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에 대해 설명하려 할 때면 가장 먼저 그의 차가 떠오른다. 기준은 직장생활 육 년 만에 차를 샀다. 출시한 지 이 년 정도 된, 신식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구식이라 하기에도 좀 그런 모닝이었다. 나는 기준이 자랑스럽게 끌고 온 모닝을 보고 다소 실망했다. 차를 사기 위해 기준이 얼마나 열심히 아껴가며 월급을 모아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차에 대한 로망이 대단하던 그였다. 나는 그가 적어도 소나타쯤은 타고 다니려고 그렇게나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상상 속의 차는 적어도 흔하디흔한 은회색 모닝은 아니었다. 모닝 정도의 경차는 보통 운전에 서툰 여자들이나 타는 게 아니었던가.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때는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 고를 때 같이 갈걸. 괜한 간섭인 것 같아 내버려두었던 일이 후회스러웠다. 기준은 기질적으로 상냥한 남자였기 때문에, 나는 그가 혹시라도 모닝을 꼭 팔아치워야만 하는 자동차 판매원에게 속아 하자 있는 차를 떠안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어때.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기준이 먼저 들뜬 어조로 말을 걸었다. 나는 차마 이게 뭐냐는 말은 하지 못했다.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가 차를 사서 자기 스스로가 뿌듯하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어, 귀엽긴 한데, 네 나이 남자들이 타기에는 좀 작지 않나? 나는 최대한 에둘러 말했다. 눈치가 좀 더 빠른 남자였다면 ‘귀엽긴 한데’에서 이미 야, 차 진짜 졸라 작다, 하는 비난을 읽어냈을 것이다. 기준은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착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어차피 나 혼자 타는 차고 기껏해야 너 정도만 태우고 다닐 거니까, 하고 말했다. 속아서 산 건 아니냐는 물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너희 어머니도 타실 거 아니야. 몸도 안 좋으신데 뒷좌석이 넓고 편한 게 좋을 것도 같고…… 나는 어영부영 말을 흐렸다. 그리고 요즘 네 나이 사람들은 다 좀 더, 어 그러니까, 큰 차를 타지 않아? 너무 작은 차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무시할지도 모르는데. 미적미적 흘러나온 내 말에도 기준은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이 차, 엄청 좋은 차야. 한 번 타봐. 기준은 차에서 내려 나를 운전석에 앉혔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운전석에 앉았다. 기준이 조수석에 앉아서 출발하라는 시늉을 했다. 헤이리 쪽으로 가자. 오랜만에 데이트도 하고. 들떠 보이는 그에게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얼마 가지 않아 나는 핸들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앉아 있던 가죽 의자도 순식간에 후끈후끈해졌다.
   이게 뭐야! 한여름의 때아닌 열기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조수석의 기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 아니지? 겨울에 엄청 따듯할 거 같지 않아? 전국에서 내 차가 가장 따듯하고 안락한 차일 거다.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등 뒤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허둥지둥 손을 움직여 아무 버튼이나 눌러대 열기를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최신식 후방카메라와 선루프와 공기청정기 등등을 발견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어떻게 운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차를 달려 헤이리에 도착하자 조수석에 탄 기준이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풀옵션이야.
   뭐가, 라고 묻기도 전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그는, 천만 원이 한참 안 되는 모닝에 오백만 원을 웃도는 풀옵션을 넣은 것이었다.
   아니, 모닝에 왜 풀옵션을 해? 나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너무 아깝잖아. 따지듯 이어진 말에 기준은 태연하게도 그러니까 내가 좋은 차라고 했잖아, 하고 말했다. 좋은 차는 뭐가 좋은 차야! 남들이 볼 땐, 밖에서 보기엔, 그냥 싸구려 경차 모닝이잖아. 남들은 그냥 널 모닝이나 타고 다니는 남자라고 생각할 거라고. 나는 운전하는 내내 참아왔던 잔소리를 쏟아냈다. 모닝에 풀옵션을 넣는다고 해서 모닝이 벤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준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가만히 내 잔소리를 들어주다가 뿌듯한 얼굴로 차를 쓸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어. 기준은 어떻게든 반박하려던 내게 따질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 차가 좋다는 걸 나는 알아. 그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정말로 행복해하는 기준을 보며, 어느새 나도 웃고 말았다.
   기준은 그런 남자였다. 내부에 풀옵션을 장착한 모닝 같은 남자.
   나는 그런 기준을 좋아했다. 기준의 그런 점은 쉽게 흔들리거나 휘둘리는 것이 아니므로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고, 기준의 그런 점을 사랑하는 나는 기준이 변하지 않을 테니까 영원히 기준의 곁에 있을 것이었다―, 라고. 이제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참으로 낙관적이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기준은 지각을 했다. 기준과 나는 같은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기준이 지각을 하는 건 입사 이래 처음 보았다. 그의 지각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회사 전체가 숙덕거리기 바빴다.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것 아니에요? 기준씨가 늦을 리가 없잖아요. 결국 기준을 기다린 지 삼십 분 만에 실장이 전화기를 들었다. 기준은 연이어 걸었던 다섯 번의 전화에 모두 응답하지 않았고 그 뒤로도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지친 기색으로 출근했다. 죄송합니다. 지각한 기준의 첫인사는 또한 회사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물론 지각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죄송하다고 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기준의 첫인사는 언제나 활짝 웃는 얼굴로 하는, 좋은 아침입니다, 였다.
   기준의 아침인사는 내가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본인도 기분 나쁜 일이 있을 텐데, 아침마다 웃는 낯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시에 출근해 웃으며 인사를 건네 보는 이들을 유쾌하게 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진심으로 기준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우연히 알게 된 그의 가정사 때문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기준의 웃음이 탐이 났던 건지 여직원 중 하나가 그를 꽤 자세히 파고들었던 모양이었다. 기준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떠들어대던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아무리 기준이 좋아도 절대로 결혼 상대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을 요약하자면 기준은 가진 재산이 얼마 없는데다가 치매에 걸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외동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가난한 거야 사람이 워낙 성실하니까 괜찮다고 해도 말이야. 차라리 죽을병이 낫지, 치매를 어쩌라는 거야? 그녀는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그런 건가. 나는 자리에 앉아 원고를 교정하며 기준과 기준의 치매 걸린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기준도 그럴까. 치매에 걸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바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치매 걸린 어머니에게 죽어버리라고 하는 기준은 상상이 가질 않았다. 한결같이 웃는 낯으로 어머니를 돌보는 기준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어쩜 그런 상황에서도 웃고 있는 낯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갑자기 기준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남자면 괜찮을 것 같았다.
   후에 내가 이런 얘기를 하자 기준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 변태 아니야? 치매 걸린 어머니를 가진 남자한테 매력을 느낀다니.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건 치매 걸린 어머니를 가진 모든 남자들이 아니라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면서도 매일이 좋은 아침이라고 우겨대는 너야. 내 낯간지러운 말에 기준은 한 손을 번쩍 들면서 좋은 아침!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기준의 지각은 단순한 지각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기준이 지각을 한 순간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부터, 기준을 주시했어야 했다. 회사에서 연인이라는 티를 내지는 않았어도 간혹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라도 나누곤 했는데, 그날 기준은 마치 내가 안 보이는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그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전날 기준과 나는 크게 다퉜다. 언성을 높였거나 손찌검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전날 싸움에선 욕설과 주먹이 오가는 것보다도 더 지독한 감정 같은 게 오갔다.
   오늘 왜 늦었어? 직원 하나가 슬그머니 기준의 옆으로 와 물었다. 나는 맞은편에서 귀를 기울여 들었다. 늦잠을 자서…… 기준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피로는 나로 인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쌤통이라고 혼자 코웃음을 쳤다.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와 새벽 늦게까지 다투긴 했지만 기준은 늦게 잔다고 해서 늦게 일어나는 유형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가 새벽 여섯시 반에 일어나지 못하는 광경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기준에게 은근히 말을 걸어보려다가 말았다. 내가 말을 걸기 전에 기준이 먼저 내게 사과를 해야 했다. 내가 굽히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헤어질 리는 절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기준이 화해를 청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준과 연애를 하는 동안 어머니의 치매는 점차 심해졌다. 나는 요즘 보기 드문 다자녀 집안의 막내였는데, 위로 언니가 둘 오빠가 하나여서 나 혼자서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상황은 도무지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내 부모님은 두 분 다 정정하셔서 은퇴 후에 경기도 변두리에서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중이었다. 나는 기준과 만나기 전까지는 도움과 보살핌 없이 혼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거기서부터 문제였던 것일까. 나는 회사 여직원이 말했던 것만큼 치매가 그렇게까지 치명적으로 끔찍한 질병은 아닌 것 같았다. 만난 지 일 년이 지나 결혼을 전제로 하게 되자 기준은 어머니에 대한 문제를 분명히 했다. 나는 평생 어머니를 모시고 살 거야. 네가 힘들다면 굳이 너에게 강요하진 않겠어. 그 말에는 내가 결혼을 거부하고 이제 와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난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다는 기준의 결심이 섞여 있었다. 기준은 일 년 좀 넘게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집을 공개했다.
   처음 방문한 기준의 집에서 그의 어머니는 내게 자신의 분홍색 양말을 선물이라며 주었다. 내 보물을 주었으니까 너는 이제 우리 기준이랑 평생 놀아줘야 한다. 두 손으로 양말을 내밀며 해맑게 하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내 눈치만 보고 있던 기준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앉아 있어 봐. 마실 거라도 줄게. 기준이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그 집은 부엌과 나머지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부엌은 어머니가 들어갈 수 없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기준은 거실과 부엌 사이에 천장까지 닿는 철창을 쳐놓고 문을 자물쇠로 잠가놓았다. 아예 벽을 만들까도 싶었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서 그 대신 벽면에 붙여 달 수 있는 철창을 구입해 직접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를 방에만 가둬놓으면 너무 적적하실까봐 집 안에서만이라도 이곳저곳 돌아다니시라고 위험한 게 많은 부엌만 막아놓았다는 것이었다. 부엌 외의 공간에는 사람을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되는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이용 매트를 깔아놓은 화장실에서부터 거실 한복판에 놓인 냉장고, 현관문의 치매 노인 방지 문손잡이까지, 그의 온 집안에는 그렇게 큰돈을 들이진 않았지만 세심한 배려가 깃든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 모든 것이 오로지 어머니만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 기준이와 친하게 지내달라고 하면서 정작 눈앞의 아들을 보고 근데 저 아저씨는 누구냐고 묻는.
   기묘한 위화감이 드는 집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섬세한 배려가 넘치는 집을 보면서 소름이 돋는 것일까. 의문은 오래지 않아 잊었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그날 하루 어머니가 다친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던 기준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기준의 모습에 한 번 더 반했다. 기준과 같은 남자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여자, 자기 가족은 필사적으로 지키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설령 내가 치매에 걸린다고 해도 자기 어머니한테 하던 것처럼 다정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위로 언니오빠가 셋이나 돼. 눈만 멀뚱히 뜨고 있는 기준을 보며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그리고 우리 엄마아빠는 치매에 걸리진 않을 것 같아. 웃음기 섞인 말을 건네자 기준이 내 손을 덥석 쥐었다. 그러니까 너만 나한테 잘하면 어머니를 내가 왜 못 모시겠어?
   기준은 오래되어 낡아 여기저기가 갈라진 소파에 나를 앉히고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다가 제 이야기를 했다. 기준이 어릴 적부터 돈을 벌어오던 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갈빗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불판을 닦느라 퉁퉁 불어터진 손을 갖게 되는 동안 사업을 준비한다며 온갖 돈을 끌어다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단둘이 된 가족은 오로지 서로에게만 의지했다. 어머니는 이따금 기준과 똑바로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나는 너만 바르고 때 없이 크면 돼. 누가 봐도 고생한 태 안 나게. 기준의 가슴팍을 탁탁 치며 하던 어머니의 말은 마치 주문 같았다. 이 속이 옹골차고 단단하게 잘 크면 된다는 말이야. 기준은 어머니가 말하는 대로 크기 위해 아직도 애쓰는 중이라고, 혹시나 실망시키는 아들이 될까봐 걱정이라고 수줍게 웃었다. 나는 속으로 너는 정말 그렇게 컸다고, 이 풀옵션 모닝 같은 것, 하고 생각했다.
   물론 기준이 정말 고생한 기색 없이 부잣집 도련님 같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항상 웃는 낯인 얼굴 때문에 그저 적당한 집에서 모자란 것 없이 잘 자란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준과 점차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근접한 거리에서 기준을 보면 볼수록, 어라, 하며 놀라곤 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균보다 누런 얼굴이나 재봉선이 엉망인 싸구려 양복. 양복 뒤에 감춰진 마른 체구. 거칠고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 해진 구두 밑창.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긴 하지만 미묘하게 남들보다 싼 음식을 주문하는 습관. 기준과 같이 있다 보면 그의 형편이 좋지 못하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유하지 않다는 것과 그늘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 법이다. 나는 기준이 가난한 시절을 보냈고 보내고 있을지언정 화목한 가정의 맏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가계에 필요 없는 아버지이더라도 기준이 그 아버지를 열일곱에 여의었고, 빚을 갚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이야기를 듣다 말고 묻자 이제는 빚을 전부 갚았다고 말하며, 기준이 뿌듯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내 가장 큰 행복은 모닝이지. 그는 악착같이 생활을 꾸려나가며 처음으로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이 갖고 싶던 걸, 중고가 아닌 새것을 사보았다고 했다. 그는 모닝을 산 이후로 바쁜 일과에 아침저녁 하루 두 번 차 닦기를 포함시켰다. 가장 큰 행복이 나라고 말해주지 않아 조금 서운했지만, 차에 대한 기준의 애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화를 내진 않았다. 게다가 그때는 기준이 모닝을 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제는 내가 같이할게. 어머니 기저귀를 처리하는 기준을 도우며 말했다. 기준은 내가 구역질을 참는 것을 몰랐다. 그는 그저 감격했다.

   그날 기준은 처음으로 늦잠을 자고 지각을 한데다가, 일주일 전에 그가 실수를 해서 보낸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회사는 난리가 났다. 큰 출판사가 아니라 보통 오백 부 정도를 찍으면 많이 찍어내는 출판사였는데, 기준이 맡아 편집한 그 책만은 이천 부를 찍어낸 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출판사가 야심차게 기획한 금년도 주력 도서로 전년도에 새로 생긴 소셜 분야 국가시험의 기출문제 교본이었던 것이다. 사장은 그 중요한 책의 마지막 편집과 교정을 기준에게 맡겼다. 그전까지는 기준이 단 한 번도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준은 다섯 페이지가 잘못 나간 이천 부의 책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앞자리의 나도 덩달아 머릿속이 굳는 것 같았다. 사실 출판사의 책이야 폐기가 되든 말든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가 걸렸던 것은 그날 도착한 그 책에 진짜 문제가 발생한 건 사실 일주일 전이였다는 점이었다.
   기준은 불같이 화를 내는 사장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빌었다. 어머, 웬일이야. 오늘 하루 종일 저 사람이 사과하는 말만 듣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들이 그렇게 떠들어대면 떠들어댈수록 오늘은 불길해져갔다. 일주일 전의 일도, 그날의 일도 모두 오늘에 편입되어 끔찍한 느낌을 주었다. 흥분한 사장이 욕설을 지껄이며 들고 있던 책을 기준에게로 내던졌다. 책 모서리에 얻어맞은 기준은 낮게 신음하면서도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혹시 그 때문인가. 두 달 전쯤엔가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려달라고 했다. 힘겹게 다 갚은 빚과, 기어코 사고만 차와, 이제야 형편이 좋아져 가끔은 사치도 부리기 시작한 기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차를 사지 말걸 그랬나봐.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기준은 그것만은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평생 사지 못했을 거야. 어떻게든 할 수 있어. 기준은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그놈의 모닝은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주 웃었다. 그 여자는 내가 잘살아왔다는 성공의 증표야. 기준은 모닝이 제 또 다른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들먹거렸다. 나는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집주인이 준 기간까지는 꽤 남아있었다. 기준은 안 되면 전부 싸들고 이사라도 가면 된다고, 방이 두 개에서 한 개로 줄어드는 게 그리 큰일은 아닐 거라고 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내가 그간 회사를 다니며 모아둔 이천만 원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기준이라면 어떻게든 해낼 테니까.

   사장에게 욕을 잔뜩 먹은 기준은 멍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먼저 말을 걸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포스트잇에 괜찮아? 라고 썼다. 이걸 보일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슬쩍 파티션 위로 포스트잇을 내밀었다. 기준은 여전히 멍한 상태로 무심결에 내가 내민 포스트잇을 받으려다가 멈칫했다.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기준의 핸드폰이었다. 사장이 기준을 노려보았다. 기준은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전화벨은 끊어질 듯 말 듯 끈질기게 다시 울렸다. 기준은 결국 나가서 받으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하고 기준이 눈을 크게 떴다. 여보세요. 자리에 선 채로 곧장 전화를 받은 기준이 딱딱하게 말했다. 그런데요. 저 맞습니다만. 그리고 그 순간 기준의 얼굴이 변했다. 기준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회사를 뛰쳐나갔다. 작은 회사가 크게 술렁였다. 나는 고민했다. 나도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결국 나는 기준을 따라 나가지 않았다.

   퇴근 후에야, 얼마나 급했는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모닝을 두고 간 기준에게 놀라며 그의 차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길 한복판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뒤차가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댔지만 쉽게 차를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전부 타버리고 없었다. 기준의 안락한 집 대신 건물 골격과 새까만 잔해만이 남아있었다. 허름한 빌라는 온데간데없이 쓰러진 철창과 가전제품 잔해들만 을씨년스럽게 나뒹굴며 몸을 뒤틀었다. 구식이지만 제법 고장 없이 잘 돌아가던 냉장고도,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된 아이용 매트와 꽤 값을 들였다던 지문인식 현관문 손잡이도, 모두 다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의 발에 걷어 채인 듯 그을린 나무 조각 하나가 차의 앞 유리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덩달아 그을린 옆 건물 주인들이 뛰쳐나와 길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누가 보상을 할 거냐고, 어? 나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소란스런 악다구니들이 그 순간만큼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지각한 기준, 편집 사고를 친 기준, 불타버린 집…… 그날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달아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다리를 달달 떨어대며 버텼다. 그래도 모닝에 타고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안락한 차 안이었으니까. 그러나 바람에 흩날리던 재는 모르는 사이 살짝 열린 차창으로 밀려들어 왔다. 모처럼 입은 하얀 원피스가 흑회색 빛이 되었다. 그것을 알아챈 다음에야, 기준이 보였다. 하루가 지나 새벽녘이 되어 푸르스름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나는 겁에 질린 채 그의 모닝에서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나를 본 기준이 제자리에 멈췄다.
   기준은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멍청히 서 있다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창백한 얼굴의 기준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나를 보았다. 우리가 사귀면서 자주 그랬듯이, 기준과 나의 시선이 둘 다 아무 말도 없는 가운데 마주쳤다.
   이제 어떻게 살지.
   기준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을 내게 내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답지 않았다. 그는 힘이 되어주는 쪽이다. 나는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어떻게든 살아야지.

   모처럼 한가한 휴일이었다. 기준에게는 걱정할 거리들이 많았지만 내게 자신의 문제를 함께 떠안길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대신 불만을 토해낼 것들이 좀 있었다. 나는 기준의 집에서 피자를 시켜서 먹다가 말고 콜라를 내던졌다. 이미 뜯어놓았던 콜라가 쏟아지며 거실 바닥을 나뒹굴었다. 기준의 어머니가 신난다고 달려가 콜라를 손에 치덕치덕 묻혔다. 달려가 어머니를 말리려던 기준을 붙잡았다. 하루만 다른 데 맡기면 되잖아. 나는 독하게 쏘아붙였다. 그때의 나는 병자가 있는 집안 특유의 꿉꿉한 공기와 지린내를 매일같이 견디고 견디며 그저 태평하게 내가 모실게 라고 말했던 나 자신조차 지겨워져 있었다.
   기준은 누가 어머니를 제대로 보살펴줄 수 있겠냐며 나를 달래려고 애썼다. 나는 발을 구르며 날뛰었다. 어머니 보여준 다음부터 반년 넘게 너는 맨날 나한테 집으로 오라고만 하잖아. 그 뒤로도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이 이어졌다. 그거 아냐. 우리 부모님한텐 아직 말도 못 했어. 여과 없이 쏘아대는 말들에 기준은 대꾸하지 못했다. 하지 않았다. 나는 퍼부을 대로 퍼부었다. 기준과 헤어질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며 처음의 약속과 다른 것을 우기고 있는 게 아니었고 다만 내게 하루만이라도 보상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요구할 뿐이었다. 기준의 어머니를 매일같이 만나며 내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가 집안의 온갖 양말을 선물이라고 내 손에 수줍게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기준만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자꾸 우리 둘 사이를 침범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둘이어야 하는 연인 사이에 자꾸만, 그것이 꼭 어머니는 아니더라도, 그 무언가가 계속 함께 맴도는 것 같았다.
   그때 콜라 웅덩이 위에서 철퍽대던 기준의 어머니가 아야, 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일부러 그런 것처럼. 의도적이었던 것처럼. 콜라 캔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다가 손끝이 베인 모양이었다. 기준은 내 말을 끊고 당장에 달려가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콜라로 엉망이 된 어머니는 끈적끈적한 물을 뚝뚝 흘리며 기준의 손에 이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가 난 나는 내 말 안 끝났어, 하고 소리치면서도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콜라를 닦고 있는데 소변 지린내가 났다. 어머니를 씻기고 나온 기준이 춥다고 칭얼대는 어머니를 수건으로 감싸며 힘겹게 말했다.
   그 걸레 안 빨았는데.
   안 빨았다는 말 앞에 무엇이 축약되어 있는지 단박에 알았다. 흘린 소변을 닦은 뒤, 안 빨았는데. 나는 콜라를 닦다말고 걸레를 내동댕이쳤다. 씩씩거리는 나를 보며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기준은 대충 기저귀를 채운 뒤 어머니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거죽이 다 늘어지고 살갗이 벗겨진 피부를 내보이며 히쭉거리는 그의 어머니를 보았다. 이 집에 들어설 때의 위화감이 떠올랐다. 왜 소름이 돋았던 건지 깨달았다. 기준의 배려가 지극히 다정하고 철저히 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치 철창 안에서 사육당하고 있는 짐승 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아,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게 이런 거구나.
   저러고 살고 싶으실까.
   말은 이성이 말리기도 전에 제 의지가 있는 것처럼 내게서 튀어나왔다. 기준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가 폈다. 죽는 게 더 나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기준은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너 가.
   기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더 화를 내려 하자 기준은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을 걷어차고 집으로 가버릴까 하다가 더러운 걸레를 내버리고 새 걸레를 꺼내와 거실바닥을 닦았다. 내가 한 짓이긴 했으니 다 치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을 대충 치우고 부엌 바깥쪽 베란다에서 걸레를 빨았다. 그동안 기준은 다 씻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아니면 피곤해 죽기 직전이라도 되었던 건지 기척으로 봐서 기준은 정말 잠이 든 것 같았다. 나는 걸레를 대충 아무 데나 널어두고 기준의 방문을 한 번 걷어찬 다음 그의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그날이 되어, 집이 전부 타버리고 없었다.

   기준은 그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했다. 좋은 아침, 이라는 일상의 인사도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괜찮으냐고 슬쩍 물어보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대답했다. 집이야 또 구하면 되고, 어머니도 무사하시니까 안심이지. 기준은 평소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 뒤로 나는 기준이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치우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는 그가 도저히 팔 수 없었던 모닝만이 가까스로 남았다.
   그런데도 기준은 변함이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상금액이 산더미처럼 쌓여 빚이 가득 생긴 통장을 떠안고 어머니는 치매와 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병원비까지 내야 하는 데다가 이천 부의 잘못 나간 책에 대한 대가로 당분간 월급의 반을 삭감하기로 했는데도, 기준은 언제나 웃으며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했다.
   너 집도 없는데 어디서 생활하는 거야?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기준을 보며 물으면 기준은 그저 머무는 곳 있어, 하고 웃고 말았다. 저녁에 한번 가보자고 하면 기준은 고개만 저었다. 밤에는 다른 일을 해서. 대리기사라는 또 다른 직업을 얻은 기준이 매번 하던 변명이었다. 기준은 잘 시간은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바쁘게 일만 했다. 어머니를 모신 병원에 잘 들르지도 않았다. 그는 그토록 사랑하던 자신의 어머니를 피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와도 멀어졌다. 나는 점점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게 되었다. 기준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좋은 아침, 이라고 다정하게 말하면서도 더는 자신의 공간에, 삶에 날 두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몰래 기준을 관찰했다. 세탁소에 꼬박꼬박 맡기는지 옷이야 단정했지만 갈수록 얼굴이 피로함에 찌들어 푸석해지고 누렇게 떴다. 급격하게 살이 빠졌고 허옇게 튼 입술 사이로는 아무리 이를 닦아도 숨길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어느 날 그의 하룻밤을 미행했다. 그가 머문다는 곳은 회사 앞에 주차된 모닝이었다. 모닝은 그의 이동수단이고, 숙소고, 유일한 휴식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기준이 웃으며 출근하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한 시간. 기준씨, 지금 웃음이 나와? 누군가 화를 내면 기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하지만 이렇게 아침이 좋은데요, 하고 대답했다. 실수가 훨씬 잦아졌고 욕먹는 날들도 많았는데, 기준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저 괴기스러울 정도로 웃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한동안 일 얘기가 아니면 대화도 나누지 않던 나를 붙들고 말했다. 나, 차를 팔았어. 대꾸 없는 나를 보며 실없이 웃던 기준은 그 말만을 건네고는 훌쩍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회사에서 잘렸다. 기준이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퇴근도 하지 않고 쭉 지냈다는 것을 사장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출근한 사장에게서 이제 그만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기준은 제 짐을 챙겨 들고 나가며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후 다시는 기준을 보지 못했다. 나는 기준을 빨리 잊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나는 모닝은 타기 싫다. 모닝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났다.
   내가 문을 잠갔어야 했는데.
   그 전날부터 그날 새벽까지 나는 기준과 다퉜고, 부엌 쪽에서 걸레를 빨았고, 기준이 언제나 단단히 자물쇠로 채워두던 철창을 닫지 않았다.
   기준은 매일 저녁 철창을 잠그고 자는 버릇이 있었고, 아침이면 씻고 바로 나와 걸레로 차를 닦은 뒤 회사 앞에서 샌드위치를 사먹고 출근했다. 그가 아침에 철창을 잠그지 않고 집을 나선 건 특별히 그날만 잊었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항상 잠겨있던 문이 열린 그 집에서 기준의 어머니는 가스 불을 켰다. 현명한 여직원의 말이 옳았다고 생각했던 걸 부정하진 않겠다. 입 밖에 냈던 모든 말들이 진심은 아니었다며 변명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의 책임이 내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기준에게 묻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왜 그날 한 시간 반이나 늦었느냐고.
   그것은 정말이지 기준답지 않은 일이었다.

한보라

소설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에게 흥미로움이란 대부분 ‘공감이 가는 낯섦’과 상통한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흥미로움이든 간에 70매 분량의 소설 중 단 한 장면이라도 이 부분은 개성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매력이 없다. 그래서 항상 억지로라도 재미있는 상상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2018/07/31
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