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 눈이 왔다. 마지막 눈이겠지, 그때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눈이 쌓이다말고 녹아 밤은 온통 희끗희끗했다. 입김을 뿜으며 걷는데 바로 옆 둑길에서 이쪽을 향해 움직이는 시선이 느껴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하얀 물체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내가 알던 아버지 모습은 아니었다.
   아버지, 하고 불러보았다.
   아버지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크게 꼬리를 흔들어보였다. 허스키보다 작고 스피치보다는 컸다. 어쩌다가……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사연이 있을 것 같았지만 알 방법은 없어 보였다. 열일곱 살에 나는 집을 나왔다. 그후로 다시 십칠 년이 흘렀다.
   내가 사거리 신호등 앞에 멈춰 서자 아버지도 옆에 와서 섰다. 눈은 아버지 몸에만 녹지 않고 소복하게 쌓인 것 같았다. 눈부시게 새하얀 아버지의 작고 검은 눈동자는 폭발하는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양쪽으로 입꼬리가 올라가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초록불로 바뀌자 아버지는 나와 발을 맞추며 네발을 경쾌하게 움직였다. 나는 당황했다. 저런 경쾌함은 어떤 마음이면 갖게 되는 건가.
   파란색 간판 주유소를 돌아 내가 사는 원룸 건물에 이르렀다. 미처 손쓸 겨를도 없었다. 출입문을 여는 순간 아버지는 내 다리를 스치며 열린 문틈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현관문을 열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쩌자는 건가 싶으면서도 나는 주방 서랍을 뒤졌다. 다행히 참치 통조림이 있었다. 통조림을 따서 플라스틱 그릇에 통째로 부은 다음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그릇에 코를 박았다. 뒷다리 털이 뒤엉켜 지저분했다. 도깨비바늘도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빈 그릇을 아쉬운 듯 핥고 있는 머리통을 나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신 거예요, 네?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누군가 입김을 불고 있는 것처럼 구름은 빠르게 흩어져갔다. 눈은 완전히 녹았고 하늘은 더없이 파랬다. 하늘을 찌를 듯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하천 둑길과 8차선도로가 만나는 곳에 내가 일하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여름의 출근길에는 녹음이 지독하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붉다. 황량한 색 겨울 다음으로 봄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이 오더를 받지 않는 시각이 되자 손님은 바에만 좀 있었다. 영업이 끝나는 새벽 1시에 맞춰 뒷정리를 했다. 마지막 테이블 손님을 보낸 뒤 마감 당번인 직원을 보내고 나도 슬슬 퇴근 준비를 했다. 밤새 잘 주무시고는 인사도 없이 사라졌던 아버지가 둑길 위에서 나를 발견하자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레스토랑 간판 불빛을 보고 도로에서 우회전해 들어오는 차들을 맞는 게 내가 처음 여기 와서 한 일이었다. 차만 마시고 갈 생각이던 손님도 나와 몇 마디를 나누고 나면 식사 주문을 했다. 알고 보니 나라는 인간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사람들도 나와의 대화를 유쾌해했다. 삼 개월 뒤 홀에서 일하게 됐고 일 년이 지나 정식 직원이 됐다. 별 탈 없이 칠 년. 테이블회전율보다 와인잔의 투명함에, 하루 매출보다 사장의 그날 기분에 민감하도록 내 몸은 맞춰졌다. 아직까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떠나간 사람들도 있다. 얼굴을 붉히거나 아쉬워하며 떠나가기도 했고, 홀연히 사라지기도 했다. 그들만 떠난 건 아니다. 나도 떠나왔다. 불운하고 어두웠던 과거에서 용케 도망쳐왔다. 안 망하고 잘도 살아남았구나, 싶은 때에 딱 맞춰 아버지는 나타났다. 나는 키 낮은 아버지와 눈을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주유소로 방향을 틀기 직전이었다.
   아들 잘 살고 있는 거 보셨죠.
   함께 사는 데는 애로가 많은 좁아터진 원룸을 아버지도 떠올렸을 거라 믿으며 나는 말을 이었다. 형편이 나아지면 네, 그때 오세요, 네, 하며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시죠, 네?
   아버지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떨궜고 나는 말없이 돌아섰다.
   씻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현관문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면서 문을 열었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열린 문틈으로 들어와 주방으로 쏜살같이 가더니 플라스틱 그릇이 놓였던 자리에 서서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봤다.
   나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곧장 침대로 향했다. 아버지는 무슨 소린가를 내려고 애쓰는 것 같았지만 콧김이 뿜어지는 소리만 두어 번 들려왔을 뿐이다. 불편한 밤이 지나갔다. 문 앞에 웅크리고 있던 아버지가 하얀 얼굴을 들었다.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욕실 앞에서 내가 씻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통조림은 더이상 없었다. 그래도 뭔가 있을지 몰랐다. 내가 주방으로 향하자 흥분한 아버지가 짖었다. 조용 안 해? 나는 소리쳤다. 내 머릿속에서 사방의 이웃들이 그렇게 소리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게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다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발을 뒤로 뺐다. 엉덩이를 내리고는 약하고 힘없는 짐승을 연기했다. 하긴, 길 가는 애들이 먹던 과자도 빼앗아먹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맞아서 퍼렇게 멍이 들거나 살갗이 찢어지거나 고막이 터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욕실에서 삼 일간 갇혀 있던 적도 있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 건 배고픔 때문이었다. 집을 나오자 키가 쑥 자랐다. 자라는 건 한계가 있었지만 허기에는 바닥이 없었다. 애들을 울리고 아버지는 태연히 말했다. 내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나봐. 거지같은 변명이었다.
   나는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통조림을 양손에 가득 들고 서 있다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마트로 향했다. 아버지의 무게와 맞먹는 15킬로그램짜리 사료 포대를 사서 어깨에 짊어지고 돌아왔다. 다시 사러 가는 일은 없을 거라 다짐하면서. 다짐과는 별개로 외투 주머니 위에 비죽 나온 간식용 소시지를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그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목줄을 한 무력한 아버지의 모습 같은 건.

   주방 애들과 수다를 떨다, 예약 손님을 확인하다, 손님을 안내하다…… 문득 고개를 들면 아버지가 있었다. 초록이 올라오기 시작한 풀숲, 나무 아래나 둑길 위에. 멀리서도 그윽한 눈빛과 반짝이는 검은 코가 내 눈에 들어왔다. 밤이면 두 귀를 세우고 꼿꼿이 앉아 내 방 문 앞을 지켰다. 아버지 노릇을 해보겠다는 건지, 밥값을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제법 든든했다. 내가 잠들면 아버지도 쿠션에 머리를 대고 잠이 들었다.
   날이 따뜻해지자 산책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버지에게 내려앉은 눈은 녹지 않았다. 하얗고 큰 아버지가 사람들 눈에 띄는 일도 빈번해졌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오픈 준비를 하러 나왔다가 어둑어둑해진 둑길에 붉은 경광등이 깜빡이는 걸 봤다.
   올 게 왔다, 직감했다.
   어스름 속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가 퍼져나갔다. 아버지가 포획 틀 속에 갇힌 건 눈 깜짝할 사이였다. 시끄럽고 어수선한 상황이 지나가자 아버지는 꽤 담담해졌다. 마음은 아프지만 나 역시 아버지가 받아들이는 운명을 받아들이겠노라 결심했다. 구급차가 출발하자 둑길은 아버지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했다. 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시발, 나는 욕을 내뱉고 경광등을 번득이며 사라지는 구급차를 쫓아 달렸다.
   아버지는 두꺼운 가죽 목줄을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주차장 한구석에 묶여 있게 됐다.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매장에 나 혼자 남겨져도 초조하지 않았다. 새벽 둑길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쳐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놀라기 전에 아버지를 발견한 상대가 먼저 놀랐다. 태연한 척했지만 온몸으로 두려워하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밤의 동행자로 완벽했다. 원룸으로 돌아와서까지 핑크빛인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꼬리를 잔뜩 내리고 좁은 원룸을 서성였다. 자유롭게 살다 종일 묶여 있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둠 속에서 뭘 본 건지 가쁜 숨소리를 냈고 사납게 짖기도 했다. 소리가 크고 묵직해지는 순간 잠에서 깨버린 나도 고함을 질렀다. 언제 인터폰이 울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무리 큰소리로 짖어도 이웃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안전하게 잠들어 있었다. 깨어 있는 건 언제 인터폰이 울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나와 잠 못 드는 아버지뿐이었다.
   내가 아버지와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는 음식 냄새로부터 멀어질 수 없었다.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버터와 크림, 육수와 소스 끓는 냄새가 하루에도 몇백 번씩 아버지를 벌떡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같은 자리를 맴돌게 했다. 아버지는 슬픈 눈을 하고 목젖을 스치는 야릇한 소리를 냈다.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그것이 굴욕의 언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호기심에 다가와 쓰다듬어주는 이들이 있었다. 귀를 잡아당겨도 아버지는 가만있었다. 얌전히 있다 내민 손을 정성껏 핥아주면 먹을 걸 던져주는 사람도 간혹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주방 뒤에서 주방장이 나를 큰소리로 불렀다.
   저기, 니 아버지 좀 봐라.
   아버지가 돌계단에 흥건하게 고인 붉은 액체를 미친 듯이 핥고 있었다. 색깔만 봐도 자극적이며 달달한 냄새가 났다. 물걸레를 들고 달려가자 아버지가 사납게 짖었다. 고함을 쳐도 물러서지 않았다. 대걸레로 몇 대를 맞고서야 물러섰다. 내가 노려보자 귀를 뒤로 접고, 침을 삼키고, 하품을 하는 척 했다. 그날이 다 가도록 나는 물걸레 냄새가 피어오르는 바닥을 핥아대는 아버지 꼴을 봐야 했다.

   그날 밤에도 눈이 왔다. 3월의 끄트머리에 쏟아지는 싸리눈을 맞으며 나는 처음 아버지를 만난 둑길 위에 섰다. 아버지의 목줄을 고리에서 빼냈다. 아버지는 내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도 굴욕적이죠, 네? 답답하고 짜증나죠? 이러려고 내게 온 건 아닐 거 아니에요. 그죠, 네? 나는 아버지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아버지는 풀숲으로 달렸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하천은 하얗게 빛났고 눈송이를 잔뜩 머리에 인 갈대가 흔들렸다. 날리는 봄눈을 맞으며 마지막 눈이겠네,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흘이 지나서 현관문 긁는 소리를 들었다. 반응을 기다리다 다시 문을 긁고 또다시 기다렸다. 나는 문을 열었다. 내가 비켜서자 아버지는 제집처럼 당당히 들어섰다. 책상 밑 어둡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불을 끄고 눕자 긴 발톱이 바닥에 꽂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몸을 가뿐하게 들어 침대 위로 올라오는 소리, 내게 다가와 얼굴 구석구석 냄새 맡는 소리, 이어지는 길고 깊은 한숨. 아버지는 내 뺨에 물기 어린 코를 갖다댔다. 그 자리에서 몸을 말고 누웠다. 온기가 몹시 그리웠다는 듯.

   봄은 산책로를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다. 며칠 초여름 기온이다 비가 오면서 쌀쌀해진 오후 사장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나랑 어디 좀 가자.
   사장이 내게 원하는 대답은 항상 같다. 네. 나는 선선히 대꾸했다. 사장이 내 어깨를 툭 치며 활짝 웃었다.
   우리 멀리 간다.
   나는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딘지 물었다. 사장은 윤실장이 독감으로 입원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렸다.
   레스토랑 간판보다 먼저 걸려 있던 건 광고사 간판이었다. 판넬이나 책자, 전단지를 제작하는 실질적인 일은 외주사에 맡겼다. 사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한의원 수익을 끌어오는 구실로 광고사를 차렸다. 그뒤로 사장은 지하 창고에 쟁여둔 와인들을 꺼내놓을 공간을 원했고 그렇게 해서 레스토랑 간판이 걸리게 됐다. 요사이 사장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와인 재테크 사업이었다.
   그럼 이번 해외 출장은요? 나는 물었다.
   그러니까 널 불렀잖아.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출발 날짜가 나흘 뒤였다. 아버지를 맡길 데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맡아주더라도 조건이 까다로울 것이고 기꺼이 맡아주겠다고 해도 내가 못 미더울 것 같았다. 비용도 신경 쓰였다.
   사장은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홍누나를 불렀다. 누나가 즉시 올라왔다. 홀 담당 매니저인 그녀는 뼈대가 굵고 깡마르고 키가 컸다. 누나가 웃으면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누나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 같았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 입는 대신 자신이 있는 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친 채 조용히 살아가기로 결정한 사람 같았다. 일처리 하나만은 확실했다. 사장은 사정 설명도 않고 내 아버지를 며칠 데리고 있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아파트가 너무 작아서요.
   누나는 울적한 얼굴을 하고 웃었다. 누나도 나처럼 크고 야속한 아버지를 키우고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낮에는 지금처럼 주차장에 두고 밤에만 맡아주면 되잖아. 집도 멀지 않고 차도 있으니 문제없잖아?
   사장의 말에 누나도 나도 난처해졌다. 사장은 따로 번역기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상대가 말을 하면 듣고 대답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한 생각을 이어서 말할 뿐이었다.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살아온 거겠지. 부러운 인생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맡길 데를 알아보겠다고 하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누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녀만큼 아버지를 믿고 맡길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날씨는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잘못된 도착지에 떨어진 것처럼 도시가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사장이 사모의 차를 타고 공항을 떠날 때는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니들이 날 반기지 않을 리 없지. 내 가방 안에 단단한 벽돌 같은 돈다발이 들어 있었다. 홍누나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그녀 집에 있었다.
   5월 첫날, 휴무일이었다.
   내가 내일 모시고 출근할 테니까 오늘은 푹 쉬어. 누나는 말했다.
   꼭 욕을 먹는 기분이었다.
   내 말에 누나도 욕을 한 기분이 든다며 유쾌해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나는 지금 아버지를 데리러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누나는 아버지는 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상관없어.
   나는 번역기가 필요한 사장 흉내를 냈다. 주소만 찍어줘요, 누나.

   아버지는 펄쩍 뛰어오르며 나를 반겼다. 누나네 가족들 앞에서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자식을 반기며 흥분해 달려드는 아버지가 세상에 흔치는 않을 테니까.
   거실은 좁았고 아버지 때문에 더 좁아보였다. 아버지가 혀를 길게 내밀고 헐떡였다. 아버지의 불안한 발소리 때문에 누나 가족도 잠을 설쳤는지는 차마 묻지 못했다. 누나는 여기까지 왔으니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바쁘게 식사 준비를 하는 누나는 업장에서 보던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집 안은 깔끔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곳곳에 누나의 손길이 닿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족들도 누나만 쳐다봤다. 누나는 절대 권력자였다. 남편은 의외다 싶을 정도로 좋은 인상의 사람이었다.
   누나 남편이 권하는 대로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그는 휴대폰케이스를 사출하는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한다고 했다. 나도 한때 사출 공장에서 한 달에 80만원을 받고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야기를 하자 어색하게 웃더니 담배를 서너 모금 빨고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서는데 작은아이는 뭐가 마땅치 않았는지 아버지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나를 빤히 보면서.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작은아들은 한 학년 위인 큰아들보다 골격이 크고 덩치도 있었다. 꼬리를 내리는 아버지를 보고 나는 발끈했다.
   우리 아버지야.
   이 개가요?
   아이가 놀라 물었다.
   방금 말했잖아. 개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죄송합니다.
   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귀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큰아이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애들한텐 제대로 말해줘야지.
   불편해하는 누나의 음성이 식탁을 넘어왔다.
   뭐가 제대론데?
   아버지는 너잖아.
   내가 왜 아버지야?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그렇게 대화가 끊기는 게 싫었지만 나도 입을 다물었다. 그런가. 내 움직임만을 쫓는 작고 처진 눈을 나는 한참 바라봤다. 아버지 개가 아니라 개 아버지. 나는 풀죽어 있는 아이들을 보며 무심코 물었다. 너네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때마침 현관문이 열렸다. 눈이 와. 누나 남편이 몸서리를 치며 들어섰다. 누나를 힐끔 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재빨리 냉장고에 넣었다.
   누나가 뭐냐고 물었다.
   오뉴월에 서리라더니, 하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른들은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은 텔레비전 앞에 차려진 작고 둥근 밥상에 앉았다. 반찬은 소박하고 깔끔했다. 한가운데 고추장찌개가 놓이면서 식탁은 뜨거워졌다. 아버지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바닥에 배를 깔고 의자 밑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의 코끝이 내 허벅지를 스쳤다. 나는 소시지를 떼어서 아버지 입에 넣어주었다.
   짜.
   누나가 마뜩잖다는 눈초리로 나를 봤다. 짜다, 소시지. 또 한번 말했다. 나는 손바닥에 물을 조금 따라서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는 코를 씰룩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돌렸다. 나는 누나에게 얼음을 달라고 부탁했다. 얼음을 이빨로 잘게 깨서 아버지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울부짖는 늑대처럼 머리통을 치켜든 채 아버지는 얼음을 씹어먹었다. 얼음을 씹어대는 아버지의 거침없는 소리가 주방을 가득 매웠다. 실내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니 거실 베란다가 환해졌다.
   내 말이 맞잖아.
   누나 남편이 일어나 소리쳤다. 솜털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모두들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누나가 말했다.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기사가 날 땐데.
   그녀 남편은 일어선 김에 생각났다는 듯 냉장고에 넣어뒀던 비닐봉지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왔다.
   흔치 않은 날이잖아.
   진짜 흔치 않은 날로 만들 작정인지 연거푸 술을 따라 마셨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긴장했다. 겁먹은 표정은 아이나 개나 다르지 않았다. 누나의 얼굴색은 더 나빠질 것도 없이 계속 나빴다. 그만 내가 빠져줘야 할 때였다. 오랜만에 맡는 가족의 냄새에 취해 있었다. 시끄럽고 골치 아프지만 익숙했던 냄새에 나도 모르게 젖어 있었다. 나는 누나에게 공항에 도착해 일어난 일에 대해 말했다.
   사모가 직접 차를 몰고 마중 왔다는 말만 했는데도 누나는 그뒤에 벌어진 상황을 알았다.
   사장이 성질 깨나 부렸겠네?
   사모는 시간에 철저한 사람이 아니었다. 약속이라는 게 타인과 시간을 공유하는 일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싶게 그랬다. 사장이 자주 약올라했다.
   그래서 사장이 처음부터 못박아 말한 거야. 5시까지 와. 나는 짜증이 나면 빨라지는 사장 말투를 흉내냈다. 일 분 늦을 때마다 만원이야. 아니 2만원. 내가 아니라 우리 직원한테 주는 거야.
   나는 벽 쪽 구석에 둔 검고 큰 짐 가방을 끌어당기며 덧붙였다. 사모가 한 시간 늦게 온 거야.
   누나 부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방으로 향했다. 누나가 눈을 깜빡였다. 진짜 저 안에 120이 있다고?
   정확히 146만원. 사모가 현금 인출기 앞에서 시뻘게진 얼굴로 길길이 뛰는 모습은 볼만했다. 그래봤자 그녀가 걸친 코트 가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나는 내가 부당한 돈이라도 받았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150이면 당장 싼 중고차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애들 과자라도 사왔어야 했는데, 라며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들도 이쪽을 돌아봤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수줍게 지퍼가 열렸다. 나는 땀냄새가 올라오는 가방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한참 헤집어봐도 손에 잡히는 단단함이 없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 누나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식탁 너머로 몸을 숙였다.
   봉투가, 봉투가, 잠깐만.
   나는 축축한 티셔츠와 양말, 팬티를 손에 잡히는 대로 꺼냈다. 다시 집어넣었다가 한꺼번에 쏟아냈다.
   공항버스를 탈 때만 해도 터질 것처럼 지폐로 꽉 찬 눈부시게 흰 봉투가 가방 안에 있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까맣게 변해 있던 하늘과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눈물이 날 만큼 찼던 바람에 대한 기억까지 또렷했다. 가방의 상태가 어땠는지, 지퍼를 연 적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혼란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이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누나가 큰아이를 불렀다. 누나 손에는 기다란 쇠막대가 쥐어져 있었다. 당길수록 길어지는 안테나처럼 생긴 막대였다. 나는 의아했지만 누나의 행동을 지켜봤다.
   바지 내리고 다리 모아.
   누나가 말했다. 누나가 쥐고 있는 쇠막대가 아이의 앙상한 두 다리를 휘감았다. 누나는 아이가 고개를 숙이려할 때마다 고개를 들라고 했다. 눈을 똑바로 뜨라고, 앞을 보라고 했다.
   아이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이가 그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그만 희망을 품었다.
   잘못했어요.
   아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잘못했구나. 나는 작은아이가 아버지의 옆구리를 차던 일을 떠올렸고 함께 고개를 숙이던 큰아이를 떠올렸다. 그전에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뭐라고? 큰 소리로 말해야지. 뭘 잘못했는데?
   모르겠어요.
   누구도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뭘 몰라?
   기억이 안 나요.
   기억이 안 난다는 건 무슨 의미지?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래서 봉투가 어디 있다는 건데. 속으로만 애가 타서 소리쳤다.
   누나는 한두 번이 아니라고, 손버릇이 나빠 학교에서도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칠 년을 함께 일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말투고, 표정이었다. 언짢은 듯 작은아이를 두둔하던 어투와도 달랐다. 자식을 저렇게까지 모질게 말할 수 있나? 생각하는 순간 작은아이와 달리 큰아이는 한 번도 누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걸 나는 갑자기 떠올렸다. 할말이 있으면 시선이 마주칠 때까지 바라만 봤다. 여직원들이 주방에 모여서 하던, 누나의 실패한 결혼에 대한 소문들. 초혼이 아니었나.
   나는 답을 줄 만한 사람을 눈으로 찾았다. 누나 남편은 아직 식탁 위에 앉아 있었다. 더없이 무력한 상태로 이편을 지켜보기만 했다. 무언가가 나를 밀고 내 몸으로 들어왔다. 처음에 그리운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감미롭고 슬프고 축축하게 알몸을 적시는 몽정의 느낌. 나의 기억이 떠올린 것은 따가운 형광등 불빛, 허리 아래의 차가운 느낌, 짭짤한 눈물과 숨막히는 침묵, 두꺼운 벽 같은 등과 등 뒤의 아버지. 결코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무서운 기억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의붓어머니의 회초리 앞에 벌거벗은 채 떨던 그 아이가, 어릴 적 내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버지는 내게도 같은 일을 겪게 했다.
   매를 맞을 때마다 가슴뼈가 크게 들썩였다. 팬티만 걸친 아이는 분명 내 눈앞에 있으면서도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다. 5월에 내리는 눈처럼.
   유일하게 아이와 연결된 건 매를 든 누나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 하고 불렀다.
   살려주세요, 아버지.
   나를 구해줄 수 있는, 내가 아는 유일한 존재.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은 없었다. 나를 포위하는 차갑고 매서운 눈초리들, 너는 잘못됐다 말하는 침묵들. 아니라고 항변하기 힘들었다. 내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그들이 더 큰 잘못된 존재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무릎을 꿇으라면 꿇었고 벗으라면 벗고 때리면 맞았다. 고개를 똑바로 들라고 했을 때만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내가 잘못된 아이라서.
   4학년 땐가 5학년 땐가 따뜻한 눈길 한 번에 모르는 아저씨를 따라 올림픽공원까지 간 적이 있다. 아저씨의 손마저 놓치고 밤거리를 헤매다 밤이 돼서야 돌아왔다. 감사하게도,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매를 든 건. 귀가 축 쳐진 채 바닥에 머리를 괴고 납작 엎드려 있는 아버지에게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누나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나를 왜…… 누나는 빤히 나를 봤다. 그녀는 내게 묻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가 손에 쥐고 있지만 힘을 잃은 듯한 쇠막대도 내게 묻고 있었다. 더 할까?
   그때서야 알았다. 누나의 행동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다들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만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한마디 말이 나오지 않아 나는 침묵했다. 분명 나는 돈다발을 다른 데서 잃어버리지 않았다. 공항에서 누나네 집에 올 때까지 한 번도 가방을 열지 않았다. 가방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건 분명 그래서였다. 여기 없다면 어디에도 없었다.
   매를 든 누나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누나는 차분했다. 조금 지치고 피곤해 보일뿐. 쇠막대는 아이의 다리를 휘감았다. 튕겨지다 다시 휘감아도는 쇠의 차가운 감촉에도 아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불룩한 팬티 앞부분이 젖어들면서 쳐지고 있었다. 앙상한 두 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따뜻함에 아이는 비로소 울음을 터뜨렸다.

   눈은 그치지 않았다. 무섭게 쌓여갔다. 나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골목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내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은 돌아와 있겠지. 화사하게, 눈부시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퉁이를 돌자 거리의 불빛이 보였다. 내게 꼭 붙어 걷던 아버지가 갑자기 멈춰 섰다. 목줄이 팽팽해졌는데도 다가오지 않았다. 바라보기만 했다. 나를 이해하겠다는 얼굴로,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안다는 눈빛으로.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을 가르는 눈의 소리이며 단단한 눈 위로 눈이 쌓이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눈 사이로 흩어지고 사라졌다. 내 손에 쥐어져있는 건 빈 목줄뿐이었다. 마지막 눈이었다.

이유

서른이 되도록 먹고 살 궁리로 바빴다. 먹고살 만해지니까 말 못하는 사람처럼 답답했다. 내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 권의 장편소설과 한 권의 단편집을 냈다. 동력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내 목소리를 찾아가는 일을 계속 해나가 볼 생각이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