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가 눈을 뜨는 이유 하나 더



   틈이란 틈은 전부 찾아다니는
   빛 때문에
   오늘 아침에도 조개가 눈을 뜹니다

   조개가 눈을 뜨니
   바다의 관상이 변합니다
   문틈에서 흔히 발견되는 관상입니다

   내 마음을 몰라줄 관상입니다
   관상대로 움직일 관상입니다
   어느 투정도 순화시켜 받아들일 관상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을
   그런 관상입니다
   그러니 내 진심을 모르지요

   별거 아닌 일로 바뀔 관상이기도 합니다

   밤이 오면 사라지는 빛 때문에
   조개는 눈을 감을 테고, 자연스레
   바다의 관상도 다시 변할 겁니다

   눈을 감으니 굉장히 순한 관상입니다
   이목구비를 바꿔놓아도 눈치 못 챌
   그런 관상입니다

   슬쩍
   바꿔봅니다

   바꾸면서 어깨도 건드려 보고
   몰래 손도 잡아봅니다





   귤의 이름은 귤, 바다의 이름은 물



   바다를 보면 어쩐지 번거로워져요
   멋지고 놀라워도 어쩐지
   번거로워져요

   봄을 꽃이나 감동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봄이라 부르는 것처럼

   바다도 서쪽과 동쪽으로 구분하지 않고
   파랗다거나 칠흑이라 표현하지 않고
   그냥, 물이라 부르면 될 텐데
   번거롭게도 바다 앞에선 생각이 많아져요

   바다는 트럭도 삼키고 고양이도 삼키지만
   중력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져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밤마다 중력을 이기는 달을 보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에요

   그때마다 나는 달빛 아래서 성별도 없는 달을
   손으로 찢고 그을어버리기를 바라고 원하게 돼요

   바닷물이 닿았던 골목길을 한 줄 한 줄 모아서
   땋다 보면 땋는 과정에서 열 번의 한숨 끝에
   준비 없이 비를 맞게 돼요

   홀딱 젖었고 골목길에 끊긴 곳이 없었으므로
   바다와 관련된 나의 모든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돼요

   거울을 보면 수국의 슬픔이 서 있어요

   귤이 내게 준 것이 귤인 것처럼
   봄이 내게 준 것이 봄인 것처럼
   소나기가 내게 준 것이 물인 것처럼
   바다가 앞으로 내게 줄 것도
   명확한 무언가였으면 좋겠어요

이원하

앉고 싶은 책상이 있어요. 조금 더 시간이 흘러 그 책상에 앉게 된다면, 마음 두고 갈게요.

2019/05/28
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