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로 바꾸자고? 너 오늘 맘먹고 왔구나. 고마워, 결심해준 상대가 나라서. 우리 오늘 많이 마시고, 천천히 얘기하자. 미국에서는 무슨 일 한 거야? 아동심리학? 겸임교수? 야, 너 대단하다. 미국에서 겸임교수라니. 석주 선배가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선배가 인스타에 올리는 건 자기가 작곡한 노래밖에 없잖아. 난 몰랐지. 니가 뭘 하고 사는지, 타국에 적응은 한 건지. 넌 SNS도 드문드문했잖아. 아들 사진은 봤어. 너 많이 닮았더라. 이목구비가 크고 또렷한 게. 무슨 두 살짜리 다리가 그렇게 길까 했는데 니 다리가 늘씬했던 게 생각나더라. 나 아직도 기억해. 넌 1학년, 난 2학년 때, 1학기 종강 날 전공 수업. 니가 무릎 정도 길이의 원피스를 입고 왔거든. 은은한 청록색이 잘 어울렸지. 다들 숨이 턱 막혔대. 남자애들이고 여자애들이고 다. 그렇게 예쁜 다리라니. 그때부터 넌 문창과 여신이 됐어. 석주 선배도 그 청록색 원피스에, 그 밑으로 뻗은 두 다리에 반했는지 몰라. 응? 그랬어? 그전부터 사귀고 있었다고? 그랬구나. 졸업할 때까지 감쪽같이 잘 숨겼다, 야. 무튼 니 아들 귀엽더라. 나? 나는 결혼은 아직. 연애야 뭐. 가끔 옆에 사람이 있었으면 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 만날 사람은 있어. 있지, 혹시라도 결혼하게 되면 나는 되게 모순된 삶을 살 것 같아. 결혼해서 남편하고 싸우기라도 하면 모진 말, 거친 말을 해대며 그 사람을 존중하지 못할 거야. 그러면서 집 밖에서는 누군가의 인권을 보호한답시고 목소리를 높이겠지. 그런 게 무서워. 정작 내 옆의 사람은 아껴주지도 못하면서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거. 한국소설 가르치던 민 교수 기억나? 우리한테 얼마나 잘했어. 한 명이라도 더 등단시키려고. 그 사람이 몇 년 전에 귀농했대. 큰 진돗개 한 마리를 극진히 모시면서 하우스 딸기를 키우는데 백화점에 납품도 하고 그런대. 인세는 모두 딸기 농사에 쓰기로 마음먹었는지 딸 결혼하는데 이불 한 장도 보태주지 않았다더라. 부인하고는 이미 오래전에 졸혼 비슷하게 하고. 모든 열정이 진돗개랑 딸기한테로 향해버린 거지. 나쁘다고? 글쎄, 그저 평범한 인간인 것 같은데. 여기저기 다 애정을 쏟을 수는 없는. 아마 너도 그렇고 나도 그럴 거야. 무얼 하나를 포기해야지 다른 하나에 내가 가진 열정과 애정을 다 바칠 수 있는 거야. 민 교수를 옹호하냐고? 아니야, 그건. 한 번쯤 이해해보려는 시도였어. 쉽진 않더라. 누군가를 깊이 알아 갈수록 괴로워져. 이래서 내가 진득하게 연애를 못하나 봐. 야, 그래도 나 얼마 전에 선은 봤어. 엄마들은 그렇잖아. 나이 찬 자식이 혼자 사는 거 못 견뎌 해. 상대방 조건은 나보다 훨씬 좋았어. 후쿠오카 가봤니? 후쿠오카 시내에서 버스 타고 두 시간 정도 가면 유후인이라는 온천 마을이 나와. 그 마을에 전통 료칸을 두 채나 갖고 있는 집안 자식이었어. 그쪽 료칸이 하룻밤에 칠십 만원에서 백만 원 사이거든. 증조부 때부터 운영하던 곳이라던데. 아버지가 자식한테 사장 명함 하나 파주고 여기저기 선을 보게 만드나 봐. 사장 명함이 서로 얼굴 보기 전에는 되게 멋진 감투잖아. 인정해. 솔직히 나도 혹했어. 우리 엄마는 속물적인 기대를 굳이 숨기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했지.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고 말이야. “결혼해서 너 일하는 데에 지원금 왕창 넣어 달래라. 니가 목메는 불쌍한 사람들 더 많이 도울 수도 있잖니.” 그래, 솔직히 나 조금은 혹했어. 사실 우리 단체가 건실하긴 한데 돈에 쪼들리는 건 맞거든. 어려운 이들 돕고자 하는 사람들 보면 대부분 자기네들부터가 물질적으로 부족한 삶을 살아. 나도 가끔 내 개인 돈으로 운영자금 메꿀 때마다 우울해져. 이 돈이면 네일케어 10번은 받는데 그러면서. 얘기가 많이 흘렀다, 야. 일단 나는 맞선 상대의 외모, 성격, 버릇 뭐든 하나라도 내 취향이면 두 번도 세 번도 만나볼 생각이었어. 근데 있지. 좀 모자란 건 아닐까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어. 맞선 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어. 밤부터 비 온다고 하늘도 흐리고. 으스스한 초겨울이었지. 그 사람 차림은 청남방에 면바지였어. 서로가 맞선 상대인 걸 확인하자마자 건넨 내 첫마디가 “춥진 않으세요?” 였어. 그 뒤로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춘 호구조사가 끝나고 그 사람이 한 말이 뭔 줄 알아? “저 이번엔 꼭 결혼하려고 나왔습니다.”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엄마 얼굴을 봐서 그 사람이 먼저 나가자고 할 때까지 참아볼 생각이었지. 결국 못 견뎠어. 그 사람 맞선 전날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거든.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가 차가 전복이 된 거지. 다행히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서 사고 규모에 비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나 봐. 그 얘길 하면서 자기 이마에 난 상처를 보여줬어. 자세히 보니 아직 피가 맺혀있더라고. 그러니까 상처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전복사고가 난지 열두 시간 만에 선을 보러 나온 거지. “저 진짜 올해는 결혼 꼭 해야 하거든요.” 그러면서 웃더라. 나는 자신에게 뭐가 중요한지 판단이 안 되는 사람과는 연애도 결혼도 하고 싶지 않았어. 교통사고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한 건데. 일단 몸이 건강해야 결혼이고 뭐고 생각할 거 아냐. 이제 그만 나가자고 얘기하기 전에 한 십초 정도 고민은 되더라. 전통 료칸 두 채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다가 사라졌지. 잠시였지만. 우리 엄마는 뭔가 수틀릴 때마다 나한테 그래. “너는 눈앞에서 월 천만 원씩 벌어다 주는 남자를 놓친 거야” 그렇게 구박을 하더라니까. 그러면 나는 또 맞받아치지. “그러는 엄마는 왜 지지리 궁상떠는 남자랑 결혼했어?” 우리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엄마 손가락 빨게 했거든. 그래도 엄마는 내가 주는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비자금 삼아 아빠 몰래 쓰고 다녔지만. 엄마도 지지 않고 받아치긴 했어. “아빠가 폐렴땜에 얼마나 힘들었니. 아픈 사람 나 없으면 누가 데려가나 싶었다. 사랑 한번 제대로 못 해본 불쌍한 니가 어떻게 알겠니.” 매번 같은 레퍼토리야. 때마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살이 좀 붙었다 떨어졌다 할 뿐. 엄마 생각에는 궁상떨며 살아도 결혼한 게 나은 건데, 하물며 월 천씩 챙기며 사는 결혼은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하다가 나를 사랑 한번 못해본 불쌍한 애로 만든 거지. 우리 단체가 계속 후원하는 가정폭력 피해자들 모임이 있거든. 우리 엄마가 뭐라는 줄 아니? 결혼도 못 해본 애가 부부들만의 사정 따위를 알기나 하냐고. 나 정말 뜨악했어. 우리 엄마는 손버릇 나쁜 남편들한테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맞고 사는 아내한테도 맞을만한 이유가 있는 거고. 우리 엄마는 진절머리 나도록 구시대의 사람인 거지. 그 밑에서 나 같은 애가 태어났다는 게 신기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민했어. 내가 남들과 다른 것 같아서. 엄마는 나한테 자꾸 틀렸다고 하잖아. 어린애 기를 팍팍 죽였어. 열두 살 때, 같이 등교하던 친구가 있었거든. 학기 초에 전학 와서 줄곧 짝을 했던 여자애. 걔가 살던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아침마다 걜 기다렸지. 하루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아서 지각할 걸 감수하고 걔네 집에 찾아갔지. 그냥 그날은 그러고 싶었어. 그런 수고를 하고 싶었어. 걔네 집 문이 열리고 머리에 헤어 롤을 꼽고 진한 화장에 얇은 란제리 차림을 한 걔네 엄마가 나왔지. “어머, 못 만났니? 그럴 리가. 나간 지 이십 분은 더 됐다, 얘.” 그 여자는 아마 알고 있었을 거야. 자기 딸이 매일 같이 등교하던 친구를 바람맞혔다는 걸. 나는 일단 학교로 갔지. 날 바람맞힌 애한테 가서 따져 물을 필요도 없이 다른 애들이 나한테 말을 전해줬어. “걔는 니가 궁상떠는 모습이 싫대. 너 우유랑 호두과자 바꿔 먹을 때마다 아저씨랑 싸운다며? 한 개만 더 달라고.” 나쁜 계집애. 나는 교실에 가방하고 외투를 둔 채 걔네 집으로 다시 갔어. 걔네 엄마는 여전히 가슴골이 보이는 란제리 차림이었고. 나는 걸어가는 내내 준비해뒀던 말을 프롬프터 보고 읽는 래퍼처럼 쏟아냈어. “아줌마 신용카드는 한도가 없다면서요. 윤지가 그랬어요. 아빠가 집엔 잘 안 와도 카드는 맘대로 쓰게 해준다고.” 사실은 우리 엄마한테 들은 얘기였어. 정확히 말하자면 언젠가 엄마가 옆집 아줌마하고 하는 얘길 주워들은 거지. 걔네 엄마한테는 내가 임대 아파트 사는 막돼먹은 애로 보였을 거야. 내가 아침마다 자기네 아파트 정문에서 자기 딸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 내심 조마조마했을지도 몰라. 그 궁상맞은 애랑은 놀지 마. 참다 참다 그렇게 자기 딸에게 말했을 수도 있지. 무튼 그 아줌마는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어. 나는 당황했지. “아줌마, 우리 아빠도 집에 잘 안 들어와요. 물론 우리 엄마는 첩은 아니에요. 우리 아빠는 전국을 돌며 일하거든요.” 미안한 마음에 위로한답시고 한 대꾸였어. 그 아줌마, 펑펑 울더라. “아줌마, 울지 마요.” 할 말 안 할 말 다 지른 나는 수습을 제대로 못 하고 뒤돌아서 나왔어. 학교로 돌아가서 담임선생님한테 조회 시간에 어디 갔느냐는 추궁을 받았지. 배가 아파 집에 다녀왔다고 했어. 내가 과민대장증후군인 걸 담임도 알고 있었거든. “학교에서는 큰일을 못 보겠어요.” 내가 울먹이니까 담임은 깜빡 속았지. 1교시가 끝나고 나 보란 듯이 새로운 무리에 속해있는, 궁상맞은 내가 싫다던 걔를 학교 뒤뜰로 불렀어. 걔는 나랑 대단한 싸움이라도 할 줄 알았나 봐. 겁먹은 눈을 하고는 도도한 척하느라 애쓰는 눈치였어. 나는 대뜸 말을 시작했지. “내가 니네 엄마 울렸어. 그건 미안. 근데 한 번만 더 나한테 궁상맞다고 하면 나도 가만있진 않을 거야. 학교 애들은 모르지? 니네 아빠 얘기.” 걔는 울지 않았어. 오히려 겁먹었던 눈이 또렷해지더라. “알았어, 다신 그런 말 안 해.” 그 기집애. 지 엄마보다 훨씬 독하고 강한 애였어. 다음 날부터 나는 임대 아파트 애들하고만 놀았어.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 길 건너편 고층 아파트엔 가지 않았어. 나는 그 고층 아파트가 뼈대만 있을 때부터 완공될 때까지를 다 봤어. 내가 열 살에서 열두 살이 될 때까지. 그 아파트에 사는 예쁜 여자애하고 친해지고 나서는 늘 맘속 어딘가가 불편했어. 궁상맞아서 싫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어도 언젠가 그 여자애와 나는 끝이 났겠지. 대학에 간 후에 엄마한테 그때 얘기를 해줬어. “엄마 내가 그 아줌마 울렸다? 펑펑 울던데.” 엄마는 민망해했어. “그 여자가 나한테 돈도 빌려줬는데.” “얼마?” “오십 만원이었던가. 호텔 뷔페도 데려가 주고 그랬는데, 너도 참.” 애들끼리 친해서 엄마들끼리도 종종 만났나 봐. 엄마는 빌린 오십만 원을 다섯 달에 걸쳐 십만 원씩 갚았대. 그 아줌마는 자기 딸 앞에서 우리 엄마 욕도 했겠지. 그깟 오십만 원을 찔끔찔끔 갚는 궁상맞은 여자라고. 엄마는 그냥 좀 참지, 세상 살면서 그렇게 할 말 다 하고 살면 안 된다, 그 나이에 성질머리만 남아서는 시집 못 간다 등 잔소리를 해댔고. 니가 생각하기에도 내가 잘못한 거니? 그래, 너는 이해할 줄 알았어. 학부 때부터 그랬잖아. 넌 늘 생각도 깊고, 포용력도 있었어. 너도 당연히 기억날 테지만, 재수해서 나보다 한 살 많았던 동기 언니. 너한테는 한 기수 선배. 제일 먼저 등단할 것처럼 글 잘 쓰던. 그 언니 감싸준 건 너밖에 없었잖아. 우리 단체에도 뇌전증을 앓는 분이 있어. 아주 명석한 분이야, 그 언니처럼. 그때는 왜 그 언니를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언니를 그냥 둔 내가 참 바보 같아, 아직까지도. 너는 그 자리엔 없었지만 학교 익명게시판에 올라 온 언니 얘기를 지우느라 애썼지. 다른 애들은 수군대며 저급한 댓글을 다는데. 너는 앞장서서 그 후진 애들을 고소했고. 아이피 추적했더니 대부분 영화과 편집실, 연극과 연습실, 문창과 자습실이었지, 창피하게도. 언니는 몸에서 어떤 신호를 보낼 때마다 자기 속옷에 손을 넣어야지만 진정이 됐던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멈출 수가 없었던 건데. 니가 언니와 언니 가족들에게 학교는 그만두지 말자, 졸업하자 설득했던 것도 알아. 비록 언니는 한 학기밖에 견디지 못하고 유학을 갔지만. 그 한 학기 동안 언니는 최선을 다해서 당당했어. 그 옆엔 늘 니가 있었고. 그리고 석주 선배도 있었겠지. 나는 그때 바보같이 한 발짝 물러나 있었고 다른 애들은 여전히 말이 많았지. 어느 날, 글 쓴다고 잠적했던 석주 선배가 돌아온 날 너랑 석주 선배, 언니가 학생 식당에서 밥 먹는 걸 봤어. 그 뒤로 애들은 적어도 너와 언니 앞에서 대놓고 떠들어대진 못했어. 석주 선배는 문창과의 사랑스러운 레프티스트였으니까. 그 느리지만 올곧은 화법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잖아. 어떤 애들은 석주 선배 따라 이런저런 집회도 나가고. 선배한텐 자기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재주가 있었어. 그건 너도 알 거야. 니가 제일 잘 알겠지. 대낮에 학교 계단 광장에서 벌어졌던 사고 말이야. 철학과 남자애가 낮술하고 운전하다가 계단 광장을 들이받고, 거기 삼삼오오 모여있던 애들 중에 둘이 죽고 둘은 다쳤지. 사람들은 딱 한 달만 그 사건을 기억했어. 나는 그때 학교에 다녔던 모두의 트라우마로 남을 줄 알았는데 다들 참 쉽게 잊어. 석주 선배만 매년 사고가 있던 날이 돌아오면 죽은 두 사람,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두 사람을 위해 계단 광장에 꽃을 뒀잖아. 몰랐다구? 그래, 그때 너는 너대로 바빴을 거야. 무튼 정말 신기했던 게 뭔 줄 알아? 졸업할 때쯤엔 그 계단 광장에 놓여있던 꽃이 제법 많아졌었어. 석주 선배가 결국엔 다른 사람들을 바꾼 거야. 미안해. 석주 선배 얘기가 길어지네. 그래도 내 얘기도 끝까지 들어줘, 부탁할게. 내가 굳이 옛날얘기 꺼내는 이유가 있겠거니 해줘. 사실 너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나도 알아. 내가 할 말을 다 하고 사는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는 거. 오해는 말고 들어줘. 나는 그냥 내가 어쩌다 지금 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너한테 들려주고 싶을 뿐이야. 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기들, 선배들, 후배들이 기억하는 나는 되게 무신경한 애였어. 살가운 구석도 전혀 없고. 옆으로 길게 찢어진 두 눈이 심술궂게 보이는 그런 여자애. 나는 나대로 노력했지만 서툴렀지. 스무 살 때는 어떻게 하면 촌발 날리던 고등학생 때의 잔상을 지울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후로는 하나둘씩 연애를 시작하는 동기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꼈어. 2학년이 됐는데도 나는 아직도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을 애를 찾고 있었어. 학식에 가면 부러 느릿느릿 움직였어. 혹시라도 아는 사람 만나서 같이 밥 먹을 수 있을까 하고. 그렇다고 애들이 나를 따돌렸던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나는 사람하고 친해지기가 힘들었어. 누가 먼저 다가오면 내심 기쁘면서도 말야. 웃기지? 그런 내가 지금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을 해.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생각해봤어. 그 시발점은 아마 학부 2학년 말부터가 아닌가 싶더라. 매번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먼저 학식에 가자고 말도 못 하던 그때. 그때 석주 선배가 나타났어. 화요일 오전 수업 끝나고 열한시 반쯤 학식으로 갔거든. 언제부턴가 그 시간마다 학식에서 석주 선배를 만났어. 그렇게 매번 만나기도 힘들 거야. 내가 식판을 들고 어디 앉을까 살피면 석주 선배가 밥을 몇 숟가락 뜨다 말고 나한테 손을 흔들었어. 내가 먼저 어딘가에 앉아 밥을 먹고 있을 땐 석주 선배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마주 앉았지. 밥 먹으면서 별 대단한 대화를 나누기야 했겠니. 내가 음, 아, 네 이런 반응만 보이면 석주 선배는 혼자 말도 잘했어. 이상한 일이지. 고작 일주일 중 단 하루, 길어봐야 삼십분 같이 밥을 먹으며 친해진다는 것은. 알아. 석주 선배를 싫어하던 소수집단들이 석주 선배를 뭐라고 욕했는지. 다단계 같은 놈. 걔네는 석주 선배가 말주변이 좋은 게 늘 불만이었지. 멍청한 애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석주 선배 따라 개소리나 해대며 여기저기 시위나 나간다고. 석주 선배 욕하는 애들은 죄다 부르주아였어. 등록금 인상 따위는 상관도 없는 애들이었지. 돈만 많은 찐따들이었어. 하여튼 석주 선배하고 밥을 먹는 화요일 점심시간은 꽤 괜찮았어. 우리가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왜 시급을 사천 원보다 많이 받아야 하는지, 석주 선배는 내게 말해줬지. 그리고 나는 선배를 따라 전국 청년 궐기 대회에 나갔어. 처음으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봤어. 야이새끼들아, 한 시간 일해서 한 끼도 못 먹는다! 너는 그때 왜 같이 안 갔지? 아, 맞다. 그쯤 니가 휴학했을 거야. 그때 선배가 여자친구가 있는데 사이가 좀 소원하다는 얘길 했었는데. 그게 너였다니. 무튼 나는 선배를 따라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광장, 청운동까지 시급 오천오백 원을 외치며 걸었어. 그 후에 여기 경북집에서 선배하고 술을 마셨지. 나 있지, 매운 건 진짜 잘 못 먹거든. 근데 선배가 여긴 알탕이 맛있어 라는데 그냥 그걸 먹게 되더라구. 그 고춧가루 가득한 걸 말야. 소주 세 병을 둘이서 나눠 마시면서 선배는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비굴해지지 않는 방법을 말해줬어. 마치 독립투사처럼. 선배는 신념만 있으면 어떤 고문도, 비난도 별거 아닌 거랬어. 지키고 싶은 신념만 지키면 되는 거라고. 제일 무서운 건 신념이 사라지는 거라고. 부모가 번 돈을 귀한 줄도 모르고 그 돈을 덥석 받아서 몇백짜리 등록금을 내고 시급 사천 원을 받으면서 귀한 몸 착취당하는 것도 모르고 그 안에서 시시덕거리며 연애나 하는 것. 그런 건 신념이 없는 삶이라면서 선배는 몸서리를 쳤어. 신념이 없는 놈들과 같이 늙어가야  하는 게 너무 싫다고 한탄했지. 선배 앞에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홀짝이던 나 역시 그랬는데. 아무런 신념도 없이 멋있는 선배를 따라 시급 오천오백 원을 외쳤던 것뿐인데. 찔렸는지, 나는 뭔가 그럴듯한 얘기를 꺼내서 선배한테 피력하고 싶었어. 일단 우리 엄마 얘기부터 시작했지. 엄마가 얼마나 아빠한테 무시당하면서 살아왔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장이 일을 하느라 몇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왔던 아빠. 아빠는 우리 집을 무슨 이만 원짜리 여인숙처럼 여겼지. 엄마는 그 여인숙의 지칠 대로 지쳐버린 종업원이었고. 나는 엄마하고 아빠가 차라리 대차게 싸웠으면 했어.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빠는 피곤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 앉아 소주를 한 병 비우고 엄마한테서 등을 돌리고 잠들었지. 지저분하게 먹은 밥상이 꼴 보기 싫어서 때마다 아빠한테 엄만 대체 뭐냐고 묻고 싶었는데. 나는 선배한테 우리 엄마를 지키고 싶다고 했어. 엄마는 아빠를 다 이해하는 척 살아왔지만 사실은 상처받았을 테니까. 선배는 내 말을 좀 더 대단한 의미로 이해했나 봐. 내가 페미니스트, 그 어려운 길을 가겠다면 함께 하겠다고 말하더라고. 그때 선배 눈빛이 정말 순수해 보였어. 엄마를 지키고 싶다는 말은 어쨌든 진심이었지만 나는 페미니스트가 될 맘은 없었어. 나는 결국 엄마를 지키지 못할 것 같았고 그런 주제에 페미니스트고 뭐고 가당키나 할까. 선배가 갑자기 에미넴 얘기를 하는 거야. 그래, 니가 아는 그 에미넴. 미국에 사는 래퍼. 선배는 에미넴이 자기 엄마를 좀 더 아껴야 했대. 에미넴 엄마는 열여섯의 나이에 에미넴을 낳자마자 남편한테 버림받은 건데 그 어린 엄마 혼자서 미치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었을 거라고. 마약 좀 하고 어린 에미넴을 때린 건 래퍼 에미넴이 좀 이해해줬어야 한다는 거지. 엄마의 삶이 얼마나 거지 같았을지 한번쯤 생각해볼 만도 한데 결국 에미넴은 엄마를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원망했고 그 원망을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듣게 했어. 다들 신나서 에미넴 엄마를 같이 욕하고 원망했지. 선배는 에미넴이 엄마를 이용해서 돈을 번 건 괜찮았대. 근데 그 원망을 써내려가며 엄마를 좀 이해해 줄 순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니 엄마가 널 포기하지 않고 낳아준 것만으로 고맙지 않냐? 선배는 그렇게 에미넴한테 물어봤대. 웃기지? 어찌저찌 에미넴 이메일주소를 알아내서 보냈다는데. 여하튼 선배가 네 병째 소주를 까면서 에미넴 얘기에 열을 올리는데 나는 그냥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었어. 사실 난 에미넴이건 에미넴의 애미건 관심 없었어. 19금 딱지 붙은 에미넴 노래도 뭔 소린지 모르고 유행하는 노래니까 mp3에 넣고 다녔을 뿐이지. 나는 그저 선배가 대단해 보였을 뿐이야. 다른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없을 문제를 고민한다는 게. 선배가 채워주는 마지막 소주를 입에 털어넣으며 생각했어. 이 사람이라면 나는 믿을 수밖에 없겠다 싶었어. 막연한 믿음이 드는 거 있지. 니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나는 석주 선배를 연애 상대로 보지 않았어. 알아. 너하고 선배가 잠깐 멀어졌던 이유. 선배는 남자든 여자든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데 능한 사람이었으니까. 사람을 함부로 내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가오는 여자들을 다 받아주는 건 아니었어. 어떤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지. 선배가 가장 경계했던 게 뭔 줄 알아? 신념을 이용하는 거였어. 남들은 관심 없어서 혹은 무서워서 지키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 그걸 이용해서 사람을 후리고 다니는 것. 선배는 그런 건 지긋지긋하다고 했어. 너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선배 삼촌이 팔십 년대 운동권이었던 거. 못 들었구나. 무튼 수배 전단이 걸려서 여기저기 도망 다니다 간 곳이 목포였는데 거기서 여자를 만난 거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동거하다가 애가 생긴 거야. 선배 삼촌은 급히 목포를 떠났고, 다시 어딘가로 도망갈 힘도 다 빠져서 서울로 돌아가서 자수를 했대. 옥살이보다 두려웠던 게 같이 살던 여자의 임신이었던 거지. 선배 삼촌은 지금 장성한 자식이 둘 있는 은행 임원이거든. 나라에서 주는 밥 먹으며 견뎌보려다가 못 견뎌서 전향하고 석방됐지. 그 후로 목포에 찾아가 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대. 목포에서 감방으로 도망쳤는데 다시 목포로 돌아가는 건 끔찍했겠지. 선배 삼촌은 술만 좀 들어가면 목포 얘길 한대. 그 여자가 나를 정말 좋아해 줬는데. 내가 세상을 바꿀 혁명가가 틀림없다면서 믿어줬는데. 선배는 삼촌의 얘기를 들으며 화가 치밀었대. 선배 삼촌은 결국 신념도, 사람도, 사랑도 지키지 못한 거잖아. “대의를 위해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는 운동가? 좆까라 그래.”선배는 맥주잔을 들고 그 안에 든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어. 좀 흥분한 듯했지. 많이 취한 것 같았어. 너 혹시 선배 아버지 본 적 있니? 결혼식 때도 안 계셨잖아. 역시 그랬구나. 선배는 웬만한 사람들한텐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아버지의 행방을 모르는 것 마냥. 아버지가 어디서 뭘 하고 살던 관심 없는 것 마냥. 아버지 얼굴은 기억도 안 난다고 하잖아. 그래, 이제 와서 뭘 숨겨. 그냥 다 말할게. 나 말야, 선배하고 선배 아버지를 보러 갔었어. 무작정 찾아간 거지. 힌트는 무안에 산다는 것, 십 년 전 알게 된 집 주소였어. 종로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다섯 시쯤인가 용산역으로 갔지. 둘이 합해도 가진 돈이 겨우  구만원을 넘기는 거야. 무궁화 열차 예매해서 다섯 시간을 걸려서 무안에 간 거지. 가는 길은 별로 길지 않았어. 선배하고 나 둘 다 취해서는 머리 맞대고 졸면서 갔거든. 도착하니까 한낮이었지. 우리는 일단, 미안. 우리라고 말하는 거 기분 나쁜 거 아니지? 그래, 고마워. 우린 술을 깰 겸 해장국집으로 갔어. 둘 다 아무 말 없이 해장국 한 그릇씩을 싹 비우고 믹스커피로 입가심하고 선배의 하나 남은 담배를 나눠 폈어. 정말 한마디도 안 나눈 것 같아. 선배는 많이 긴장한 것 같았고 나는 그런 선배의 눈치를 살폈지. 선배는 손가락 한 마디만큼 짧아진 채 타들어가던 담배에 검지 끝을 데이지 않았다면 몇 시간이고 해장국 집 앞에 서 있었을 거야.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런 선배를 바라보고만 있었겠지. 선배 아버지는 십오 년 동안 같은 곳에서 살고 있었어. 무안의 한 주택가였는데 특별할 건 없었지. 전국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낡고 오래된 집들이 좁은 골목골목 들어선 곳이었으니까. 근데 그 골목골목을 아무리 뒤져도 우리가 찾는 21-3은 나오질 않는 거야. 마치 존재하지 않는 번지수처럼 21-2에 가서야 이쯤이겠구나 하면 21-4나 21-5가 나오는 거지. 화가 났지. 그때가 9월 말이었는데 늦더위가 장난 아니었거든. 그렇게 열 받은 선배의 얼굴은 처음 봤어. 선배는 내가 있다는 걸 잊은 건지 혼잣말처럼 욕을 내뱉었어. “씨발, 어렸을 때도 그 좆같은 숨바꼭질만 했는데. 숨으라고 해놓고 찾지도 않고 술 처먹고 잠이나 처자고, 처자다 일어나서 또 술 먹고, 그러다 집 나가고. 개새끼. 내가 아직도 일곱 살 어린앤 줄 아나. 어디서 술래를 시켜 먹고 있어.” 나는 그런 선배를 보며 사실 좀 안도했어. 적어도 기억 하나쯤은 있구나. 아버지와 숨바꼭질을 한 기억은 있구나. 하긴 아무 기억이 없다면 선배는 아버지를 만나러 무안에 가지도 않았을 것 같아. 에미넴이 래퍼로 성공한 후에 공연장에 친부가 찾아왔대. 에미넴은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고. 내가 태어나자마자 나를 버린 아버지, 용서하기 힘들지. 게다가 아무런 기억도 공유할 수 없는 사람을 아버지랍시고 만나고 싶지도 않을 거야. 선배는 그래도 욕지거리라도 나오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있었던 거잖아. 기억이란 게 참 무서워. 너 말야, 남자친구하고 헤어지고 그 사람이 너한테 했던 못된 짓 때문에 오히려 그 사람이 그리웠던 적 없어? 그 사람이 너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미는 데도 보고 싶었던 적. 없다고? 무튼 그게 연애 관계만 그런 게 아니야. 부모 자식 관계도 같아. 아예 첨부터 서로에게 기억이라는 것이 없으면 모를까. 자기를 죽도록 패던 아버지 장례식에 가서 눈물을 쏟는 자식들도 있잖아. 선배도 늘 술에 절어 자신을 방치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결국엔 아버지를 찾게 만든 거지.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나도 그랬어. 선배가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다 이해하진 못했어.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선배가 땀을 뻘뻘 흘리며 그 경사진 동네의 골목골목을 살펴볼 때, 나는 선배의 진심을 느꼈어. 아버지의 부재가 선배를 얼마나 괴롭혔을지. 나는 선배의 뒤를 없는 사람처럼 따라다녔어. 눈으론 21-3의 집을 열심히 찾았지만. 그러다 사람 하나 겨우 다닐만한 골목을 발견했지. 그 골목 끝에 21-3이 있었어. 선배는 바로 초인종을 누르진 못했어. 나는 선배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다가 내가 먼저 눌러볼까 잠시 고민을 했는데 관뒀지. 선택을 하는 건 선배여야 했으니까. 만약에 선배가 기껏 찾은 21-3 앞에서 등을 돌린다면 나는 그 뜻을 존중해야 했어. 선배는 잠시 물러났어. 오다가 사 온 담배를 꺼내서 두 개비를 연거푸 피웠지. 그때는 초조해 보이지만은 않았어. 마침내 아버지의 집을 찾았다는 기쁨이 얼핏 보이기도 했지. 그래, 나도 기뻤거든. 선배 아버지 집 앞엔 그 더운 늦여름에 골바람이 불어왔어. 땀이 식어 가는데 시원하더라. 선배의 목울대로 침이 한 모금 넘어가는 걸 봤지. 미안해. 나도 모르게 선배 손을 잡아버렸어. 그 순간 선배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었거든. 선배가 뿌리치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하긴 했어. 근데 선배가 오히려 손을 더 꼭 잡더라. 선배 땀인지, 내 땀인지 모를 것들이 우리가 맞잡은 두 손에 가득 찼지. 축축하게 젖어버렸어. 시원해졌던 몸이 다시 후끈거렸어. 선배는 내 손을 놓지 않고 문 앞으로 갔지. 벨을 눌렀어. 한번 누르고 기다렸다가 또다시, 그리고 또다시.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어. 선배는 한 번 더 내 손을 꼭 쥐었어. 좀 아팠는데 참았지. 우리는 일단 그 언덕진 동네를 내려가기로 했어. 담배를 샀던 동네 어귀의 작은 슈퍼가 보였을 때, 그때서야 우린 손을 놓았지. 선배는 배가 고프다고 했어. 그러고 보니 나도 속이 허전했어. 21-3을 찾느라 힘 빼고 땀 뺐으니 세 시간 전에 먹은 해장국이 다 소화된 거야. 선배는 그 동네를 바로 떠나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어. 우린 찰떡 아이스를 사서 슈퍼 평상에 앉아 하나씩 나눠 먹었어. 입에서 얼마나 잘 녹던지. 날은 더웠고 우린 배고팠으니까 그게 그렇게 맛있었는지도 몰라. 나중에 그때 생각을 하면서 찰떡 아이스를 사 먹었는데 한입 먹고 버렸거든. 너무 딱딱하고 오래된 밀가루 맛밖에 안 나는 거야. 이상하지. 무안의 구멍가게에서 사 먹은 찰떡 아이스가 뭐 그리 특별했을라고. 그러고 평상에 앉아있었더니 슈퍼 주인이 눈치를 주는 거야.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였는데 우리 바로 옆에 서서 줄담배를 피워대더라고. 나는 어떻게든 그 평상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 선배 아버지가 21-3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 구멍가게 앞을 지났어야 했거든. 동네 초입이니까. 후문이나 샛길 같은 건 없었어. 골목골목을 세 시간 동안 헤매면서 알게 됐어. 슈퍼 평상에 앉아있으면 귀가하는 선배 아버지를 마주칠 수밖에 없었어. 우리는 주인 할아버지의 담배 연기를 못 이기고 맥주 두 캔과 스낵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일부러 아주 천천히 맥주를 마셨지. 맥주가 미지근해지고 알콜 넣은 보리 물처럼 느껴질 때까지 느릿느릿 마셨어. 그러다 해가 저물어버렸고, 평상 끄트머리에 앉은 주인 할아버지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 결국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나는 안 된다고, 가면 안 된다고 눈빛으로 말했어. 선배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지. 할 수 없이 나도 일어나려 하는데 자전거 한 대가 훅 지나가는 거야. 순간 우리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지. 어두워서 잘 안 보이긴 했는데 정수리 부분이 벗겨진 남자가 참 열심히도 발을 굴리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뒷모습이 보였어. 스치듯 옆모습을 보긴 했는데, 자전거는 금방 멀어졌어. 나는 다급해져서 선배한테 빨리 붙잡으라고 했지. 그때 선배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니면 어떡해. 맞으면 또 어떡하고.” 알아, 나라도 선배 대신 뛰어가서 그 자전거를 세워야 했다는 거. 선배는 기차 타고 무안에 와서 반나절 동안 아버지를 기다렸으면서도 아버지를 만날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는 거. 나는 갑자기 울컥해서 21-3에 다시 가보자고 윽박지르듯 소리쳤지. 선배는 우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어. “못 가겠어.” 선배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나는 울음을 터트렸어. 졸다 깬 주인 할아버지가 또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일어나서는 민박도 하는데 혹시 생각 있냐고 묻는 거야. 나는 점점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지. 주인 할아버지는 난감해하며 원래는 삼만 원인데 아가씨 봐서 이만오천 원에 해주겠다며 달래듯 말했지. 선배가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어. “다음에 또 같이 오자. 너랑 다시 오고 싶어.” 이상한 일이지. 선배의 그 말이 마치 고백처럼 들렸어. 알아, 고백 따위 아니었다는 거. 서울에 돌아와서 선배는 너와 화해를 했고 졸업 때까지 둘 사이를 잘 숨기다가 결혼했지. 청접장 받고 놀란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물론 나는 선배가 어디 거죽만 봐줄 만한, 든 것 없는 여자하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놓였어. 너라서 기뻤어. 정말이야, 그러니까 결혼식도 갔지.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나는 선배를 남자로 좋아한 게 아니야. 선배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를, 겁쟁이였던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사람이야. 은인이자 친구고 지도자였지. 단 한 번도 선배를 남자로서 바라본 적 없어. 그랬다면 나는 오늘 너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너한테 선배는 남편이자 남자, 니 자식의 아버지야. 지금 누구보다 선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너일 테지. 그치만 니가 못 보는 선배의 모습도 있지 않겠니. 뭐라고? 설득? 얘, 아니야. 설득이라니. 나 말주변 없는 거 너도 알잖아. 널 설득할 맘은 추호도 없어. 그냥 니가 몰랐던 선배의 모습을 이제는 알아주고 봐주기를 원하는 거야. 선배가 너를 때린 건 잘못이야. 더구나 아이 앞에서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래도 너한테 사과하려고  LA에서 서울까지 헐레벌떡 왔잖아. 너도 알지. 선배가 겨울이면 수족냉증으로 고생한 거. 겨울 시위 때는 늘 스키 장갑 같은 걸 끼고 다녔잖아. 그런 사람이 꽃샘추위에 손발이 얼도록 너희 본가 앞에서 종일 기다린 거야. 그래, 선배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목표가 있으면 어떤 고통도 감내하는 사람. 요즘 시대에는 참 순진해 보일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사람이잖아. 너도 선배의 그런 면이 좋았던 거 아니였어? 얘, 나는 결혼을 안 해봐서 부부 사정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어느 부부나 크고 작은 다툼을 곧잘 한다는 건 알아. 너하고 선배는 그저 심하게 다툰 건 아닐까? 물론 손찌검을 한 건 선배의 잘못이지만. 사람들은 선배와 니가 왜 싸웠고, 니가 어떻게 맞았고, 선배가 어떻게 때렸는지, 아이는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그런 걸 궁금해하지 않아. 니가 SNS에 올린 글에 아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를 뿐이야. 그 사람들은 니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선배와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올려도 다시 ‘좋아요’를 누를 사람들이라고. 그러니까, 영아야. 그 글은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자. 내가 좋은 상담사 소개해 줄 수도 있어. 선배하고 너, 아이까지 가족 상담을 받아봐. 영아야, 서운해하지 마. 화가 난다고? 괜히 왔다고? 얘, 그러지 마. 알잖아. 나 선배만큼 너도 좋아했어. 좋은 애고, 예쁜 애라고 생각했어. 부탁이야. 내가 너를 무서워하게 만들지 마. 선배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 너도 알잖아. 우리 같이 선배를 이해해보자. 부탁이야. 얘, 우리 소주 한 병만 더 마시자.

배기정

1) 이해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왜요. 이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깁니다.
2) 기쁘게도 얼마 전, 비릿(be_lit) 창간호에 참여했습니다. 짧은 단편입니다.

2019/08/27
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