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주의자의 실존



   초점 없는 남자는 선명한 것을 사랑했다
   완벽한 구도에 집중하며 그것이 만들어내는 장면이
   얼마나 단순해지는지 바라보며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지점에서 리모컨을 쥐고
   부동의 자세로 서 있었다
   정확한 것과 정확히 거리를 유지하며
   초점에서 빗나가는 방식으로 그는
   포착되지 않았다

   그녀의 손끝에 입을 맞추고
   아버지의 목을 졸라
   평면의 세상이란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지

   밝혀지지 않은 지점에서 그는
   최대한 정직하게 그리고 차차 아주 정당하게
   확신에 찬 장면들로 사라질 수 있었다
   표정도 메아리도 남기지 않고
   단어 하나 다치지 않는 방식으로

   번복되는 그 자리에서
   맹렬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어떤 초점에 대하여
   그러나 그는 아닌 것에 대하여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서 있었다
   실존하기 위해
   힘껏 실종되는 방식으로

   번쩍이는 눈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모래시계



   그것은 뒤집어지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 우리 사이에 구멍이 뚫렸구나
   나는 빠져나가고 있고 더 이상
   빠져나갈 곳이 없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으로

   나에게서 너로 넘어가는 갈증으로
   결국엔 텅 비게 될 마른 눈물들이
   훌쩍임 없이 일정하게 흘러내렸다
   바닥을 향해 일방적으로

   대칭의 관계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같은 질량을 갖고
   열렬한 만큼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네 편에서 새로운 의미가 되는 거라고
   그렇게 무게를 부여하는 동안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운율을 잃어갔다

   잃어가는 것이 늘어날수록
   저편에서도 쌓이는 것들이 많아졌다

   흐르는 것이 피였다면
   흐르는 동안 피었다면

   그러나 구멍을 빠져나가는 신음은 음악이 아니라
   떨어지는 결말이었다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사랑이었다

김미라

산문 『책 여행자』의 저자, 시집 『HOWL』의 번역가, 디자이너, 프로듀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