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재패니즈 로커빌리 / 노래하는 은하단
재패니즈 로커빌리
도망치자
춤을 추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춤추고 싶어지는 곳으로
일요일이면 다 같이 공원에 모이자.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를 켜놓고 춤을 추자. 왼발을 움직일 땐 오른손을 들고, 왼손을 움직이면 오른발을 들자. 그러다 동작이 엉켜도 모두가 박수를 쳐주는 곳에 가자.
기념하고 싶은 게 생기면 문신을 하러 가는 소녀들과
인공 숲을 뒤로한 분수대와
살찌지 않은 비둘기에게 팝콘을 던져주는 아이 앞에서
청재킷을 벗으며 등의 문신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겠지. 자기가 볼 수 없는 곳에 문신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마 무엇이든 빠르게 질리는 사람일 거야. 그렇다면 그 그림을 정말 사랑하나보다. 정말 사랑해서 볼 수 없는 곳에 문신했나보다.
나는 네 앞모습을 알지만 너는 내 뒷모습을 모르고
바닥이나 그림자나 가끔 발등도 밟으면서
너랑 나랑
서로의 허리를 붙잡지 않고도 춤을 추자
로커빌리들 오늘도 공원에 모여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허리를 흔든다. 가죽 재킷이나 청재킷을 입고, 구두에 전기 테이프를 친친 감고, 바닥에 닿았다가 올라오는 무릎은 우리가 아직 젊고 건강하다는 증거. 젊고 건강한 사람들 모여 춤을 춘다. 나는 너랑 춤추는 공상을 하면서 박수만 치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 춤을 추고 있을 너를 생각하기도 했다.
노래하는 은하단
우주의 바닥을 찾아 떠난 범선 위에서
너는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소리가 바닥에 부딪히길 기다리면서
발라드를
팝을
재즈 힙합 댄스까지도.
우주의 장르는 바닥에 닿지도 않을 만큼 깊고 넓을 텐데
신의 꽉 쥔 주먹처럼
불시착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밀도 낮은 별처럼
신은 폭발을 만들었다. 폭발은 우주를 만들었다. 우주는 미물들을 만들었다. 미물은 발라드 팝 재즈 힙합 댄스곡들을 만들었다. 부딪히기 위해 나아가는 노래들을 네가 부른다. 그곳에서 너는 거대하고 웅장하며 울려 퍼진다.
거장의 노래를 휴대폰으로 들을 수 있는 이 시대에
나는 굳이 네게 노래를 들려달라고 했다.
너는 부끄러워하면서도 한 소절 정도를 불러줬다.
나 그걸 들으면서 무언가를 참듯이 웃었다.
숭배하는 사랑에 관하여
가로등 불빛마다 머리를 박아대는 벌레에 관하여
붐을 일으킨 드라마의 사회적 영향에 관하여
범선은 모른다.
우주의 일은 이것보다 크고 중요하다.
지구의 일은 지구인이 해결해야 한다.
지구의 시간으로 작고 미욱한 것들이 잠들 때다. 인간의 일을 하며 나는 로맨스를 드라마를 힙합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주먹 속에서 내달리는 범선이 유성처럼 달을 지나갔다고 했다. 네가 어딘가에 부딪혀 이쪽으로 튕겨 나오길 바라며 나는 하늘의 바닥인 천장을 본다.
서재진
비참하다가 찬란해지는 삶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2020/06/30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