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손으로 일회용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다 쇠바퀴를 돌려 불을 붙였다. 불꽃이 뜨거웠다. 비닐로 된 호주머니 안쪽이 순식간에 그을렸다. 나는 재빨리 호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나는 이 일을 어떤 징후로 받아들였다.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보다 일찍. 야음이 내린 고요한 시장에서 나는 고양이들이 가느다랗게 숨 쉬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붉은 담장 앞에 서서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하고 있는 얼굴 없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상상하기도 했다. 나는 호주머니에 생긴 구멍을 만지작거리며 걸었다. 밤공기가 선선했다. 환한 편의점 간판 아래를 지나치자 얼굴이 이글거렸다. 나는 양손으로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몸에 옮은 불을 꺼트리고 나면 그때는 나로 살아가는 일이 나아지지 않을까. 마음이 그저 불꽃에 관한 충동이라면 나는 나라는 높다랗게 쌓인 장작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와 같은 가상적인 시련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골목을 향해 라이터를 던져버렸다. 다음 블록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러 라이터를 샀다. 나는 최근 내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짓눌려 있다고 여겼다. 무겁고 침울했다. 머릿속에서 불안의 구체적인 원인들이 나열되었고 나는 나의 감정이 그러한 원인들에 오염된 낡은 헝겊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해결할 수 없었다. 나는 내게 압력을 행사하는 많은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만 나의 감정으로부터는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어쨌든 내게 가장 익숙한 일이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나의 마음을 향해 마음의 생태계를 훼손할 염려가 있는 음험한 잠입자들을 초대하는 일이기도 했다. 동시에. 서서히 변질되는 마음을 상온에 방치했던 사람이 나였고, 이후 나는 마음으로 향하는 많은 통로들이 빽빽하게 헝클어진 덤불로 뒤덮이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아야만 했다. 나는 내 마음을 관찰할 수 있었을 뿐 그곳에 내게 유용한 깨달음을 이식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한밤의 골목을 통과하는 동안 친구는 내 방에 놓인 매트리스에 누워 있다. 친구는 일어나지 않는다. 친구는 내가 시달리는 무기력을 대신 체험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염없이 뒤척이면서…… 그의 머릿속에서 일렁이는 희박하고 어렴풋한 물체들…… 그 개인적이며 음울한 그림자들을 영사하는 텅 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는 낯선 극장에서, 또한 그 자신의 분열된 반영일 따름인 그림자들의 일그러짐과 파열, 사랑과 친교를 쫓아가는 것이다. 친구의 관심사란 오로지 자신의 그림자들이다. 모로 기울어진 채 싸늘한 내벽에 등을 붙인 채로 그렇게 한다. 친구는 삶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친구가 이러한 그림자들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위태로운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까마득한 경계의 이편으로도, 저편으로 넘어가지 않은 채로 스스로를 창백한 파수꾼처럼 지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친구가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가짜 회랑에 일렬로 걸려 등불처럼 빛나고 있는 잘린 머리들, 그것들은 각각 친구의 시해된 유년을 상징한다. 나는 그 죽어 전시된 머리들이 개별적인 시간의 항아리들처럼 친구의 마음을 인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나의 망쳐진 자의식으로 그러하듯이 말이다.
   기억의 회랑에서는 메아리가 소진되지 않는다. 친구가 사랑했던 가여운 어린 왕들, 그 유년의 잘린 머리들은 앙상하며 두려움을 자아내 겁먹은 친구를 몰아붙이며 구석으로 달아나게 만들지만, 괴롭히지만, 또한 가끔, 드문 경우에는 친구의 불안한 내면을 위로하기도 한다. 그것은 잘린 머리들이 생성하는 예기치 못한 효과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전도된 방식의 위로이기도 하다. 내가 친구에게 쉽사리 줄 수 없는 위로이기도 하다. 자신을 시해하며 나아가는 친구의 거듭된 용기이기도 하다. 다짐이기도 하고, 지속이기도 하며, 절망이기도 하고, 발작이 찾아오기 직전 표정의 수면 위로 연잎처럼 떠오르는 기이하게 올라간 입꼬리의 무서움이기도 하다. 나는 슬픔을 느끼면서 인정하는 것 같다.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을. 소외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친구의 환상과 상처, 그로 인한 자폐적 열정에 찬동하며 그 모호한 음성들 사이를 충실하게 배회하는 착란의 송전탑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없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자각보다 먼저 나는 내 비뚤어진 잡음들을 서둘러 받아쓰게 되겠지만. 잡음으로 내 황폐한 무지를 대신하려 하겠지만. 나는 자주 초조해하고 기다림에 무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친구의 그림자들에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내 고착된 상처를 뒤집어쓰고 몸살을 앓는 안쓰러운 도깨비들을 간병하는 일에 내 삶 전부를 할애해 왔는데. 축축하고 미지근한 도깨비불 속에서 말이다. 나는 갑갑한 인간이다. 나에겐 언제나 내가 나의 아둔한 왜소함이다. 내가 어떻게 친구의 그림자와 마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흘러내리는 친구의 그림자를 만지고 그것으로 세수를 하거나 나의 그림자로 검댕이 묻은 친구의 얼굴을 씻기는 일을 욕망할 수 있겠는가. 나는 깨닫고 싶다. 친구와 나 사이의 어스름한 공간, 잿빛으로 어지럽게 나풀거리는 그림자들 속에서 친구의 그림자와 나의 그림자를 구별하고 싶다. 나의 그림자와 친구의 그림자를 착각하고 싶지 않다. 나의 그림자를 통해 친구의 그림자를 오해하고 싶지 않다. 친구의 그림자와 나의 그림자가 뒤범벅된 진공 폭포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나는 친구의 그림자를 응시하고 싶다. 그러나 각자의 그림자들은 홀로된 장소에서만 간신히 선명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는 정오에 잠들어 자정에 가까운 시각 잠에서 깬다. 엎드려 누운 친구에게로 쏟아지는 정오의 햇빛은 날붙이 같다. 햇빛은 반짝거리다 친구의 주변에서 녹슬어 구부러진다.
   담요가 헝클어진다. 어둠이 자욱하게 내린 방 안에서 친구는 매트리스에 걸터앉아 흐린 시선으로 어떤 모서리들을 바라본다. 어느 모서리, 책장의 모서리이거나 부엌의 모서리, 가로와 세로가 뾰족하게 꺾이는 지점. 친구는 책을 읽지 않는다. 나는 친구 곁에 서서 모발이 얇은 친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친구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지도 않는다. 나는 친구에게 뭘 좀 하라고 부추기지 않는다. 우리의 대화는 간헐적으로 맞닿고 자주 끊긴다. 말의 간격 속에는 말이 품고 있는 비가시적이며 손상되기 쉬운 이미지들이 현미경 아래의 플랑크톤처럼 떠다닌다. 그런 느낌이다. 친구는 깨자마자 구식이라 세면대가 없는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한다. 손을 떨면서 말이다. 왜 그렇게 멍하니 주저앉아 있어. 나는 묻는다. 저혈압이라서 잠에서 깨는 것도 힘들고 생각이 잘 이어지지 않아. 요즈음엔 잊어버릴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다행이야. 언젠가부터 차가운 수면 아래에 계속 발을 담그고 있는 것 같은데 지나치게 지나치는 것들을 붙잡아 내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일이 너무 어려워. 나를 비우지 않으려면 그걸 많이 가져야 하는데. 친구의 목소리는 작고 나지막하다. 나는 내가 친구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대교를 걸어서 통과해갔다. 나는 자주 친구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내게 끼치는 친구의 영향력에 대해 더 몰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텐데. 나는 나를 싫어하고 있었다. 자기혐오와 허기, 망상이 나를 억류하는 자아의 트라이앵글이었다. 나는 강을 가리는 철제 난간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계속 갔다. 손바닥이 난간의 먼지로 더러워졌다. 나는 손바닥을 털었다. 어둠 속에서 강물이 동요했다. 가느다란 빛의 벌레들이 수면을 기어갔다. 한낮의 한가로운 물빛과 달리 흐름이 혼탁했으며 기포가 끓어오를 때마다 물 위에 스며든 붉은 빛들이 허무하게 바스러지고 있었다. 나는 쇠약한 불꽃들을 천진하게 운반하고 있는 수천 척의 종이배를 상상했다. 미등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내 곁을 스치는 차량이 경적을 울렸고, 나는 모든 차량들이 소음으로 공간을 찢어발기고 있다고 느끼며 너덜거리는 배후에서 저절로 새로워지는 사람의 남루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양쪽 검지로 귀를 막았다. 비도 오지 않는 한밤에 우산을 쓰고 걷는 불길한 남자는 얼굴의 반이 매끈하게 잘려 있었고, 나머지 얼굴 또한 명암이 다른 얼룩들의 누덕누덕한 조각모음에 불과했다. 나는 정면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어깨를 마술처럼 피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남자의 몸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나의 어려운 감정적 상태에 대해 끝없이 서술할 수 있겠지만 이제 그만두고 싶다. 나는 상태의 저글링에 능하다. 나는 지금보다 나은 서술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목련이 밟혀 있었고 그것은 미끄덩하게 깔린 바나나껍질을 연상시켰다. 가로등과 벚나무가 친밀했으며 벚꽃은 아름다웠다. 벚꽃이 어깨로 떨어졌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걱정이 되었다. 나는 술집들 사이를 어슬렁거렸다. 그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안경에 김이 서렸다. 나는 계산대 앞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남자가 나왔다. 남자가 가자고 말했다. 담백한 말투였다. 남자는 만취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차량을 주차했던 장소를 기억하지 못했고 그때부터 제 시계와 넥타이를 풀어 호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공용주차장은 만석이었다. 남자는 내게 은색 아반떼를 찾아오라고 말했다. 남자가 연석 위에 걸터앉았다. 주름진 정장 바지 사이로 벚꽃이 흩날렸다. 나는 남자가 건넨 차키의 버튼을 눌렀다. 음향이 들리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차량들 사이엔 공란이 없었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헤드라이트를 켰다. 정면이 밝아졌다. 뒷자리에 앉은 남자는 좌석 뒤쪽에 꽂힌 잡지를 빼내 읽는 척하다가 갑작스레 허우적거렸다. 무슨 도시의 지명을 이야기했고 집에 데려다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가끔 말이 많아지지만 말을 하지 않을 때는 대개 머릿속으로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이 하품처럼 지나가는 것을 바라본다. 나는 타인의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그 공간의 냄새 때문에 메슥거리는 기분을 느낀다. 나는 대리운전을 삼년 가량 꾸준히 했다. 나는 오늘 상상 속에서 친구를 닮은 인형을 매장했다. 어릴 적 기르다 죽은 기니피그를 매장했던 그 삭막한 모래밭의 정경이 떠올랐다. 기분이 이상했다. 흙더미에 가라앉으며 인형이 말했다. 내가 파헤쳐지면 죽을 줄 알아. 나를 뚫어져라 올려다보면서 그랬다. 나는 울고 싶었다. 기니피그를 매장한 모래밭은 눈에 초점이 없는 어른들이 고쟁이를 입은 채로 계단에 주저앉아 있던 임대아파트 단지 근처였다. 버려진 놀이터였으며 내가 가진 작은 모종삽으로는 모래를 깊게 팔 수 없었다. 주변을 무기력하게 어슬렁거리는 어른들이 식칼로 내 배를 갈라 내장을 절취할 것 같았다. 내 몸에 구더기가 끓어오르면 죽을 줄 알아. 나도 그런 거 정말 목격하고 싶지 않다.
   마음을 잘 간수해야 돼. 결국 자신을 아낄 사람은 자신밖에 없어지잖아. 친구의 손목이 부드럽게 회전한다. 내가 밖으로 나간 뒤 친구는 내 책상 앞에 앉는다. 네가 거기 얼굴을 묻고 잠들면 오래전부터 책상에 놓아두었던 도깨비 조각상이 살아나 바늘 크기의 죽창을 치켜들고 네 귓속을 찔러. 나는 이게 조금 귀엽고 재밌는 이미지라고 생각하는데 네 귓바퀴 아래로 진피가 흘러. 형광등은 한참 전부터 꺼져 있다. 의자 등받이가 뒤쪽으로 기운다. 의자는 아슬아슬하게 넘어지지 않는다. 장판에 홈이 팬다. 네가 내 집을 함부로 쓰는구나. 나는 생각한다. 너는 이불도 개지 않고 내 물건도 마음대로 만져. 친구는 내게 사과하지 않는다. 나는 흐트러진 내 방을 매개로 내가 부재하는 자리에 남겨진 친구의 궤적을 복기할 수 있다. 친구는 말한다. 네가 내 숙식을 책임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종일 잠을 잘 거고 식비가 많이 나오지는 않을 거야. 친구는 오래 준비해왔던 말들을 내뱉고 지쳐버린 것처럼 보인다. 확실치는 않은 기억이다. 사실 나는 친구에게 나와의 동거를 승낙했던 기억이 없다. 어쩌면 친구가 내 집에 얹혀사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그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인지도.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를 처음 만났는지도. 그날은 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폭우가 쏟아지기보단 서늘한 물의 입자들이 대기를 부유하는 척척한 휴일이었고, 비염이 심한 나는 코를 훌쩍이면서 우비를 뒤집어쓴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공원은 한산하고 쓸쓸했다. 나는 짓이겨진 기분으로 입술을 구기며 혼잣말을 했다. 나는 홈리스가 아니라 소설가입니다. 나는 극진한 손길로 잉여 세계의 점액질을 모아 끈적끈적한 부정성을 빚고 있습니다.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우비 밑단에 빗물이 고였다. 불꽃이 어깨를 들썩였다. 흥건한 벤치 위에서 나의 깜찍한 불꽃은 마치 다리가 달린 자족적인 캐릭터처럼 뛰어다녔다. 연소할 물질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꺼지지도 않았다. 벤치에서 발을 구르기도 했고 걸음을 헛디뎌 미끄러지기도 했다. 나는 어수선하게 벤치 위를 돌아다니는 나의 불꽃을 내려다보았다. 안개 속에서 가로수들은 보다 울창해졌고, 나는 우의 밑단을 엄지와 검지로 쥐어뜯으며 거기 껌처럼 늘어지는 비닐을 흥미롭게 여겼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때 친구가 벤치로 다가왔다. 앉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둑한 장우산 아래로 친구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바지가 젖을지도 모르니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대꾸했다. 아무튼 그러고 싶은데요. 친구의 목소리는 속삭이는 듯했고 그보다 내밀한 차원에서 내게 암시를 걸고 있는 느낌이었다. 귓속으로 동심원이 퍼지고 수면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마음의 물풀들이 하염없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럼 잠깐만요. 내가 갑작스레 일어서는 바람에 친구와 나는 비좁은 장우산 안쪽에서 서로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입장이 되었다. 방금 머리를 감았는지 친구의 구불거리는 머리카락 근방에서 산뜻한 냄새가 났다. 나는 비켜섰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친구는 저항하지 않았고 내 손이 향하는 궤적을 향해 힘없이 이끌렸다. 친구는 내가 앉은 자리에 걸터앉았다. 나는 친구의 우산을 가로챘다. 친구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래도 바지가 젖는데요. 친구가 중얼거렸다. 점과 주근깨가 많은 얼굴이었다. 입매에는 피어난 반점이 있었다. 한눈에도 피곤해 보였다. 나는 친구의 우산을 쓰고 등을 돌려 벤치를 떠났다. 불꽃이 나를 장난감처럼 뒤따르고 있었다.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불꽃을 주워 나의 그을린 램프 안에 보관했다. 램프 속 알코올이 거의 고갈되어 있었다.
   나는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한 후 벤치로 되돌아왔다. 어쩐지 친구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벤치에서 빗물을 마시고 있었다. 세상 어딘가 전시되어 있을, 머리에 구멍이 뚫린 얼빠진 청동상 안쪽으로도 빗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청동상은 눈에 가위표가 쳐진 사수자리 소년이었다. 빗줄기가 거세졌다. 친구의 몸에서 증기가 피어올랐다. 친구는 입을 벌리고 턱을 들어 빗줄기를 향해 자신을 내어놓고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친구는 점진적으로 작아져갔다. 그것은 명백한 퇴행의 과정이었다. 친구는 빗물로 아르르르, 아르르르,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구강을 헹궜다. 거품을 뱉어냈다. 그 모습이 역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친구의 퇴행이 시간을 앞지르는 동안 친구는 침착함과 차분함을 잃고 산만한 몸짓으로 다리를 흔들었다. 어깨춤을 추면서 무언가를 경계하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불안정해 보였다. 누가 친구를 감시하기라도 하는 걸까? 어린 시절의 친구는 저렇게 겁이 많은 아이였을까? 친구는 목까지 단추가 채워진 연미복을 입고 물방울무늬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얼굴이 통통하고 발그레했다.
   하의는 각이 잡힌 반바지였다. 무릎까지 올라간 파란색 양말을 신은 친구의 다리가 벤치 아래서 달랑거렸다. 구두가 지저분했다. 나는 친구에게로 다가갔다. 눈높이를 맞춘 채로 엉거주춤하게 쪼그려 앉아 구두를 벗겼다. 양말을 내린 다음 친구의 무릎에 진창처럼 엉긴 검은 피딱지를 향해 램프를 비췄다. 다쳤으면 먼저…… 집으로 돌아갔어야지. 날이 어두컴컴해졌다. 친구와 나는 우산 아래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친구의 가냘픈 발목과 정강이는 나의 손에 꼭 알맞았다. 친구는 마치 처음부터 나의 친구였던 것처럼 간지럼을 탔고, 내가 자신의 다친 무릎을 안타까워하는 일을 기꺼이 허락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친구는 무릎을 다치면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소스라쳐 좌우를 살피고는 상처가 발각되지 않도록 양말을 무릎까지 올려 신은 다음 절뚝거리며 집으로 달아나버리는 아이인데. 그러나 그날은 유난히 엄살을 부리기까지 했다.
   걸을 수 있겠어요? 친구가 나를 따라왔다. 집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친구가 점점 원래의 나이로 자라났기 때문에 그것은 납치나 유괴 같은 범죄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러나 친구는 이후에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저는 문학을 할 거고요. 문학을 하려는 이유는 문학이 저를 미워하기 때문이에요. 우산 속에서 친구의 얼굴을 곁눈질하면 내가 그를 선망하는 풋내기가 된 기분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험하고 멀었다. 여전히 나는 램프를 들고 있었다. 그때 램프의 연료가 조금이라도 모자랐다면 어땠을까. 눈앞이 캄캄해지고, 그의 기척이 얼굴이 가려진 어둠 속에서 흐느끼고 있다면, 정말 그 흐느낌은 친구에게서 유출되는 호흡이었을까? 그는 왜 내게 자신을 의탁하길 원했을까? 나는 어떻게 친구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초가 타오른다. 촛농은 녹아내린다. 그것은 한꺼번에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수직으로 상승하는 연기를 떠올린다. 방은 밀폐되어 있다. 모든 사물은 개별적인 고독의 현전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 유령은 춤추지 못한다. 친구는 천장 아래에서 둥글게 고이는 연기의 흐름을 향해 입김을 불어 넣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매듭이 느슨해지고 교차해 굳어진 마디들이 되풀이해 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방은 고요하다. 친구는 촛불을 향해 말을 걸지 않는다. 촛불이 퍼뜨리는 하늘거리는 막이 친구의 얼굴을 아마포처럼 감싸고 있다. 친구는 촛불이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마음을 움켜쥔다. 눈을 감으면 감은 눈앞으로 무형의 새파란 잔상들이 물결친다. 망막에 번진 얼룩들은 감은 눈 속을 밝히거나 구멍을 내지 않고, 마치 볕에 수분이 마르듯 천천히 휘발되어서, 친구는 어느 순간 빳빳하게 건조된 어둠의 기다란 장막들에 겹겹이 가로막히고 만다. 친구는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기울인다. 낙서를 한다. 이때 불꽃은 낙서를 태워버리지 않고 우글거리는 필체들 사이의 빈틈으로 느리게 스며들 따름이다.
   친구의 눈동자는 여기 존재하는 눈동자가 아니야. 나는 생각한다. 너와 내가 이런 성품을 가지고 있을수록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보다 투명하게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돼. 세계는 굴절된 채로 도달한다. 현상의 무감한 재봉틀이자 삐뚤빼뚤한 봉제선인 언어를 통해 이 굴절된 현상을 교정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언어는 종종 무언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친구를 지적하고 꾸짖는 무수한 손가락질이 된다. 쯧쯧쯧. 언어가 친구를 포위한다. 칭얼거리는 미성년자 새끼. 친구는 달랑거리는 손가락들 사이에 유기된 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다. 일인분도 못하는 새끼. 치아를 딛고 뛰어오르는 어눌한 혀끝이 담장 아래로 쓰러지는 것이다. 각자는 각자의 굴절 속에 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사전이 다르다는 말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의 사전에서 비슷한 말들을 골라 교환하며 어스름 속에 은폐되어 있는 마음의 깨진 거울 조각들을 조립한다. 세계는 굴절될 수 있기에 평면이 아니다. 그것은 수면 아래를 향해 여러 가닥으로 잠수하는 빛의 찢어진 감도이다. 빛은 훼손된 채로 살아남는다. 다른 어떤 사람들의 사전, 그것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작성되어 세계가 그 사전 안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누군가에 의해 들추어질 때마다 노골적인 먼지를 토해내는 그 두꺼운 사전은 해독되거나 다른 이들을 통해 번복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완강하고 고유한 물성으로 실재하는 검은 사각형이기도 하다.
   의자가 삐걱거린다. 사라지기 직전의 불은 벌의 꽁지만큼이나 하찮게 보인다. 초가 발하는 연약한 빛 아래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벌레가 푸른 잎사귀를 게으르게 갉아 먹고 있는 것처럼. 친구의 필체는 무언가를 표현하려다 재차 그것을 그만두는 과정 사이에서 진동하는 어떤 맹목적인 주저함이다. 노트는 난잡해진다. 나는 낙서에 낙서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온전한 표현을 망가뜨리고 있는 친구의 낙심, 부정, 중단, 상실이, 언제나 표현의 망실을 반복하는 친구의 더듬거리는 그림자들이 궁극적으로 노트 전체를 새까맣게 만들어버리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단지 친구의 낙서가 검은 것에 검은 것을 덧칠하는 방식에 불과하다면, 해지고 찢어진 어둠을 깁고 있는 해지고 찢어진 어둠이 바로 친구의 내면이라면, 친구의 표현이 모두 감추어지고, 낙서가 퍼붓는 야음 속에서 갈피 없이 헤매는 불능의 의지들만이 뒤엉켜 교차하며 필체의 검은 사각형 안을 구름처럼 맴돌고 있다면, 할퀴며 들볶고 신경질적으로 이지러진다면, 그림자들이 범람하고 있다면, 빽빽하고 억센 허무가 소란스레 계속된다면, 부패한 엔진을 닦으면 헝겊에 들러붙는 눅진하고 끈적거리는 부산물처럼, 탈진할 때까지, 평면이 궤적의 의지로 뒤흔들릴 때까지, 검은 톱밥을 튀기며 명백한 어둠을 대패질하는 집요함이 검은 사각형을 갈아엎을 때까지,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뾰족하고 새까만 머리를 맨바닥에 문지르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의 친구라면, 나는 그 검은 사각형 앞에서 대체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내 책상에 놓인 물체가 바로 그 구토하는 추상이라면.
   취객의 중얼거림 속에는 내가 솎아낼 수 있는 단어들이 없었다. 나는 라디오를 켰다. 귓속에서 이명이 들렸다.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도로는 한적했다. 가속 페달을 밟아도 나아가는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예컨대 나는 어떤 적막한 렌즈 속에 감금되어 있었고, 눈앞의 세계는 확대되거나 가까워지기를 되풀이할 뿐 내가 속한 렌즈를 깨트리지 못했다. 내겐 기계가 아니라 망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차선이 휘어질 때마다 그러쥔 핸들을 조금씩 가다듬고 있었다. 그것은 거의 관성적인 일처럼 여겨졌다. 가령 나는 나만의 중력 속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줄이 없으면 제자리에서 줄넘기 연습을 했다. 새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아무것도 붙잡지 않은 양손을 휘저어댔다. 강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골대를 빗맞은 농구공이 지면을 강타하고, 다시 떠올랐다가…… 그보다 짧은 포물선을 그리며 재차 떨어지고…… 텅 빈 강당의 미끄러운 바닥을 가로지르며 끝내 내 앞으로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농구공을 주워 골대를 향해 내던지는 대신, 공을 발끝으로 살며시 밀쳐…… 대체 어째서…… 공이 다시금 내게서 멀어지는 모습을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라보고 있다. 농구공은 소리 없이 사선으로 굴러가지만…… 얼마 후 갑작스레 휘어지고…… 그러니까 누구의 힘도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그것 스스로 방향을 변경하면서…… 어떤 물리적인 법칙과 무관하게, 마치 어떤 불가해한 자력에 이끌리듯 타원형의 가상적인 궤도에 합류하고는…… 방해받지 않고, 정지하지 않고, 회전하면서, 그저 그러한 타원형의 보이지 않는 트랙을 설계하는 것이 강당 자체의 경향인 것처럼 공간의 가장자리를 따라가기 시작하는데…… 그러니까 나는 얼굴이 증발할 때까지 줄넘기를 하고, 공은 그칠 리 없이 지속되는 줄넘기의 메아리인 것처럼 말이다!

*

   농구공은 끝없이 실이 풀리는 둥근 털실 뭉치처럼 붉은 선을 그으며 강당을 선회했다. 지치지도 않았다. 나는 줄넘기를 그만두었다. 선의 진행은 거의 무한정이었다. 경비원이 슬리퍼를 끌며 다가왔다. 내게 랜턴을 들이밀었다. 나는 아반떼 뒷좌석에 짐짝처럼 내팽개쳐진 취객을 향해 고함을 치고 있었다. 당신 집에 다 왔다고요! 나 좀 힘들게 하지 마시라고요! 취객은 혼곤한 잠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술을 먹으면 곱게 처먹을 것이지 왜 애먼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가. 경비원이 인터폰으로 가족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취객의 지갑을 훔치고 싶었다. 나는 어린 시절 심한 도벽이 있었는데 그 습관에 제동이 걸린 것은 막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타인의 물건에 고의로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간혹 그런 기회가 오면 충동을 제어하기 위해 내 자신과 갈등하는 사람이 되었다. 화가 났다. 나는 지갑을 훔치는 대신 취객의 차량 뒷좌석에 남몰래 챙길 물건이 있는지 더 살펴보았다. 취객이 입맛을 다셨다. 아파트 로비에서 여자 둘이 나타났다. 취객의 아내와 딸이었다.
   나는 황급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취객이 사는 아파트단지를 벗어날 때쯤 수수료를 제한 대리운전 비용인 이만 사천 원이 입금되었다.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대리운전 어플을 검색해 배차를 잡으려 했지만 대개 엉뚱한 방향이었다. 내 거주지 쪽으로 향하는 배차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느 배차든 닥치는 대로 선택해 푼돈을 버는 것이 미래를 위해 보다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내겐 써야 할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런 상황에선 소설이 인생의 함정이라는 생각만 든다. 나는 외투 주머니에 뚫린 구멍 속으로 동전 몇 개를 빠트렸다. 걸음을 뗄 때마다 점퍼 밑단으로 처진 동전들이 짤랑거렸다. 신선한 새벽 속을 산책하는 일(물론 나는 버스가 끊겨 이 낯선 동네에 고립된 것에 불과하다), 더 이상 추위 때문에 몸을 움츠리지 않아도 되는 봄밤, 나는 피곤하고 우울한 파김치가 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내가 다른 사연들 때문에 파김치가 되어 집 근처 골목을 누비던 과거의 나날들을 회상할 수 있었다. 거리엔 인적이 없었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내 허리까지 자라난 관목들을 뜬금없이 헤집기도 하는 마음이 심심하지 않았다.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PC 카페로 기어들어갔다. 친구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걱정은 여전했다. 나는 친구가 언젠가 조짐도 없이 내 집에서 도망치리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걔를 납치한 것도 아닌데. 내가 밥도 주고 피난처도 제공했는데. 도무지 고마움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네. 나는 못마땅한 심경으로 입술을 비죽 내밀고 툴툴거릴 것이다. 자기혐오, 허기, 망상이라는 친구의 트라이앵글은 이러한 변덕스러운 탈출을 통해 일시적으로 부서질 것이며, 그러나 친구는 장소를 능가하며 귀환하는 자신의 견딜 수 없는 트라이앵글을 그가 떠날 별개의 장소에서 다시 반복해야만 할 것이다. 탈출이란 단지 발가벗는 일이 아니라 요령부득 아래서 발가벗는 일에 관한 의지가 소진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이며, 나는 이러한 생각들 속에서 친구의 기이하고 환원될 수 없는 내적 파열을, 친구의 거듭되는 개인적인 실천을 응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지와 불가해함 속에서 말이다. 마치 전적으로 미친 사람을 환대하는 글쓰기가 누군가의 자폐적이며 무분별한 언어를 받아쓰기 위해 비축한 역량의 전부를 팔아치우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나는 친구가 떠나기를 원치 않았다. 내가 없는 내 방에서 마치 나의 환각처럼 존재하며, 그가 내 방을 지키는 새카만 눈빛의 불침번이기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쓴다; 책상 위에서 낙서가 멎는다. 간질거리는 살갗, 지금 몸의 얼개는 허구의 외부와 격렬하게 마찰하며 뒤죽박죽으로 끓어오르고 있는 것 같다. 친구는 엷은 미소를 띤 채로, 아무런 생각도, 어떤 행동도 할 도리 없이, 마치 제자리에 박제된 실물 크기의 인형처럼 왼손을 책상에 올려놓은 다음 그러한 아득한 부동성을 십분 가량 유지하고 있다. 웅성거리는 낯모를 그림자들이 현기증을 통해 형성된 어떤 까마득한 중심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생각의 정지, 움직임의 완벽한 마비, 인식의 와류, 출처가 없는 우발적인 감각들의 회전목마에 탑승하면서, 친구는 자신에 의해 떠내려가고, 눈앞의 공백을 눈부신 은판처럼 느끼며, 나는 곧 그것이 닥치리라는 사실을 예감할 수 있지만…… 예감 또한 아주 축소되어 걷잡을 수 없는 잠정적인 위기 속에…… 그것이 부여하는 억지할 수 없는 강박 속에서…… 갑작스레, 친구는 마치 의자가 그를 튕겨내듯 바닥으로 엎질러진다. 친구의 온몸이 세차게 뒤흔들린다. 새하얀 경련은 머리에서 시작되어 척추를 수직으로 관통하듯 과격한 손길로 친구를 마사지한다. 눈동자가 울렁이는 기관처럼 박동한다. 입술은 뾰족하게 솟아올라 친구가 내뱉는 신음 내지는 항변이 줄줄 새는 거품으로 미끄덩하게 얽히는 모습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 친구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단조로운 대답들이 폭발하고, 그것은 아니, 아, 아니야, 저, 저기, 저긴요, 그래, 그, 그만, 더, 덜, 더, 덜, 덜요, 누가 무엇을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그 대답들은 한 줄기의 뒤얽힌 타래로 합류해 벼랑을 향해 낙하하며, 친구의 의식은 그러한 폭포를 얼떨떨하게 얻어맞으면서…… 시간의 굳어진 더께에 의해서가 아닌…… 이글거리는 망각의 아가리가 친구의 머리를 덥석 깨무는 바람에…… 친구는 한동안 바닥에 드러누워 의식을 되찾지 못한다. 뇌파가 찢어진다. 들이닥친 발작이 머릿속의 구슬들을 모조리 쏟아낸다.
   나는 다시 쓴다; 깨어난 친구는 강당에서, 대로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편의점에서, 교실이나 비행기 안, 친구나 어머니 앞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바닥이 싸늘하다. 실감이 휑뎅그렁하게 정체된다. 친구는 발작이 닥치는 회로나 그 조건을 파악할 수 없지만 항상 뭔가를 주의해야겠다,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므로 친구에게 사건이란 외부에서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의 아찔한 머릿속에 잠복하고 있는 것만 같다. 친구는 그림자들의 헝클어진 덤불 속에 몸을 엄폐한 형형한 눈빛들이 자신의 생활을 수월하게 허물어뜨리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도. 친구는 비척거리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다. 나는 방을 나서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얄팍한 배낭, 길게 빠져 굽어진 목과 움찔거리듯 놀라는 어깨, 보폭이 크지 않고 발을 지면에서 내어 끄는 것 같은 그 걸음걸이를.
   내 상상 속에서 친구가 살았던 나의 방은 네 벽면이 유리로 만들어진 밀실이다. 나는 그 투명한 큐브 앞에서 친구의 사소하고 무기력한 생활을 온전히 관찰할 수 있다. 친구는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친구가 떠나버린 방, 나의 세간들이 누구의 손길에도 어지럽혀지지 않고 정갈하게 비치되어 있는 바로 그곳.
   어쩌면 나는 매번 이러한 것을 쓰고 있다; 연이어 그 방의 중심에서 장작들이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촛불이 쓰러진다. 계단을 닮은, 기도하는 손들을 줄줄이 꿰어 장작의 목덜미에 걸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러나 밀면 밀치는 대로 쓰러질 짚단에 불과한 그 장작들은 누군가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지 않았는데도 넘실거리는 화염의 먹이가 된다. 연기가 방을 둘러싼다. 불길은 거무튀튀한 연기에 잠식된다. 밀실에 고인 연기는 빠져나갈 틈새를 찾지 못하고 불길 주위를 자전한다. 연기가 실내의 온갖 구석을 향해 검은 미립자를 퍼트린다. 스크린이 마비된다. 밀도 높은 연기는 마침내 천장을 들이받으며 요동친다. 실내는 무너지지 않는다. 연기는 내향한다. 내벽에 그을음이 생긴다. 세간을 집어삼키는 불길이 쇠약해지고, 나부끼는 불의 소매가 잦아드는 동안에도 연기는 자욱한 실내에서 좀처럼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큐브의 얼개는 견고하다. 그을음이 내벽을 가득 채우고 난 뒤 유리로 된 방은 그저 검은 각설탕처럼 보이기도 한다. 빛을 차단한 암실, 열쇠를 분실한 상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빛도 투과하지 못하는 새카만 유리. 첫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나는 불타버린 나의 집에서 친구의 잔해를 수집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나는 손에 엉긴 재를 바지에 문지른다. 불탄 자리를 뒤적거리면 동전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을음을 간직할 수 있다. 머리가 뜯어진 인형과 앙상한 칫솔, 뼈와 전선들, 불이 먹다 버린 책들, 출처 모를 헝겊과 나무토막, 골격만 남은 침대 세트, 용수철, 검게 반질거리는 태엽, 친구의 모습을 닮았지만 건드리자마자 일시에 내려앉을 잿더미로 된 허수아비들까지. 잔해들은 얼마든지 있고 나는 그것들을 나열할 수 있다. 이제 그곳은 나의 집이 아니라 나의 친구가 실종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양선형

내게 좋지 않은 곳으로 밀쳐짐.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