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이다



   외국인의 집주인은 외국인을 불러 차를 대접했다 가족 앨범을 보여주었다 낡아서 양피지처럼 된 사진들을 꺼내 보이며 이건 우리 어머니, 이건 오빠, 다 죽었어, 전쟁, 전쟁 때문에, 전쟁을 이야기할 때 집주인은 외국인의 언어를 썼다 전쟁, 죽어, 아파, 심장, 외국인은 전쟁이란 단어만으로도 집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외국인이 태어나기 전에 외국인의 나라가 일으킨 전쟁,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용서를 원했다, 우리는, 용서

   라고 말하며 외국인은 우리와 함께 밥을 먹었다 이해할 수 있어, 집주인은 많이 아팠을 거야 고통스러웠을 거야, 물에 끓여 푹 삶은 양배추를 먹으며 아시아의 요리법은 이렇구나 물에 푹 삶은 양배추가 이리도 맛있을 줄 몰랐어 잘 먹는 외국인

   우리는 외국인을 좋아했다 외국인 앞에서 상냥했다 외국인은 우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가 외국인의 언어를 써주었다 우리끼리 우리나라 말을 쓰면 외국인은 가만히 양배추를 씹었다

   우리나라 말 어때?
   물으면 외국인은 가만히 웃으며 답했다
   너희들의 언어는 듣기 좋다고
   악센트가 옅어서
   물처럼 부드럽다며

   그날 우리는 기분이 좋아서 우리나라 말을 많이 썼다 같은 언어를 편히 쓰며 우리는 웃는 표정을 풀었다 무표정하게 우리는 툭툭 말을 빠르게 뱉었다 외국인은 알까 우리가 이렇게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을
   천변에 앉은 돌멩이처럼, 물비린내 나는 뉘앙스를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손님도 주인도 아니니까 무례할 수 있다

   갑자기 외국인이 울음을 터뜨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데도
   무슨 일이니 너희는 서로를 미워하고 있니
   내가 잘못해서이니 나 때문이니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간간이 물을 마시면서 말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



   어느 날은
   꿈이 성가셨다

   무턱대고 쌓이는 꿈을 자루에 쓸어 담았다
   자루는 단단하다 품위가 있다

   자루 속 꿈속 너는
   들짐승에게 절반쯤 뜯어먹힌 몸

   얌전히
   내게 기대앉아 있길래
   숲속 티파티인 줄 알았어

   말하면
   달그락거리는 접시들

   움직이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버릇부터 고쳐야 해
   우리들은

   저마다의
   흔들리는 검불

   밟고 지나갔다

   고통스러운 사람 옆에 고통 지워나가는
   사람
   하나

   하는 일은 같았다

   뜨거운 수프를 마시고
   잔불을 쬐고

   타다 만 삶에도 기쁨이 남아 있다니

   재를 뒤적거리면

   나는 나로서 거무스름해지고

   어두운 쪽으로 접히는
   숲

   아름다운 것들이 발밑으로 모여들면

   두 사람이
   주워서
   나무 위에 달아놓았다

   높이높이

   매달려 흔들리는

   뒤꿈치들

   상처투성이
   뒤꿈치들

   쟁강거리고

   꿈속에선
   쥐기 반사가 끝나기도 전에 입술이 먼저 쪼개졌다

   부드러운 가죽을 입에 덧대면
   맴도는 노래에는

   사랑이 꽤 녹아 나왔다

   별 뜻 없는 허밍

   듣고 우는 사람 보니
   꿈일 수밖에

   눈앞의 일 말고는 깜깜이었던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우리는 아무것도 이 눈에 담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 눈 밖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더 알려주세요 그것으로 족합니다


   모두가 모두를 여러 갈래로 땋는다
   길이 뿌리처럼 얽혔다 갈라졌다

   텅 빈 자루
   끌고

   흙길 기어가는

   두 사람
   있었다

윤혜지

‘사랑은 두 뺨을 갖고 있고 자주 얼었다 녹는다’로 시작되는 시를 쓰고 있다. 물론 실패 중이다.

2022/02/22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