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와 먹통



   보닛이 달콤하게 흘러내렸는데 너는 잘 지내요, 라고 말했어요
  백미러에 달린 눈동자가 나를 탐색했어요
  나는 알았죠 집요한 허무를

  국도 끝은 바퀴에 묻어 실시간으로 뭉개지고
  구름을 치댔어요 나는 정도를 모르고 흐려지죠
  시트는 끈적이고 히터는 어둡게 속삭여요
  흐 웃어요 호 입김 불어줘요

  신호에 걸리면 알기 싫은 감정
  번득 눈부십니다
  나는 실명했죠 그래서 멀미를 믿었습니다
  열대의 바다 휘감은 풍랑주의보
  비구름 형성되는 직선의 직전

  테이프에 감긴 살얼음이 멀미를 재생하고
  되감기 정지하지 않는 도무지
  먹통, 먹통의 오전

  녹아내리는, 녹진한 피가 식어 굳었죠
  차창에 기댄 뺨은 기막힌 순간
  백 년 만에 내린 서울의 폭설은 어느 길목에 있던가요

  너는 이제 정말로 잘 지낼 거죠, 라고 물었어요
  나는 뒤돌아보고 싶었어요 정말로 잘 지내고 싶어서
  과열한 속도를 더해 무모하게 부푼 가죽 시트
  좌석에 흐리게 누워 비스듬한 자세로

  나는 뒤돌아보고 싶었어요
  딸려오는 풍경 시시각각 박살나는 바깥
  환희와 슬픔
  산란하고요 얽히고요
  저기 저 멀리 지평선이 있으면 어떡하죠?

  죄 펼쳐진 길을 마주치면 그때는 정말이지 어떡하죠?
  거울에 맺힌 네 눈동자가 자꾸만 비려, 미끄러져요
  나는 저기 저멀리 지평선이 있으면 어떡하죠? 물었죠
  너는 이제 아무 말도 없어요

  누군가에게 이미 터져버린 세계
  누군가에게 이제 터진 세계
  두개골 파낸 길가에서 보이지 않고 보이는 지도를 따라갑니다
  우리 교차점, 교차점에서 흐 웃어요 호 입김 불어요
  이것은 현실도 환각도 아녜요
  난장, 지연된 구간이랍니다





   월미도 메들리



   흑백이 깜박깜박 낯선 거리를 떠돌 때
  오래전부터 완공한다는 소문만 무성했던 모노레일
  허공은 녹슬기 시작했을 때
  밤바다의 아귀 앞
  정확한 간격으로 늘어선 천막.
  손금. 운명. 사주. 작지도 크지도 않은 인간의
  마음을 관람차에 태우고 느린 속도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몽상의 메들리.

  분홍노랑파랑. 곰. 기린. 코끼리의 축축한 중력
  절대적인 영원을 합의해보고픈 LED의 어린 연인들.

  더도 덜도 아닌 파탄 속에서
  혼자 탑승한 바이킹
  여기저기 터지는 불꽃. 시시한 기쁨이
  곧장 부서진 부표로
  나의 시야를 날린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바이킹이 태연스레 지정된 90도를 넘겼을 때
  신었던 구두가 바닥에서 떨어지고
  도달한.
  딴 궤도.

  나는
  멀어지는 구름

  작위적인 당신, 그래서 전부
  사랑한
  몹시 아름다운 눈물일 수밖에 없는 사기꾼의 눈매
  오염된 불빛이 시시껄렁한 장난을 치는
  해변, 동전만큼 가까워진 순간
  동전만큼 가까워진 순간
  확대된 눈동자.
  확대된 감염.
  콜타르.
  다 깨져버린 화면일 때

  도무지 닫을 수 없는 눈꺼풀
  부릅뜬 채 상승과 하강의 쾌감 속에서
  댄스! 춤! 댄스! 춤!

  관람차 운행이 끝났을 때
  네가 이동하는 허공
  녹슨 비석같이 쓸쓸히 바라보았을 때

  도달한 딴. 궤도에 디딘 순간이
  내게 영원함을 속삭일 때
  멀리
  가로등 분전함 옆.
  모래주머니. 구멍으로
  상실되는 음울한 메들리
  홀쭉한 부피.
  스러지는 다시. 채우려 기다릴 때

  땅 위 서 있는 나
  왜 이리 찬란한 건지
  왜 이리 강렬한 중력인 건지

신지영

믿음도 공감도 불가능할 때 쓰는 것 같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