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리는 아직 젖어 있었다. 길가의 낡은 시멘트 건물에서는 먼지 냄새가 풍겼다. 길바닥 여기저기 웅덩이가 패어 있어 그 위로 가로등 불빛이나 담뱃불, 휴대전화 조명 같은 것이 언뜻언뜻 비쳐 보였다. 처마가 딸린 건물이 없어서 사람들은 골목에 기대서거나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재즈 라이브 클럽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 정도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클럽의 열린 문 안은 아주 새까맣게 보였다. 그 안은 비가 들이치지 않았는데도 젖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철문 밑으로는 한 사람이 간신히 오갈 정도로 좁은 층계가 있었다. 좁디좁은 그 공간의 벽면은 온갖 난잡한 낙서들로 가득했다. 관객들이 방명록처럼 써놓은 낙서였다. 욕설이 많았다. 재즈 음악에 대해서, 더러는 클럽에 대해 비난하는 말도 있었다. 유진은 이따금 그 낙서들에 만족감을 표하곤 했다. 재즈 라이브 클럽 후문으로 딱 좋은 혼란스러움이 담겨 있다던가.
   나도 후문이 좋았다. 유진이 말한 것처럼 벽의 낙서 같은 작은 부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진을 기다리면서 나는 시간을 죽이고 있는 무리에 끼어 있을 수 있었다. 클럽 안과 달리 후문에서는 애쓸 필요가 없었다. 음악에 심취한 척, 클럽 안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는 척.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후문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소로 정해져 있었다. 유진과 나 외에도 후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화장이 번진 여자들, 반쯤 술에 반쯤 분위기에 취해 저들끼리 웃고 떠드는 남자들. 공연 후 들뜬 기분으로 저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유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남자였다. 타인에게도 하물며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늘 무표정했다. 의식주는 그를 대변하지 못했다. 식사는 그에게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뿐이었다. 그의 패션은 아주 낡은 옷과 별생각 없이 산 새 옷이 혼재되어 있었고 클럽 창고를 방으로 삼아 지냈다. 그렇다고 그가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 않고 산 것은 아니었다. 라이브 클럽의 단골 중 유진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유진의 이름을 음향 관리자, 바텐더, 청소부, 더러는 매표소 직원쯤으로 생각했다. 어딘가 문제가 생기면 유진을 찾았고 그럼 유진이 나타나든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든 문제는 곧 해결되었다. 그의 이름은 어느새 라이브 클럽 안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처럼 사용됐다. 식당에서 이모를 찾듯 유진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 클럽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양 느껴져 아무 이유도 없이 유진을 찾는 이도 있었다. 당사자인 유진은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쓰이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낯선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멋대로 부르도록 내버려두었다. 어느 때는 대답했으나 어느 때는 다 듣고도 모르는 척 했다. 그럴 때조차 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유진.”
   막 좁은 층계를 올라오는 그를 불러세웠다. 유진은 입에 문 담배를 까딱여 답했다. 그는 양손 가득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었다. 유진이 후문 옆에 쓰레기를 내려놓았다. 그 사이 몇 사람이 유진에게 말을 걸었다. 밴드 멤버들이 언제쯤 나오는지 물었다. 유진은 다섯 손가락을 펴 보였다. 오 분쯤 걸린다는 뜻이었다. 그는 말수가 적은 대신 곧잘 제스처를 쓰곤 했다. 시끄러운 클럽 안에서 일한 습관 때문이었다. 올라간 그의 손 때문에 재킷의 팔꿈치가 닳아 있는 게 보였다. 바의 높이가 딱 팔꿈치 정도의 위치였던 듯했다. 그가 내게 왔다.
   “저녁은?”
   나는 그의 물음에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흔들어 보였다. 냉장고 청소를 하다가 유통기한이 막 지난 것들로 만든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식어버려 빵 표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유진은 별말 없이 앞장섰다. 그가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로지 편의점 간단식뿐이었다. 우리가 편의점으로 가는 동안 등 뒤가 시끄러워졌다. 밴드 멤버들과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나는 유진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그 덕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그는 아무런 미련도 없어 보였다. 유진은 얼마 전까지 세션 멤버였다. 무대 안쪽에서 가끔 더블 베이스를 쳤다. 그러다 돌연 밴드를 그만두었는데 그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유진이 활을 놓은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뒤로도 계속 클럽에서 일하는 것으로 볼 때 불화가 원인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에게는 어쩌면 무대 안쪽에서 베이스를 튕기는 것과 바에서 잔을 건네는 것이 크게 다를 바가 없었는지도 몰랐다. 어차피 벽을 등지고 서 있는 자리였으므로. 유진에게는 그저 집 안의 가구 위치를 바꾸듯 가벼운 변심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진은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컵라면을 집어들었다. 나도 샌드위치를 먹을 자신이 없어 주먹밥을 샀다. 우리는 컵라면과 주먹밥 두 개, 물과 담배 그리고 콘돔이 든 봉지를 들고 라이브 클럽으로 되돌아왔다.

   사람이 빠져나가 조용했다. 홀은 물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에폭시로 코팅된 바닥이 수면처럼 보여서. 테이블 위에 거꾸로 올려둔 의자들이 물 위를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매번 깜짝 놀라게 돼.”
   유진은 층계 밑에서 멀뚱히 나를 올려다봤다.
   “여기 물이 찬 줄 알았어.”
   유진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었다. 그도 이따금 착각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바에 올라앉아 저녁을 나누어 먹었다. 나는 깜짝 놀라는 유진을 상상했다. 물에 잠긴 홀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그의 얼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아니면 그마저도 아무런 기미를 읽을 수 없을지도. 살짝 벌어진 입술. 단지 그것으로 유진은 놀라움을 표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배를 채우고 나서 창고 방에서 섹스를 하고 두어 시간 잠들었다.
   눅눅한 이불보 때문에 잠에서 깨었을 때, 유진의 굽어 있는 등허리와 툭 불거져나온 척추뼈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 뿌옇게 흐렸다. 고른 숨소리 때문에 그가 아직 잠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옷을 주워 입고 다시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첫차가 다니는 시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유진 대신 청소를 하곤 했다. 오늘은 운이 좋았던 건지 지폐 한 장과 귀걸이 한 짝을 주웠다. 바 선반에는 유진이 분실물 센터라 부르는 커다란 철제 상자가 있었다. 화이트데이에 이벤트 목적으로 산 막대사탕 상자였다. 유진은 클럽 안에서 주운 것들을 그곳에 보관했다. 나는 귀걸이를 분실물 센터에 넣어두면서 그 빌미로 상자 안을 오래 구경했다. 공연 중 사람들은 무얼 잃어버리곤 했는데 어둠 탓인지 되찾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잃어버린 것조차 잊어버린 것들이었다. 그 덕에 깡통 안은 액세서리나 단추, 라이터와 화장품 따위가 쌓여갔다. 꽤 많은 사람이 같은 이유로 전혀 다른 물건들을 잃어버렸다. 그것들이 모인 통 안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돈은 늘 주운 사람이 임자였지만, 깡통 속 물건들은 단 한 번도 손을 타지 않았다. 여전히 잃어버린 사람들의 것이었다.
   바에서 설거지를 끝내자 잠이 깬 유진이 홀로 나왔다. 그는 멋대로 뻗친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바 스툴에 올라앉았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습이었다.
   “또 그걸 보고 있었네.”
   꺼내져 있는 깡통을 보고 유진이 잠시 투덜거렸다. 그는 내가 분실물 구경을 좋아하는 걸 영 못마땅해 했다.
   “주인 찾아준 적 있어?”
   “아니.”
   유진이 손가락으로 깡통을 튕겼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거의 다 잡동사니더라.”
   “그러니까 잘 잃어버리지.”
   유진이 깡통을 한쪽으로 치웠다.
   “뭐 잃어버린 적 없어?”
   내 물음에 유진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개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무언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지금껏 기억하고 있어 놀라웠다. 유진은 여간해서는 분실물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릴 것 같았다. 유진은 전등갓을 가리켰다. 딱 저만한 크기였다고 했다. 성인 손으로 두 뼘 정도의 크기였다.
   “그 정도면 개가 아니라 강아지라고 해야지.”
   “그래, 강아지.”
   유진은 어릴 때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는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웠다고 했다. 하루는 산책을 시키려고 나왔다가 목줄이 풀렸다고. 흥분한 개가 앞만 보고 달려가버렸다고 했다. 아무리 목 놓아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뛰어가버렸다고도 했다.
   “미친 듯이 뛰어가버리더라.”
   “찾았어?”
   “못 찾았지.”
   유진은 분실물 센터를 보고 있으면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냥 그렇게 돼버리고 만 것. 붙잡으려는 노력조차 할 수 없이 손에서 놓쳐버리고 만 것이라고 했다.
   그에 반해 나는 뭔가를 잃어버린 경험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집 안의 물건들은 모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엄마는 집 안 물건들 하나하나에 지정된 자리를 마련해두는 방식으로 청소했다. 그것은 비단 집 안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내 가방 안은 엄마가 꿰매어준 주머니가 달렸다. 손수건은 여기, 동전은 여기. 그런 식으로 엄마는 내가 지녀야 할 물건들의 자리를 가르쳤다. 나는 엄마만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이 거기 있다는 것. 찾아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 느낌 때문인지 나는 자취를 하고부터 엄마처럼 청소하기 시작했다. 방 안의 물건들을 지정된 곳에 두었다. 그리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가방 안을 모두 비워내어 그 물건들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러다보니 바깥에서도 지니고 있는 물건의 위치를 되새겨보는 일도 생겼다. 왼쪽 주머니에 넣어둔 카드를 확인하려고 옷 위로 살며시 손을 얹어보는 식이었다. 그래서 유진이 말했듯 손에서 영영 떠나버린 느낌을 상상하는 일은 어려웠다. 나는 한 번도 그냥 잃어버린 적이 없으니까. 손만 가볍게 포개어도 거기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므로. 그래서 분실물 센터를 구경하는 건 새롭고 재미있었다. 가볍게 훔쳐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나와 유진은 달랐다.

   라이브 클럽을 나왔을 때는 막 첫차가 다니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하늘이 유독 시퍼렇게 보였다. 건물들은 온통 창백했다. 코끝이 시릴 정도로 쌀쌀했다. 유진은 다시 잠들었을 것이었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것을 보고서야 유진의 옷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옷깃을 잡아당겨 맡아보니 유진의 냄새가 났다. 창고 방의 곰팡내와 옅은 담배 냄새가 섞여 있었다. 유진과 함께 사는 것을 상상해봤다. 내가 구두 매장에서 버는 돈과 유진이 클럽에서 버는 것을 합하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유하지는 않아도 간간이 저금을 하는. 그리고 어쩌면 유진이 취미생활로 다시 활을 잡을 수도 있는. 조금 여유로운 생활에 대해 생각했다.
   전 남자친구는 석유 냄새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사람마다 이상한 냄새를 한 가지씩 좋아하기 마련인지 나는 지하실에 핀 곰팡내가 좋았다. 나는 기름 냄새를 좋아하는 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도 같은 이유로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주유를 할 때면 늘 셀프 주유소를 찾곤 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고개를 젖히고 킁킁대는 모습. 나는 그가 석유 냄새를 맡는 걸 조수석에 앉아 바라보곤 했다. 참 별난 기호를 가졌구나 생각하면서. 그뒤로 그와 나는 냄새에 대한 기호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차이점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주유소 근처를 지날 때만 그를 잠깐 생각한다.
   내가 유진을 사랑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도 나와 같은 기호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유진도 지하실 냄새를 좋아했다. 그는 뭔가를 좋아한다고 쉽게 말을 뱉는 성격은 아니었다. 하물며 내게도 좋다는 표현대신 좋아하는 것 같다고 고백한 남자였다. 그런데 냄새에 대해서는 달랐다. 아주 담담한 얼굴로 지하실 냄새가 좋다고 했다. 이 냄새에는 그리운 뭔가가 담겨 있다고.
   “유진, 어릴 때 반지하 살았어?”
   “아니.”
   “그럼 집이 습했나?”
   “글쎄.”
   우리는 한참이나 그의 기억 속을 뒤적거렸지만, 무엇 때문에 그가 지하실 냄새를 그리워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이 작은 점이 우리의 수많은 공통점 중 하나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유진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 유달리 구두 매장 일이 일찍 끝나 클럽에 빨리 도착한 날이었다. 유진이 오픈 준비를 끝마쳤을 때였다. 세션 멤버들도 악기를 세팅하는 중이었다. 분주한 와중에 누군가 유진을 찾았다. 짧은 머리의 여자였다. 그녀는 층계를 내려와 홀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유진 대신 영업 전이라고 알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녀는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불안해 보였다. 누군가를 찾는 것 같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사람의 눈높이보다는 좀 더 아래. 바닥을 훑어보고 있었다.
   “불 켜드려요?”
   유진이 물었다. ‘뭘 잃어버렸나요? 같이 찾아드릴까요?’라는 말은 없었다. 유진은 그저 그녀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볼 수 있도록 조명 스위치를 올렸다. 바에 그냥 서 있었다. 지켜보기만 했다. 눈가가 빨간 여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혼자서 허리를 숙이고, 더러는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분실물을 찾아다녔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바닥을 더듬고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함께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반지예요.”
   나와 여자는 얇은 금반지를 찾아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분실물 상자 안을 뒤져봐도 금반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세션 멤버들이 합을 맞춰보기 시작하자, 여자는 들어왔을 때처럼 불쑥 사과의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여자가 가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 유진은 가게를 열 준비를 마저 했다. 나는 그게 야속해서 유진에게 따져 물었다.
   “너무 한 것 아냐? 같이 찾아보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었잖아.”
   유진은 한마디만 했다.
   “직접 찾아봐야 잃어버렸단 걸 확실히 깨닫잖아.”
   유진이 낯설어 보였다. 그는 내 것과 뒤바뀐 티셔츠를 여전히 입고 있었다. 그의 가슴께에 그려진 스마일 때문에 그의 표정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는 정말로 여자에게 배려란 것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진은 이따금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원룸에서 나와 창고로 이사했을 때도. 세션을 그만두었을 때도. 그냥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만 통보했다. 그가 내게 한마디 상의도 없었다는 것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유진이 언제든지 나에게 통보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유진이 사라진 지금. 나는 유진이 나로 하여금 유진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깨닫게 할 생각인건지 알고 싶었다.

   클럽 사장은 내게 유진의 행방을 물어왔지만 번번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사장은 유진과 내가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는 서슴없이 내게 유진 대신 클럽에서 주말 아르바이트 할 것을 권했다. 그래도 클럽에 익숙한 사람이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처사였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유진의 행방을 물을 수 없어 기다리는 걸 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내가 알고 있는 유진에 대한 모든 것은 무의미했다. 함께한 시간만으로는 그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사장은 창고를 맥주 재고를 쌓아놓는 곳으로 사용하길 원했다. 유진이 사라지고 난 뒤 창고는 금방 비워질 줄 알았지만, 모두가 그 일을 내게 미뤘다. 유진이 쓰던 방은 그대로였다. 스프링이 가라앉은 매트리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눅눅한 이불보가 허물처럼 걸쳐 있었다. 쿰쿰한 냄새가 났다. 페트병에 담긴 물과 빈 담뱃갑, 음표가 휘갈겨 그려진 악보 몇 장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홀 쓰레기와 함께 버렸다. 값나가는 물건은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유진에게 사주었던 가죽끈이 달린 시계가 매트리스 밑에 깔려 있었다. 나는 방 안에 쪼그려 앉아 그 시계를 봤다.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누군가 씹다버린 껌 같은 모양새였다. 나는 그 시계를 주워 분실물 깡통에 넣어두었다. 매트리스는 세션 멤버들이 후문을 통해 밖으로 옮겨야 했다. 공간이 비좁아서 비스듬히 대각선으로 세워야 간신히 옮길 수 있었다. 대형 쓰레기 비용 2만원으로 유진의 자리는 말끔히 정리되고 말았다.

   “유진.”
   곡이 한창일 때 젊은 여자가 바로 다가왔다. ‘저기요’ ‘이봐요’ 하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유진이라 불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요.”
   여자는 머리를 넘겼다. 취한 듯 잠시 비틀거리더니 바에 손을 짚고 그 반동으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화장실 쪽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화장지를 들고 그녀 뒤를 쫓았다. 여자는 휴지를 받아들지 않았다. 내가 기어코 휴지걸이에 대신 걸게 만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온 나에게 고개를 까딱여 인사하고 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작은 인사가 감사하단 뜻인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저 술에 취한 까딱임이었는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유진씨.”
   또다른 남자가 나를 유진이라 불렀다. 그제야 내가 입고 있는 유니폼에 유진의 이름이 쓰여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맥주를 리필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해주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유진으로 살게 될 것 같았다.
   “다음주에는 새 아르바이트생이 올 거야.”
   바에 서 있던 사장이 말했다. 유진이 없는 곳에 나를 오래 두기 미안하다는 뜻도 있었다. 왜 유진이 그렇게 쉽게 사라져버리고 말았는지를 생각해봤다. 내가 한 많은 말. 유진이 뱉은 많은 말들을 기억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알게 된 것이라고는 내가 유진의 자리에 들어맞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냥 일이나 좀 가르쳐주면 돼.”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사장은 더이상 유진과 연락이 되었냐고 묻지 않았다. 사실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사장은 유진을 술자리에서 만났었다고 했다. 그는 속히 음악 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유진을 소개받았다고. 하지만 누구에게 소개를 받았었는지는 더이상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장은 유진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가 말이 없는 편이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재잘거리는 술자리에서 남들의 술주정을 가만히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고.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면 너무 말이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해.”
   사장이 웃었다. 가게 안에 없어진 물건이 없던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했다. 현금이야 가게에 두고 다니지 않았지만. 음향 기기라도 떼어갔다면 큰일이었을 거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연 후에도 사장은 세션 멤버들과 유진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가 유진이 나가는 걸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한테도 아무 말 안 했다더라.”
   사장을 시작으로 홀 안의 사람들은 유진을 뒷담화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유진이 베이스를 칠 당시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던 일. 그래서 매번 유진의 베이스 독주를 시작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들 편에 섞여 있었다.
   “둘이 그다지 진지해 보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지만.”
   누군가 내게 말했다.
   “유진이란 이름도 가명일지 누가 알아요.”
   덜컥 겁이 났다. 유진을 기다리는 것이 정말 의미 없어지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오래 청소했다. 모든 것이 내가 마련한 자리에 가 있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짧은 머리의 앳돼 보이는 남자였다. 라이브 클럽 사장의 사촌 동생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맡아야 할 일에 직책이랄 게 없다는 것을 놀라워했다. 바텐더, 음향 관리자 하다못해 매표 전담 직원이라도 자신에게 온전히 맡길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느 때는 맥주도 따르고, 어느 때는 변기도 뚫어야 해요. 그냥 사람들이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 다 해요.”
   나는 그렇게 주말마다 클럽에서 이것저것을 다 해왔다고 했다. 그는 그럼 어떻게 배워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럼 딱히 배울 게 없네요?”
   나는 조금 언짢을지언정 반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네요” 한마디만 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가장 먼저 알려준 것은 분실물 센터였다. 그도 관심을 보였다. 뭐든 주운 걸 보관해둔다는 말에 그가 상자 안을 뒤적였다.
   “주인이 없는 건데 가지면 안 되나요?”
   “안 되죠.”
   그는 의뭉스럽게 라이터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뚜껑을 여닫을 수 있는 은색 라이터였다.
   “언제까지고 여기 두면 아깝잖아요. 고장 난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이 잘 쓰면 더 좋지 않나요?”
   “그러다가 주인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요?”
   “올 거면 벌써 왔겠죠.”
   나는 할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라이터 하나를 집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을 때도 그저 못 본 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홀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사장이 나에게 손짓을 했다. 그는 통화를 하다가 휴대전화를 대뜸 내게 내밀었다. 유진이었다. 그는 급히 고향에 내려가야 했다고 말했다. 가족들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지금은 장례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가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좀더 있어봐야 알 것 같다고 답했다. 유진이 떠나 있는 것이 오래 걸리겠구나 싶었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장례식에 가서 내가 도울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를 가족끼리 조용히 치르고 싶다고 했다. 굳이 마지막 말까지 하지 않아도 됐는데. 가족이란 말을 붙인 것에 숨겨진 이유가 있는 것도 같았다. 혹시라도 유진이 어떠한 이별의 기미를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여자가 잃어버린 반지를 혼자서 찾게 했듯이. 만일 그렇다면 내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유진이 뒤바뀐 티셔츠에 대해 잊어버렸듯. 그는 나에게 늘 받을 것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으므로 나도 그에게 받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땐 몰랐어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고. 하지만 막상 입을 여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해.”
   그렇게 한마디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유니폼을 벗어두고 층계를 오르면서 어두운 벽면에 있는 낙서들이 보였다. 그 빼곡한 글자들 사이에서 잠시 서 있었다. 누구도 서서 읽지 않는 낙서를 읽었다. 층계 위 후문에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오

살면서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겠지요.
사람 사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고 싶습니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