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중물이 된 『82년생 김지영』

   한국에서 판매 부수 100만 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일본에서도 지난해 12월에 발매되자마자 곳곳에서 화제로 떠오르며, 5월 10일 현재 발행 부수는 13만 부를 기록 중입니다. 출판업계의 불황으로 해외문학 초판 부수가 대략 2~3천 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상황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발행부수보다 그 반응의 크기입니다―그간의 출판 현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눈에 띄게 주위로 퍼져나가는 '열기' 같은 것 말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는 일본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불안한 부분도 많았지만 "출판과 동시에 독자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짱짱하게 울려 퍼지는 듯한 반향"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일례로 올해 4월, 일본의 인기 여성패션잡지 《VERY》에는 '『82년생 김지영』이 우리에게 묻는 것.' 이라는 제목의 특집이 실렸습니다. 이 특집에는 작가, 저널리스트, 만화가, 번역가 등 각 방면에서 활약하는 인사들의 긴 코멘트가 게재됐습니다.

   나는 83년생입니다. 같은 세대로서 "맞아, 맞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아주 많은 소설이어서 좀처럼 다른 나라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중략) 이 책을 읽으면 그건 "보통 다 그러니까" 하고 포기했었던 것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큰일이었잖아!"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후카미노리 노와키(소설가).

   나에게 숨막히는 이 사회를 바꿔야겠다며, 바꿔나가자고 소리치는 여성들이 서로 손을 잡도록 촉구하는 힘이 이 책에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온유주(소설가).

   또한, 『82년생 김지영』의 일본 출판사 지쿠마쇼보가 만든 특설 사이트에는 1954년생부터 1999년생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독자들의 엄청나고 뜨거운 감상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러한 목소리에 호응하듯, 전국 각지의 서점은 다른 한국소설 및 에세이와 함께 특집 코너를 마련했고, 라디오국도 한국문학의 뜨거운 열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춰 수차례 특집 방송을 편성했습니다. 즉, 사람들의 한국문학을 향한 지금의 열기 뒤에는 한곳에 고여있지 않는 파급적인 힘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K문학 바람의 근원지

   『82년생 김지영』이 지금 일본에 불고 있는 한국문학 바람의 계기가 됐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은 3~4년 전부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동시대 해외 문학에 흥미가 있는 20~40대의 비교적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지금 한국문학의 열기가 굉장하다"는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첫번째 바람은 박민규의 단편집 『카스테라』(현재훈, 사이토 마리코 옮김, 크레인)일 것입니다. 2014년에 일본어로 번역된 이 소설집이 같은 해에 창설된 일본번역대상의 대상을 받은 것은, 일반 독자 및 출판 관계자의 시선이 '한국 소설'로 향하게 한 계기가 됐습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즈음부터 한국문학 번역서가 간행되기 시작했는데, 역사나 정치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시 말해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군부정권, 민주화 투쟁과 같은 굵직한 주제를 정면에서 다룬 엄중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뤘습니다. 따라서 2000년대까지는 독자층이 거의 고정돼 있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출판사도 소규모 출판사가 대부분이었고, 재일 코리안의 노력에 기대어온 부분이 컸습니다. 대중적인 매체에서 소개되는 일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말하자면 '한국문학'은 대부분의 일본 독자에게 아주 생소한 장르였습니다.
   박민규 『카스테라』는 달랐습니다. 좀 전에 말한 일본번역 대상 수상을 계기로 이 소설을 읽었다는 한 작가는 독서계열 뉴스사이트에서 이같은 감상을 밝혔습니다.

   나는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고, 지금까지 한국문학에 흥미를 갖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중략) 이 책에는 표제작을 비롯한 11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그 모든 작품은 한마디로 말해 '독특'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진행되는 천의무봉한 철학적 고찰. 하드보일드하면서도 눈물 나게 하는 그런 문체에 나는 사로잡혔다.
   ―다빈치뉴스 '【일본번역대상 수상작】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이웃나라에 있었다니. 지금 주목해야 할 한국문학' https://ddnavi.com/review/441009/a/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로 출간된 『채식주의자』.

   "이 냉장고의 전생은 훌리건이었을 건이다." "결국 그래서―나는 소중한 것이나 해악이 될 만한 것. 행여 그것이 미국이나 코끼리 같은 것이라고 해도 무작정 냉장고에 넣어버리기로 마음을 굳혔다."(「카스테라」)―이런 톡톡 튀면서도 꾸밈없는 유머 센스, 여유로운 페이소스라고 할 만한 문장들로 가득한 텍스트는 기존의 한국소설이 가졌던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를 날려버리고 동시대의 경계 없는 언어에 고무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2016년에는 이미 일본어 번역본이 나와 있던 한강의 걸작 『채식주의자』(김훈아 옮김, 쿠온)가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부커상(국제부문)을 아시아 최초로 수상했다는 소식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이에 흥분한 독자들은 한 수 배우겠다는 듯 서점의 '한국문학' 코너에도 관심을 쏟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이때 아주 큰 역할을 한 것이 쿠온이라는 출판사가 2011년에 시작한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입니다. 레이블로서의 통일감을 주는 스타일리쉬한 책 디자인은, 단순히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간 서점에서 중국, 타이완 작가와 함께 '아시아'라는 거대 카테고리 안에 놓여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이라는 한 코너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점은 강조해둬야 할 것입니다. 이후 2016년에 쇼시칸칸보가 '한국 여성 문학 시리즈'를, 2017년에 쇼분사가 '한국문학의 선물'(전 6권)이라는 시리즈를, 2018년에 아키쇼보가 '옆 나라의 이야기'라는 시리즈를 내놓으며, 어느샌가 '한국문학'은 하나의 장르라는 인식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최근 1, 2년 사이에는, 특히 셀렉트형 개인서점에서 잘 나가는 장르가 뭐냐고 질문하면 "한국문학!"이라는 대답을 듣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편, 평준화한 디자인은 지역적인 이미지를 표백하고 독자들에게 고정관념 없이 작품을 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다가온 장면이, 감정이, 인상이, 특히 동세대 독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린 것입니다.


‘한국문학의 선물’ 시리즈로 출간된 『희랍어 시간』.

   ●IMF 세대와 로스제네 세대, '세월호 이후'와 '3.11 이후'


   요즘 일본에서 번역되고 있는 작가군은 주로 30~40대 여성 작가들입니다. 예를 들어 2018년에 소설집 『아무도 아닌』(사이토 마리코 옮김, 쇼분샤)과 중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사이토 마리코 옮김, 가와데쇼보신샤) 두 권이 일본어로 번역된 황정은. 같은 해 4월에 진행된 방일 이벤트에도 많은 팬이 몰린 황정은의 소설은 각 매체의 리뷰어에게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일찍부터 지금의 K문학 붐을 이끌어왔습니다.

   각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인이기도 하고, 일본인이기도 하고, 당신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일상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어, 몇 번이나 "그래 맞아!"하는 말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산케이신문, 나카하라 가오리.

   아무 일도 없는 일상들에 당연하다는 듯 조금씩 금이 가는 과정을 조용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중략) 어쩔 수 없다고 그냥 간과해버리기 쉬운 실패와 패배를 묘사하고 또 묘사해낸 결과, 공기처럼 떠다니는 모호한 폭력의 존재가 독자를 향해 정확하게 내리꽂힌다.
   ―『문예』, 고이 겐타로.

   언젠가부터 한국에 자리해버린 폐색감을, 아무것도 아닌 일상 속에서 발화된 목소리를 통해 표현해내고 있다. 이런 소설가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에 무엇이 결핍해 있는지를 독자가 스스로 감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주간독서인』, 나가세 가이.

   일례로 「양의 미래」를 한번 보도록 합시다. 이 단편에서 서점에서 일하는 '나'는 한 소녀가 수상한 남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하지만, 퇴근 전 업무에 쫓겨 이를 무심코 지나치고 맙니다. 이후 '나'는 소녀가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누가」에서는 배려 없는 이웃 주민의 소음과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짓눌려 점차 자신의 궤도를 잃어가는 '나'의 모습이, 「복경」에서는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 가득한 나날 속에서도 줄곧 웃는 얼굴을 유지하다, 결국 웃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된 '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황정은이 소설에서 일관되게 그려온 것은 극심한 양극화 사회 속에서 지쳐가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비명입니다. 그것은 IMF 위기 이후의 한국 사회 구조를 상징함과 동시에 90년대 거품경제 붕괴 후에 로스트제네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이라고 불리는, 장기불황 속에서 소모되기만 할 뿐 어느샌가 빈곤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 일본의 '나'들의 내면 풍경과도 완벽히 겹쳐집니다. 차이를 굳이 꼽자면, 그것은 한국 쪽이 약자가 더 약한 자를 짓밟아 버리는 순간의 생생한 고통을 자각적으로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김혜진이 『딸에 대하여』(후루카와 아야코 옮김, 아키쇼보)에서 그려낸 것들―60대가 되어서도 힘든 요양 일을 하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엄마와 충분한 교육을 받고 또 스스로도 노력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생활을 면치 못하는 시간강사 딸이 불안과 분노와 초조함을 상대방에게 쏟아내고 마는 모습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8년에 일본어로 번역돼 황정은과 함께 호평을 받은 김금희의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쇼분샤)의 '해설'에서 역자인 승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이 그동안 가져왔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묻고, 왜 304명이나 되는 목숨을 살리지 못했는지 또 물었다.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밝혀지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터져 나왔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이러한 사회를 만든 '가해자'라는 의식에 고통스러워하는 동시에 자신도 결국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미래의 '피해자'라는 두려움을 갖게 됐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보통의 시절」에는 이 같은 의식을 뒤집어놓은 인상적인 대사가 등장합니다. "잊지는 못하고요, 선생님. 그렇다고 이 일이 왜 이렇게 됐나, 누가 어떻게 하다가 사람들이 죽었나, 누가 제일 나쁜 놈인가 그런 생각은 안 할게요. 그냥 이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고 난 머리가 나쁘니까 보통도 안 되는 놈이니까 지금은 생각해서 뭘 해요." 이 말의 칼끝은 3.11―다시 말해 동일본대지진 후에 사고 정지에 빠져 당사자라는 의식을 갖지 못한 채 기억을 풍화시켜버린 일본인을 날카롭게 겨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5대 문예지 중 하나인 《스바루》에서 새 연호의 등장에 맞춰 편성한 '헤이세이(平成)와 문학'이라는 대형 특집에, 문예평론가인 에나미 아미코는 「각성하라고 소설은 말했다―현대 한국문학의 붐에 부쳐」라는 제목의 평론을 발표했습니다. 이 글에서 에나미는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해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승미, 오사나이 소노코 옮김, 타바북스), 김혜진 『딸에 대하여』, 한강 『채식주의자』 및 『흰』(사이토 마리코 옮김, 가와데쇼보신샤) 등의 작품군을 거론하며 사회구조의 모순과 병폐를 향한 시선을 철저히 검증하고 나아가서는 일본 사회가 헤이세이 시대에 해결하지 못하고 '쌓아놓은 처치 곤란한 짐'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짐'을 다음 시대에 풀어내기 위한 실마리를, 우리는 지금 바로 한국문학 속에서 찾아내려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일본인 여성이 같은 테마로 썼다면 비판도 많았을 것”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종합 주간지 《주간분슌》의 여성판으로 올해 새롭게 창간된 《주간분슌 WOMAN》. 이 잡지는 제2호에서 '한국 페미니즘 문학이 우리를 사로잡은 이유'라는 제목의 특집을 장장 7페이지에 걸쳐 편성했습니다. 여기에는 일본에서 한국문학의 출판 상황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일반 독자들도 알기 쉬운 해설이 실렸고, 동시에 '지금 읽고 싶은 한국 여성 작가 10인 10권'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소개한 한강, 황정은, 김혜진, 김금희를 비롯해 정세랑, 최은영, 정지아, 편해영, 이랑, 황인숙의 작품이 소개됐습니다.
   특집의 내비게이터를 맡은 사이토 마리코는 '여성 혐오 살인'으로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강남역 살인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며 일본에서 잇따른 성폭력 사건의 고발과 정치가들의 여성 차별적인 실언, 그리고 도쿄 의과대학에서 오랫동안 여성 수험생의 성적을 조작해 감점시킨 사건(!) 등에 대해 언급. 일한 양국에 깊게 뿌리내린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유래한 젠더 문제를 오가며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일본 독자들의 공감이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지를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특히 시선을 끄는 대목은 편집부가 쓴 머리글입니다. "그간 페미니즘과 거리를 유지했던 일본 여성이, 왜 이 책에는 공감했는가?". 그렇습니다. 분명 우리는 그간 '페미니즘'이란 말에 몸을 사려왔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차세대 기대주이자 새로운 역사 미스터리물 작가로서 주목을 받고 있는 83년생 소설가 후카미도리 노와키는 좀 전에 언급한 패션잡지 《VERY》의 『82년생 김지영』 특집에 부친 코멘트에서 주변의 동세대 여성들이 "지적이며, 확고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할 타이밍을 찾다가 혹은 그것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발언을 포기해버리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고 밝힌 후 이렇게 글을 잇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유즈키 아사코 씨의 작품처럼, 이야기 속에서 여성의 고통과 불편함을 풀어낸 작품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현실을 담아낸 소설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 여성이 같은 테마로 썼다면 비판도 많았을 테지요. 한국 베스트셀러 소설이어서 여성의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이 소설이 번역된 긍정적인 면이라 생각합니다.

   일본 페미니즘에 관해 말하자면, 86년에 여성고용기회균등법이, 99년에는 공동참획사회기본법 실시되는 등 추후에 법 정비로 이어진 논리적 축적은 이뤄져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상 혹은 학문 영역으로 치부되고 격리되면서 일상 세계와 단절되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말 자체가 생활에서 분리되고 소외되면서 오랜 세월 동안 '분단정치'가 이뤄져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보다 40년 늦게 민주화를 이뤄내고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감도 일본 이상으로 강한 한국에서 이토록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는' 작품이 연이어 탄생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우리 일본 독자가 자신의 현실을 객관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유기적인 엠파워(empower)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 여성 작가들이 바라던 '연대'의 모습


   한국에서는 편해영 『홀』이 수상을 하며 뉴스에 오른 셜리 잭슨 상. 올해 이 상의 단편 부문에 「여자가 죽는다」(원제:女が死ぬ)라는 단편이 노미네이트 된 마쓰다 아오코는 최근 일본의 페미니즘 문학을 견인하고 있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박민규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작풍으로, 예를 들어 2016년에 간행된 연작 소설집 『할머니들이 있는 곳』(원제: おばちゃんたちのいるところ, 주오고론신샤)은 가부키, 라쿠고, 민담 형태로 이어져 내려온 괴담을 바탕으로 쓴 유니크한 단편 소설집입니다. 인습과 굴레, 사회규범으로 희생당해 원한과 앙심을 품은 나머지 귀신이 된 여성들. 그 여성들의 에너지가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과 남성)들에게 힘을 실어주는(empowerment) 과정은 유머스럽고 통쾌합니다.
   예로부터 이야기의 틀 속에서 '여성' 혹은 '남성'이 불합리하게 도맡아온 역할―다시 말해 차별적인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 비평적 시선을 비추는 스타일은 최근 1, 2년 사이 일본 문학계에서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입니다. 그 예로는 일본에서 라디오 드라마로도 제작된 『일본의 엄청난 여자』(원제: 日本のヤバい女の子, 하라다 아리사 저, 가시와 쇼보)가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신화 및 옛날이야기, 고전 작품 속에서 '여자'에게 부여된 아주 억압적인 역할에 주목해 현대의 관점으로 다가가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분노를 터트리는 에세이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여자들의 수다라고 할 수 있는 책이죠.
   시대를 초월한 공감과 국경을 초월한 공감. 수직 방향의 공감과 수평 방향의 공감이라는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 독자가 한국 문학 작품을 매개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직면하고 인식을 업데이트해가려는 시도도 일본 문학계의 이러한 흐름과 뿌리를 같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문학이 불균등한 사회에 가져다줄 수 있는 아주 명징한 '연대'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해 10월에 일본어로 번역된 정세랑 『피프티 피플』(사이토 마리코 옮김, 아키쇼보). 이 책 역시도 현재 4쇄를 찍을 만큼 번역 책으로서는 이례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삶과 수많은 죽음이 공존하는 대학병원과 그 주변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에서는 국경도 세대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은 사회의 '엑스트라'가 아닌 자기 삶의 주체자로서 힘껏 손을 뻗어 완전한 '연대'를 일궈냅니다―세월호 사건에서 '실제로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결말'을 보여준 마지막 장에는 절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한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가 느껴집니다. 이 같은 이야기가 이 일본 땅에서 증쇄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희망을 느낍니다.

구라모토 사오리

문예비평가. 1979년 도쿄 출생. 조치대학 대학원 석사 학위 취득. 신문, 문예지, 주간지 등에서 서평과 문예 관련 인터뷰, 칼럼을 게재. TBS 라디오 <문화계 토크 라디오 Life>에 출연 중이다. 공저로는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현암사, 송태욱 옮김)가 있다.

번역: 승미
와세다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일본 현대문학, 현대문예비평을 공부했다. 역서로는 나카지마 교코『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예담), 일본어 역서로는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공역으로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등이 있다.

2019/05/28
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