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하는 시
1화 곧 만나자, 내 시를 줄게
우리 모임의 이름은 ‘만나서 시 쓰기’다. 우리는 세 사람이다. 우리는 시인이고 친구들이다. 종종 만나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누가 만나서 밥만 먹지 말고 시도 쓰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만나서 시 쓰기’가 되었다. 밥 먹는 거랑 시 쓰는 거 말고 재밌는 거 뭐 없나. 고민하다가 이걸 하게 되었다. 이건 ‘선물하는 시’다. 시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시를 선물한다는 게 뭐지? 선물은 또 뭐지? 야, 선물은 일방적으로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거야.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 우리 시를 받고 좋아하든 말든 간에 우리는 우리 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그럼 좀 폭력적일 수도 있네. 도를 아십니까처럼. 이대로는 지옥 가요 믿고 천국 가세요처럼. 사랑의 시작에는 착각이 있지. 네가 나랑 똑같이 생각할 거라는 착각, 폭력. 그런 다음 우리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우리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은 그때 정말로 시작하지. 우리가 나눠주는 시가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야? 아니 그냥 선물. 그렇구나. 어디서 나눠줄까? 사람 없는 데서.1)
사람 많은 데서.
양화진 공원 밑에서, 망원역에서, 맛집 앞에 줄서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다 보니까 시 같다. 이거 그냥 시라고 해도 되겠다. 우리 모임은 ‘만나서 시 쓰기’다. 지금 쓰고 있어.
선물하는 사람의 뒷모습.
선물하는 사람의 손.
선물하는 사람의 귀.
선물하는 사람의 어깨.
선물하는 사람의 고뇌.
근데 어떻게 나눠주지? A4 용지에 인쇄해서 나눠주자. 스티커로 만드는 건 어때? 현수막이 생각보다 싸대. 명함은 어때? 그런데 이런 것도 생각해야 돼. 시를 한 구절만 자르거나 귀퉁이만 잘라서 주는 건 싫어. 시는 전체 구조가, 형식이 중요하니까.
엽서도 괜찮을 것 같아. 현수막 제작비는 네가 알아봐. 전단지처럼. 치킨 광고처럼. 아파트나 빌라에 붙이고 싶어. 양면 제작해야겠네. 앞면에 시집 표지 뒷면에 시 한 편. 오 좋아. 좋은 생각이야. 생각은 다 된 것 같아. 인스타그램 아이디 만들어서 피드백도 받고 활동도 기록하자. 만들었어.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gift_poem. 재밌겠다. 5월 중에 나눠주자. 그래 그러자. 그럼 끝.
만나서 시 쓰기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우리는 세 사람이다. 우리는 시인이고 친구들이다. 종종 만나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누가 만나서 밥만 먹지 말고 시도 쓰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만나서 시 쓰기’가 되었다. 밥 먹는 거랑 시 쓰는 거 말고 재밌는 거 뭐 없나. 고민하다가 이걸 하게 되었다. 이건 ‘선물하는 시’다. 시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2018/06/26
7호
- 1
- ‘만나서 시 쓰기’는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시인이 한다. 시인들에게 시란 문예지에 발표하는 것, 그러다 모이면 시집이 되는 것이다. 꼭 그래야만 할까. 시를 판매한다고 생각하면 이것들 말고 뭐가 또 있는지 잘 모르게 되어버린다. 판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눠준다고, 배포한다고 생각해봤다. 어차피 세상엔 현대시, 순수문학으로서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려고 나눠주는 것은 아니다. 위로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왕에 썼으니까, 시의 쓸모를 생각해보는 것. 누군가의 가방 구석에 구겨진 채로 남겨지는 것. 버려지기도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선물하는 시’다.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시 말고. 우리가 좋아하는 우리 시를 나눠주고 싶다. 어차피 제일 좋은 선물은 내 마음에 드는 선물이니까. 줬다가 나중에 몰래 가서 훔쳐오고 싶은. 그런 것이 선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