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엄마께 / 거울
엄마께
머리가 좀
아팠어요.
화가 좀
났어요.
기분이 좀
나빴어요.
엄마, 제가
좀, 조금이라고 말하는 걸
그대로 믿지 마세요.
‘아주 많이’ 슬프고 속상하고
짜증나는 걸
‘좀’으로 줄여 말하는 거예요.
털어놓으니 좀
나아요.
이제는 괜찮아요.
거울
금간 벽거울이
밖으로 나와
담벼락에 기대 있다.
거울에
하늘이 뜨고
해가 뜨고
구름이 뜨더니
새가 날아간다.
날마다 비쳐들던
빛 바랜 커튼 대신
찌든 때 벽 모서리 대신
자전거가 들어왔다
나간다.
아기가 왔다
간다.
금간 뒤
밖으로 나와
반뜩 되살아난다.
이상교
먼저 동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동화와 그림책 글을 겸하게 되었다. 그간의 글쓰기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에 속했다면 이제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고 싶다. 운문과 산문은 쓰는 일에 있어 서로 반한다. 한 가지는 축약이어야 한다면 다른 하나는 다소 친절해야 맞다. 서로 반하는 두 가지를 성취해 나아가기는 고통인 한편 짚고 넘어볼만한 덕목 아닌지 한다. 둘을 함께 아우를 일이다.
2021/09/28
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