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이야기꾼



   언제 씨앗이 뿌려졌는지
   바람은 알고 있다고
   살랑살랑 다니며 이야기한다.

   내가 뿌렸으니까 알지
   내가 봤으니까 알지

   언제 새싹이 났는지
   바람은 알고 있다고
   솔솔 불며 이야기한다.

   내가 간질였더니 나오던 걸
   내가 매일 불렀더니 나오던 걸

   언제 꽃이 피었는지
   바람은 알고 있다고
   살랑살랑 다니며 이야기한다.

   내가 꽃봉오리를 예쁘다 했는 걸
   내가 꽃봉오리를 열어주었는 걸

   언제 솜털 씨앗이 열렸는지
   바람은 알고 있다고
   솔솔 불며 이야기한다.

   내가 꽃잎을 떨어뜨리니 나오던 걸
   내가 보니까 까만 밤에 하얗게 나오던 걸

   못 닿는 곳이 없으니
   모든 것을 보고 이야기하느라 바쁜
   바람은 이야기꾼





   나도 알고 있다고 말해 줘야지



   어둑해지면 찾아오는
   반가운 내 친구

   왔구나.
   ―오늘은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응.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어?

   까르르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이길 수 없어 잠이 들면
   혼자 남는 밤 친구

   오늘 밤 다시 만나면
   밤마다 혼자 남겨두어
   미안하다고 말해줘야지.

   잠든 내내 둘러싸고 기다리다
   아침 되도록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아

   아쉬워도 인사 하나 못 하고
   떠나야 했던 밤 친구 마음을
   나도 알고 있다고 말해 줘야지.

이영진

아이들을 위한 좋은 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하고 가르치며 자연과 삶에서 느낀 마음과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대상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고 글로 전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모든 작은 것의 의미를 계속해서 알아가고자 합니다.

2019/07/30
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