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소년



   무엇이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빛이 왜 빛이고
   그림자가 왜 그림자인지

   그림자가 빛의 역할을 맡게 되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그것도 모르면서
   그래서 살아 있으면서

   여긴 너무 지루해

   주황빛 터널을 통과하면 가로등 아래 잠긴 너, 따뜻한 만다린 소년,
   붉고 묽고 맑고

   골목을 걸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오는 그림자 당연하다는 듯이 그 뒤를 따라오는
   불안 안감 불안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뒤를 돌아보았는지
   얼마나 많은 고개를 젖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살아 계신가요
   얼마나 많은 숨을 불어넣었는지

   그래서 사람들이 앞뒤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아니 맛있는 과일은 왜 죄다 둥근지

   모든 걸 이해하려 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기적이다

   무릎이 뾰족한 사람에게
   소년이 말한다

   인터넷에는 보고 싶지 않은 게 너무 많아

   찬송가를 부르던 성가대 소년은 이제
   유튜브를 보며 두 손 모아 회개하고

   믿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믿지도 못하면서

   이해한다고
   이해는 하고 이해만 해서

   만화경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풍경들, 친구야
   여긴 여전히 지루해 여긴 여전히 슬퍼 슬프다

   그렇게 말하다보면
   웃음을 되찾을지도 몰라

   그렇게 웃다보면
   뒤를 돌아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

   얼어붙은 오렌지의 껍질을 만지다가
   네가 반려과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영원히 살아 있을 거라고 이해했다





   한국 사람



이 도시에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문이 살아 있다


   낮에는 낯선 도시에 대한 시를 쓰기 위해
   편지를 여러 번 구겨 접었다

   이곳은 목도리가 지배하는 세상
   목을 감고 손을 묶어야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요

   소년은 방에서 편지를 쓰다 말고
   문을 연다

   그 속에서 만난 시누와
   그 속에서 만난 아리가토
   그 속에서 만난 흥민쏜
   그 속에서 만난 BTS

   이곳은 하나의 여름
   어쩌면 다른 말로
   해변의 이름을 딴 백화점

   쟤네는 웜톤과 쿨톤의 차이를 몰라
   쟤네는 빌런과 히어로의 차이를 모르지

   소년이 이 제품의 가격이 궁금해졌을 때

   늙은 점원은 다가와
   아무 말이나 해보라고
   아무 말이라도 해봐야 한다고

   마치 이 도시의 비둘기처럼
   고개를 젓는다

   더러워 더러워

   아무리 닦고 또 닦아도
   문틈에 먼지가 쌓인다

   아무리 닦고 또 닦아도
   이 도시에는 자꾸만 뭐가 떨어져서

   뭐라도 피해야 하는데
   어디로라도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데

   문을 열면
   다시

   그 속에서 만난 니하오
   그 속에서 만난 페이커
   그 속에서 만난 봉준호
   그 속에서 만난 바이러스

   아무 말이라도 배우기 위해선
   아무나라도 되어야 한다고
   아무리 나라도 살아야 한다고

   한국말로 중얼거리다가
   문을 닫는다

   이 도시에 망할 비가 새똥처럼 내린다

조찬연

사랑 없는 날 꼼꼼히 잘 부탁드립니다.

2020/06/30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