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안에서 나는 H시에 대해 생각했다. H시는 강원도에 있었고 감자와 옥수수가 특산품, 근처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오래전 탄광 하나가 있어서 나름대로 번영을 구가했으나 탄광을 닫은 이후로는 까맣게 잊힌 곳이었다. 내 기준에 강원도는 어디든 감자와 옥수수가 났고 산기슭 어디쯤에는 군부대가 있었으므로 결국 H시는 아무 데도 아닌 곳이었다. 그런 데서 상이는 뭘 하고 있었나.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서자 차창을 내다보았다. 역 앞 논두렁에는 잔설이 덮여 있었고 바깥 의자에는 상이가 몸을 옹송그린 채 떨고 있는 게 보였다. 거칠고 메마른 풍경. 나는 겨울이 깊어지면 언제나 나쁜 습관처럼 봄의 도래를 의심하곤 했다.
  나를 본 상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도 가방도 없는 맨손으로. 그애는 얇은 면 재킷에다 짧은 스커트를 입고 비닐 구두를 신고 있었다. 살색 스타킹을 신은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무릎에 얼룩진 푸르스름한 멍이며 정강이에 일어난 부슬부슬한 각질이 그대로 보였다. 상이가 왔네? 하며 부스스하게 웃었고 나는 밥은? 하고 물었다. 질문에도 상이는 자그마한 눈을 접을 채 웃기만 했다.
  우리는 허름한 역사를 가로질러 근처 중앙 시장으로 갔다. 제법 규모가 있는 시장인 것 같았지만 휴일인지 가게는 전부 닫혀 있었다. 우리는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좁은 골목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열린 곳은 없었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컴컴해지기만 했다. 자물쇠를 굳게 채운 셔터와 비닐 포장이 덮인 좌판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까닭 없이 절박해졌다. 어둡고 차가운 이 골목을 영원히 헤맬지도 모른다는 생각. 우리가 몸을 녹이고 주린 배를 채울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생각. 그것은 분명 터무니없는 것이었으나 내 안에 들러붙어 있던 것인지 약해질 때마다 떠오르곤 했다.
  서서히 포기할 무렵 길 끄트머리에 불 켜진 점포를 보았다. 들어서자 텔레비전을 보던 여주인이 꿈결인 듯 우리를 바라보았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돼지국밥이 나왔다. 상이는 배가 고팠는지 아니면 추위 때문인지 뜨거운 국을 잘도 먹었다. 나는 국물을 휘적대며 때를 가늠했다. 통화할 때 상이가 돈 얘기를 꺼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애가 막다른 곳에 다다랐음을 직감했다. 나는 상이에 대해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는 상이가 위로 올라오지는 못해도 아래로 떨어지거나 막다른 곳에 다다르지 않고 그저 자기가 서 있는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평행하게 걷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속하는 것들을 차례로 익히게 하는 것이다. 정규 교육을 받고 직업을 얻고 안정을 찾은 후 진짜 가족을 만드는 일. 내가 그런 말을 꺼낼 때면 상이는 그냥 웃었다. 그렇게 웃을 때마다 나의 정밀한 계획들은 무력해지고 말았다. 어찌할 수 없는 힘이 앞에 가로 놓여 있다는 느낌. 상이에겐 상이의 길이 있고 나에겐 나의 길이 있다. 그것은 내 모든 계획에 앞서 선행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상이는 누구보다 그 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다시 시장 골목을 돌았다. 때마침 외다리 마네킹이 서 있는 점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장사하세요? 나의 물음에 남자는 개인 용무 때문에 온 거지만 구경은 해보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벽에 겹겹이 걸린 옷들을 구경했다. 큐빅과 자수, 꽃무늬로 이뤄진 옷들은 세대와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상이를 맨다리로 떨게 할 수는 없었다. 이윽고 그애가 고무줄 치마를 뒤집어쓰고 옷을 갈아입었을 때 우리는 킬킬거렸다. 두터운 솜바지가 피에로 바지 같았기 때문이었다. 상이가 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아보자 사장도 열의를 띠며 이것저것을 권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옷을 진지하게 대했고 권유받은 옷을 전부 입어보았다.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상이가 보랏빛의 어두운 원피스를 입고 나왔을 때 나는 만족했다. 항아리 모양의 원피스는 자루처럼 감싸서 그애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원피스, 누빔 반코트와 조끼, 먼저 입어본 솜바지의 값을 치렀다. 상이가 말미잘인지 송충이인지 혹은 솔방울인지 모를 무늬의 솜바지를 입은 채 어정대며 걷다가 갑자기 주저앉아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는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고 그날 처음으로 즐거웠다.
  터미널 앞으로 시외버스가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그 틈을 타 상이에게 봉투를 쥐여주었다. 그애는 잠자코 봉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네게 줄 게 아무것도 없네. 대답 대신 그애 손에 커다란 비닐 백을 건네며 나는 말했다. 도착하면 연락해. 상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그러다 가까이 다가와 날 가만히 끌어안았다. 내가 가져갈게. 네 불운은 전부 내가 가져갈게. 공평하지 않아, 나는 생각했다. 겨우 한 학기 등록금값으로 내 불운을 가져간다니. 네 것도 감당할 수 없으면서 내 것까지, 그건 아니잖아. 하지만 나는 그런 말 대신 상이를 껴안았다.
  나는 두려웠다. 상이의 몸 한구석에 실밥이 비죽이 나와 있는데 누군가 그 실을 자꾸 풀고 있다는 생각. 점점 풀려나가서 그애를 조금씩 잃고 있다는 생각.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어느새 상이는 차에 올라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애가 손을 들어 보였고 나도 손을 들었다. 또 어디로 가는가. 이제 내 몫의 불운까지 짊어지고 어디로. 버스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채 나는 서 있었다.

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창 너머로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그 사이로 쏟아지는 수직의 빛이 보였다. 그 빛들이 수만 개의 바늘처럼 보여 나는 선뜻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몇 년 만에 전활 걸어온 상이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뭐가 달라졌을까, 추측하는 사이 문득 그애가 속삭이듯 말했다. 자꾸 무서운 꿈을 꿔. 무슨 꿈인데? 대답이 없었다. 그애는 정말로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참을성 있게 다음 말들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애가 입을 열었을 때 내가 그것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을 받아야 한대.
  산길을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축축해지고 겨드랑이에 땀이 찼다. 걸을 때마다 발목이 흔들렸고 운동화를 신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맨손으로 콧등을 훔치며 나는 신에 대해 생각했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나는 때때로 그가 이 땅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궁금해하곤 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만큼의 됨됨이가 되지 못했으므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아는가요.
  나무줄기에 오색 천을 둘러놓은 서낭당을 지나면서부터 징소리는 커져갔다. 징소리에 끌려 오솔길로 접어들었고 이내 파란 기와를 얹은 단층집이 나타났다. 네 개의 방이 나란히 있고 그 끝에 부엌이 있는 구조였다. 음식을 대느라 부엌은 소란했고 마당에는 털이 깎인 돼지가 배가 갈라지고 다리가 엇갈린 채 묶여 있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징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상이는 울긋불긋한 한복을 입고는 방 한가운데 서서 뛰고 있었다. 그애를 가운데 두고 무녀와 박수들이 피리와 장구와 징을 연주하고 있었고 내림굿을 주관하는 듯한 늙은 무녀가 상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제단에 놓인 음식들은 쓰러질 듯 높았고 제단 뒤에 붙은 탱화의 색은 강렬하기만 했다.
  내가 방에 자리를 잡고 앉자 벽에 기대앉은 사람들이 흘긋 쳐다보았다. 짙은 화장에 시스루 원피스를 입은 여자 두 명과 팔뚝 전체에 용을 그린 퉁퉁한 남자 하나가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붙어 있었고 그 옆에 후드 티를 입은 마른 남자는 졸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상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굿은 길고 지루했다. 늙은 무녀는 계속해서 상이에게 누가 왔는가, 묻고 또 물었고 그애는 음악에 맞춰 뛰고 또 뛰었다. 무녀는 아직 모래주머니를 달아놓은 것처럼 두 발이 무겁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허주1)를 내치고 제대로 신을 앉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이윽고 징소리가 멈췄고 상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선발을 주물렀다. 수건으로 땀을 훔치다가 나를 보고는 희끗 웃었다. 나쁜 꿈이 그애를 잠식했던 것일까.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특히 두 눈이 바닥을 모르는 우물처럼 검어서 가슴이 서늘할 정도였다. 상이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다시 굿이 시작될 때까지 방 끝에 앉아 한동안 서로의 손을 쥐고 있었다.
  징소리는 끝없이 울리고 상이는 굵은 땀을 흘렸다. 그 지난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방을 나와 마당 주위를 서성거렸다. 마당에는 또다른 굿이 진행되고 있었다. 박수 하나가 얼굴이 피 칠갑을 한 채 돼지를 이고 지고 하다가 이로 살점을 물어뜯는 것을 보고는 등을 돌려 굿당을 나왔다.
  산길을 따라 한참이나 위쪽으로 걸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바람이 불자 추웠다. 그런데도 걸음을 멈출 수 없었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발을 잘못 디뎌 크게 넘어지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손바닥에 피가 배어나왔지만 주먹을 쥔 채 쉬지 않고 걸었고 그러면서 신을 생각했다. 상이의 신은 외가 쪽에서 왔다고 추측되었다. 상이 엄마의 엄마의 엄마라고. 그 말에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친모의 얼굴도 보지 못한 아이에게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찾아왔다니. 그가 감히 상이에게 오려 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전셋집을 빼고 목돈을 헐어 그것을 늙은 무녀에게 보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그애의 신은 아니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아느냐고 물었잖아요. 나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상이와 나는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다. 열 살에 지금의 부모를 만난 내가 언덕 위의 이층집 막내딸로 자라는 동안 상이는 누구에게도 선택되지 못하고 시설을 떠났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전국을 떠돌았다. 소위 운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애를 등졌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무엇이든, 어떤 신이든 상이를 이제 그만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규 등산로를 이용해주세요. 샛길은 숲의 건강을 해칩니다. 나는 팻말을 넘었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위는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았고 나무들 사이로 검은 것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발밑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시야를 벗어난 곳 어디선가 산새가 무섭게 울어댔다.
  숨이 가빠져서 걸음을 멈추었다. 나무줄기에 손을 짚었다가 이내 정수리를 대었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하지만 차오른 숨이 가라앉지 않아 이를 악물었다. 왜 더 나빠지는가. 노력하는데도 어째서 나빠지기만 하는가. 우리는 반복적으로 버림받고 있다. 우리는 아무 데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줄기에 머리를 찧으며 한참을 울었다.
  산에서 내려왔을 때 굿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것 같았다.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의 지친 모습과는 달리 상이는 활기를 띤 채 높이 뛰고 있었다. 트램펄린을 탄 아이처럼 신나게 둥둥둥. 그가 상이의 중심에 자리잡았는가.
  나는 방에서 나와 어두운 산길을 더듬거리며 내려왔다. 멀리서도 징소리가 메아리처럼 귓가를 때렸다. 달도 뜨지 않은 검은 밤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자신을 훈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훈이 누군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훈은 예전에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상이 누나 굿 때요. 나는 상이는 잘 지내냐고 물었고 훈은 상이가 죽었다고 했다. 네? 하고 물었더니 훈이 다시 네? 하고 되물었다. 물음표가 입술 끝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았다. 네?
  상복을 입은 훈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훈은 드물게 찾아온 문상객을 맞았고 남는 시간에는 자리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했다. 나는 벽에 기댄 채 영정 사진을 보며 멀거니 앉아 있었다. 간간이 아이가 보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상이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므로 내가 빈소를 지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자꾸만 진동하는 핸드폰의 전원을 꺼두었다. 밤이 깊어지자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림굿날 이후로 상이를 더 만났던가, 기억이 가물거렸다. 바다를 면한 지역에 자리를 잡고 신당을 차렸다는 이야길 들었고 몇 년 후 그 신을 내쳤다는 이야길 들었다. 어느 순간 상이는 더이상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이미 없는 번호가 되어 있었다. 사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이랬어요, 훈이 말했다. 극심한 불면증을 앓는다고 들었지만 따로 앓는 질병은 없었는데 그리 되었다고. 의사가 부검 여부를 물어왔지만 자긴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고 했다. 발견 당시 이부자리에 잠든 듯 누워 있었다고 했다. 오래전 곡기를 끊은 듯 미라의 형상으로 가만히 비단 이불을 덮고 있었다고.
  새벽 네시에 운구 버스가 도착했고 출발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버스 안에는 기사와 훈, 짐칸의 상이와 내가 전부였다. 새벽 화장터는 붐볐지만 이른 시간 탓인지 순조롭게 처리되었다. 화장 순번을 기다리며 식당에서 함께 북엇국을 먹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고 훈은 또다시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대기 소파에 누워 잠을 잤다. 나는 버스에서 우산을 꺼내 묘지공원을 걸었고 돌아오자 곧 차례가 가까워져 있었다. 관이 화장로로 들어가는 순간이 곡소리를 내는 때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저 서 있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끝내 타지 못한 회색 뼈들이 나오자 직원이 나와 그것을 부수었다. 유골함에 담긴 뼈는 뜨거웠다. 나는 그것을 놓칠까봐 두려워하며 운구 버스에 올랐다.
  장지의 묘지 사무소에서 서류 처리를 끝내고 나오자 인부가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유골함을, 훈은 우산을 든 채 인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제발 그만 좀 해. 뭘? 호구 짓 하며 사는 거. 삶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거. (무구하던 상이의 눈동자) 미안해. 쉽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미안한 게 아니야. 그래도 미안해. 상이 주변에는 그애를 등쳐먹고 버리는 인간들 천지였고 그건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이 없었다. 시설에서 함께 도망친 오빠는 상이에게 구걸을 시켰고 그 돈으로 자신은 사행성 오락에 빠진 적도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그앨 끌고 경찰서엘 갔지만 거기서도 상이는 횡설수설이었다. 돈을 갖고 사라질 줄 몰랐지만 벌을 주고 싶지는 않아요. 그 말에 조사관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쳤다, 정말. (열상을 입은 듯 확 벌어지던 두 눈) 모르겠어, 마음 닫는 법을…… 항상 열려 있는 이 마음을 어떻게 닫는지……
  인부가 야외 납골당에 안치 작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서 있었고 우산을 썼는데도 들이치는 빗방울 때문에 축축해져 있었다. 그러나 들고 있던 뼈의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훈은 기다리다 지친 듯 자리를 떴다. 담배를 태우기 위해 아래쪽 정자로 내려갔거나 어쩌면 그대로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상이가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애가 끌어안은 것은 내 불운만이 아니었다. 그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나는 후회하였다. 어릴 적 나쁜 꿈을 꾸다 깨면 상이는 곁에 누워 손을 잡아주었다. 상이의 작은 손을 꼭 쥐고 있으면 어지럽고 어두운 마음이 조금씩 옅어졌다. 일찍이 잃어버린 것들이 희미해졌다. 나보다 먼저 잠들면 안 돼…… 그러면 상이는 내가 잠들기 전까지는 잠들지 않았다. 안자는 거지…… 하는 말에도 응응 하고 대답했었다. 나는 수시로 나쁜 꿈을 꾸었고 그럴 때마다 상이는 조금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내가 천만번 울고 일어나도 상이는 그 천만번 동안 내 손을 쥔 채 응응 대답했을 것이다. 나는 상이에 대해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인부가 손을 내밀자 나는 유골함을 건네주었다. 품에 있던 둥근 열기의 흔적이 사라지자 새벽부터 내내 추위에 떨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을비의 서늘함을 막기엔 얇은 니트가 역부족이었단 것도. 시선을 돌려 풍경을 바라보았다. 겹친 산봉우리 사이로 안개가 흐르고 있었다. 불현듯 희붐한 안개 사이로 검은 새가 솟아올라 가로지르며 울었다. 서른아홉 해를 살았던 상이는 이제 영원이 되었다.

홍기라

이름 앞뒤에 소설가,라고 쓰고도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래전에 본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살구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줄지어 뒷산으로 올라가 명상한다. 들숨으로 세상의 어둠을 들이마시고 날숨으로 정화된 에너지를 뱉는다. 명상을 끝내고 다시 줄지어 사원으로 돌아온다. 그 장면에서 나는 조금 울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한다, 세상을 사랑한다. 상이는 그 장면에서 태어났다.

2024/08/07
68호

1
무당이 될 사람에게 씌는 허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