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숫자의 조합으로 이름 붙여진 돌덩어리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헤드라인이 처음 인터넷 포털 뉴스에 올라왔을 때 나는 비씨카드 고객센터의 상담원 김고순님과 통화 중이었다. 나는 김고순님께 사흘 전 강원도 정선의 식당에서 일시불로 결제한 25만 3천원을 5개월 할부로 바꿔달라고 요청하면서 해당 기사를 클릭했다. 김고순님은 본인 확인을 위해 주소와 주민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다. 내가 그것들을 천천히 말하는 동안에도 페이지는 해당 기사로 넘어가지 않았다. 김고순님이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하겠다고 말할 때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화면이 떴다. 새로고침 버튼을 여러 차례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김고순님이 너무 오래 조용한 것 같아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봤다. 통화가 종료되어 있었다. 재발신 버튼을 누르자 통화 대기자가 많다는 안내음이 들렸고 대기 음악이 이어졌다. 핸드폰을 든 채로 인터넷 창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실시간 검색어에 운석과 행성과 충돌과 멸망 같은 단어가 등장했다. 아까 본 헤드라인을 찾아 클릭했지만 계속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화면이 떴다. 대기 음악이 멈췄고 이번에는 서나운님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먼저 주소와 주민번호를 말하고 사흘 전 강원도 정선에서 결제한……까지 말하다가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봤다. 이번에도 통화가 종료되어 있었다.

   아버지 환갑을 맞아 강원도로 1박 2일 가족여행을 떠났던 날 저녁, 부모님과 오빠와 새언니와 두 명의 어린 조카와 나는 정선의 커다란 식당에 둘러 앉아 한우를 구워 먹었다. 여행비용 대부분―점심값, 리조트 숙박비와 조식 이용권, 케이블카 탑승 티켓 등―을 오빠네 부부가 부담했기에 저녁 식사 정도는 내가 사려고 했다. 한우를 적당히 먹은 다음에는 된장찌개와 냉면을 시켜 먹었고 맥주와 소주와 사이다를 마셨다. 식사를 마친 뒤 가족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고 나는 카운터를 찾아가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몇 개월 할부로 끊으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사장은 내게 묻지도 않고 일시불로 계산해버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방금 계산을 취소하고 5개월 할부로 다시 끊어달라고 요구했다. 사장은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연신 긁어대며 기계가 이상하네요, 취소 버튼이 먹질 않아요, 이게 왜 안 되지 이상하네, 전에는 이런 적이 없는데, 하고 줄줄 말을 쏟아냈다. 시간이 지체되자 식당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엄마가 들어와서 뭐가 잘 안 되느냐고 물었고 바로 오빠가 따라들어왔다. 그런 상황을 오빠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사장에게 그만 됐다고, 카드를 돌려달라고 말한 뒤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콘도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는 다시 뭐가 잘못됐던 거냐고 물었다.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열다가 얼마 전 엄마 생일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별일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생일 선물로 운동화를 사주려고 엄마와 같이 나이키 매장에 갔었는데 그때도 10만원 조금 넘는 운동화를 사면서 3개월 할부로 결제해달라고 요구했었다. 옆에서 그 소리를 들은 엄마는 돈 10만원이 없어서 그걸 할부로 긁느냐고 농담처럼 한마디 했었다. 요즘 나는 부쩍 그런 말과 상황에 자존심을 다쳤고, 그런 일에 자존심을 다칠 만큼 곤궁한 처지가 지속되는 데 약간 질려 있었다. 스무 살 때도 한 번에 5만원 이상을 써본 적이 없었고 서른 살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 현실이 창피했다. 일을 하건 하지 않건 돈은 늘 없었고 가까운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부족한 사정을 보이기도 싫었다. 내 욕망의 크기를 줄이며 살 수는 있었지만 가족이나 연인의 욕망까지 내 사이즈에 맞출 수는 없었다. 생일이나 기념일이나 명절이 오면 빚을 내서 나의 사랑을 통째로 선물하고 그 사랑의 값을 다달이 쪼개어 갚아나가는 삶이 지속됐다. 최근에는 충치와 위통이 심해져 늘 고통을 느끼며 살았지만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돈이 없었다.

   겨우 연결된 인터넷 기사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돌덩이의 크기는 미 대륙과 비슷하며 최초로 발견한 때는 사 년 전이지만 이후 추적에 실패했고 육 개월 전에 다시 발견했는데 그때는 토성 궤도에 진입하여 소멸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돌덩이는 살아남았고 일정한 속도로 지구와 가까워지고 있다. 그것이 지구에 떨어진다면 인류는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충격과 공포의 대재난을 겪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궤도와 속도를 유지한다면 대재앙까지 D-43. 핵미사일로 그것을 폭파하는 작전을 곧 실행할 것이라는 뉴스와 제대로 폭파하지 못하고 덩어리 몇 개로 쪼개지기만 한다면 지구는 더 큰 위험에 처하고 말 것이라는 주장이 동시에 보도되었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것만 같았다.

   비씨카드 고객센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민영화님과 연결 되었다. 주소와 주민번호와 용건을 말하자 민영화님이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이미 접수 처리된 내용이라고 알려줬다. 그렇다면 핸드폰으로 승인취소 내역과 할부 승인 내역을 알리는 문자가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민영화님은 문자 발송이 되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었다. 민영화님은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민영화님의 대답을 기다리며 연달아 업데이트 되는 대재앙 기사를 하나하나 클릭해서 유심히 보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핸드폰 액정을 봤다. 통화가 종료되어 있었다.

   엄마는 뉴스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네 살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온 엄마는 지구나 행성이나 우주 같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달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 그건 마치 태초에 말씀이 있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다는 것을 아는 것과 비슷했다. 글자로만 알 뿐 그것을 현실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을 거란 뜻이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난리가 무슨 난리냐고 물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막막해서 음, 그게 다 무슨 소리냐면, 그러니까 그게, 큰일이 벌어질 거란 뜻인데…… 등등의 말을 늘어놓으며 본격적인 설명을 미루고 적당한 단어를 골랐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골라도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란 아주 뻔했다.
   엄청나게 큰 돌덩이가 지구에 떨어질 거래.
   그러게, 대포도 아니고 미사일도 아니고 돌이라며. 그럼 그 돌이 떨어지는 곳만 피하면 되는 거잖아.
   우리나라보다도 큰 돌이라잖아. 그게 떨어지면 지진도 나고 화산도 터지고 바다도 넘치고 하늘은 까매지고 다 흔들린대. 공룡도 그래서 멸종했다는 얘기가 있어.
   공룡.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공룡을 생각하는 듯 했다. 엄마는 공룡이란 단어와도 아주 먼 삶을 살았다.
   근데 그런 돌이 왜 갑자기 떨어진대?
   아주 멀리에서부터 날아오고 있었대.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큰 돌이 어떻게 날아오나. 돌은 무거운데.
   그게…… 날아온다기보다는 돌은 그냥 자기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는 건데. 우주는 무중력이고 아래위가 없으니까.
   우주.
   엄마는 다시 침묵했다. 우주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도 우주를 생각했다. 머뭇거리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돌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거지.
   응.
   그건 우주에서 오는 거고.
   응.
   우주가 어디 있는데.
   나는 다 우주라고 대답했다. 지구도 하늘도 별도 엄마도 우주라고. 엄마는 다시 침묵했다. 엄마는 당신이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 산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때로 한국에 산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지구에 산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침묵이 길어지자 걱정이 깊어졌다. 괜찮을 거야, 엄마라고 입을 떼었는데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핸드폰 액정을 보니 전원이 꺼져 있었다.

   카드 결제일은 지구가 파괴되기 전에 온다. 25만원을 일시불로 남겨둔다면 나는 연체자가 될 것이다. 지구가 파괴되지 않는다면…… 그래도 연체는 될 것이고 나는 독촉 전화를 받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일시불 결제를 어서 할부로 바꿔야만 했다. 비씨카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 배지우님과 가까스로 연결이 되었다. 나는 주소와 주민번호를 말하고 용건을 간략하게 전했다. 배지우님이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는 또 전화가 끊길까봐, 끊겼는데 끊긴 것도 모르고 계속 기다리게 될까봐 배지우님이 상담 내역과 결제 내역을 알아보는 동안 말을 걸었다.
   그런데 출근을 하셨네요.
   네. 고객님. 출근했습니다.
   다 버리고 대피하는 사람들도 많다던데요.
   네. 고객님. 저도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실례지만…… 계속 출근하실 생각인가요?
   네. 고객님. 저는 계속 출근을 합니다.
   무섭지 않으세요?
   네. 고객님. 무섭습니다. 그런데 고객님의.
   말이 끊겼다. 핸드폰 액정을 보니 깜깜했다. 전원 버튼을 눌러 핸드폰을 켜자마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 밥은 먹었느냐, 뉴스를 봤느냐, 물어보며 뜸을 들이던 엄마가 진짜 용건을 말했다.
   네가 설명을 해주면 좋겠다.
   뭐를?
   그 돌멩이. 우주도. 네가 전에 한 말들 있잖아.
   그건 내가 설명할 수 없어. 나도 잘 몰라. 우주는 되게 어려운 거고 박사들이나 아는 건데.
   네가 아는 것만 말해주면 되잖아.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을 거 아니냐.
   엄마. 성경 있잖아. 차라리 그걸 봐. 이제 와서 과학 같은 건 엄마한테 도움이 안 될 거야.
   그래도 그건…… 그건 아닌 거 같다.
   응?
   그리 공들여서 사랑으로 만든 이 세상을 돌멩이 하나로 망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다고. 하느님이 그런 걸 몰랐을 리가 없잖아. 근데 알았어도 문제고 몰랐어도 문제고……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또 내가 못 찾은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성경에는 우주라는 단어가 안 나오는데. 근데 그 돌은 우주에서 날아온다며.
   엄마. 그냥 기도를 해.
   기도야 매일 하지. 그건 그거고. 성경을 읽으면 더 이해가 안 되니까 나는 다른 게 필요한 거지.
   다른 거 뭐?
   네가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면 좋겠어. 내가 죽으면 왜 죽는지는 알고 죽어야 할 거 아니냐.

   치통과 위통이 심해졌고 약을 먹으면 토했다. 인터넷도 전기도 수도도 끊기지 않았다. 충돌 가능성에 대한 사람들의 언쟁과 토론은 계속되었다. 나는 공모전에 낼 글을 다듬으며 하루 한 번씩 비씨카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어느 날은 통화가 되고 어느 날은 되지 않았다. 통화가 되는 날이면 매번 다른 이름의 상담원과 연결되었고 요청이 접수되어 처리되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겐 아무 문자도 전송되지 않았다. 카드사 앱으로 확인한 승인 내역서에도 일시불로 찍혀 있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고 같은 요청을 했다. 전화를 끊은 뒤에는 글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고민했고,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길 반복했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알고 싶다고 했다. 우주를. 돌덩이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지구는 왜 여기 있어서 그것과 부딪혀야 하는지를. 우리가 죽는다면 왜 죽는지 그 이유를.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모른다는 말은 정직한 말이지만 최선은 아니다. 거짓말쟁이가 되더라도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하지만 우주에 대해 내가 아는 만큼만 말을 한다면 엄마는 내가 말한 것의 열 배, 스무 배가 넘는 의문을 쏟아낼 것이다. 아주 모를 때보다 아주 조금 알고 있을 때 답답함은 증폭된다. 엄마는 더 괴로워질지도 모른다.

   상담원 김고순님과 다시 연결되었다. 김고순님은 그동안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당장 처리해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뒤 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했더니 역시나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고 이번에도 김고순님과 연결되었다. 주소와 주민번호를 말하려고 하자 김고순님이 다그치듯 말했다.
   이제는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고객님.
   네?
   저희 쪽에서는 분명 처리를 했는데요. 아무리 처리를 해도 고객님 카드 승인 내역에 표시가 안 되는 건 전산 오류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건 기계가 잘못된 거니까요. 저는 제 일을 했고요. 정말 분명히 했고요. 제가 기계 속에 들어가서 기계가 되어서 그걸 바꿔놓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고객님께서 결제하지 않은 것이 결제되었다고 나온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가 되는 거지만 고객님이 분명히 일시불로 결제하신 것을 뒤늦게 할부로 바꿔달라고 하시는 거면 어차피 나갈 돈은 똑같은데 그걸 굳이 이런 시국에 매일 전화를 하셔서 요청을 하시면서 고객님은 마치 죽지 않을 사람처럼 그러시는데요. 이 순간 저는 정말 견디기가 힘들고요. 저는 연달아 고객님 전화를 받았고 다음 결제일이란 게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뻔뻔하게 계속 살아 있을 것처럼 혼자 살 것처럼 태연하게 요구를 하시는 게 저는 이해가 안 되고요. 기록을 보니까 정말 매일 전화를 하셨는데 이게 과연 승인 변경을 요청하시려고 그러시는 건지 다른 의도가 있으신 건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아무튼 저는 더이상 고객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사실 오늘 세 명이 출근했는데 고객님이 내일 또 전화를 하신다면 내일은 몇 명이나 출근해 있을지 저는 정말 모르겠고요. 내일이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저는 오늘이 끝입니다. 고객님이 끝입니다.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 액정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먹먹한 기분으로 한동안 핸드폰을 귀에서 떼지 못했다. 마지막 말을 하며 김고순님은 울먹였는데, 화가 나서인지 겁이 나서인지 억울하고 분해서인지, 어떤 감정이 가장 크고 무거워 울먹였는지, 알 것도 같았지만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우리가 같이 울먹인 이유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위가 아파 토하고 수돗물로 입 안을 헹궜다.

   미사일을 쏘았고 미사일은 빗나갔다. 미사일을 다시 쏘았고 미사일은 돌덩이의 한 귀퉁이만 파괴시켰다. 궤도가 조금 틀어졌지만 지구를 빗나갈 정도로 틀어지진 않았다. 다시 미사일을 쏠 거라고 했다.

   고객센터에 전화 거는 일을 그만두고 나는 매일 글을 썼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말을 바꾸려면 중반부터 다시 써야 했다. 공모전 마감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중반부터 고칠 자신이 없었다.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말만 더 그럴 듯하게 바꿀 수는 없을까. 노트북 앞에 앉아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엄마와 매일 통화했다.

   남들 다 집으로 내려온다는데 너는 왜 안 내려오느냐고 엄마가 물었다. 나는 표를 구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대로 정말 큰 난리가 난다면 너랑 나는 얼굴 한번 못 보고 죽는 거냐고 엄마가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정말 다 죽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엄마는 모르겠다고, 남들 죽을 때 같이 안 죽고 지옥 같은 세상에 혼자 살아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에게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했다. 엄마는 그거야 늘 하는 거라고, 하던 만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엄마는 잠깐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정리를 해보자, 하고 말을 시작했다.
   네가 말하길, 아주 조그마한 게 펑 터져서 점점 커져서 우주가 됐다고 했잖아. 지금도 우주는 점점 커지고 있다고. 최대한 커졌다가 다시 한 점만큼 줄어들 거라고.
   응.
   줄어들었다가 터지고 또 줄어들고 또 터지고, 그게 계속 반복된다고.
   응.
   지구는 돌에 가깝고. 해 같은 게 진짜 별이고. 진짜 별에서는 아무도 살 수가 없고.
   응.
   밤에 보는 별도 내가 그 별을 보고는 있지만 그 별은 이미 폭발하고 없을 수도 있다고. 왜냐면 엄청 멀리 있으니까. 빛의 속도로도 몇백 광년이 걸릴 만큼 멀리 있으니까.
   응. 엄마. 다 기억하네.
   다 적어놨다. 적어놓고 보고 또 봤어. 빛의 속도가 뭔지 모르겠어서 너무 답답해. 빛에 무슨 속도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빛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 같은 거야.
   빛이 다가온다고.
   응. 소리에도 속도가 있고.
   ……아무튼, 네가 말하길 우주에 비하면 지구는 먼지보다도 작고 인간은 미세먼지만큼도 아니라고. 너무 작아서 없는 거랑 똑같다고. 인간이 우주에 머무는 순간은 몇백억 만 년의 1초만큼도 안 되고 우주는 인간이나 생명 같은 거에 관심도 없다고. 인간적인 감정 같은 건 우주와 어울리지도 않고 인간이 우주에서 사라진다고 달라질 것도 슬플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고.
   응.
   네가 말을 해줘서 우주에 위아래가 없고 공기도 없고 아주 춥고 또 얼마나 무서운 건지는 내가 영화처럼 이해를 했어. 근데 이해를 하면 또 이해가 안 되는 게 생긴다. 우선 우주한테는 네가 미세먼지인지 몰라도 나한테는 네가 미세먼지가 아니야. 나도 미세먼지가 아니다. 그리고 너나 나나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고 분명히 있어. 또 네 말처럼 우리가 아무리 미세먼지 같은 그런 존재라고 해도 나는 우리가 사라지는 게 아쉽고 슬프다.
   ……
   그리고 또 너는 우주가 점점 팽창하고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진다고 했잖아. 별과 별이 멀어지는 것도 공간이 멀어지는 거라고.
   ……응.
   그럼 우주도 팽창하고 속도도 점점 빨라진다는데 비록 별은 아닐지라도 돌멩이랑 지구도 멀어져야 되는 거잖아.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그냥 기도를 해, 엄마. 우주고 뭐고 알아봤자 우린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돌멩이가 날아오면 우린 그냥 사라지는 거야. 참아오던 감정이 있어 눈물이 쏟아졌다.
   인간은 참 이상하다. 엄청나게 커다랗다는 우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알고 또 신이 뭔지, 뭘 했고 뭘 할 수 있는지 그런 건 다 알면서 왜 돌멩이 하나 어쩌질 못해서 이 지경을 만드는 건지.
   인간이 만든 게 아니잖아. 돌멩이는.
   그래도 이 난리는 인간이 만든 거다.
   어째서?
   아주 옛날 같으면 그런 게 날아오고 있어도 몰랐을 거잖아. 그럼 이런 난리 없이 다들 사는 날까지는 덤덤하게 살았을 거잖아. 먹을 거 먹고 잘 거 자고 할 일 하면서. 적어도 세상 끝장난다고 나쁜 짓 하고 그러진 않았을 거잖아.
   ……
   나는 이참에 너랑 돌멩이 덕분에 우주가 뭔지도 조금 알았고…… 네 말대로 그런 게 내 인생에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런 걸 모르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알고 기도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묵주기도 5단을 하고 밤에 자기 전에 또 5단을 했다. 하던 기도를 하던 만큼 계속하고 있다고 했으니 엄마는 오늘 아침에도 묵주기도 5단을 했을 것이다. 오늘은 화요일이니까 ‘고통의 신비’를 했을 것이다. 내가 기도를 한다면…… 어색하지만 그런 걸 하게 된다면 무엇을 기원할 수 있을까. 일단 치통과 위통을 없애달라고 할 것이다. 치통과 위통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다고 불평할 것이다. 또 이번 글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왕이면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상금을 받으면 좋겠다고 기도할 것이다. 다가올 멸망에서 인류를 구원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요즘 뭘 바라고 기도해?
   난 뭘 바라고 기도한 적 없다.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왜 해야 해 기도를?
   그건 나한테는 그냥 세상에 대한 인사 같은 거지. 잘 잤다는 인사. 잘 자라는 인사.
   ……엄마는 우리가 어떻게 되면 좋겠어?
   글쎄. 이제 와서는 사는 건 모르겠고…… 그래도 우리가 가까운 곳에서 죽으면 좋겠다. 네가 오든가 내가 가든가 최대한 가까운 데서.

   노트북을 끄고 간단히 짐을 챙겼다.
   가까운 곳으로 갈 것이다.
   신이나 과학이 아니어도 내 힘으로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엄마와 통화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우주의 96퍼센트는 인간이 모르는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채워져 있고 겨우 0.4퍼센트만이 별과 은하라는 점을 말해줄 것이다. 우주의 암흑 속에서 빛나는 0.4퍼센트, 그것의 일부인 엄마에 대해 꼭 말할 것이다. 통화를 길게 할 수 있다면 별의 탄생과 소멸도 얘기할 것이다. 지구가 사라지면 엄마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이 우주의 흙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는지…… 내가 엄마 가까운 곳으로 얼마 가지 못하더라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린 이미 충분히 가까이 있다고, 우주는 무한하나 시작과 끝이 있기에 언젠가 지구가 없어진다고 해도 우린 어떤 식으로든 같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우주가 생기고 없어지고 다시 생기길 반복해도 우린 영영 같이 있을 것이라고 꼭 말해줄 것이다.

최진영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지속되는 일상에 대한 경이로움, 소중한 사람들,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도 그만큼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소설은 그런 생각들의 경유지가 됩니다. 최근에는 『해가 지는 곳으로』란 책을 세상에 내놨습니다.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