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영화 보기



   조그만 영화관에서는
   조그만 자리에 구겨 앉아
   조그만 화면으로 영화를 보죠
   자막도 없는 이국의 영화
   그들의 언어를 듣습니다
   화가 났군요
   울컥했군요
   영영 잊었군요
   이 정도밖에 저는 모르겠군요
   너는 졸고 있습니다
   고개를 앞뒤로 꾸벅이다
   때론 옆 사람에게 머리를 기대기도 합니다
   어째서 내 쪽이 아니라
   이국의 관객 쪽으로 머리가 쏠리는지
   나는 잠시 고민합니다
   그쪽이 편한 걸까요
   그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내 어깨는 좁고
   녹색 코트의 면은 까끌까끌하고
   네가 내게 기대면 내 마음도 네게 기대고
   그러다 보면 네 마음은 어쩐지 멀어질 것 같고
   나는 쓸쓸하게 거리를 걷고
   둘 사이의 간극은 더욱 극명해지고
   그럴지도 모르니까 왜냐면
   더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저 배우는 언제부터 수면 위에 떠 있었을까요
   평화로워 보이네요 그래서 속을 알 수 없네요
   불투명하네요 그래서 선명하군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쩌면 끝나고 나서도
   너는 잠에 빠져 허우적거리겠죠
   내게는 끝끝내 기대지 않겠군요
   정말? 네가 잠꼬대합니다
   나는 흠칫 놀라서 뭐가? 묻고
   정말로? 네가 다시 말하고
   나는 재차 무엇이? 묻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영화는 진행 중이고 끝이 언제인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고
   너도 영화도 대체 내게 왜 이러는지
   이러지 마, 이러지 말어 말하고 싶지만
   갑자기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너는 아직도 잠에 취해 고개를 끄덕이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빠져나갑니다
   붉은 계단이 잠시 낮아진 것 같군요
   그런 건 현실적이지 않아서 현실이에요
   여전히 내 어깨가 좁다는 것
   녹색 코트의 모직이 거칠다는 것
   이런 내게 어깨를 기댈 사람이 어딨겠어요
   잠이 덜 깬 네가 내 왼쪽 어깨에 손을 올려요
   이제 끝난 거지? 말해요
   너의 잠긴 목소리가 나를 데려가요
   눈보라가 부는 파란 지붕 밑으로
   나는 그곳에서 앉아 있고 서 있고 누워 있어요
   멍하게, 영원히 멍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그곳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소리가 들려도 낯설어서 알아듣지 못해요
   언어들이 엉거주춤하게 귓바퀴에 모여 앉았군요
   내게 닿은 흰 손가락과 닮은
   모닥불도 엉성하게 피웠네요
   깨끗하군요
   먹먹하군요
   애초에 본 적 없는 영화처럼
   알 수가 없군요
   보고도 잊힌 영화처럼
   그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정은 그런 사람이다



   그것이 정이 타는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정은
   모퉁이에 위치한 약국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의 지각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간단한 연락도 없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을 조종하는 것은 머릿속에 사는 두 마리의 고양이다
   그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고철 같은 레버를 두고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려 싸운다
   싸움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우리는 잔치국수를 먹으러 가다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로 끼니를 때웠고
   고운 자두를 고르던 중에
   쪽빛 털실 뭉치를 사서 돌아왔다
   그때마다 정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싸움에서 지는 건 언제나 정이었다
   정은 그 패배에 “또 휘둘렸어”라고 말하곤 했다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정을 끌어안았다
   껴안을수록 숨은 옅어졌다

   정은 어두운 천장으로 털실 뭉치를 던졌다가
   되받기를 반복했다
   기분이 별로야
   왜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어 그래서 별로야
   비가 엄청나게 내렸으면 좋겠어
   밖에 나갈 엄두도 안 나도록
   그럼 뭐 하려고?
   너하고 집에서 빗줄기를 보는 거지
   그것도 좋겠다
   그럼 다 씻겨 나갈 거야
   아무 생각도 안 날 것 같아
   그 정도로 마음이 답답해?
   산책하러 나갈까
   아냐 아까부터 비가 오고 있어
   무수한 비가 모든 걸 씻어내리고 있어
   정은 커튼을 치려는 나를 뒤에서 안는다
   그렇게 나에게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촘촘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정의 오토바이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선 정의 모습이 보인다
   내 앞에서 오토바이를 세운 정이
   뒤에 타라고 손짓한다
   내가 다가갈 때마다 정은 오토바이를 앞으로 움직인다
   뒷좌석은 닿을 듯 말 듯 내게서 도망친다
   이 간격 속에서 이상한 안도를 느낀다
   뒷좌석에 올라타 정의 허리를 꼭 붙잡는다
   고양이들은 이따금 사로잡았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법이다
   정이 손잡이를 돌리면
   우리가 달려 나간다

이자켓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대체로 습관적이다. 기발한 것조차 말이다. 일상은 오래도록 버려진 채 외면받았다. 고성처럼 남아 있었다. 이제는 그 풍경이 달라 보인다.

2020/06/30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