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이었다. 지금도 겨울이지만 한 달 전 역시 겨울이었다. 그날 나는 퇴근길에 어떤 여자의 만두를 훔쳐 먹었다. 그리고 한 달 내내 그 일을 잊지 못했다. 에이포 용지 두 장 분량으로 그 일을 쓰기까지 했다. 나는 왜 자꾸 현금이 필요해지는 걸까.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저녁 약속을 잡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나는 컴컴한 역 광장을 가로질렀다. 예보도 없이 싸락눈이 내렸다. 정말이지 추운 날이었다. 손을 주머니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었다. 어깨를 움츠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바로 갈 수도 있었다. 밥때였으므로 식당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현금인출기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 대의 인출기가 나란히 서 있는 곳이었다. 3번 출구 앞 광장 건너, 영프라자 건물 1층, 국민은행 현금 부스. 만두는 거기에 놓여 있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 현금인출기 위에.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방금 쪄서 방금 포장한 게 분명했던 냄새와 열기가. 거기 든 게 만두라는 걸 확신할 때의 슬픔이. 그날 저녁의 허기가.
   만두를 발견하고 나는 어떻게 했던가. 지갑을 닫고 조용히 물러나와 부스 구석의 영수증 파쇄기 옆에 섰다. 그리곤 계속 만두를 쳐다봤다. 거의 삼십 분 동안, 나는 기다렸다. 만두를 두고 간 사람이 나타나기를. 혹은 나타나지 않기를.
   모든 건 CCTV에 찍혀 있을 것이다. 현금인출기 부스 안에는 CCTV가 있기 마련이니까. 앞서 말했지만 나는 에이포 용지에 그날 일을 이미 한 번 썼다. 그런데도 다시 그날 얘기를 하는 이유는 한 달 만에 내가 그 현장에 다시 왔기 때문이다. 영프라자 1층 국민은행 현금 부스에.
   그날 CCTV에 찍힌 내 모습이 어땠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힘들다. 내겐 나를 가려줄 어떤 장치도 소품도 없었다. 현금 부스 CCTV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쓰곤 하는 모자나 마스크, 이런 것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 머플러도 없었고 갑작스런 한파를 막아줄 패딩도 없었다. 나는 앙상한 모직 코트만을 걸치고 있었고, 글루텐이 부족했다. 거의 2년 동안이나 글루텐을 조금도 섭취하지 못했다. 사는 낙이 전혀 없는 얼굴로, 싸락눈을 맞아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들러붙은 채, 파쇄기 옆에 나는 서 있다. 만두만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서서는 깨닫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만두였음을. 그 분명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에 억울해하면서, 어이없어하면서, 마침내 만두 앞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그날 얘기를 좀 더 이어가보자면 이렇다. 결국은 만두 주인이 나타났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삼십 분을 기다린 내가 드디어 만두 봉지를 집어들고 뒤를 돌았을 때, 어떤 여자가 막 문을 밀고 들어왔다. 여자는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었고, 점퍼 모자를 세워 쓰고 있었다. 모자 위엔 싸락눈이 좁쌀처럼 쌓여 있었다.
   점퍼 모자는 내가 들고 있는 만두 봉지를 쳐다본 뒤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분명하게 나를 보면서, 자기가 이곳에 만두를 두고 갔다는 말을 두 번 반복했다. 마치 나한테 만두를 맡겨놓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잡아뗐다. 그런데요? 이런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왜 잡아뗐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한번 잡아떼자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만두는 간발의 차로 내 손안에 들어왔고, 여자는 나를 의심하고 있었고, 나는 기분이 나빴다. 내가 들고 있는 게 자기 만두라고 확신하는 여자의 태도가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봉지 안에서 온기가, 만두의 온기가 올라와 내 손을 감싸쥐었던 것이다. 자칫하면 눈물이 날 수도 있었다.
   그때쯤엔 나는 그 봉지가 해성 만두 봉지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내 오랜 단골집. 아는 사람들만 아는 숨은 맛집. 2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일주일에 서너 번은 들르던 곳. 퇴근을 하고 지하철에서 내리면 나는 마을버스를 바로 타지 않고 역 광장을 가로질러가 영프라자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해성 만두를 먹기 위해서.
   좁은 가게였다. 벽을 보고 앉을 수 있는 일인석이 세 개였다. 대개는 포장을 해갔지만 빈자리가 있으면 앉아서 먹고 오기도 했다. 해성 만두 벽에는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거기엔 와이파이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아직도 해성 만두의 와이파이 비번을 기억하고 있다. 0000000gotjd. 처음 시작되는 0에서 끝나는 0까지 연필로 포물선이 그려져 있고 선 위엔 7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해성 만두의 단골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0이 몇 개인지 헷갈릴 손님들을 위해 0이 일곱 개라고 써 놓는 주인. 그런 주인이 빚은 만두가 어떻게 안 맛있을 수가 있을까. 안 따뜻할 수가 있을까.
   진원씨와 만날 때, 우리는 종종 해성 만두에 갔다. 진원씨는 나만큼 해성 만두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나한테 놀러올 때, 해성 만두에 들러 만두를 포장해다 주곤 했다. 진원씨와 만나는 동안 나는 진원씨한테 일곱 차례에 걸쳐 총 560만 원을 빌렸고 그중 480만 원을 갚았다. 남은 80만 원을 아직 갚지 못했을 때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진 얼마 뒤, 나는 진원씨가 꼭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80만 원을 안 갚은 게 걸려서 몇 번 톡을 보냈지만, 전부 씹혔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어떤 ‘독’ 때문에 진원씨가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다고 진원씨가 돌아오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나는 나를 완전히 갈아엎고 싶었다. 그래서 한 월간지에서 주관하는 해독단식캠프에 참여했다. 거기서 어떤 강사한테 ‘글루텐프리’만이 우리를 정화시켜줄 거란 말을 들었다. 나는 깊이 공감했다. 만두를 포함한 밀가루 음식을 모두 끊었다. 내 안의 독을 없애기 위해서.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어떻게 되었나. CCTV가 내려다보고 있는 곳에서, 모르는 여자와 만두를 두고 대치하게 되었다.
   “봉지 안 좀 봐도 돼요?”
   점퍼 모자를 쓴 여자가 말했고,
   “왜 그래야 되죠?”
   나는 받아쳤다.
   이 대사도 에이포 용지에 썼지만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를 느낀다. 그 여자가 얼마나 만만치 않았는지를 설명하고 싶다. 여자가 나타나 나를 의심했을 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는지. 얼마나 오래 참아왔는지. 파쇄기 옆에 서서 만두를 쳐다보면서 나는 한편으론 만두를 두고 간 사람을 궁금해했었다. 이런 컴컴한 시간에 만두 일 인분을 포장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저녁을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잃어버린 만두를 찾으러 추위를 뚫고 달려오는 사람이라면 일곱 개의 0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만두 주인한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말들이었다.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오고 말았지만.
   “두고 가신 게 이 집 만두 맞아요?”
   나는 해성 만두 상호가 보이도록 앞으로 봉지를 들어올렸다. 그러곤 점퍼 모자에게 말했다. 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여기에 들러 이걸 산다고. 오늘도 그랬을 뿐이라고. 마치 나 말고는 아무도 해성 만두를 살 수 없다는 듯이. 점퍼 모자는 단도직입적이었다. 자기는 오늘 거기에 처음 갔다고 했다. 그래서 계산할 때 만둣집 명함을 봉지 안에 넣었다고 했다. 그러니 봉지 안에 명함이 있는지만 보겠다는 것이었다.
   싸락눈은 점점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부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사람들은 개처럼 눈을 털었다. 돈을 뽑고 나선 점퍼 모자와 나를 구경했다. 어쩌면 휴대폰으로 찍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물릴 수가 없었다.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속고만 사셨어요?”
   이어서 말했다.
   “CCTV 돌려 보시든가요.”
   다시 생각해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트레이닝 팬츠에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다는 것 말고, 나는 여자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모자 때문에 인상이 어떤지 눈빛이 어떤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나이도 가늠이 안 됐다. 몸집은 나와 비슷했다.
   점퍼 모자는 아무런 말을 않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졌다. 내가 저 여자를 자극한 건가? 아닌가? 헷갈렸다. 이런 식의 뻔뻔한 태도를 저 여자는 그냥 못 넘기는 사람인가? 귀찮아서라도 그냥 넘어갈 사람인가? 짐작이 안 됐다. 저 여자가 살면서 무엇을 참아왔는지, 무엇을 기다려왔는지, 무엇에 빡치고 무엇에 눈물이 고이는지, 내가 만두를 들고 밖으로 나가면 따라올 사람일지, 욕이나 좀 하고 말 사람일지, 행동이 예측이 안 됐다. 하지만 거기에 그러고 서 있는 것도 너무 힘이 들어서, 나는 만두를 든 채로 부스 문을 밀어젖히고는 밖으로 뛰쳐나와버렸다.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걷기 시작했다.
   거리는 한파로 얼어붙었고 입을 뗄 수도 없을 만큼 추웠다. 맨얼굴로 싸락눈 알갱이가 달려들었다. 나는 만두를 품에 안은 채 최대한 걸음을 빨리했다. 부츠 굽이 너무 높게 느껴졌다. 배가 고파서 손이 떨렸다. 놀부 부대찌개를 지나고 이디야 커피를 지났다. 사람들은 태평하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김가네 김밥을 지나고 명가원 설농탕을 지났다. 점퍼 모자가 나를 따라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싶어서 뒤를 돌아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점퍼 모자가 진짜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맥박이 몇 배로 뛰었다. 나는 내가 여자를 자극했음을 깨달았다.
   걸음을 좀더 빨리하면서 나는 현금 부스에서 내가 했던 말들을 복기했다. 어떤 말이 여자를 자극한 건지 생각하고 생각하다, 여자가 속고만 살아온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점퍼 모자를 세워 쓰고 나를 쫓아오는 저 여자는 속고만 살아왔다. 속고만 살아왔기 때문에 더이상은 속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 속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만두가 문제가 아니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이상, 나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절도죄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었다. 그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나는 만두녀, 만두녀가 돼 있을 수도 있었다.
   여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에 취약하고 무엇에 타격을 받는지. 무엇을 꺼려하는지. 산 채로 찢기는 게 얼마나 가능한지. 여자가 그걸 알 거라는 사실이 나를 더 두렵게 했다. 이대로 내처 집까지 가면 여자는 내 거주지도 알게 되리라. 나는 여자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아픈 곳을 찔러서 미안했고, 너무 아프게 찌른 걸까봐 무서웠다. 할 수만 있다면 만두 봉지에 손을 뻗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저만치로 약국 불빛이 보였을 때 나는 결심했다. 저 앞에 도착하면 멈추기로. 여자한테 만두를 돌려주고 사실대로 말하기로.
   하지만 나는 약국을 그냥 지났고 주유소도 지났고 편의점도 지났고…… 내가 걸음을 멈춘 건 편의점 옆 파리바게뜨 건물 앞에서였다. 휴대폰 안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눈앞으로 천천히 들어올렸다. 다시 돌이켜봐도 그날은 여러 가지로 놀랍고 이상한 날이었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는데, 진원씨였다. 헤어지고 처음으로 진원씨한테 메시지가 온 것이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순간이 이런 때에, 그러니까 식은 만두를 품에 안고 어떤 여자한테 쫓기고 있을 때 찾아온 건 내게 행운이었을까 불운이었을까. 나는 뒤를 봤다. 저쪽 건널목에서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점퍼 모자가 보였다. 신호가 바뀌면 점퍼 모자는 나를 바로 따라잡을 것이다. 진원씨한테 답을 할 때까진 일단 점퍼 모자를 따돌려야 했다. 2년 만에 온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나는 빵집 담벼락 쪽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벽에 등을 붙이고 진원씨한테서 온 메시지 창을 열었다.
   -잘 지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너무도 자주 그려보던 말이었는데 막상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두 번째 메시지가 왔고,
   -저녁 먹었니?
   그 말에 나는 기어이 목이 메고 말았다.
   나는 저녁을 못 먹었다. 저녁을 못 먹고, 쫓기고 있다.
   문제는 나에게만 생긴 게 아닌 것 같았다. 진원씨한테도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그것도 급한 일이.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나는 이 상황도 자주 상상했다. 진원씨가 어려운 일이 생겨서 나한테 도움을 청하는 상황. 나한테 완전히 질려서 떠났기 때문에 진원씨가 용건 없이 연락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진원씨가 연락을 해온다면 그건 정말로 급한 도움이 필요한 때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진원씨는 나한테 그래도 됐다. 나는 답을 보냈다.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 말해, 진원씨.
   이어서 이렇게 보냈다.
   -난 진원씨한테 빚이 있잖아.
   그 말을 하고 나니 다시 목이 멨다. 그 말에 담긴 내 마음을 진원씨는 알까? 비유이기도 하고 비유가 아니기도 한 그 복잡한 마음을 진원씨는 알까?
   -지금 바로 시간 좀 돼?
   진원씨가 물었다. 물론 된다. 진원씨는 지금 휴대폰 액정이 깨져서 수리를 맡긴 상태라고 했다. 컴퓨터로 접속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급히 필요한 건 구글 기프트 카드 네 장이었다. 20만 원권 네 장.
   이제 내겐 만두보다 더 급박한 일이 생겼다. 점퍼 모자와 마주치기 전에 카드를 사서 코드 번호를 진원씨한테 전송해주어야 했다. 나는 빵집 담벼락에서 고개를 돌려 길을 살폈다. 점퍼 모자가 주유소를 지나 편의점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편의점 출입문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니까 내가 편의점으로 들어간 건 구글 기프트 카드를 사기 위해서였다. 현금으로만 구입 가능하다고 해서 편의점 인출기로 가 80만 원을 인출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점퍼 모자가 나를 발견했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서 있는 인출기 앞으로 걸어왔다. 그 장면은 마치 슬로모션처럼 남아 있다. 세워 쓴 점퍼 모자를 제치면서, 얼굴을 드러내면서, 점퍼 모자가 나한테로 곧장 걸어오는 것이다. 왼쪽 품에 만두 봉지를, 오른쪽 손에 현금 80만 원을 든 나한테로.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벼른 얼굴도 아니었다. 점퍼 모자는 전혀 절박해 보이지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좀 짜증난 얼굴에 가까웠다. 저 여자가 왜 저렇게까지 집요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점퍼 모자와 말을 섞을 시간이 없었다. 진원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폰 액정이 깨져서 전화도 못 한 채 내가 코드 번호를 찍어 보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지 안을 보여달라는 말은 더 하지 않을게요.”
   점퍼 모자가 말했다. 대신 어떤 만두를 샀는지만 말해달라고 했다. 자신이 산 만두와 다르면 깨끗이 물러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다시 한번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죠? 하지만 나는 점퍼 모자한테 말려들었다. 여자의 말을 듣는 즉시 머릿속을 분주히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봉지에 든 게 어떤 만두인지 맞히기 위해서. 여자를 빨리 떨어내고 진원씨한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는 머릿속으로 해성 만두의 실내 풍경을 하나씩 불러냈다. 여전히 선명했다. 한쪽 벽면엔 기다란 일자 테이블. 테이블 윗벽엔 노란색 포스트잇. 그 안에는 여섯 개도 여덟 개도 아닌 일곱 개의 0이 있다. 그 포스트잇에서 고개를 들면 완도희망체로 메뉴를 적어놓은 벽걸이 나무판이 보였다. 2년이나 가지 않았지만 착오 없이 불러낼 수 있었다.
   고기 교자만두. 해물 만두. 빙화 군만두. 왕자 군만두.
   메뉴는 그렇게 네 개였다. 고기 교자만두는 매운맛과 순한 맛이 있었는데 매운맛은 만두소의 색깔이 붉은 탓에 얼핏 김치만두처럼 보였지만, 고기만두였다. 고기의 부드러운 육즙과 야채의 아삭한 식감, 씹을 때마다 은은히 감돌던 생강 향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게 내 품 안에, 지금 내 품 안에 있었다.
   현금 부스에서 만두를 발견했을 때에도, 만두를 안고 달릴 때에도, 만두를 돌려주기로 마음먹었을 때에도 나는 거기에 든 게 고기 교자만두(매운맛)임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떻게 아닐 수가 있을까.
   하지만 아니라면.
   점퍼 모자가 고기보다 해물을 좋아한다면. 찐만두보다 군만두 취향이라면. 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바빠?
   진원씨한테 다시 톡이 왔다. 시간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되어 내뱉어버렸다. 나는 고기 교자만두 매운맛만 먹는다고. 그러니 봉지에 든 건 당연히 고기 교자만두라고.
   내가 그 말을 했을 때의 여자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는데, 내가 맞게 말한 건지 틀리게 말한 건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여자의 머릿속을, 여자의 기분을, 조금도 알아챌 수가 없었다. 나는 급격한 불안을 느꼈다. 무력감의 구렁텅이 속으로 다시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그건 아주 익숙한 감각이었다. 어려서부터였을 것이다. 어디에 있든 나는 거기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지 귀신같이 알아챌 수 있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는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다녔다. 누가 나를 싫어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알아내면 화가 났고, 알아내지 못하면 불안했다. 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나 싫어해? 아님 나 좋아해? 말해줘. 제발 말해줘.
   점퍼 모자는 말해주지 않았다. 힌트조차 주지 않았다. 들켜버린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여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음 행동을 개시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패배했고, 주도권은 여자한테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나는 휴대폰을 힘주어 쥐었다. 진원씨와도 이런 때가 있었다. 진원씨가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던 기간. 모든 게 진원씨한테 달려 있던 기간. 나는 진원씨한테 매일 애원했다. 차라리 나를 싫어한다고 말해달라고, 매일매일 진원씨를 괴롭혔다.
   진원씨.
   나는 더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열었다. 카톡 창으로 들어갔고, 기적처럼 연락이 닿은 전 애인한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니? 날 떠나서 얼마나 좋았어?
   그 말을 하고 나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 망친 것이다. 나는 망쳐버렸다. 당신만 아니었다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점퍼 모자 당신만 아니었다면. 나는 입술을 문 채 편의점 계산대로 걸어갔고, 인출한 현금을 내밀었다.
   “구글 기프트 카드 팔십만 원어치 주세요.”
   창밖에선 싸락눈이 느린 속도로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코트를 여미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초저녁보다 매서웠다.
   “구글 카드는 왜 산 거예요?”
   점퍼 모자가 따라 나오며 물었다. 나는 대답을 안 하고 집 방향으로 걸었다.
   “잘 아는 사람한테 카톡 왔죠? 프로필 사진도 이름도 완전 똑같죠? 휴대폰은 수리 맡겼을 거고.”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나는 속고만 산 여자한테 물었다. 사거리 건널목 앞이었다. 도로 연석을 밟고 서서 사람들이 신호등을 쳐다보고 있었다. 만두도 구글 카드도 아직 내게 있었다. 한참을 서 있다 점퍼 모자가 허공을 보며 말했다.
   “이건 누가 봐도, 피싱이잖아요.”
   “……”
   “설마 모르는 거예요?”
   “진원씨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점퍼 모자가 피식 웃었다.
   여자가 어떤 말을 해도 좋았다. 진원씨를 욕해도 좋았다. 사실 나는 누가 진원씨를 좀 욕해줬으면 싶었다. 차라리 어느 카페로 같이 들어가 진원씨가 어쩌다가 2년 만에 피싱 사기범이 되었는지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왜 나한테 사기를 치는지. 진원씨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진원씨가 왜 그러는지.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 말만 아니라면 어떤 얘기도 괜찮았다. 그 말만 아니라면. 하지만 점퍼 모자는 나를 보았고, 만두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내게 그 말을 했다.
   “그 사람은 진원씨가 아니에요.”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너무 멀쩡하게 두 발로 걷고 있었다. 나는 왜 이러는지 묻고 싶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다.
   나한테 왜 이래요? 나한테 왜 이러냐고. 나한테 왜 이러는데. 나한테 왜 이래 진짜!
   점퍼 모자가 내 팔을 잡았다. 그녀는 너무 좋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갑옷 같은 롱패딩을. 내겐 그런 게 없었다. 나는 점퍼 모자를 뿌리쳤고, 파란불이 3초 남은 횡단보도를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싸락눈. 빨간불. 운전자 하나가 창문을 내리고 나한테 삿대질을 했다. 나는 그쪽으로 손등을 세우고 가운뎃손가락을 펴 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다 먹어라. 너 다 먹어. 남자가 약이 올라 미치려고 했다. 도로 한중간에 차를 두고 쫓아오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길을 마저 건너 익숙한 빌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건물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걸어오를 때마다 몸 안에서 맹렬한 감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영프라자 현금 부스에서 날 깨웠던 그것. 한 달 뒤에도 어쩌면 그 후로도 내가 못 잊을 그것.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외투도 벗지 않고 식탁으로 가 앉았다. 코트 품 안에서 만두를 꺼내 허겁지겁 포장 용기의 고무줄을 풀었다. 만두는 식어 있었고, 쏠려 있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안엔 코끝이 아릴 정도로 매운 고기 교자만두 여덟 개가 들어 있었다. 나는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단무지도 나무젓가락도 간장도 필요 없었다. 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다 씹기 전에 하나를 더 넣었다. 미어지도록 또 하나를 넣었다. 또 하나. 또 하나.
   나는 앉은자리에서 만두를 남김없이 먹어치웠고, 그 순간의 포만감과 슬픔을 생생히 간직했다.

최은미

「이상한 이야기」는 2년 전에 쓴 초단편 소설 「이 맛」에서 기본 설정을 가져와 썼습니다. 그 소설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서장원 작가님의 초대를 받고 쓰기 시작했는데, 쓰면서 서장원 작가님의 단편소설 「망원」과 작은 부분이라도 닿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20/05/26
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