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장과 성가 부르기



   테너 파트장을 하는 선배는 나를
   저주했다 너 같은 새끼가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다고 알아? 아냐? 그거 알아?
   알 수 없는 질문을 덧붙이고 기우고 옮겨 달면서
   채근했다 나는 수탉처럼 울었다 우는지도 모르고
   울었다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파트장 선배는 나더러
   성가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
   하였다 너 같은 새끼가 찬송이라니
   어림도 없다고 몰라? 그것도 몰라? 여태껏 몰라?
   미사 시간 내내 두 손 모아 기도하듯
   몸의 구멍들을 찌르며 너 같은 새끼는
   너 같은 새끼가 너 같은 새끼야말로
   날카로운 기도문 사이
   맑고 고운 화음
   입을 벙긋거리며 파트장의 지시를 따랐다
   신의 목표는 양도 되지 못한 새끼들을 찾아
   파트장 같은 양들에게 인도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신은 파트장이었다 신은 파트장의 후배들이었다 신은 파트장의 친구들이었다 나는 아니었지만 이제
   유일함을 포기함으로써 유일함을 유지하는 유일신이여 원하시는 대로 테너 파트장을 신으로 모십니다 당신이 밝히고자 하는 것을 알 것이며 당신의 숨기고자 하는 것을 모를 것이옵니다 제가 재수에 옴이 붙은 쓰레기임을 알며 당신이 천하의 둘도 없는 무뢰배라는 걸 모를 것입니다
   테너 파트장을 하는 선배는 내게
   소주 한 잔 샀다
   마시고 잊어
   노래 같은 건
   그러나 찬양은 기억해라
   그제야 파트장의 등 뒤로 성가대의 지휘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빛에 휩싸여 정확한 실루엣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어쩌면 양 중의 양이자 유일함의 곁에 붙은 유일한 자일지도 몰랐다. 자연스레 입을 벌려 화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에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고
   시세가 오르고 있었다





   습지



   아이 둘의 사진을 사무실 모니터 앞에 세워둔 사람에게 어울리는 생각은 아니지만 그는 생각한다 그만두고 싶다고 관두고 싶다고 때려치우고 싶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퇴근하고 싶다고 눕고 싶다고 소리 지르고 싶다고 다리 떨고 싶다고 침 뱉고 싶다고 손가락질하고 싶다고 무모하고 싶다고 정신없고 싶다고 게으르고 싶다고 한숨 자고 싶다고 그러고 나서 진짜 그만하고 싶다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닌 그만하고 싶은 일을 정녕 그만두고 싶다고 아이 둘의 사진을 그만 보고 싶다고 그냥 아이를 보고 싶다고 그러고 싶다고 그러고 싶은데 그럼에도 그런가 싶은 것을 하나씩 셈하고 버티다 보면 시간이 저절로 가는구나 싶고 어디로 흐를지 몰라 거기에 멈춰 버린 고인 물이

서효인

시를 씁니다. 직장에 다니고 아이를 키웁니다. 다시 시를 씁니다. 실패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직장에 다니고 아이를 키우고 실패한 후에 다시 시를 쓰고

2020/10/27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