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배고파
   뭐 먹을래?
   아무거나
   햄버거? 피자?
   아니, 싫어
   돈까스? 짜장면?
   것도 별로
   그럼 뭐?
   아무거나
   에잇
   (달각달각 철퍼덕 주르륵 쓱싹쓱싹)
   옜다, 아무거나다!

   냉장고 터줏대감들이 총출동했다.
   그제도 먹고, 어제도 먹었던
   그냥 그런 반찬들인데
   참기름과 고추장 만나 변신을 한다.
   다 아는 맛인데
   만날 때마다 달라진다.
   엄마 손, 아빠 손, 할머니 손, 할아버지 손, 내 손
   손길 따라 변하는 비빔밥
   입맛 없는 날
   뭘 먹어야 할지 모르는 날
   식은 밥 처리해야 하는 날
   최고다, 최고!





   멍멍, 걔는 안다



   그 집 앞에만 가면
   심장이 쿵닥쿵닥
   식은 땀이 삐질삐질

   우리 집인데,
   여기만 지나면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엉금엉금 기어서도
   안 된다
   살금살금 깨금발로도
   안 된다

   걔는 안다, 귀신같이
   안 보고도 다 안다
   내가 숨만 쉬어도, 멍멍
   젠장, 망했네

   안 그래도 되는데, 굳이
   뛰쳐나와 아는 체를 한다
   멍멍 멍멍
   왈왈 왈왈

   걘, 어떻게 아는 걸까?
   내가 지 생각하는 걸

연진영

방송국 편집실에 갇혀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운명처럼 어린이청소년문학의 매력에 눈을 떴다. 책이라는, 모니터라는 프레임 밖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나’가 스스로 나의 이야기를 꺼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책, 동화, 서평, 옛이야기, 청소년소설을 두루 습작하지만 동시를 쓸 때 조금 더 특별한 ‘나’가 된다. ‘아홉 살의 나’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들쑤시고 다니기 때문이다. 나조차 잊고 있던 ‘나’를 만나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시간이 나와 타인에게 따뜻하지만 날카롭게 맞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동시를 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예의를 잃지 않는 문학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중이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