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이것은 비행이 아니라 추락이다. 비행은 자의로 움직임이 가능하다. 추락은 추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밝은 빛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추락이다. 사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린다. 주변을 둘러싼 벽은 단단하고 서늘하다. 벽의 거친 표면과 작은 실금들. 물이 바닥에서부터 차오른다. 머리 위로 동그랗게 좁아진 하늘이 보인다. 벽이 가까이. 더 가까이 달라붙어 몸을 옥죈다. 물은 계속 차올라 목 언저리까지 올라온다. 점점 멀어지는 원형의 하늘. 시야가 흐려진다. 어둠만이 가득하다.
   습관적으로 머리맡을 더듬었다. 보름 때마다 밤중에 머리카락을 잘라가는 엄마 때문에 생긴 버릇이었다. 엄마는 적당히 손에 잡히는 대로 내 머리카락을 잘라갔다. 그 때문에 나는 머리를 일정 길이 이상 기르기가 어려웠다. 기숙사로 내려가는 날엔 제물로 바치듯이 엄마에게 머리카락을 내줘야 했다. 몇 달 치 식량인 양 엄마는 내 머리카락 몇 움큼을 잘랐다. 나는 어깨 위로 올라온 단발머리를 매만지며 새 학기를 실감했다.
   매트리스는 딱딱했다. 짐을 마저 정리하지 못하고 잠에 든 것이었다. 방안은 습했다. 땀에 엉킨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으며 일어났다. 중간에 잠을 깰 때면 꿈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떨어지는 꿈 해몽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 키는 더 이상 자랄 일이 없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일 뿐이었다. 해몽이라는 것은 엄마가 매달리는 미신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열린 창 틈새로 비가 들이치고 있었다. 창가 앞에 놓인 짐 가방에 빗물이 튀어있었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걸레로 창틀과 가방을 닦았다.
   룸메이트는 아직 입주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창문을 닫고 룸메이트 쪽 침대를 걸레로 훔쳤다. 간헐적으로 큰 천둥이 쳤다. 번개 때문인지 그리 어둡지 않은 밤이었다. 언제나 학기의 시작은 요란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센 빗소리와 천둥소리를 들으며 짐 가방에서 이불을 꺼냈다. 방금 닦은 침대는 창가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룸메이트 자리로 모든 짐을 옮기고 다시 잠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 안의 가구들을 다 닦은 셈이었다. 낮에 채워놓은 물건들을 반대편 가구들로 옮겼다. 천둥과 번개가 거의 동시에 쳤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렸고, 방안은 순간 환해졌다. 형광등이 방을 비추는 것과는 조금 다른 빛이었다.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여기저기서 사이렌이 울렸다. 복도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히 창가로 다가갔다. 기숙사 뒷동산에 있던 커다란 나무가 불타고 있었다. 기숙사 입구에는 잠옷 바람으로 나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나는 방안에서 우두커니 서서 불타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거세게 내리는 비에 불길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갈라지고 부러진 나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영혼이 존재하는 거라면 그 모습은 나무의 혼이 빠져나가는 것에 가까웠다. 까맣게 타죽은 나무는 사람의 관절로는 따라할 수 없는 정도로 괴이하게 꺾여 있었다. 나는 그리 높지도 않은 뒷동산 대추나무에 벼락이 떨어질 확률에 대해서 생각했다. 누군가 나무에 피뢰침을 꽂은 게 아니라면, 설사 피뢰침을 꽂아놓았다고 하더라도 가능성은 적었다. 단지 우연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적은 확률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기적이라 부르겠지. 나는 잠에 들지 못하고 짐 정리를 마저 끝냈다. 해가 떠오르자 비가 점차 그쳤다. 소란스러운 학기 첫날 아침이었다.
   학생들과 교직원들, 외부에서 온 기자들까지.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는 나무 주변에 출입금지 경고가 붙은 테이프를 둘러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사람들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 뜻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것은 징조에 가까웠다. 그 징조의 좋음과 나쁨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맹신하는 부류들도 생겨났다. 혹은 자신들도 벼락을 한번 맞아보겠다는 취지의 모임들도 생겼다. 학생들은 종종 학업 운을 빌거나 취업 운을 빌었다. 사람들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 기대어 점점 나태해지고 있었다. 본인의 노력과 성취 부분을 나무의 운으로 돌려 막은 것이었다.
   룸메이트는 벼락 맞기 모임의 한 사람이었다. 짐을 단출하게 풀어놓고는 방에 거의 드나들지 않았다. 방에 들어오는 날이면 긴 머리로 창백한 얼굴을 가리며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 의자를 빼놓거나 목욕 바구니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 등 물건의 위치를 바꾸어 놓아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않은 룸메이트는 거의 유령에 가까웠다.
   수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창가에 서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큰 나무였다. 벼락이라는 우연 한번으로 뒷동산은 신성한 구역처럼 여겨졌다. 흔해 빠졌던 대추나무는 신성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대추나무를 자연재해의 피해로 그저 운이 나빠 죽어버린 나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학기 중에 이따금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나의 안부를 묻기보다는 대추나무에 대해서 물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사진이나 나뭇가지, 주변의 흙 등을 보내 달라는 요청도 가끔 있었다. 엄마는 대추나무가 꼭 나의 소유인 것처럼 말했다. 하늘에서 너를 위해 내려준 신성한 나무야. 앞으로 공부에 막힘이 없을 거야. 내게 항아리가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너에게 나무를 내려준 거야. 네가 잘 간수해야만 해.
   나는 엄마 나이 마흔에 낳은 소중한 늦둥이였다. 엄마는 어릴 적 몸이 약했던 나를 보며 자신의 노산 탓을 하며 속을 앓았다. 엄마가 고열에 시달리던 나를 안고 찾아간 곳은 병원이 아닌 무당집이었다. 엄마는 끙끙 앓는 나를 방석에 눕히고 동자신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내 면역력은 체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병은 신령의 보호 아래 쫓아내야 할 악귀였다. 엄마에게 면역체는 신령이었다.
   “넌 촛불 같은 아이야. 바람에 휘둘려선 안 돼.”
   겨울이면 엄마는 내 목에 목도리를 단단히 감으며 일렀다. 주변을 빛내며 활활 타오르지만 한순간 입김에도 꺼질 수 있는 위태로운 사주. 점집에서 받아온 나의 인생이었다. 엄마는 그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했다. 관상이 좋지 못하다거나 눈빛에 뭔가가 어른거린다며 주변의 친구들을 차단했다. 엄마의 눈에 또래의 친구들은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끌거나 위협하는 존재였다. 내가 아프지 않은 것도, 어떤 성과를 이룬 것도 엄마는 신령의 덕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당집도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학 무렵 엄마가 자주 드나들던 무당집이 문을 닫았다. 무당이 명을 다한 것이었다. 엄마는 자주 냉수를 들이켰고 상심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신령님을 모셔왔다며 상체만 한 크기의 항아리를 가져왔다. 무당은 죽었어도 신령은 죽지 않고 그 집을 떠돈다는 식의 이야기와 함께. 항아리는 무당집 마당에 있던 김장독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우리 집 거실 한편에 쉰내가 나는 신령님을 모시기 시작했다.
   한번은 아빠가 항아리에 담뱃재를 떨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는 질색을 하며 하나뿐인 낭군님이라던 아빠를 집 밖으로 내쫓았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었다. 가족의 안녕을 위해 신령님을 모시는 것인지, 신령님을 모시기 위해 집이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엄마와 아빠의 거리가 조금 멀어지는 듯했다. 엄마는 갈수록 항아리 신령에게 집착했다. 나는 신령님이 우리 집을 해체하는 동안 더욱 방안에 틀어박혀 공부에 매진했다. 신령이 거짓이라는 것을 나는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내가 의과대학에 합격했을 때 엄마는 항아리를 부여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거 보라구. 우리 신령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심이 틀림이 없어. 주변을 밝힌다지 않았어. 네가 생명의 불을 밝힌다는 뜻이었던 거야.”
   엄마는 신령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다. 신령이 내 노력을 앗아간 것이다. 항아리를 당장에라도 부수고 싶었지만 항아리는 엄마의 세상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신령에게 질투를 느꼈다. 나는 입학 서류를 부여잡으며 다짐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인류에게는 과학과 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그 무엇이든 신령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을 엄마에게 보란 듯이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나는 책에서 인체 해부도 부분을 펼쳤다. 그림에 그려진 부분을 손으로 집어가며 근육의 이름을 외웠다. 창밖이 소란스러웠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지키겠다는 사람들과 학교에서 데려온 인부들의 대립이었다. 사람들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에워쌌다. 누군가 벼락 맞은 대추나무의 가치에 대해서 연설을 했다. 학교를 대표할 수 있는 교목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죽은 나무를 둘러싼 이 상황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험 기간이 코앞인데 그들은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그들이 밤새도록 확성기를 끄지 않고 시위를 벌이는 동안 나는 귀를 막고 더욱더 큰 소리로 뼈와 근육들의 이름을 외웠다.
   학생들의 의미 없는 농성은 끝이 없었다. 시험 거부자는 점점 늘어났다. 교내에 시험 거부자 징계에 대한 이야기가 떠돌았다. 처음엔 몇몇 맹신도 모임 학생들만 모였다가 이제는 대부분의 학생이 뒷동산 가득 모여 농성을 펼쳤다. 이후에 모인 사람들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지키겠다는 마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농성에 참여한 이유는 시험을 망쳤거나, 시험을 포기했거나, 혹은 마음 놓고 놀기 위해서였다. 시험 거부자들이 많아질수록 이번 중간고사 폐지는 사실에 가까워졌다. 학생들은 뒷동산에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농성을 즐겼다. 나는 학생들이건 학교 측이건 상관없이 한쪽이 어서 물러서길 바랐다. 빨갛고 노랗게 단풍이 드는 나무들 사이로 까맣게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문제의 나무. 바람에도 떨어뜨릴 낙엽이나 흔들릴 가지도 없는 볼품없는 나무. 소음의 중심은 언제나 대추나무였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 학교 측에서 절충안을 내놓았다. 학교 측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뽑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다만 나무를 뽑아 도장으로 만들어 골고루 나누겠다는 회유책을 내놓았다. 또한 추석 연휴를 포함해 보름간 휴교를 한 뒤 시험 거부자들에게 재시험 기회를 준다는 제안도 포함했다. 학생들은 뒷동산에서 내려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룸메이트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룸메이트의 멍한 눈은 벽 뒤의 그 너머를 향해있는 것 같았다. 룸메이트가 캐리어를 열고 모든 짐을 쑤셔 넣었다. 나는 지난번에 썼던 린스를 룸메이트에게 내밀었다.
   “괜찮아. 필요 없어.”
   룸메이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가냘프고 연약한 느낌이었다. 뒷동산에서 들렸던 농성 소리에 룸메이트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을까? 이렇게 약해 보이는 아이에게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무슨 의미였을지 궁금했다. 룸메이트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제 몸만 한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나갔다. 가구들은 처음 입주상태 그대로였다. 룸메이트가 나가고 나자 무슨 전공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 출신인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건 다 룸메이트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예감에서 온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룸메이트는 정말 유령 같았다. 나는 룸메이트 매트리스 위에 있는 긴 머리카락들을 집어 휴지통에 버렸다.
   귀향 버스를 탄 학생들은 휴게소에서 각종 분식을 사 들고 탔다. 집으로 돌아가면 기름진 추석 음식들이 기다릴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친구들과 게걸스럽게 떡볶이를 먹어치웠다. 떡볶이 국물이 티셔츠 소매에 튀었지만 나는 인상을 쓴 채로 창밖을 봤다. 버스가 집을 향하고 있었다. 친척들과 발길이 끊긴 우리 집의 명절은 휴일에 가까웠다. 명절날 아침에 독에 절을 드리는 건 일종의 의례였다. 나와 아빠는 조상님일지, 신령님일지 믿음도 없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집으로 들어서니 옷에서 냄새가 났다. 집은 고요했다. 아무 인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문을 닫지 않았는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방에 들어와 있었다.
   “어떻게 됐어?”
   “옷 좀 입고. 뽑기로 한 것 같아.”
   옷장 서랍을 열어 티셔츠를 황급히 꺼냈다. 엄마는 내 팔을 잡아 돌려세웠다.
   “같아?”
   나는 엄마의 팔을 뿌리치고 옷을 먼저 입었다.
   “속옷만 입고 있는데 딸내미보다 그게 우선이야?”
   엄마가 얼굴을 붉혔다. 나는 부엌으로 가 컵에 물을 따랐다. 엄마가 부엌까지 쫓아왔다.
   “어떻게든 막았어야지!”
   나는 찬물 한 잔을 단숨에 마셨다. 엄마의 뒤로 거실에 놓인 항아리가 보였다. 항아리가 거실 통창을 통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도시의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도장 파서 나눠준대요. 아빠는?”
   나는 거실 창에 블라인드를 내렸다. 아빠는 안방 구석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웅크린 아빠의 등이 항아리보다도 작아보였다. 엄마는 아빠가 얼마 전에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퇴직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어느 아침에 엄마가 집에만 있지 말고 다른 일이라도 좀 찾아보라는 말을 했더니 아빠는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는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아빠가 고의적으로 입을 닫은 것인지, 아니면 몸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인지도 몰랐다.
   “함묵증인지도 모르지.”
   나는 항아리에 올린 물그릇을 봤다.
   “사람이 기력이 없어. 신령님한테 세차게 빌어봐야지.”
   엄마가 행주를 들고 항아리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 병은 그런 걸로 고치는 게 아니라구요.”
   “그래, 비싼 학비 내고 다니는데 아빠 입 한번 열어봐, 그럼!”
   엄마가 행주를 거실 바닥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이건 외상이 아니니까. 정신과로 가셔야지.”
   “의사면 뭘 할 수나 있다고. 사람 입하나 열지도 못하면서 무슨.”
   아빠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리에 깬 모양이었다. 엄마와 나는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행주를 다시 주워들고 항아리를 정성스레 닦았다. 항아리를 감싼 엄마의 등이 보였다. 아빠는 거실에 있는 우리에게 눈을 한번 흘기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깔아놓은 신문지 위로 기름이 튀었다. 엄마와 나는 거실 창을 열어두고 전을 부쳤다. 명절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집 안에서는 기름 튀는 소리만 들렸고, 나는 요리에 더 집중했다. 전들을 기름체에 얹어 식혔다. 며칠이 지나도 아빠의 입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끼니도 따로 해결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없으니 식탁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아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담배 냄새였다. 아빠가 방에서 나오지 않아도 담배 냄새는 방 밖으로 은은하게 빠져나왔다. 담배 냄새는 아빠의 향이었고, 나는 그런 담배 냄새가 싫지만은 않았다.
   안방에 들어갔다 온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엄마 손에 끼워진 일회용 비닐장갑이 기름에 절어 반짝였다. 아빠가 안방에 없었던 것이다. 기력도 없는 사람이 어디를 나간 거야. 엄마는 중얼거리며 거실을 빙빙 돌았다.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걱정하는 것 마냥 그랬다. 나는 앉아서 남은 음식들을 마저 만들었다. 몇 시간 만에 돌아온 아빠 손에는 새우튀김과 소주가 들려있었다.
   “당신 미쳤어요? 어디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 할 것 아니에요? 말을 못 하면 글씨라고 적어두고 가던가. 가나다라도 몰라요? 글씨? 아유 답답이.”
   엄마는 입을 열지 않는 아빠를 흔들어대며 다그쳤다. 아빠는 엄마에게 새우튀김을 건넨 뒤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항상 뭐가 그리 불안한 것일까. 나는 식은 음식들을 반찬 삼아 먹었다. 엄마는 앉아서 가슴을 세게 두드리며 답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차가운 철판 위에 발가벗겨진 내가 있다. 밝은 조명에 눈이 부시다. 누군가 나를 부위별로 자른다. 나는 해체된다. 해체된 나의 몸들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김은 나의 숨이다. 누군가 도장으로 등급을 매긴다. 날것의 내가 독에 담긴다. 차곡차곡 담긴 내가 서로 달라붙는다. 떨고 있는 내 몸들이 독에 갇힌다.
   머리를 더듬었다. 머리칼이 움푹 팬 부분이 만져졌다. 추석이라 새로 머리를 잘라간 것이었다. 날은 아직 어두웠다. 부엌으로 나갔다.
   “방학 때 머리 많이 잘라갔잖아.”
   “명절이니까 묵혀둔 것보다 새로 하는 게 더 좋겠지. 네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탔으니까.”
   엄마가 젓가락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젓가락을 받아들고 잡채를 마저 볶았다. 엄마는 잘라놓은 머리카락을 끈으로 묶었다. 그릇에 받아놓은 물에 머리카락을 적셨다. 머리카락들을 붓처럼 사용해 항아리 안쪽부터 천천히 물을 발랐다. 엄마는 이런 의식 때마다 신령을 부르며 중얼거렸다. 음식 지지는 소리 때문에 엄마의 기도가 들리지 않았다.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두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기도는 한창이었다. 아빠가 누워 있던 자리에 소주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엄마, 아빠 머리카락도 잘랐어?”
   엄마가 몸을 흔들며 기도를 올렸다. 무릎을 꿇은 다리는 힘주어 모으고 있는 듯했다. 포개놓은 발이 단단해 보였다. 엄마는 손을 모으고 상체를 굽었다 폈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거실에 놓인 상에 음식들을 놓았다.
   “엄마, 아빠 집에 없는데.”
   엄마가 기도를 올리다 말고 나를 올려다봤다.
   “시간 됐다.”
   엄마는 여느 해처럼 식을 올렸다. 이번 추석에는 아빠 없이 항아리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엄마의 기도 중에서 집 나간 이를 돌아오게 하시고, 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항아리에게 가버린 엄마를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뚜껑 열린 항아리는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항아리엔 음식 냄새를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는 식이 끝난 후 상에 올린 밥을 먹었다. 아빠는 식사가 끝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동네 해장국 집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느덧 해가 밝아왔다.
   연휴가 지나도록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로 떠나기 전에 실종신고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엄마는 제자리를 지키고 가만히 기다리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신령의 뜻이었다. 신령은 엄마 마음속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엄마가 떠준 목도리를 메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룸메이트의 빈자리는 여전했다. 창가에 보이는 풍경에는 변화가 있었다. 까만 대추나무가 없었다. 인부들이 나무가 뽑힌 자리를 흙으로 메우고 있었다. 새로 메운 자리는 수술 부위 같았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뒷동산을 보니 왠지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학교의 거짓부렁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피뢰침으로 벼락을 유도하거나 고압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가 아무리 커도 전교생에게 돌릴 만큼 도장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도장의 색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와 같았다. 광택처리를 했는지 반짝거렸다. 외관으로 진위를 따지기는 어려웠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도장을 이로 물어보았다. 굉장히 단단했다. 압축된 느낌이었으나 확실한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도장을 분석해서 무엇을 하나 생각했다. 효험 있는 도장을 만들기 위해 우연한 죽음을 유도하고, 양산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수업에서 가산점을 받거나, 교수의 칭찬을 받거나, 걷다가 땅에서 돈을 줍거나. 좋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도장이 마음에 걸렸다. 도장 때문에 좋은 일이 생겼을 리는 없었다. 사소한 좋은 일들은 평소에도 언제나 있었다. 좋은 일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도장 때문에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좋은 일들에 부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입을 열지 않았다. 엄마는 일을 하면서 활기를 조금 찾은 것 같았다. 사람들과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엄마가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색했다. 음식에 머리카락 들어가지 않게 머리를 잘 묶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안부 전화였다. 도장을 손에 쥐었다. 표면이 매끄러웠다. 항아리에 대고 웅얼거리는 엄마의 모습을 생각했다. 항아리는 엄마의 외로움의 표상이었는지도 몰랐다. 도장은 단지 서명을 위한 물건이었다.
   생각보다 방부제 냄새가 심하지 않았다. 실습실은 어두움보다는 밝음에 가까웠다. 수업은 시신 기증자를 위한 묵념을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수업의 목표는 인체를 구성하는 실제를 공부한다는 것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보는 것이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실체와 영혼이라. 영혼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나는 수업 도중에 자꾸만 항아리에 깃들었다는 신령님의 실체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우리는 다 같이 위령제를 지냈다. 분위기는 엄숙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어둠과 밝음 사이를 거쳐야만 했다.
   도장은 신성하지 않았다. 나는 도장을 믿지 않았다. 도장은 징크스에 가까웠다. 늘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 죄어오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깰 때면 머리맡에 도장을 두는 습관이 생겼다. 시신은 모형과는 달랐다. 실습 시간이 끝난 뒤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냈다. 딱딱하고 차가운, 차갑다기보다 서늘함에 가까운 한기가 돌았다. 죽어도 머리카락이 계속 자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개골 실습 때에는 시신의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내야 했다.
   실습실 안에서는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한 여학생의 눈이 계속해서 조교를 쫓고 있었다. 아무도 그 애에게 경고를 주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실습실 안에서 딴생각은 금물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조교가 그 아이를 혼냈다. 수업에서는 따로 알려주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불에 타오르던 나무를 생각했다.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무. 생명의 크기만큼 부피가 줄어버린 나무. 까맣게 압축된 나무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나무는 행동할 수 없었지만 죽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더라도 룸메이트의 흔적이 가끔씩 그리웠다. 어쩌면 나는 여러 자취들에 의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첫 실습 차례였다. 우리는 묵념을 했다. 교수는 실습 자세에 대해 평소보다 오랫동안 연설을 했다. 며칠 전 시신을 훼손한 뒤 포털 사이트에 자랑스럽게 사진을 올린 몇몇 학생들 때문이었다. 교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절대적이라는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기증자에 대한 감사보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우리 조 시신은 중년 남자였다. 시신은 자연사한 노인이거나, 질병사한 사람들, 신원 불명자들로 다양했지만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중년의 시신을 보니 자꾸만 아빠가 떠올랐다.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실습의 첫 번째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봤지만 안방에 돌아누운 아빠의 등이 떠올랐다.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잡생각이 끼어들수록 나는 시신의 얼굴을 또렷하게 들여다보려 노력했다.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계속해서 자각해야 했다.
   머리맡에 두고 온 도장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손에 쥐고 있는 게 메스가 아니라 도장이었다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우물쭈물하지 마. 어서 진행해. 네가 해야 하는 일이야. 빨리. 조원들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절개 부위에 조명을 다시 조절했다. 조명이 시신의 목을 비추고 있었다. 빛나는 목. 입을 열지 않는 아빠의 비밀이 이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목을 감싸고 있는 근육들을 되뇌었다. 아빠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메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절개를 시작했다. 피부는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살아있는 살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목을 구성하는 근육들을 외우는 아빠의 목소리. 아빠의 목소리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피가 솟구치는 시신은 있을 수 없었다. 튀어 오른 피는 다름 아닌 내 피였다. 시신의 목을 절개하던 메스가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놀란 마음에 메스를 쥔 손도 칼날에 가깝게 잡아서 상처가 났다. 실습은 엉망이었다. 실습이 끝난 뒤에도 내 피로 더럽힌 시신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상처는 크지 않았다. 다행히 근육은 무사했다. 물건을 쥐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메스는 쥘 수 없었다. 상처로 인한 후유증은 아니었다. 실습에서 자질은 판가름 났다.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견뎌야만 생을 만질 수 있었다. 나는 상처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흉터가 새로운 손금을 만들 것 같았다.
   기숙사로 돌아가 짐을 쌌다. 들어올 때와 같은 텅 빈 방이었다. 내가 남긴 흔적이 있을까? 도장을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철제 쓰레기통 벽면에 단단한 도장이 부딪혀 징 소리가 짤막하게 울렸다.
   아빠는 여전히 안방에 있었다. 손톱 깎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에 짐을 두고 침대에 누웠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엄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 방으로 직진했다. 엄마는 귀를 잡아당기며 나를 거실로 끌고 갔다. 나는 실습실에서 사고가 있어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엄마는 손바닥으로 내 등을 때리며 다그쳤다. 소란에 아빠가 거실로 나왔다.
   “어쩌려고 이러고 왔어. 버텼어야지! 아유 답답이.”
   어린 시절 친구들을 사귈 때마다 혼내던 엄마의 눈빛과 같았다.
   “그만 좀 해!”
   아빠가 항아리를 집어 던지며 말했다. 완전히 부서지진 않았고, 표면에 금이 갔다. 아빠의 목소리는 쉬어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목소리보다는 꽤 거칠었다. 엄마는 울먹이면서 항아리를 조심스레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항아리는 엄마에게 벼락 맞은 대추나무일지도 몰랐다. 아주 뿌리가 깊게 박힌 나무. 다른 것에 기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연약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엄마, 배고파.”
   엄마가 항아리를 쓰다듬다 손을 베었다. 나는 피가 나오는 엄마의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비릿하고 짠맛이었다. 엄마가 요리를 하러 부엌으로 갔다. 김치찌개 냄새가 집 안을 감돌았다. 창밖에 올해 첫눈이 좁쌀같이 내렸다.

거니

미국 위스콘신주 아이언카운티에 있는 마을이자,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넘기 좋은 낮은 고개이고, 말레이시아 페낭의 대형 쇼핑몰이며, 영국의 슈베르트라 불리는 독수리.

2018/09/25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