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거울 겨울 / 겨울 거울
거울 겨울
이 거울은
종소리를 낸다
딱 들어맞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들려오는 맑은 종소리
시간은 평평히 얼어붙었고
그 위를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는
종소리
누가 고개를 들이밀든
맑고 고운 소리를 낸다
낮에도
밤에도
얼굴이 쳐내는 종소리
창밖에는 희고 차가운 것들이 잔뜩
쌓여만 가는데
내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입김은
내 안에 달린 종이 살랑, 살랑
흔드는 꼬리
어렸을 때랑 마찬가지로
늙어서도 변함없는
소리가 난다
누군가가
또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는 소리가
겨울 거울
이 거울은 어지간해선 쏟아질 생각이 없다
언 바다가 네모나게 잘린 채 이곳으로 배달돼
밤의 절벽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만 같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거울은 녹아줄 생각이 없고
어쩌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버텨볼 생각이다
물로 흩어져 바닥에 흐르지 않고
물을 꽉
붙들고 있을 작정이야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그딴 질문 말고
거울아 거울아 이제 그만
쓰러져 죽어도 좋아
그것들 땅 위로 다 쏟아지는 날
나는 거기 쪽배 하나 띄워 놓고
꽉 쥐고 있던 주먹 스르르
놓아주며
한숨 늘어지게 자볼 테니
그 광경 그대로 얼어붙으면 지구는 아름다운 하나의
수정구처럼 보일 거야
그건 또 누구 컬렉션에 들어갈까
황유원
내게 시란 ‘쓰는’ 것이라기보다는 ‘받아쓰는’ 것이다. 받아쓸 때는 어떤 생각도, 어떤 고민도 들지 않는다. 반면에 산다는 건 한 줄 한 줄 쥐어짜내는 일이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엉망진창의 문장을 좋든 싫든 바라봐야만 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삶도 받아쓸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