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껍질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좋은 것을 준비하나 봐요
   향기가 없는데 계속 걸었어요

   땅에 박힌 구두 소주병 비닐봉지 우산 옆집 언니
   흰 버섯이 나무를 오르고
   봉지 속의 손목이 회전하고

   하얀 건 무서운 게 아니에요

   나무가 허리를 내놓고 있듯이 집에 가던 길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꽃이 손가락을 접어요 바람이 손가락을 덮어요
   살처럼 끈적끈적한 흙이 밀려나고
   그림자를 밟아서 오는 그림자

   주머니에서 서늘하게 빠져나갔던
   모래알처럼 모래 사이로
   얼굴에서 얼굴로 떨어지는 얼굴
   아래위 동여맨 비닐 속의 잇자국

   나뭇잎이 하얗게 부서졌어요

   구두를 신고 걸었어요 한 토막 두 토막 세 토막
   나무가 나무 뒤로 숨고 있어요





   천천히 늙는다고 말해주세요



   욕조에 몸을 담갔다
   사람과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들어오자
   나였던 것이 밀려났다
   불안해서 다른 사람의 머리를 만졌다

   손을 계속 씻다보면
   내 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비누는 벽이 없어서
   계속 줄어들었다
   매일 저녁 매일 같은 집에서

   무릎과 무릎 사이를 빠져나가고
   얼굴과 얼굴 사이를 잃고
   아저씨와 아버지 사이를 빠져나가
   아버지와 아내 사이를 비틀고
   나와 나 사이를 빠져나가고
   나는 나를 놓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를 거라고 말해주세요
   엉킨 머리칼로 막아둔 시간요

   거품이 부풀고 있어요
   아무도 없는 거품이에요

   따뜻해서 더러워지는 얼굴
   물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김백송

16살 해피가 평생 사랑해준 불안한 사람.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숨 고르듯 시를 쓴다. 친절한 사람들을 선망한다.

2018/09/25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