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맑은 라벤더 빛
   그런 바다가 흐르는 세계도 존재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이 방에선 바다가 보이지
   귀틀이 없는 창문에 몸을 기대면

   우는 얼굴을 본 날에는 해변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도 보이고 내가 징그럽게 굴면 지구가 네모난 것처럼 물러서는 모습도 보여

   그래서 우리는 이 방에서 오래도록 살았어

   이건 해적이 마시는 술 너는 홍차에 위스키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잖아
   나는 과일 상자를 뒤집어쓰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춤을 추었고

   그럴 때가 행복했지

   성실하지 않아도 좋았어 아침에 조깅 같은 건 아무도 하지 않는 나라 우리는 괴로운 사실들을 볼링핀처럼 늘어놓고 무화과를 굴려 그것을 넘어뜨리고 아무것도 넘어지지 않았고 스트라이크! 하고 소리를 지르고

   웃고 토하기 직전까지 또 웃고

   체크아웃해야지, 늦지 않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언제나 내 몫이지 너는 잔인한 말을 피하는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내가 상자를 벗고 땀에 얼룩진 얼굴을 손등으로 씻으면서 말했을 때

   “너 때문이야, 이 모든 꿈이 끝나는 건.”

   체크아웃 대신, 나를 미워하는……

   너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너를 사랑하고 견디는 내 오래된 방식대로

   화가 난 너를 두고 가방을 싸고 찻잔들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귀틀이 없는 창문을 걸어잠그고

   나는 슬퍼지고
   잠근 창문 바깥으로 바다는 흐릿한 먹색이 되고
   분명 춤을 출 때는 발목에 넘실거리던 바다가 저만치 도망가는 것을 보고





   연인들의 히치하이킹



   나랑 같은 표정을 하고 자자 옆으로 돌아눕지 말고

   선언은 발간을 멈췄다
   더이상 전복할 사랑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얼어붙은 바다를 걸으러 가자 영원히 죽지 말고

   올바르게 앉아 운전을 하는
   너 혹은 나

   피멍울이 생길 때까지 입을 맞출 것이라 고집을 부리고
   그것이 슬프다고 오해한다

   절벽과 급커브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트럭
   떨리는 주먹과 바람

   가장 불안한 화음으로

   사람보다 사슴들의 눈이 커지고
   깊어질수록 이상해지는 밤

   아주 멀리 가자 우리가 되어서 너와 내가 되지 말고

   숨이 멎을 것처럼 죄를 연습하고
   도로에 유일한 손님으로 나타나서
   차가운 손을 만진다

이유운

가끔 정답이 되는 사랑이 있고 그걸 시험 삼아 연습 중.

2021/05/25
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