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콩처럼 / 슬하
콩처럼
파리 한 마리가
유리창에 몸을 박았다
콩
사람한테는 작은 콩 소리가
파리한테는 온몸이다
파리는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스스로의 모습에
온몸으로 부딪혔다
콩
콩
콩
콩
검은 콩처럼
떨어졌다
학원 갔다 돌아온 아이가
휴지 대신
화단 흙 속에 콩이 된 파리를 묻어주었다
다시 태어나면
새싹처럼 고개를 슬쩍 내밀어
바깥 구경 마음껏 하라고
슬하1)
외할머니가 있는 경주의 요양원에 갔다
점심시간 동안 잠시 밖으로 나가 있었다
아스팔트를 뚫고 자란 풀 하나가 서 있었다
다섯 살 어린애 키 높이로 서 있었다
엄마의 무릎 높이로 서 있었다
그런 곳에서
있을 수 있구나, 생각하는
점심시간
김준현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가로놓인 무언(無言)의 국경선에 틈을 내본다. 어린이가 할 수 없는 어린이의 말을 해본다.
2018/01/30
2호
- 1
- ‘무릎 아래’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