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대폭풍이 불어닥쳤을 때 나는 이 근방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폭풍은 미세중금속을 실은 모래폭풍으로, 생성 위치가 대륙 사막 지역이라 추정했을 뿐 정확하게 어디에서 시작했고,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걸 추적하는 건 이제 무의미했다. 내가 전투차량 안에 숨어 모래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던 시각, 지구 반대편에서는 산맥을 타고 퍼지는 산불과 그 연기를 피하기 위한 긴 대피행렬이 몇 달째 끊이지 않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에는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지독한 가뭄이 지속됐으며 갠지스강은 인도 북부를 삼킨 지 오래였다. 그 모든 일들은 한때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이유를 묻기에는 모두가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보초는 마지막 탈출선의 출발을 앞두고 탑승자를 인도하기 위한 안내자의 역할이었지만, 실상 내가 보초를 서며 했던 일은 탑승권을 빼앗기 위해 이 근방을 배회하는 자들을 위협해 돌려보내거나 경우에 따라 사살하는 것이었다. 모두를 구원할 함선은 인류에게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모두를 구원할 수 없다’는 건 결국 인간 목숨에 순위를 매길 수밖에 없는 일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살아있다고 한들 이곳에 남아있는 건 죽은 것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 총알은 그들의 죽음을 당겨오는 것뿐, 그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뿐……
    하지만 그것마저도 더는 내게 위로가 되지 못했을 때 모래폭풍이 불어왔다. 모래폭풍은 내가 쏜 것이 사람인지 고라니인지 모르게끔 만들어주는 버팀목이었다. 나는 내가 쏜 그것들을 고라니라 생각하려 애썼다. 나는 고라니를 쏴 죽인 것이다. 탈출선에 고라니는 탈 수 없으므로.
    그렇지만 나는 이제 그것이 고라니가 아니고 사람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고개를 돌리면 마주치는 이 많은 백골 중 고라니의 머리뼈는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거라고, 죽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거라고 방향을 틀어 스스로를 위로해보려고 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해골들은 이곳에서 나를 지옥에 끌고 가기 위해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외롭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가 처지가 우스워져 웃음이 새어나왔다.
   사라는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정찰선으로 가는 방법을 눈앞에 띄웠다.
   ―귀로를 찾았습니다. 설정할까요?
   “아니, 괜찮아.”
   ―움직이기 힘드신 거면 구조선을 불러드릴까요?
   이번에는 지도 위에 내 좌표를 찍었다. 37°51'39.1"N 126°50'58.7"E. 지도상으로 보아, 내가 지냈던 곳과 멀지 않은 곳이 맞는 듯했다.
   “이대로 있고 싶어서 그래. 내 좌표 찍어주지 마.”
   사라는 곧장 찍어두었던 좌표를 시야 밖으로 밀어냈다. 내 눈에는 다시금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보였다. 느릅나무일 것이다. 식물을 좋아했던 레이와 달리 땅에서 자라는 것에는 영 관심 없던 나였지만 느릅나무 껍질을 달여 먹였던 조모의 정성 덕에 그 형태만은 똑똑하게 기억했다. 몸에 쌓인 중금속 노폐물을 배출시키는데 느릅나무의 껍질을 달여 마시면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온 이후로, 조모는 한동안 집에 느릅나무 껍질을 금괴처럼 쌓아놓고 달였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모든 집들이 확인되지 않은 낭설에 쉽게 현혹되던 때였다. 집집마다 출처와 부작용을 알 수 없는 각종 나무껍질과 동물의 뼈를 오래도록 고았다.
   레이는 그런 소문을 믿지 않았다. 드나를 가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꼭 먹어야 기형을 낳지 않는다는 말에도 철옹성같이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레이가 제 삶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켜나간다고 생각했고 그 모습을 사랑했다. 레이가 쳐놓은 삶의 테두리 안에서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 레이의 말을 따랐어야 했다. 이까짓 걸로는 지구를 덮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함선은 결국 지구의 절망을 떼어 만든 것과 다르지 않다는 레이의 말을……
   느릅나무 잎사귀는 오므라들어 있었다. 그렇게라도 버틴 잎사귀들이었다. 버티지 못한 잎사귀들은 허물 같은 몸으로 가지에 간신히 매달렸다. 나는 그것이 마치 씨앗 같다고 생각했다가 이곳에서 잃어버렸던 씨앗 주머니를 떠올렸다.
   어쩌면 근방에 그 씨앗 주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 봉선화 씨앗이 담긴 주머니였다. 언제 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포장지가 빛바랬던 것을 레이가 찾아냈었다. 방공호에 중요한 물건을 옮기느라 집을 한 번 들쑤셨던 날이었다. 레이는 다른 것보다 이것을 꼭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함선의 수경재배 시스템은 씨앗 자체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다고 말하자, 레이는 지구로 돌아왔을 때 심을 씨앗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망설이다 씨앗 주머니를 부적처럼 품에 넣었다. 레이가 웃었고, 나는 그 웃음을 바라보며 레이의 말이 희망의 씨앗이 되리라 믿었다. 모든 것이 한때이기를.
   주변이 호젓했다. 해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기침을 내뱉자 총상 부위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바닥으로 상처 부위를 더듬었다. 탄환이 옆구리를 관통한 탓에 꽤 많은 양의 출혈이었다. 점성 높은 피가 미끌미끌했다. 응급키트가 있었다면 지혈이 쉬웠겠지만 키트가 든 가방을 빼앗겼다. 문득 내 처지가 몹시 한심하게 느껴졌다.
   레이가 지금 내 모습을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안쓰럽다는 듯 미간을 구겼을까, 슬픔에 하염없이 울었을까. 아니다. 레이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레이는 이 모든 게 내 업보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불행에 뛰어든 결과라고 했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자 습관처럼 웃음이 났다.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벌써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을 시간이었다. 허망한 부상을 입지도 않았을 거였다.
   ―왜 곧바로 쏘지 않으셨나요?
   사라가 물었다.
   “발걸음 소리가 인간이었거든.”
   ―하지만 지구에서 인간을 마주친 건 처음이 아니시잖아요.
   생략된 뒷말은, 여태껏 망설임 없이 생존자를 죽였으면서 이제 와서 망설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입술만 옴짝거렸다. 마땅히 해야 할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감정에는 관심 없을 사라인 걸 알면서도 나는 지금 느끼고 있는 부끄러움의 형태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라는 함선의 운영과 질서를 책임지는 인공지능이었다. 사라라는 명칭은 함선의 핵심 데이터를 관리하는 인공지능을 부르는 말이었지만 함선을 비롯하여 정찰선, 그리고 개인에게 연결된 독립 인공지능 역시 사라라고 불렀다. 신경망은 연결되어 있지만 결국 각기 다른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나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나에게 사라는 나를 감시하는 감시꾼 같은 느낌이었다. 사라를 영 못 미더워하는 나를 보고 레이는 휴대폰이 나를 가장 잘 아는 전자기기가 되었듯이 언젠가 사라가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것과 이건 다른 층위의 문제가 아니냐며 반문했지만…… 레이, 레이, 레이, 레이. 모든 생각이 레이로 귀결되고 있음을 나는 인정해야 했다. 그 이름으로부터 무감각해지기 위해 숱하게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레이로부터 덤덤해진 적 없었다.
   나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사라에게 대답했다.
   “눈을 마주쳤거든.”
   사라는 레이가 말한 것처럼 함선에 있는 사라와는 다른 사라임이 분명했다. 내가 발견한 것들이 사라를 통해 함선으로 송출됐다면 함선의 부대가 벌써 이곳에 도착했을 거였다. 그렇지만 이곳은 조용하다. 사라는 명령 없이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지키고 있었다.
   ―아는 인간이었나요? 그래서 당신이 틈을 보인 건가요?
   “아는 인간……”
   버석하게 바른 입술을 혀로 훑었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까슬까슬한 입술을 메마른 혀로 훑자, 나는 더 큰 갈증을 느꼈다.
   “아는 인간은 아니었는데 알 것 같은 인간이었어. 내가 아는 인간이 아니기를 바라기도 했고.”
   ―아는 인간이었다는 말처럼 들려요.
   “어쩌면 그랬을지도 몰라.”
   자욱하게 낀 안개를 뚫고 마주쳤던 눈동자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눈동자와 비슷했다. 사랑을 맹세했던 레이의 눈. 옅게 파인 쌍꺼풀과 진한 눈썹까지 죄다 레이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레이일 수 없을 정도로 마르고 작았다. 기껏해야 십 대 중반이 됐을 법한 체구였다.
   내가 이 근방에서 마지막 보초를 서고 있을 때 들이닥쳤던 모래폭풍은 그 전의 모래폭풍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큰 위력이었다. 그 폭풍은 송전탑의 전선을 끊고, 간판과 도로의 이정표를 떨어트리고, 고층 건물의 유리를 전부 깨트렸다. 하지만 레이와 드나가 있던 우리 집 지하에는 방공호가 있었으므로, 나는 강철판을 덧씌운 전투차량 속으로 몸을 숨기고 아무 걱정 없이 시시하게 시간을 때웠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앙이 나와 관련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지구를 떠나 달 궤도에 떠 있는 우주 함선으로 피신할 예정이었으므로.
   레이는 그런 태도를 자주 지적했다. 이따금 재수 없는 정치인 같다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떼꾼한 얼굴로 레이가 대답했다. 본인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뭐든 대충대충 구는 태도나 말도 안 되는 정책 꺼내놓고 떵떵거리는 폼이 닮았다고. 나는 농담쯤으로 받아들였다. 한순간 살빛 없이 푸른 기가 돈 레이의 차가운 얼굴을 발견했지만 그것마저도 착각이라 여겼다. 레이의 표정은 인간에 대한 실망과 모멸 같은 것들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다. 표가 있다는 이유로 이곳의 일이 우리의 일이 아닌 것처럼 낙관적이었던 내가 레이는 소름 끼쳤던 것이다. 레이는 그날 이후로 종종 모래로 뒤덮인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가끔은 내가 부르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넋을 놓고 있었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레이의 마음속에 싹 틔운 감정을 잘랐어야 했는데. 레이는 그날 드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내가 전투차량에서 시시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레이는 이불로 드나를 칭칭 감고 그 모래폭풍 속을 횡단했다.
   나는 우주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믿었는데 레이는 아니었을까. 정말 레이에게 함선은 지구의 절망을 떼어다 만든 또 다른 절망이었을까.
   ―십 분 뒤에 모래폭풍이 옵니다, 버드. 지원군 요청을 할까요?
   “아니, 나는 조금 더 이렇게 있고 싶어. 오늘 하늘이 유독 맑은 거 같네.”
   ―대기질은 어제와 똑같습니다. 정말 지원군을 요청하지 않아도 될까요?
   사라는 건조하게 대답했고, 나는 대화의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꺼냈다.
   “모래폭풍은 그나마 다행이었어. 절망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지구를 휘감았는데 그중에서 모래폭풍이 피하기가 수월했거든. 대륙의 남부는 홍수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고, 로키산맥은 등허리를 타고 산불이 퍼져나갔어. 전 세계 옥수수 수확량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농가에는 메뚜기떼가 습격했고, 동시에 남아메리카는 사상 초유의 폭염을 만나 하루에도 사상자가 몇백 명씩 발생했지. 그야말로 혼돈이었어. 고작 삼 년 만에 그 모든 재앙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벌어졌으니까.”
   ―예견된 일이었어요. 그래서 함선이 제작됐잖아요.
   “……아니야, 사라.”
   상처 부위가 뻐근해졌다. 왼쪽 옆구리를 붙잡자, 아까보다 더 큰 통증이 느껴졌다. 상처 부위를 확인할까 싶어 고개를 틀었다가 이내 포기했다. 이 지경이 되고 나서도 몸을 챙겨보겠다는 마음이 우스웠다. 대신 벽을 보았다. 절벽이 깎아진 듯한 저 벽은 원래 저곳에 있던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생긴 것이며, 내게 다가오는 모래폭풍이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 척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모래폭풍이 오기 전에 이곳을 떠나는 정찰선들이 보였다.
   “그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났을 때야.”
   재앙이 된 지구의 환경에서 인간은 결국 피난민이 되었다. 모두가 함선에 탑승하고 싶어 했지만 인류 전체를 품을 수 있는 건 함선이 아니라 또 다른 행성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함선에는 선택받은 25%의 인류만이 탑승할 수 있었다. 각 인종마다 탑승 인원을 균등하게 맞추기 위해 몇 년 동안 떠들썩했지만 ‘25%’인 건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회가 균등하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었다. 함선의 존재 자체가 불평등이었다.
   함선은 10년을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0년을 버틸 수 있다는 말은, 10년 후에 지구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함선의 결점이었다. 누군가 10년 뒤 함선은 또 다른 가난과 무질서의 터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더라면 모두가 함선에 절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함선에 탑승하는 것만이 이 무너진 대지 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출구였다.
   “십 년이면 될 줄 알았지만 십삼 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한 3년 전부터 지구로 내려왔다. 그전에도 정찰선이 지구를 왕복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동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지 지금처럼 지구에 남아있는, 혹은 새로 자란 작물들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약탈. 아무도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약탈이었다. 지구에는 여전히 생존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모아뒀거나 길러 온 식량을 뺏어오는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그렇게 남아있는 자들에게 약탈자가 되었다.
   바람이 조금씩 거세졌다. 모래 알갱이가 얼굴에 부딪쳤다. 느릅나무의 잔가지도 파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버드.
   목이 잠겨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당장 구조신호를 보내야 모래폭풍을 피할 수 있습니다. 구조신호를 보낼까요?
   “사라, 내가 왜 계속해서 지구로 내려왔는지 알아?”
   ―버드…… 금… …전송……
   땅이 흔들리고 느릅나무가 꺾어질 듯 휘었다. 바람이 거세지며 시야가 흐려졌다. 하늘이 삽시간에 우중충해졌다. 가까워진 모래폭풍 때문에 사라와의 송신이 불안정해진 모양이었다. 나는 풀 한 포기만 가까스로 붙잡았다.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사라가 듣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모래폭풍이 뒤덮고 간 자리에 생존자는 존재하지 않아. 아니, 살아있다고 한들 머지않아 죽을 테니 구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어. 파묻힌 도시는 그렇게 유적으로 내버려 뒀어. 어딘가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뒤늦게 레이의 발자취를 따라갔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모래에 파묻힌 한 도시의 잔흔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력한 발버둥조차 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상심이…… 당신…… 잘못은……
   “그런데 내가 그때 뭘 들었는지 알아? 함선으로 향하는 전투차량에 탑승하려고 파묻힌 도시를 등졌을 때, 울음소리를 들었어. 아이 우는 소리였는데, 그걸 나밖에 듣지 못했어.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싶었는데 함께 있던 동료가 어깨를 두드려주더라고. 그만 단념하라고. 맞아, 죽었겠지. 살아있을 수 있을 리가 없어……”
   레이는 드나의 눈이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라고 놀리듯이 말했다.
   ‘드나가 당신을 닮지 않아서 다행이야. 나는 드나가 조금 더 다정하고 섬세한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다시 떠올렸다. 나와 다른 다정하고 세심한 눈. 그렇지만 강인함이 깃들어 있던 눈이었다. 그 강인함이란 레이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무언가를 무너트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겠다는 힘.
   “그 후로 환청처럼 들리더라고. 그 울음소리가. 내가 살아있는 가족들을 묻어놓고 떠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그래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자원해서 지구로 왔어. 그런데 사라, 삼 년 동안 지구를 오가니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고.”
   ―어떤…… 이었나요?
   “내가 마치 외계인인 것 같았어. 낯선 행성을 약탈하러 온 이방인.”
   나는 떨어져 나간 절망에서 증식한 외계 생명체 같았다. 이곳은 내가 살았던 곳이었지만 더는 나의 터전이 아니었다. 낯설었고 그래서 외로웠다. 지구를 정찰하고 온 날에는 걷잡을 수 없는 서러움에 몸을 웅크리고 떨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모래폭풍이 오던 날 드나를 품에 안고 집을 떠났던 레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레이는 알았던 것이다. 우리는 저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걸. 레이의 말처럼 떨어져 나간 지구는 지구의 또 다른 절망일 뿐이라는 걸. 이 지구는 싹을 틔울 수 있지만 저 지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레이는 이곳에서 이 많은 재앙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레이에게 답을 듣지 않는 이상, 나는 영영 레이의 속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모래폭풍의 거대한 벽기둥이 이제 코앞까지 다가왔다. 쓸려온 모래에 몸이 반쯤 파묻혔다. 상처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죽음을 조금 더 뒤로 미뤘을 뿐 끝내 모래폭풍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인정했다.
   ―그…… 계속…… 험…… 피하셔야……
   나를 공격했던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는 빡빡 깎은 두피에서부터 얼굴을 비롯한 몸 곳곳에 진흙을 펴 발랐고 타이어를 잘라 만든 보호 장비를 갑옷처럼 팔과 다리에 묶었다. 아이는 나를 밀어뜨린 후 내 팔을 맨발로 밟으며 포박시켰다. 발가락으로 팔뚝 힘줄을 세게 눌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함선에 타지 못한 생존자였을 테지만 아이는 같은 종족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된 인류 다음의 세대. 위험인물로 감지된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이전의 아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빠른 결단력과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함선에 있던 생존자들과 정반대의 무언가였다.
   아이는 자신의 몸통만큼 긴 총을 능숙하게 들고 총구로 내 이마를 내리눌렀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총과 내 눈을 번갈아 쳐다봤다. 들고 있는 총을 내려놓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저항 없이 총을 놓았다. 아이는 자신의 총을 휘둘러 권총을 멀리 떨어트린 후 총구를 도로 내 이마 위로 돌려놓으며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주변에 잠복해 있던 자신의 일행을 부르는 소리였다. 아이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멀리서부터 “에페!”를 외치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 그 애는 드나 같았어.”
   ―……명단에 없는 ……에요.
   사라의 말이 심장을 내리눌렀다.
   “……맞아, 그 애는 함선에 탑승하지 못했거든. 탑승권이 있었는데도 타지 못한 몇 안 되는 인간 중 한 명이었어. 한 명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부피가 얼마 되지 않았지.”
   ―무슨 뜻…… 모…… 요.
   “세 살이었어. 함선에 탔다면 올해 열여섯 살이 됐을 거야.”
   레이와 드나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여태껏 버리지 못했지만 이제 난망의 삶을 그만두어도 될 것 같다.
   “사라, 부탁이 하나 있어. 들어줄 수 있어?”
   ―뭔……?
   “꼭 들어줘야만 해. 그러니 들어주겠다고 우선 약속해.”
   ―제가…… 없는 일…… 면요?
   “그래도 어떡하겠어. 이미 나와 약속했으니 내 말을 들어줄 수밖에.”
   ―…… 알…… 어요.
   아이를 뒤따라온 무리는 그 아이를 에페라고 불렀다. 그 아이는 드나였지만, 내 모든 것이 그 아이가 드나라는 걸 알아차릴 정도로 그 아이는 드나였지만, 드나라는 이름은 모래와 함께 파묻혔다. 드나를 구한 다른 생존자는 드나를 에페라고 불렀다. 에페의 원래 이름이 드나라는 것을 알려 줄 사람은 말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겠지. 그래서 드나는 에페가 되었을 테지.
   에페에게는 다른 가족이 생겼고 나와 다른 지구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에 내가 낄 곳은 없다.
   “사라, 이곳 위치를 데이터에서 지워줘.”
   사라와의 송신은 완전히 끊긴 듯했지만 나는 송신장치의 버튼을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 누구도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뒤틀어진 판 위에도 균형점이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곳이 어디가 됐든, 지구에서 발을 뗀 우리에게는 그곳에 설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폭풍이 몰아쳤다.
   레이, 당신 말이 맞아. 지구의 절망을 거둬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계속해서 지구의 절망을 떼어내는 것밖에 하지 못할 거야.
   우주에 미래는 없었어.

천선란

이렇게 있다가는 지구가 멸망할 걸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지만, 그런 재앙은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이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속도를 늦추는 것뿐인데도.

2020/08/25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