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나비 아닌 나비 / 남방큰돌고래 웃음
나비 아닌 나비
물여우나비는 나비가 아니다
바다나비는 나비가 아니다
우리 집 나비도 나비가 아니다
하지만
나비처럼 낮에 날고 싶은 날도래
나비처럼 꽃과 입 맞추고 싶은 바다민달팽이
나비처럼 한없이 가볍고 싶은 고양이
모두
나비가 되었다
남방큰돌고래 웃음
돌고래야
늘 웃고 있는 돌고래야
웃으며 잠자고
웃으며 먹고
웃으며 싸우고
웃으며 아파하는
남방큰돌고래야
웃는 입 길게 찢은
조커처럼
코에 링 걸어 돌리고
물속에서 꼿꼿이 걸어가며
사람 흉내를 내는 돌고래
쇼가 끝난 뒤
간장약, 위장약을 먹는 돌고래
박수 치며 웃는 사람들 앞에서
기다란 네 웃음 뒤에서
울고 있는
죽을 때도 웃으며 죽어갈
수족관 속 남방큰돌고래야
강기원
어른 시와 동시를 함께 쓰는 일의 기준. 어른 시는 쓰면서 울컥함이 있어야만, 동시는 쓰면서 스스로 웃을 수 있어야만 비로소 시, 동시라 여겼다. 그런데 요즘은 동시를 쓰면서도 울컥함이, 시를 쓰면서도 웃음이 배어 나오곤 한다. 아마 나는 동시를 품은 시, 시를 품은 동시를 쓰고 싶은가보다.
2018/09/25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