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시관이라면 나는 누구에게나 진실로 보이는 것들, 사람들이 가치라고 부르는 것들로만 나를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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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말을 할 때는 최대한 형식적인 어조를 유지한다. 한 문장과 그다음 문장을 말할 땐 무조건 숨을 참는다. 랩처럼 말을 쏟아낼 수 있게 말이다. 낯선 사람들과 처음 마주한 날,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호회장을 포함한 세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손뼉을 쳤다. 처음으로 손뼉을 친 사람은 내 오른쪽에 앉아 있는 여자였다. 난생처음으로 낯선 사람들을 웃겼다. 그 모임은 ‘3분 개그 모임’이라는 서울 경기지역 개그 동호회다.
   그 날은 삼분 요리 만드는 회사에서 재계약 사인을 못 받고 인턴 수료증만 받아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침대 밑 먼지처럼 방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지, 라는 생각에 서핑을 하다 글을 발견했다. 전문적으로 개그를 배웠거나 정말 웃기다고 소문이 자자한 분은 환영이라고 했지만 나는 재미없는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특히 상사나 윗사람들은 나를 보며 웃기네, 라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내가 정말 웃겨서가 아니라 나의 행동 자체에서 모순이 발견될 때 혹은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을 때 나를 조롱하기 위해 비아냥거리며 그런 말을 내뱉는다. 내가 말을 내뱉을 때마다 사람들은 웃었다. 그들은 내가 재미있다고 했다. 사실 그들에게 나는 하나의 미술 작품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수준에서 감상하거나 주변에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주워들으면서 작품을 평가하고 헐뜯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얘 웃기네, 라는 말은 내게 어떤 종말을 예고하는 징후가 되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마다 선릉역 근처 카페에 모여 재미있는 개그나 생활 속에서 겪은 이야기를 풀어댔다. 처음에는 선릉역이 아니라 사당역 카페에서 모였다. 카페 사장은 몇 시간이고 시끄럽게 떠드는 우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조용한 선릉역 카페로 오게 된 건 여자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카페까지 두 시간이나 걸린다. 여자는 집이 근처라 그런지 원래 그런지, 늘 여유로운 표정이다. 인생은 좆같은 거야. 원래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사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한의사는 말끝마다 욕을 내뱉는다. 점잖은 그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욕이 튀어나올 때마다 이십 대 후반의 동호회장이 큰 소리로 호응한다. 체구가 작은 한의사는 어깨를 으쓱인다. 그는 늘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 욕을 내뱉을 때는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살짝 펴지고 내뱉은 후에는 수줍게 다시 어깨를 움츠린다. 가느다란 침을 쥐는 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는 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 부근을 닦는다. 욕을 한 이후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놨다는 듯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긴장했던 모양인지 카라 부근이 젖어 있다. 그제야 꽉 조인 넥타이를 살짝 푼다.
   아저씨 인생은 짧겠어요. 좆같으니까. 여자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투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꼭 한마디씩 한다. 사람들은 여자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어떤 말이 나오든지 간에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그때마다 나는 침묵한다. 한쪽 다리를 꼬면서 팔짱을 끼는 건 초면에 할만한 행동인가? 다른 사람들은 발견을 못 한 건지 지적하지 않는다. 여자가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뱀 한 마리가 몸속을 기어 다니는 것 같다. 전 함양박씨 후손이에요. 일 년에 제사가 몇 갠 줄 알아요? 손가락이랑 발가락으로 다 합쳐도 셀 수가 없어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제사 준비로 불려가서 고생하는 것도 싫고 혼나는 것도 싫었어요. 스무 살 때였을 거예요. 신년회를 한다고 온 종친이 집으로 모였죠. 엄마를 괴롭혔던 노인네 생신이랑 겹치는 날이었어요. 노인네 생신상도 우리 엄마가 차렸어요. 종친들끼리 돌아가면서 말을 하는데 제 차례가 왔어요. 축하드려요. 저도 이제 반 마흔인 거 있죠? 그랬더니 갑자기 그 노인네가 상을 엎더니…… 여자는 팔짱을 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말을 하는 동안에 여자의 얼굴은 점점 벌겋게 변하고 입술 주변에 있던 침은 마르고 입술은 건조해진다. 여자는 말하는 내내 혀로 입술을 축인다. 무용담인지 서사극인지 콩트인지 당최 갈래를 알 수 없다. 휴대폰 속에 저장된 사진이 떠오른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그 사진의 제목은 ‘노 잼’이란 사진인데 딸기잼이 다 사라져 빈 통만 있는 그림을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쭉쭉 빨아 먹는다. 사람들은 여자의 종친 이야기에 화색을 보인다. 종친 이야기가 왜? 뭐가 재미있는데? 나는 그 말을 삼킨다. 내가 준비한 거나 잘해야겠다. 왼쪽에 앉아 있던 한의사가 손가락으로 나의 팔을 흔든다. 그가 입 모양으로 파이팅이라 말한다. 파이팅은 무슨.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리 위 전등처럼 한곳으로 모인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다가 내뱉는다. 무대에 선 희극 배우처럼 자신 있게 두 팔을 양쪽으로 편다.
   나는 매운 것을 못 먹는다. 아니 누군가가 매운 음식을 권한다면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두 번 이상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비교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안 매운맛, 덜 매운 맛, 조금 매운 맛처럼 매운맛에도 단계가 있어서 비교를 해야 한다. 신길동의 매운 짬뽕은 못 먹고 그 짬뽕집 앞 슈퍼에서 파는 매운 오징어 짬뽕은 잘 먹는다. 비교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비교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비교를 당한다. 엄마가 말하기를 언니는 나보다 삼 분 먼저 나와 행동이 빠르다. 나는 물을 삼키는 것도 느리다. 음식은 오래오래 씹는다. 사인용 식탁에서 제일 늦게 일어난다. 언니보다 삼 분 늦게 나와서 엄마를 더 울게 한다. 종종 엄마의 베개를 젖게 한다. 그건 내가 삼 분 늦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방 한편에 허물처럼 벗어 놓은 정장 치마를 보며 혀를 찬다. 언니를 보며 너 때문에 내가 산다는 말을 자주 한다. 왜 삼 분이나 늦게 나왔을까? 크게 울었다면 의사 선생님은 나를 먼저 꺼내주지 않았을까?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언니의 머리를 누르고 앞으로 먼저 나가 있을걸. 의사 선생님 눈에 왜 띄지 않을 걸까? 삼 분 늦게 태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내 잘못이다. 삼 개월 전 삼분 요리를 만드는 식품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다. 사수는 내가 잘못한 거라고 했다. 동기는 매운 것을 잘 먹어서 천원이나 더 싼 돼지고기볶음을, 나는 매운 것을 잘 못 먹어서 뚝배기 파 불고기를 시켰다. 비싼 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싼 음식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은 있다. 언니를 좋아한다. 삼 분 뒤에 나왔기 때문에 내가 가질 수 없는 삼 분 전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언니는 나를 싫어한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악센트를 준다. 벌린 두 팔을 다시 모은다.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삼 분짜리 자기소개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첫날 내게 손뼉을 쳐준 여자는 머리끝을 잡고 꼬기만 할 뿐이다. 생각보다 반응이 미지근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일부러 안 웃어주는 건가? 주먹을 꽉 쥔다. 테이블 앞에 미지근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다. 버리긴 아깝다. 맹물이라 마시긴 싫다. 곁에 두고만 있다. 바닥은 젖어간다. 흘러나온 물이 원을 그리며 확장된다. 얼음이 조금 남아 있을 때는 짜증이 난다. 포기하자니 안 되겠고 할 시간은 없고, 미루다 보니 처음에 내가 마음먹었던 것도 사라진다. 목표 완료 일이 없는 과제 같다. 초등학교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다시 친해졌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녔던 그 시간만큼은 공감할 수가 없어서 서먹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이상한 음료다. 그래서 싫다. 미지근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삼킬 수 없다. 노려보기만 할 뿐 치우지 않는다.
   사람들은 회장이 성대모사를 할 때마다 박장대소를 한다. 부자연스럽게 연출된 그 행동과 몸짓이 커질수록 얼굴이 얼음처럼 굳는 것 같다. 그는 요새 잘 나가는 연예인을 따라 한다. 누군가의 모자이크가 된다. 한때 중년나이트클럽에서 젊은 나훈아로 유명했다고 했다. 지금은 무직으로 살고 있지만, 자신은 꼭 이름처럼 살 거라고 했다. 첫날 그가 내게 줬던 흰 명함 속에 ‘나운하(지구 대스타)’라고 쓰여 있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라이어 모임이 되어간다. 모임이 끝나기 전에는 투표해 베스트 희극인 상을 뽑는다. 첫 번째 베스트 희극인 상은 회장이었다. 저번보다 많은 연예인을 따라 했지만 상을 빼앗긴다. 오늘의 베스트 희극인 상은 여자다. 회장은 김칫국물이 묻은 백 팩 안에서 저번에 받은 코팅된 상장과 나무젓가락을 이어 놓은 일명 상패를 꺼낸다. 한의사가 주머니에서 펜과 아세톤을 꺼낸다. 여자가 건넨 화장 솜에 아세톤을 뿌린 후 상장에 적혀 있는 회장의 이름을 지운다. 그의 이름이 있던 곳에 여자의 이름을 쓴다. 여자는 상패와 코팅된 상자를 받는다. 한의사는 여자가 들고 있는 상장을 바라본다. 소감 한마디 해줘요.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 아랫입술을 깨문다. 앞니에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다.
   늘 웃으며 살 수 있으니 우린 행운아예요. 여자가 수줍게 웃는다. 사람들은 카페 안 사람들이 떠나갈세라 손뼉을 친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주변 공기가 얼어붙는 느낌이다. 나는 경직된 얼굴로 손뼉을 친다. 그게 뭐라고. 이 사람들은 세상에 없는 이야기,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진짜 있는 사람처럼 꾸며댄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삼 분 동안이나 하고 있다. 다음에 만날 땐 우리 선물을 가지고 옵시다. 선물만 가지고 사람을 웃기는 거예요. 한의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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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동호회를 나간다고? 진짜 웃기는 짓 하고 있네. 그렇게 웃기는 일이 없어? 거실은 빨간 양념으로 난장판이 되어있다. 엄마는 방 안에 있던 나를 부른다. 고춧가루 좀 넣어줘. 엄마는 양손에 고무장갑을 낀 채 나를 보고 있다. 새빨간 고무대야에는 양념 된 깍두기가 섞여 있다. 안 쏟아지게 넣어. 고춧가루가 담긴 비닐의 끝을 잡는다. 엄마는 두 손을 그러모은다. 한겨울도 아닌데 깍두기는 왜? 엄마는 손바닥에 있는 고춧가루를 원을 그리며 뿌린다. 한입 크기로 잘린 무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로 자른 무가 얼기설기 모여 있다.
   어제 꿈에 네 언니가 나오더라. 깍두기 먹고 싶다고. 엄마의 엉덩이가 들썩일 때마다 깍두기와 쪽파가 고춧가루에 버무려진다. 양념이 묻은 깍두기 하나가 대야 밖으로 튀어나온다. 엄마 옆에 쭈그려 앉아 있던 내 발등에 고춧가루와 깍두기가 떨어진다. 모난 구석이 없는 깍두기다. 쌍둥이 아니랄까 봐. 속 썩이는 건 똑같아. 엄마는 고행하듯 있는 힘껏 고무대야 바닥에 있는 깍두기를 위로 올린다. 양념 된 깍두기가 겹겹이 쌓인다.
   그래도 살아서 속 썩이는 게 좋지? 엄마는 대답이 없다. 나는 발등에 떨어진 깍두기를 집어 먹는다. 엄마의 눈동자를 마주한 지가 오래다. 이따금 언니의 죽음에 대해 그려보곤 한다. 나는 가본 적이 없는 나라에서 언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라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언니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그때의 내가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었을 때처럼. 지금 언니는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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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보다 희곡 보는 것이 더 좋다. 밤에 산책을 나간다. 버스가 잠이 들면, 나는 집 앞에 있는 영화관까지 혼자 걸어가 영화를 본다. 산책을 하면서 떠오른 생각들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 음악을 선곡해주는 라디오 채널만 듣는다. 나는 예쁘지 않다. 못생기지는 않았다. 머리를 허리까지 길렀을 때는 남자친구가 옆에 있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잘 가지 않는다. 비싸더라도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카페를 일부러 찾아간다. 친구들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혼자가 편하다. 나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친구는 있다. 언니는 가족이자 친구이자 배신자다. 또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덜 어색하다. 나는 나를 박제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어떤 사람, 순간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답을 내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갓 구워진 빵처럼 달궈진 땅보다는 축축하게 젖은 길을 걷는 것이 좋다. 불행한 사람이 좋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비로소 제 빈 육체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은 그때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풍경을 보고 나는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천장에 매단 넥타이 너머로 보는, 저물어 가는 빛이 더 아름답다. 내 행복보다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이 좋다. 여름은 좋아하지 않는다. 선풍기 앞에서 수박 먹는 것은 좋다. 만지는 건 무섭지만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좋다. 갖고 싶은 선물을 받는 것이 더 좋다. 미지근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싫다. 나는 이 말을 삼분 만에 할 수 있다.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만이 이곳에 모여 있다. 이제 그 누구도 나의 개그에 웃는 사람은 없다. 박수를 치는 사람도 없다. 나는 자리로 돌아온다. 악센트를 줘도 빠르게 말을 해도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젖어 이마에 달라붙는다. 저마다 가방에서 선물 하나씩을 꺼낸다. 한의사는 회장에게, 회장은 여자에게. 여자와 나는 서로를 바라본다. 한의사는 목을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푼다. 여자는 핸드백에서 상자를 꺼내 내 앞으로 내민다. 한의사가 나를 본다. 나는 빨간색 상자를 여자에게 준다. 여자와 나는 선물을 뜯지 않는다. 동호회장은 선물을 뜯으려다 말고 행동을 멈춘다. 한의사가 그들을, 우리를 보고 웃고 있다. 이게 웃겨요? 내 말에 한의사는 어깨를 움츠린다. 선물 못 받아서 쪽팔리죠? 내가 여기서 제일 한심한 사람 된 거 같죠? 카페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지켜보는 듯하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 하고 있잖아. 사람 웃기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여자가 준 선물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너야말로 진짜 웃긴다. 대단한 일인지 아닌지를 왜 네가 판단해? 여자가 팔짱을 풀며 말한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나의 숨소리가 카페 안을 점령한다. 동호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왜 반말이니? 여자의 말에 한의사가 무릎을 탁 치며 웃음을 못 참는다. 회장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내가 준비한 개그에 웃지 않았던 그들이 내게 오늘의 희극인 상을 준다. 어느 포인트가 웃긴 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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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꽤 유머가 있는 사람이다. 삼 분이면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

   삼 분이면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고 쓴 문장을 오랫동안 본다. 자기소개서를 쓴다. 500자 내외 혹은 300자 내외로 적어야 하는 일반적인 자기소개서와 다르다. 전시관에서 보내준 양식에는 분량도 형식도 정해져 있지 않다. 자유다. 자유라서 자유롭지가 않다. 형식을 주지 않아서 어떻게 형식을 잡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장점, 단점, 성장 과정, 회사에 입사해야 하는 이유, 입사 후 포부, 전공 관련 분야에서의 대내외 활동을 적는 문항 따위는 없다. 나를 소개하기 위해 장단점을 쓴다. 내가 쓰고 있는 신변잡기의 것들이 단점으로 보일지 장점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쓰고 보니 잘하는 것은 없다. 이걸 본 사람은 나에 대해서 파악이나 할 수 있을까? 도슨트가 되기에 정확한 혹은 적절한 장단점에는 뭐가 필요한 걸까? 어떤 단어만 골라야 할까. 국어사전을 편다. 자기소개서에 다시 성장 과정 내용을 쓰기 위해 단어들을 수집한다. 도슨트에 걸맞은 장점을 상대가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손가락으로 단어를 짚으며 읽다가 덮는다. 그 어떤 단어로도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결국 못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솔직하게 있는 대로 다 쓴다. 솔직한 것은 가치가 있는 걸까? 솔직한 것은 사실에 속할까 진실에 속할까? 누군가 내게 사실과 진실을 구분해서 말하라고 했던 적이 있던 것 같다. 성장 과정을 500자나 300자 내외로 적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가 살아온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보다 어렵다. 나는 안다. 자기소개서에 쓰고 있는 나에 대한 것들이 얼마나 가치 없고 쓸모없는 일인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거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거나, 행동이 굼뜨다는 건 도슨트의 덕목은 아니다. 사실만 기재할 뿐이다. 나라는 사실을 300자 이내에 가치가 있고 진실한 사람으로 표현한다. 소설은 써 본 적 없지만, 자전적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자기 소설이 되어 간다. 소설은 써본 적 없지만 소설 같다. 아니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자기소개서다. 자기소개와 자기 소설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수필이나 자서전처럼 일대기를 적지 않는다. 의도성을 가지고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쓴다. 어릴 때 썼던 일기를 찾아보거나, 부모님이나 가장 친한 친구의 성격을 살펴본다. 부모님은 살아온 환경을 뜻하고 친구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회사가 바라는 인재에 맞게 본인의 경험을 구체화해서 드러내야 한다. 전문가가 써 놓은 글을 오랫동안 본다. 생각해보니 살아온 환경은 지극히 평범하고 나를 비춰줄 만한 유일한 친구는 사라졌다. 나에 대해서 적어야만 한다. 장단점만으로는 나를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장단점은 매년 아니 매일 바뀐다. 오늘은 괜찮은 사람이지만 어제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자기소개서에 나를 쓰기 위해서 나는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름을 모르는 무수한 나와 마주한다.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고 싶다. 이 전시관이 원하는 도슨트의 상이 뭔지 모르겠다. 나는 누구에게는 진실만 말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는 거짓만 말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는 가치가 있지만, 누구에게는 가치가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나는 나를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 사실 나는 매운 것을 잘 먹는다. 혼자 있는 건 싫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간다. 언니보다 삼 분 늦게 태어난 것만 진짜다. 그것만이 진실이다.
   자기소개서를 쓰다 말고 노트북 옆에 있는 상자를 본다. 여자가 선물해 준 상자다. 포장지가 뜯기지 않은 상자를 쓰레기통에 넣는다. 코팅된 상장과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이상한 상패도 같이 넣는다. 여자는 내 선물을 뜯어보기나 했을까. 그 후로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상자를 포장했다. 선물을 뜯어 본 여자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지만 볼 수 없었다. 여자는 모임이 끝난 후 몇 시간 뒤 내게 문자를 했다. 선물 잘 쓸게요. 라는 문장 뒤에 웃음 기호까지 썼다. 웃기는 년이네. 아마도 여자는 내 선물을 뜯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넣었을 것이다. 회장으로부터 왜 안 오냐는 문자가 와있다. 문자를 지운다. 나를 소개할 수가 없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발밑에 있는 쓰레기통을 든다. 거실에 있는 큰 쓰레기통에 옮겨 넣는다. 한쪽 벽에 걸어둔 가족사진이 사라졌다. 언니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빨간 고무 대야가 위아래로 포개져 거실 구석에 놓여 있다. 고무대야를 살짝 들어본다. 사계절은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절인 배추가 쌓여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창문을 연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 커튼과 머리카락을 흔들어댄다. 노트북이 바로 보이는 의자에 앉는다. 자기소개서를 쓰던 창을 내려놓는다. 전시관 홈페이지를 검색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립박물관이었던 이곳은 오래된 유물이나 문화적, 학술적 의의가 깊은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했지만, 국립미술관으로 바뀌면서 국내외 전시기획이나 대관, 초대전, 개인전만 취급하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전시 하이라이트로 스크리닝 프로그램인 <떠도는 몸>과 사라진 한국화단 작품을 보는 <영원한 나르시스트>, 어린이 체험전시 <코끼리 끼리끼리> 알림 창이 떠 있다. 바탕화면에 저장한 사진 한 장을 클릭한다. 전시관에서 보내준 사진으로 내게 주어진 정보는 단 한 가지다. 제목은 미인도다. 누가 그린 건지, 언제 그려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작품 사인도 없다. 밝은 색채를 썼고 선은 붓을 여러 번 덧댄 흔적이 있다. 어깨 위에는 나비 한 마리가 앉아있고 머리 위에는 노란색의 꽃들이 만발해있다. 반면 여자는 처연한 얼굴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람이 멈춘다. 노트북에서 한 걸음 떨어진다. 두 걸음 떨어진다. 허리를 숙이고 여자를 본다. 미인 같기도 아닌 거 같기도 하다. 처연한 표정인 듯했으나 다시 보니 입매가 살짝 올라가 있다. 세 걸음 떨어진다. 여자의 입꼬리가 확실히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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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꽤 유머가 있는 사람이다. 개그감이 충만하다. 삼 분이면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고 쓴 문장을 지운다. 나는 너무나 많은 말을 한다. 말을 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말을 한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을 감추기 위해 많은 말을 한다. 결국, 나는 나로서 나 자신을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전시관이 아니다. 죽기 전까지 나는 나를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죽기 전까지 내가 잘하고 있는가를 의심할 거다. 여태 썼던 것을 지운다. 단 한 줄만 쓴다. 다시 지운다. 쓴다. 지운다. 다시 그리고 다시.

김해록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8/06/26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