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로미어



   문장이 흐리다. 겨울의 불투명한 창문처럼, 안경을 써도 뭉개지는 입술… 뭐라고? 이상하게 네 말을 모르겠어. 시력이 더 떨어졌나 봐. 다녀올게. 집에 있어. 힘주어 말할 때마다 눈이 시리다. 걸음걸음 눈이 녹아서 뺨을 타고 흐른다. 소매에 얼굴이 잔뜩 묻어서 시끄럽다. 검고 축축하다. 턱 끝에 매달려 있다가 똑똑 떨어지거나 증발해버리는. 시력은 유전이야. 유지하려 애써도 소용없어. 혹은 더 나빠지겠지. 너의 부모처럼. 나는 피를 전부 갈아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DNA는 스스로를 복제하면서 매 순간 새로운 상태를 유지하지… 이제 너는 아까와는 다른 인간인 거야… 그래서? DNA가 변형되면 너는 무너져 내리는 거야, 말 그대로… 녹아버리는 거지… 모르는 뒷모습을 밀면서 출구로 향한다. 오후의 일기예보와 오래된 우유 냄새를 떠올리며. 등은 뿔뿔이 사라진다. 남아 있는 팔이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모서리에 달린 종이 울리고.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는 동안 종은 하나의 음계와 하나의 방향으로만 흔들리고. 마침내 모습을 갖춘 사람이 진료실에 들어간다.





   두 사람



   나무 건너에 사람이 있다. 나무 건너에 음악이 있다. 나무 건너에 가라앉지 않는 햇빛이 촘촘히 흐른다.

   공기방울
   터지는 소리도 없이

   어깨가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초록에는 공포가 뻗어 자란다

   균형만큼만
   우리는 사이를 두고 정상을 향해
   안으로 깊어진다
   적당한 간격이란 무엇일까?

   서랍에 갇힌 주인 잃은 손들.
   전령을 기다리며 서로 깍지 끼고 있다.

   삼나무 상수리나무 보리수나무
   사아악 우리 곁을 지워
   진창 너머에만 빛이 보일 때

   날카로운 뼈들이 눈을 찌를 때

   나는 이미 지어진 노래만 부를 수 있다
   당신은 나의 창자로만 현을 켤 수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는 사랑을 발견하러 왔으나
   이곳의 사랑은 훔쳐진 것도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이곳에서

   만날 때는 두 사람이었다가
   헤어질 때는 셀 수 없게 많았다

유승연

쓰고 보내주는 일도 있다는 걸 쓰고 나서 알 때도 있어요.
친구들과 해양소녀단 단원들, 그리고 정기. 같이 그 시간을 읽어줘서 고마워요.

2019/06/25
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