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귀는 당나귀 귀



   내 귀는 당나귀 귀
   들을 수 있는 것과 듣지 말아야 할 것들이 모두 내 귓속에 들어왔다
   어느 날, 온탕 속에 두 귀를 담갔다
   거대한 물북이 둥둥 울렸다

   “Y.나야.드디어.나머지.손가락마저도.잘리고.말았지.뭐야.듣고있어.걱정하진마.오른손은.아직도.쓸만하니까.그런데.문제는.집안.구석구석.쌓여있는.쓰레기야.어때.한번.와주지.않을래.Y의.귀가.필요해.쓰레기를.담을.귀가”

   두 귀는 물 밖으로 점점 크게 자랐다
   뻣뻣한 털들로 뒤덮인 귓구멍 속으로
   주둥이들이 아우성치며 밀려왔다
   나는 솜을 지고 강을 건너는 나귀처럼
   물속 더 깊이 두 귀를 숨겼다
   북소리가 커졌다

   “Y.부탁이.하나.있어.내.잘린.손가락들을.찾아봐줘.Y의.오른쪽.귓속을.뒤져보면.있을지도.몰라.나는.겁쟁이들이.귀가.크다고.생각하진.않아.Y는.겁쟁이가.아니야.단지.아꼈을.뿐이야.길고.고운.손가락을”

   눈을 떴을 때,
   목욕탕 주인은 팔짱을 끼고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더 견뎌볼 자신이 있다면 견뎌보라는 듯
   ―비웃음처럼 수증기가 엷게 피어올랐다
   나는 물속에서 첨벙첨벙 걸어나와 두 귀를 세차게 털었다
   먹장 같은 물북소리가 멈추고
   주인의 시계 초침 소리와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개수구멍 속으로 물이 빠져나가듯 크렁크렁 대기 시작했다

   순간, 주인이 수건으로 내 등을 후려치며
   “당나귀 주인은 바로 나야 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해!”
   나는 두 눈만 끔벅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Y.내.손가락들을.찾으면.양지.바른.곳에.묻어줘.그리고.세월 속에서.다시.만나자”





   즐거운 운명



   어두운 굴속에서 전철은 어떻게 길을 잃지 않는지
   나는 창문만 뚫어지게 쳐다보다
   1호선을 타고 그 남자는 인천으로 간다
   2호선을 타고 1호선으로 갈아타고 그 남자의 여자는 인천으로 간다
   3호선을 타고 4호선에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탄 그 여자의
   정부도 인천으로 간다
   1호선을 타던 남자는 2시발 인천행을 타고
   1호선으로 갈아타던 여자는 1시발 인천행을 타고
   1호선으로 바꿔 타던 정부는 12시발 인천행을 탄다
   두 철로가 만났다 헤어지는 역들을 지나
   그 남자도 여자도 여자의 애인도 인천으로 간다
   정부가 먼저 종착점에 내리고 월미도로 간다
   여자가 내리고 월미도로 간다
   남자가 월미도로 간다
   석양이 지는 겨울바다에 남자만 혼자 깃발처럼 서 있고
   여자는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정부는 1호선을 타고 3호선으로 바꿔 탈 생각에 잠겨있다
   약속도 없이 외출한 그들은 만나지 못한다
   만나서는 안 될 그들이 지하철 노선표 속에서 돌고 돌고 있다
   어떻게 한 번도 부딪치지 않고
   저렇듯 능청스럽게 제 길만 간다
   남자가 좀 더 빨리 월미도에 갔다면
   여자를 만났을 것이다
   여자가 12시발 전철을 탔다면 정부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곤 막막한 바다를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즐거운 운명은 비명도 없이
   그들을 다른 시간 속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최치언

시를 통해 이야기를 짓기 좋아하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찾으려는 것이, 내가 아는 나이다.

2019/05/28
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