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출근은 할 거야.
   그리고 엄마는 한참 만에 또박또박 다짐했다. 그런 다음 정말이지 계속 회사에 나갔다. 지각이나 결근 한 번 없었던 지난 20년처럼, 8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일을 반복했다. 다녀올게, 하며 나갔다가 다녀왔어, 하며 돌아오는 것도 같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엄마의 자리, 단 하나였다. 회사 안에 있던 엄마의 자리가 바깥으로 옮겨진 거였다.
   엄마는 종일 회사 정문 앞을 지켰다. 새로운 일에 몸을 단련시키면서. 하나, 둘, 셋, 층수를 세고 하나, 둘, 호수를 헤아리며 사무실을 찾은 다음, 종일 그곳을 올려다보는 일이었다. 창들은 모두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겨우 찾았다 싶으면, 사무실은 비슷비슷한 창들 사이로 숨었고, 엉켰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엄마는 두 눈을 부릅뜨고 손톱만 한 창을 잡았다가 놓치고 잡았다가 놓쳤다. 밤이 되면 온몸이 내려앉는 것 같다고 불평했지만 엄마는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1)

   최근의 김혜진 소설은 종종 ‘너’에 대해 말문을 열며 시작한다. “너는 학교 앞 작은 햄버거 가게에 앉자마자 바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듯 나지막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2) “너는 잠시 차를 세우고 베이커리에 들를 생각이었다고 한다.” 3)
   2인칭 시점인가 싶을 때쯤 ‘나’의 목소리가 등장해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될 것임을 알려준다. 1인칭 시점으로 화자를 내세우되 초점은 확실히 ‘너’에게 맞춰져 있는 이 소설들은 2인칭 같은 1인칭이고 형식상 1인칭이지만 내용상 2인칭이다. 이 이중의 시점은 거리의 시선이다. 두 개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공간 안에서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타인을 거울삼아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거리의 시선은 반사의 시선이기도 하다. ‘너’에게 초점 맞춰져 있되 결국은 ‘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기존의 김혜진 소설이 서사를 통해 거리를 드러냈다면 최근의 김혜진 소설은 시점을 통해 거리를 드러낸다.
   최근 작품들에서 한층 두드러지는 거리에 대한 감각은 사실상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김혜진 문학의 테마다. 거리가 김혜진이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라고 할 때, ‘아웃포커스’는 구체적으로 거리를 만들어내는 방법론이다. 주지하다시피 ‘아웃포커스’는 카메라촬영 대상 이외의 대상이 흐려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초점 거리를 잘못 맞췄을 때 아웃포커스 현상이 벌어진다. 김혜진 소설의 여성들은 주로 아웃포커스된 인물이다. 아웃포커스된 인물은 아웃사이더와 다르다. 아직 선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이들은 사회의 시스템이나 타인의 시선에 의해 서서히 배경화되고 주변화되는, 요컨대 내부에서 가장 바깥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직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아웃포커스되어도 사진 내부에 존재한다. 프레임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안에서 흐려져 보일 뿐이다. 김혜진 소설의 여성들은 안에 ‘있지만’ 내부자가 아니고 안에 ‘없는데’도 외부자가 아니다. 예컨대 『딸에 대하여』의 엄마, 할머니, 딸은 각각 내부자에서 외부자로 서서히 밀려난다. 방식과 속도에 차이가 있지만 그 방향성과 방향의 정체에는 차이가 없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아웃포커싱된다.
   아웃포커싱된 여성들이 전면화한 소설이라면 소설집 『어비』에 수록된 단편소설 「아웃포커스」가 대표적이다. 아웃포커스는 자리에서 밀려나는 두 세대의 여성을 동시에 비춘다.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엄마와 고속도로 개발로 무덤을 옮겨야 처지에 놓인 할머니가 그들이다. 국영 기업이었던 엄마 회사는 몇 번의 합병과 인수를 거치며 민영 기업이 된다. 이후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을 핑계로 대대적인 인력 감축이 진행되고, 해고를 당하거나 자진 사표를 내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엄마가 일하는 상담 부서다. 엄마는 20년 동안 해왔던 상담 업무와 무관한 일, 그러니까 현장에서 케이블을 연결하는 업무에 배정된다. 이때 부서 이동의 논리는 “다양한 부서 업무가 가능한 유능한 직원이 필요하다”(52쪽)는 것인데, 케이블 연결 업무에 의아함을 표출하는 엄마를 향해 부장이 던진 대사는 곱씹어볼 만하다. “아, 그 상담 같은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52쪽)
   이 말에는 적어도 두 가지 전제가 내포되어 있다. 감정 노동에 대한 폄훼가 한 가지다. 현장에서 케이블을 연결하는 일은 “유능한 직원”(52쪽)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업무인 반면 고객의 요구인지 욕구인지 모를 수많은 고충을 해결하는 서비스 업무는 20년 경력이 쌓여도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전문성은커녕 평가할 수 있는 업무로 인정받지 못하는 탓에 오히려 해고의 이유가 된다. 여성들의 불안정한 자리는 구조적으로 만들어진다. 부장의 말에 전제된 또 한 가지 사실이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엄마는 해고에 반대하며 1인 시위에 착수한다. 손수 만든 휴대폰 상자를 뒤집어쓰고 회사 앞에서 1인 시위하는 모습은 볼품없는 휴대폰 상자만큼이나 초라하다. 엄마의 1인 시위는 그 많은 동료들 가운데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 차가운 외면으로 한층 더 고단해진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니.”(41쪽)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은 이렇게나 모욕적이고 고독하지만 모욕과 고독을 감내한다고 해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안정한 자리와 그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엄마가 벌이는 투쟁의 비극은 할머니의 묫자리 이동을 두고 벌어지는 촌극을 통해 그 성격이 분명해진다. 2차선 고속도로가 나기 때문에 그 전에 자리를 옮겨야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외삼촌은 하루라도 빨리 보상금을 받고 싶어 안달이지만 안타깝게도 할머니의 묘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비슷비슷한 여덟 개의 무덤 앞에서 자식들은 우왕좌왕한다. 이모가 무덤가에서 통곡을 하려고 눈물 발동을 굴리고 있으면 삼촌이 슬그머니 다가와 어머니 무덤은 저게 아닐까, 하고 분위기를 깨는 식이다. 묘비나 비석 없이 죄다 비슷하게 생긴 여덟 개의 무덤 앞에서 자식들이 겪는 난감함은 차라리 코믹하다. 1인 시위하는 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엄마는 할머니 묘지를 옮기는 일에 함께하지 못하고 대신 화자인 아들을 내보낸다. 없어진 자리를 되찾기 위해 회사 앞에 자리잡고 서 있느라 산소에 가지 못한 엄마는, 그 부재로 인해 자리가 없어서 존재하지 않는 할머니의 부재와 중첩된다. 할머니의 무덤은 어디인가. 이 질문은 엄마에게도 유효하다. 엄마의 자리는 어디인가.
   엄마의 자리와 할머니의 자리에서 진정으로 부재하는 것은 자리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미영이가 어디서 일했지? 가물가물해져서 원.”(52쪽) 엄마가 해고당하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모와 외삼촌은 그제야 엄마가 일하는 데가 어딘지 묻는다. 할머니가 어디 누워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족들은 엄마가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몇 번을 말해줘도 상황은 똑같다. 반복은 주제다. 모름이 두 번 반복될 때, 우리는 작가의 의도가 무지(無地)를 폭로하는 데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무지함이 권력의 성격을 띨 때 그것은 폭력이 된다. 몰라도 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모르게 한다. 엄마의 자리가 몰라도 되는 영역으로 치부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자리 역시 그 숱한 시간 동안 몰라도 되는 자리로 치부되어왔을 뿐이다. 할머니의 무덤을 이동해야 하는 것은 개발의 논리에 따른 것이지만 할머니의 무덤을 찾지 못하는 것은 할머니가 집안에서 아웃포커싱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자리가 사라져야 하는 것은 자본의 논리에 다른 것이지만 엄마의 자리가 20년을 일하고도 퇴직금 한푼 못 받고 쫓겨나는 ‘부당해고’의 성격을 띠는 것은 엄마가 사회에서 아웃포커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두 사람을 향한 폭력적 무지가 만나는 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비석을 세우고 자리를 보존하는 일에서 밀려났던 여성이 할머니 시대의 한계였다면 가장 먼저 급류에 휩쓸리는 여성의 노동은 엄마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한계다. 잃어버린 두 자리는 한국 사회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한 모순이 예리하게 포착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만하다.


박혜진

문학편집자이고 문학평론가이다. 글을 보면 책으로 만들 수 있을지 상상하고 책을 보면 글로 쓸 수 있을지 상상한다.

2018/11/27
12호

1
김혜진, 「아웃포커스」, 『어비』, 민음사, 2016, 47~48쪽; 이하 본문에서 「아웃포커스」에 대한 인용은 쪽수만을 표기한다.
2
김혜진, 「다른 기억」, 『소설 보다 봄-여름 2018』, 문학과지성사, 2018, 99쪽.
3
김혜진, 「동네사람」,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 작별』, 은행나무, 2018, 1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