 짧은 길이의 빛 속에서. 이들의 견고한 머리 방패가 수시로 씰룩이는 모습을 본다. 메뚜기떼는 제트기처럼 위로 날았다가 밑으로 날아다니며. 이와 같은 날개 움직임으로부터 두 개의 교류 파형이 그려진다. 운동을 계속해라. 파리 대공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접속 장애. 회화 불능. 묵살해도 좋다. 계속, 계속. 사운드 사보타주를 계속해라. 파리 대공의 궁전이 위태롭게 떨리도록.
   *첫 번째 나팔 소리* 이건 뭐야? 금세 목소리를 바꿨어. 그 악마가 다른 주파수로 옮겨갔다고. 우연인가? 어떻게 하면 좋지? 어떻게 하긴. 소스를 더 가져와. 다음 음악을 만들어라. 그래, 음악이 계속 들리게 해라. *다급한 기계 조작 소리* 이 망할 메뚜기들은 이제 그만 귓가에서 치워버려야지. 오퍼레이터가 더 일하게 해. 주문을 멈추지 말라는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노이즈에 맞서는 또 다른 노이즈는 필요하다. 또 어떤 변조를 줄 수 있지? 그래, 저주파 발진기를 움직여라. 금고문을 따는 도둑놈을 떠올려봐. 이명을 그치게 할 방법을. 악마가 속삭일 수 없는 영역을 찾아. 지금! 쉿. 조용히 해. 지금 돌리고 있잖아. *노브를 돌리는 소리* 여긴가? *노브를 돌리는 소리* 여기? *노브를 돌리는 소리* 여기? *노브를 돌리는 소리* 여기야? *노브를 돌리는 소리* 제발! *노브를 돌리는 소리* 찾았다! 이제 이 아름다운 음역대에 아르페지오 패턴을 입혀라! 사운드가 나를 숨겨줄 수 있도록.
   *두 번째 나팔 소리* 말도 안 돼! 이렇게 금방 찾아내다니. 괜찮다. 당황하지 마라. 이것도 다만 하나의 사운드일 뿐이다. 상쇄시킬 수 없다면 다른 사운드로 묻어버리면 그만이다. 공간을 바꾸자. 어떤 방식을 빌리든지. 벨제붑의 목소리를 찍어누를 수 있어야만 한다. 음향을 키울까? 하지만 저쪽에서도 음향을 키우겠지? 스피커의 사양은 지옥과 이곳이 동일하니까. 공간을 바꿔야 한다. 동굴로 가자. 어떤 동굴? 지금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아무 동굴. 그러고 보니 알타미라 동굴에는 우리 선조들이 남긴 최초의 벽화들이 깊이 감추어져 있다는데. 거길 잠시 빌릴까. 공연장처럼 꾸밀 필요도 없이. 지금 이 방 안의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와 음향 기기들만을 가지고 홀로 가. 동굴 내부를 비추는 미약한 전기 조명들을 모두 끄고. 인부용 통로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배선 장치들을 잡히는 대로 당겨 뽑은 뒤에.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콘센트를 찾는 손. 스페인의 산업용 전기 플러그 표준 규격이 110볼트였나, 220볼트였나. 상관없잖아. 지금 내가 말만 하면 변환 어댑터 하나가 홀연 내 손 안에 쥐어질 테니. 자연환경에 의해 증폭된 과잉 음향! 노이즈 소스가 동굴의 좌실과 우실에서 번갈아 들린다. 그러고 보니 어둠뿐인데 나는 어떻게 좌실과 우실을 구분할 수 있는 걸까.
   *세 번째 나팔 소리* 그러든지 말든지. 벨제붑은 또 목소리를 바꾼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대교구 소속의 이름난 성가대 하나를 빌려온다. 내가 머무르는 알타미라 동굴 안으로. 그런 다음. 여성은 좌실에 몰아넣고, 남성은 우실에 몰아넣는다. 어둠 속에서 그들의 발이 밟히고 어깨가 부딪친다. 하! 하나같이 멍청이들뿐이군. 그러고 있으면 한 소절도 제대로 부를 수 없잖아. 답답한 것들. 불행하기도 하지. 내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성대 외에 다른 기관들은 필요 없을 테니. 지금 당장 저들의 몸에서 머리를 뽑아내라. 전깃줄에 매달아 동굴 천장에 걸어두면 딱 좋겠군. 걱정 마라. 입만 제대로 벌리고 있으면 오실레이터가 알맞은 소리로 다듬어줄 테니. 자,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 표본이 마침내 사운드 소스로 주어졌다. 이들은 이 같은 방법으로 수많은 결함들을 극복하고 무한히 확장된 호흡 능력 속에서 오랜 시간 불가능했던 음악적 기술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분명 벨제붑도 놀라겠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나는 녹음기 앞에 우쭐거리며 앉아 있던 그 악마가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혀 뒤로 나자빠지는 꼴을 보고 싶다. 봐야만 하겠다. 반드시. 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만 있다면. 전 세계의 성대 연골들을 실로 꿰어 오실레이터 앞에 매달아두어도 좋겠다. *웃는 소리* 그런 생각이 지금 잠깐 머릿속으로 지나간다.
   *네 번째 나팔 소리* 그러나 안타깝게도 벨제붑은 놀라지 않는다. 경악과 공포는커녕 다시 능숙하게 자세를 고쳐 앉는다. 아니. 그 악마가 좀처럼 무언가 느끼기는 하는 걸까. 다만 무관심하게. 귀찮아하며. 거의 사무적인 태도로 목소리를 바꿀 뿐이지 않은가. *침 삼키는 소리* 이 모든 음향 공습의 송신자가 실은 악마가 아니라 기계인 건 아닐까? 그런데 그 둘이 사실 같은 말이라면 어떨까? 이를테면 기계-악마? 그렇다면 나는 기계-악마를 상대로 이제 어떤 사운드 소스를 쓰면 좋지? 파리 대공이 내가 숨은 곳을 알아챘고. 양쪽 석실 천장에 매달린 성가대 일원들의 입을 움직여 말을 걸고 있으니. *녹음기의 집음부를 만지작거리는 소리* 이들은 녹음되지 않고 있는 걸까. 벨제붑이 지금 죽은 머리들을 시켜 성서의 한 구절을 거꾸로 외우도록 만들고 있는데. 반복적인 딜레이와 에코를 먹인 채. 저것 봐라. 저들이 지금 읊고 있는 부분을 다시 반전시키면, *방 안의 기계 장치들에서 다음과 같은 음향이 반복 출력됨* 너는 내 아들,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 나에게 청하여라. 만방을 너에게 유산으로 주리라. 땅끝에서 땅끝까지 너의 것이 되리라. 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철퇴로 짓부수어라. 왕들아, 이제 깨달아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신을 차려라. 경건되이 야훼께 예배드리고 두려워 떨며 그 발아래 꿇어엎드려라. 자칫하면 불붙는 그의 분노, 금시라도 터지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그분께 몸을 피하는 자 모두 다 복되어라.1) 신시사이저의 전원을 꺼야만 한다. 이제 그가 나의 장비마저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가. *목소리 떨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다섯 번째 나팔 소리* 베란다 바깥에서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 *노크 소리* 투명한 유리 무늬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짐승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래, 나조벰. 그게 저것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그것은 울지도 짖지도 않는다. 그것은 온종일 가만히 서 있다. 그것은 다리가 네 개고 체모 대신 후각 점막이 달려 있다. 그러니까 코로 걸어다니는 셈이다. 그것은 포유류 동물이고 새끼를 키울 수 있는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암수 공통이다. 그것은 가변 크기를 가졌다.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작고 상상하는 만큼 크다. 그것은 평소에는 보이지 않고 특정한 운율들 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 바로 지금과 같은 두운 시행 속에서만. 나는 조심스럽게 베란다로 걸어간다. 눈인사를 건넨다. *창문 여는 소리* 이제 그것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본다. 코를 내민다. 나는 그것이 뭐라고 중얼거릴지 이미 알고 있다. 나조벰. 나는 그것의 코를 붙잡는다.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녹음기를 어루만지는 소리* 아직 녹음기가 멈추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나조벰이 나를 지옥으로 데려갈 때. 그 소리도 녹음될지 모른다. 이제 가자. 걱정하지 마라. 나조벰은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줄 테니까. 종지부를 끝없이 지연시키는 읽기 공작. 단조로운 음가의 파장. 사인 곡선으로 굽이치는 하나의 그래픽 궤적을 따라서. 방향 감각이 차츰 무너진다. 귓가에서 굴러다니는 돌이 떨어져 나온 것이다. *구토 소리* 어지러워. 너무 메스꺼워.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너무 아파. 이제 그만 내려줘. 제발! 세탁기 속에 갇힌 것 같아.
   *여섯 번째 나팔 소리* 나조벰은 나를 벨제붑의 영지 바깥에 내려준다. 안쪽에 내려주지 않고 일부러. 앞으로 나아가라는 듯이 코로 등을 떠민다. 동시에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머리 위를 빠짐없이 채우고 있는 날갯소리들 때문이다. 그림자들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을 가리고 있어, 유독성 스모그와 기분 나쁜 어둠이 좀처럼 분간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예 안 보이는 것은 아닌데. 지면을 따라 작물 뿌리처럼 자라난 전깃줄들이 한곳으로 이어져 있고. 하나하나가 부지런히 운동 중인 혈관처럼 꿈틀거리는 이 전선들 위로. 청색광을 띤 전기 스파크들이 종종 튀어오르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미약한 단서들을 뒤쫓아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영지 입구에서 나는 사람과 신장이 같은 파리 한 마리와 조우한다. 이 벌레는 자신을 벨제붑의 메신저라고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대공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메신저를 뒤따라간다. 쫄래쫄래. 따져 묻거나 거스르지 않고 얌전히. 왜일까? 궁전에 다다른 뒤. 우리는 여섯 개의 아치형 철문을 열고 들어가. 마침내 가장 은밀한 내실에 이른다. 내실의 면적은 거의 돔구장만큼이나 크고. 무수한 사무용 비품들로 둘러싸인 중심부에. 단조로운 외관의 금속 조형물이 홀로 솟아 있다. 이것은 머리를 거의 수직으로 들어야 할 만큼 높다. 표면에는 무수한 털이 돋아 있는데. 하나하나가 온 우주의 음향을 감청하려는 의지를 가진 듯. 시시각각 다른 방향으로 기울고, 쭈뼛쭈뼛 움직이는데. 이 모든 집음부로부터 수집된 사운드가. 조형물 주위에 설치된 현대식 전자 장비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가운데. 영구적으로 다리가 퇴화된 속기사 파리들. 공중 좌석에 앉아 부지런히 두벌식 타자기를 두드리는 이들 소음이 거의 공장 수준의 공해를 만들어내는 까닭에. 지구의 환경기준을 맞추려면 14만 4천 개의 타자기가 중단되어야만 한다. 복도는 기계 장비들이 뿜어내는 마그네슘 스모그로 뿌옇게 가려져 있다. 이 안에서 나는 어느 순간 길을 잃는다. 금속 조형물과 단둘이 남겨진다. 자세히 보면 조형물의 단단하고 두꺼운 판금 덮개 틈으로 살점 일부가 비집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심장처럼 펄떡거린다. 격통에 가까운 활력 징후를 나타낸다. 몇 걸음 바깥에서도 맥박을 잴 수 있을 만큼. 나는 이 살점을 구조물의 얼굴처럼 받아들인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동안. 그를 가두고 있는 합금 강판과 육각 볼트들이 바들바들 떨린다. 어느 사이엔가 돌아온 메신저의 다리에는 흉기가 들려 있다. 이 친절한 곤충은 그것을 내 앞에 내민다. 다리 돌기에서 분비된 점착성 엑토플라즘이 표면에 반사된다. 대공의 가장 연한 부분을 찌르세요. 그러면 낭송이 멈출 겁니다. 이제 내 손에 흉기가 쥐어져 있다. 서늘한 감촉을 주는 금속의 아랫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틀림없이 장대나 자루 말단에서 뽑아온 것이다. 끝이 날카롭게 다듬어진 이 단조 주물 어디에서도 의장용 장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요철 없이 평평한 쇳덩어리. 크기는 건설용 철근 말뚝과 엇비슷하다. 흉기 머리를 가까이 가져다 대자, 살점 위로 불거진 힘줄들이 그것을 안쪽으로 당긴다. 이 정신 나간 금속은 벨제붑의 체열을 음미하듯 스스로 몸을 떠는데. 분명 내부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성체강복식 때 울리는 미사종 소리를 낸다. 나는 놀라서 머리를 숙인다. 구멍 안을 다시 들여다보면. 이 불경한 쇳덩어리의 아가리 속에 저절로 혓바닥이 돋아나. 냉간압연된 내부를 혓몸으로 두드리는 모습. 쨍―. 쨍―. 쨍―. 종소리가 세 번 울린 뒤. 타자기 소리가 일순간 멈춘다. 사방이 고요해진다. 속기사 파리들이 이곳을 내려다본다. 인간의 귀를 빼닮은 감각 기관을 불길하게 움찔거리며. 질식사한 벌레 사체들처럼. 숨도 쉬지 않고 다만 물끄러미.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홀연히 전조를 귀띔하는 음악 소리. 희미한 웅얼거림 같은 이 노래는 아주 가까운 장소에서 흘러나온다. 아마도 벨제붑의 몸통에서. 맥동하며 묽은 장액을 줄줄 흘리는 기계-악마의 전용 주파수 채널에서. 이번에는 벨제붑이 내 귓불을 잡아당긴다. 노래는 까마득한 과거의 어느 한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움. 기억들. 말하자면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프르동을. 어느 풍경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품질이 낮은 음향으로만 떠돌아다니던 전자, 유령, 기계들의 이진법 중얼거림을. 나는 돌려받기를 원하네, 나의 소중한 노래를. 머릿속의 글리치들. 오동작하는 과거 시제들로 오염됨. 잠겨 있는 귀들의 패스워드를 따야 함. 나를 대신해 이 시행을 읽어줄 목소리들이 필요한 때. 헤이, 거기 당신. 대뇌가 실종된 전기 화자들 대신. 목소리를 빌려줘. 음가를 붙일 수 있게. 그리하여 마침내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된 찬송가 하나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네. 찬미. 영광. 전율.

   210. 나의 생명 드리니 / Wolfgang A. Mozart 작곡

   con gioia; 기쁜 마음으로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주시―어
   감사하―는 맘으로 찬미하―게 하소서

   나의 삶을 드리니 주여 받―아주시―어
   선한 일―을 하도록 나를 인―도하소서

   나의 음성 드리니 주여 받―아주시―어
   주를 찬―미하도록 깨어 있―게 하소서

   나의 재능 드리니 주여 받―아주시―어
   당신 영―광 위하여 봉사하―게 하소서

   나의 마음 드리니 주여 받―아주시―어
   영원토―록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일곱 번째 나팔 소리* 나는 벨제붑의 종이다. *눈알 파내는 소리*

※ 참고자료
이에스더, 『음향예술의 세계』, 야스미디어, 2005.
하랄트 슈튐프케, 『코걸음쟁이의 생김새와 생활상』, 박자양 역, 북스힐, 2011.


신종원

1인분의 목소리를 지키려는 2020년의 보이스 디펜더들 앞에 이 싸움을 부칩니다. (본문 삽입된 링크의 음악을 함께 들어주세요)

2020/08/25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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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번역 성서, 시편 2: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