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큐레이션
낙서처럼 맛있는 선
친구가 생겼다. 친구가 생겨서 고양이도 생겼다. 고양이 이름은 하쿠. 친구는 하쿠와 같이 살고 있다. 처음엔 친구가 좋아서 하쿠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친해지고 보니깐 하쿠랑 친해지고 싶어서 친구가 좋아졌다. 하쿠랑은 딱 두 번 만났는데 그때마다 하쿠는 옷더미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하쿠가 보고 싶어서 살금살금 다가가면 살금살금 도망갈 것 같았다. 친구와 가까워진 시간만큼 하쿠와 가까워질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은 간식으로도 소용없었다.
생일이 싫었다. 생일이 되면 친구들에게 축하받아야 할 것 같은데 축하해줄 친구가 많이 없었다. 늘 나와 친구의 거리가 가늠이 안 됐다. 너무 가까우면 살갗이 닿아 쓰라릴 것 같았고 너무 멀면 그대로 멀어질 것 같았다. 친구들은 고양이 같았다. 하쿠 같았다. 친구는 고양이는 한 번 본 사람도 기억한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하쿠는 날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친구 사이엔 거리가 필요했다는 걸. 난 늘 거리감을 좁히려고 애썼는데 거리감을 좁히려면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비유》에서 발견한 김기은 작가의 동시 「새 친구」는 그런 거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였다.
「새 친구」를 읽으며 고양이 하쿠를 많이 떠올렸다. 멀어진 친구들을 많이 떠올렸다. 「새 친구」에서 더 친해지기 위해 오늘은 여기까지만 친해지자는 말이 나와 하쿠, 하쿠와 나, 나와 친구, 친구와 나, 친구의 친구를 떠올리게 했다. 그건 분명한 선(line)이다. 하지만 빗장을 꾹 닫은 선이 아니다. 그건 낙서처럼 맛있는 선이다. 우리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낙서처럼 가볍고 날렵하게 그어보는 선이다. 그래서 맛있다. 오늘 여기까지만 친해지면 앞으로 더 맛있는 선을 여러 겹 겹치고 포개어 볼 수 있으니깐.
친구 사귀기는 낙서 같다. 너무 잘 하려고 하면 망치고 망치려고 하면 잘 그려진다. 그래서 ‘그냥’ 해보는 게 필요하다. 낙서처럼. 낙서처럼 가볍게. 낙서처럼 휙휙!
《비유》엔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세 시인이자 세 친구가 만나 시를 선물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글이 있다. 바로 ‘선물하는 시’ 프로젝트다. 세 사람은 “만나서 시 쓰기” 모임을 함께 하고 있다. 세 사람은 만나서 시를 쓰고 “사람들이 우리 시를 받고 좋아하든 말든 간에 우리는 우리 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한다.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사람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나눠준다. 그냥 선물한다. 그건 「새 친구」의 친구와도 또 다른 방식처럼 느껴지지만 이것 또한 낙서 같은 선이다. 이제 막 낙서가 시작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시가 마구 전해진다. “선물하는 사람”이 주는 시는 손에 쥐어지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세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선물하다가 “기꺼이 받고 싶은 선물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다 시를 바닥에 길게 늘어뜨리기도 한다. 선물을 하다 보면 선물을 주는 법도 선물을 받는 법도 그래서 선물을 주고받는 법도 알게 되는 것 같다.
‘선물하는 시’와 「새 친구」를 번갈아 읽다 보면 다시금 낙서처럼 맛있는, 그래서 막 그어봐야 알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알게 된다. 언젠가 내 직업이 산타클로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물하는 사람”이 되어 친구들에게 마구마구 선물을 나눠주고 싶어서. 그건 낙서 같은 선을 그어보고자 하는 분투이며 그래서 당장이 아니라 천천히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나만의 낙서였다.
하쿠를 떠올리다 엉겁결에 친구를 떠올렸고 「새 친구」를 읽다 ‘선물하는 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친구를 생각하며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렸다. 아주 우툴두툴하고 굵직한 선으로. 하지만 서로의 선과 선이 포개어질 수 있는 선으로.
관련 작품 바로가기
① 김기은, 「새 친구」click
②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곧 만나자, 내 시를 줄게」 click
생일이 싫었다. 생일이 되면 친구들에게 축하받아야 할 것 같은데 축하해줄 친구가 많이 없었다. 늘 나와 친구의 거리가 가늠이 안 됐다. 너무 가까우면 살갗이 닿아 쓰라릴 것 같았고 너무 멀면 그대로 멀어질 것 같았다. 친구들은 고양이 같았다. 하쿠 같았다. 친구는 고양이는 한 번 본 사람도 기억한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하쿠는 날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친구 사이엔 거리가 필요했다는 걸. 난 늘 거리감을 좁히려고 애썼는데 거리감을 좁히려면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비유》에서 발견한 김기은 작가의 동시 「새 친구」는 그런 거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시였다.
우리 오늘 당장
비밀 이야기할 순 없는 거잖아
(……)
우리 다음에 만나면
신호등을 세울 수 있을 거야
손잡이를 달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친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김기은, 「새 친구」 부분
「새 친구」를 읽으며 고양이 하쿠를 많이 떠올렸다. 멀어진 친구들을 많이 떠올렸다. 「새 친구」에서 더 친해지기 위해 오늘은 여기까지만 친해지자는 말이 나와 하쿠, 하쿠와 나, 나와 친구, 친구와 나, 친구의 친구를 떠올리게 했다. 그건 분명한 선(line)이다. 하지만 빗장을 꾹 닫은 선이 아니다. 그건 낙서처럼 맛있는 선이다. 우리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낙서처럼 가볍고 날렵하게 그어보는 선이다. 그래서 맛있다. 오늘 여기까지만 친해지면 앞으로 더 맛있는 선을 여러 겹 겹치고 포개어 볼 수 있으니깐.
친구 사귀기는 낙서 같다. 너무 잘 하려고 하면 망치고 망치려고 하면 잘 그려진다. 그래서 ‘그냥’ 해보는 게 필요하다. 낙서처럼. 낙서처럼 가볍게. 낙서처럼 휙휙!
《비유》엔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세 시인이자 세 친구가 만나 시를 선물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글이 있다. 바로 ‘선물하는 시’ 프로젝트다. 세 사람은 “만나서 시 쓰기” 모임을 함께 하고 있다. 세 사람은 만나서 시를 쓰고 “사람들이 우리 시를 받고 좋아하든 말든 간에 우리는 우리 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한다.
선물하는 사람의 뒷모습.
선물하는 사람의 손.
선물하는 사람의 귀.
선물하는 사람의 어깨.
선물하는 사람의 고뇌.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곧 만나자, 내 시를 줄게」 부분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사람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나눠준다. 그냥 선물한다. 그건 「새 친구」의 친구와도 또 다른 방식처럼 느껴지지만 이것 또한 낙서 같은 선이다. 이제 막 낙서가 시작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시가 마구 전해진다. “선물하는 사람”이 주는 시는 손에 쥐어지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지기도 한다. 세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선물하다가 “기꺼이 받고 싶은 선물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다 시를 바닥에 길게 늘어뜨리기도 한다. 선물을 하다 보면 선물을 주는 법도 선물을 받는 법도 그래서 선물을 주고받는 법도 알게 되는 것 같다.
‘선물하는 시’와 「새 친구」를 번갈아 읽다 보면 다시금 낙서처럼 맛있는, 그래서 막 그어봐야 알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알게 된다. 언젠가 내 직업이 산타클로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물하는 사람”이 되어 친구들에게 마구마구 선물을 나눠주고 싶어서. 그건 낙서 같은 선을 그어보고자 하는 분투이며 그래서 당장이 아니라 천천히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나만의 낙서였다.
하쿠를 떠올리다 엉겁결에 친구를 떠올렸고 「새 친구」를 읽다 ‘선물하는 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친구를 생각하며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렸다. 아주 우툴두툴하고 굵직한 선으로. 하지만 서로의 선과 선이 포개어질 수 있는 선으로.

관련 작품 바로가기
① 김기은, 「새 친구」click
② 안미옥, 백은선, 김승일, 「곧 만나자, 내 시를 줄게」 click
남선미
플랫폼 회사에서 근무하며, 경험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바탕으로 ‘기술-퀴어-텍스트’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두며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출판 접근성 국제교류 심포지엄 ‘더 널리, 더 쉽게, 더 낯설게’(2023)에 리서치 어시스턴트로 참여했다. ‘포킹룸 리서치 랩 2022: 합성계의 카나리아’(2022)에서 리서치 진(Zine)을 발표했고,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2021)에서 웹 접근성과 관련된 ‘#대체텍스트워크숍’을 진행했다. 현재 1인 출판사 White River(화이트 리버)를 운영하고 있다.
20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