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교환’에서는 문학과 타 장르의 필자가 하나의 주제를 각각 비평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문학비평가 소유정과 미술비평가 이연숙이 각각 문학과 미술의 대표 행사인 ‘서울국제도서전’과 ‘서울아트위크’에 대해 비평합니다. 두 필자는 각 행사에 대한 일회성 비판이나 맹목적 찬사가 아닌, 각 장르의 구조와 성격을 비평적으로 바라보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소유정은 도서전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애정어린 조언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이연숙은 서울아트위크의 풍경을 되짚어보며 미술이 시장에 잠식되어가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개막을 앞둔 2024 서울국제도서전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갈등의 중심에 놓인 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출판진흥원)과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다. 논쟁은 출판진흥원이 출협에 2018~2022년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에서 발생한 수익금 3억 5900만 원을 반환하라고 통지한 것에서 촉발되었다. 이는 2023년 8월 박보균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 누락’ 의혹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출판진흥원을 감사한 뒤 출협과 재정산을 요구한 결과로, 사건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흐름이다. 지난 행사에서 수익금 반환에 대한 어떠한 의무도 지니지 않았던 출협으로서는 날벼락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아 운영하는 행사에서 요구하는 만큼의 수익금 정산과 반납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매년 적자를 보는 것은 예측된 결과라는 것이 출협의 입장이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지난 5월 27일 열린 문체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돈과 권력으로 문화행정을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은 문화의 활력을 퇴행시킬 것”1)이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갈등에 눈치를 보는 건 관람 예정이었던 독자다.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도 양쪽 진영의 불길이 진화되지 않자 ‘가도 되는 것이냐’는 물음이 이어지는 추세다. 독자층에서도 서울국제도서전 관람 여부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 행사의 취지와 목적 등이 이미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졌다는 반증일 테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이기보다 정부와 주최 측의 거스를 수 없는 권력 구조 안에서 행해지는 수익 갈취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지금, 서울국제도서전의 본질적인 의미는 빛을 잃어가고 있다.2)
  “특정 단체에 대해 차별적으로 예산 삭감을 적용하는 일들이 거침없이 적용되고 있는 현실은 사실상 독재 문화의 재현이요, 또다른 블랙리스트의 징후”3)라는 윤 회장의 발언은 서울국제도서전 관람에 대한 독자의 망설임과 무관하지 않다. ‘가도 되는 것이냐’는 물음은 지금의 사태만이 아닌, 과거의 트라우마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바로 작년,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데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 오정희 소설가가 세계적인 책 축제의 홍보대사로 내세워지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 모인 작가들을 끌어냈던 개막식 풍경은 모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문제는 그들을 진압한 이들이 김건희 여사의 경호원이라는 사실이었다. 항의의 목소리를 지운 현장은 이내 고고한 목소리로 채워졌다. 바깥의 소란을 모른 척하고 축하의 말을 건넨 김건희 여사는 여유롭게 도서전을 둘러보았다. 개막식의 소란에 대한 이후 대처는 미약했다. 오정희 소설가는 별다른 입장문 없이 홍보대사에서 자진해서 사퇴했고, 주최 측은 홍보대사 위촉 경위를 설명하거나 비판에 따른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김건희에 의한, 김건희를 위한 과잉 진압이었음이 분명해보였으나 대통령경호법 위반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근거를 댔다.
  이에 도서전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 예정이었던 황정은 소설가를 비롯한 몇몇 작가가 보이콧 선언을 하며 일부 프로그램이 취소되었다. 관람 예정이었던 독자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고, 이는 보이콧 동참으로까지 연결되어 서울국제도서전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남겼다. 때문에 올해 관람에 대한 머뭇거림은 지난해 소동으로부터 이어지는 당연한 결과다. 책-예술로 연결되는 창작자와 소비자의 마주침의 장소로 바라왔던 축제가 아닌,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의구심 가득한 행사로 점점 신뢰를 잃고 있는 형국이다. 관람객의 발길을 돌리는 축제를 더 이상 축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게 하는 축제가 아닌, 우리가 바라는 책 축제, 나아가 그 안에서 꿈꿔볼 수 있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공교롭게도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후이늠’(Houyhnhnm)이다. 후이늠은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가 네번째로 도착한 여행지다. 이곳은 ‘말(馬)들의 나라’로 ‘완벽한 이성’을 특징으로 한다. 후이늠에는 법이 없다. 법을 필요로 하는 죄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략과 전쟁에 대한 걱정도 없다. 후이늠은 그 자체로 완전히 독립적인 공동체를 이룬다. 이는 플라톤의 『국가』에 제시된 바 있는 안정된 공동체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으며, 아마도 소설을 집필할 당시 조나단 스위프트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나라의 모습이었으리라 추정된다.
  후이늠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추방된 이후 걸리버는 상당히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인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만이 아닌 인류 전체를 두고 ‘그들’이라 일컬으며 타자화한다. 걸리버에게 ‘그들’은 이성에 의한 통제가 가능한 후이늠과 달리 욕망에 지배받는 훌륭한 야후이자 하등한 존재이므로, 곧 혐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걸리버 또한 인간이기에 ‘그들’과 다르지 않으나 그는 후이늠에서의 경험으로 야후로서의 혐의를 스스로 지우며 자신을 야후와는 다른 존재로 규정한다. 후이늠이 걸리버의 마지막 여행지일 수밖에 없던 까닭 역시 그에게 있어 후이늠은 정착하고 싶은 완벽한 세계이자 정신적인 집이 되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걸리버에게 후이늠은 유토피아다. 이성과 합리를 최고 가치로 여기던 근대적 개인으로서 걸리버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서도 후이늠이 과연 유토피아일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지금 시점에서 후이늠은 유토피아보다 오히려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나단 스위프트는 플라톤의 『국가』에 제시된 이상적 국가의 요소들에 따라 후이늠을 만들었다. 세부적으로 그 요소들은 사회적 계층의 분리, 성차별 없는 교육, 공동 양육, 산아 제한을 위한 금욕 생활 등이다. 이러한 요건은 얼핏 도덕적 이상을 갖추고, 질서 있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마땅한 것들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노예 제도가 존재하는 고정된 계급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암수 하나씩의 자녀 생산 의무는 자연의 법칙을 준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것인가?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도 공동체 중심의 사회를 기반으로 하기에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동의 소유로 여겨진다는 사실마저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공동체의 유대는 실로 중요하지만, 공동체‘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고유성은 너무나 쉽게 배제된다. 후이늠에는 이름을 가진 자가 없듯이. 이렇듯 개별적인 주체성을 지우며 만들어지는 질서는 합리적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허용되는 엄격한 통제로 가능한 것이다. 지난해의 이해할 수 없던 장면들처럼.
  서울국제도서전의 올해 주제가 후이늠인 까닭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지도”4)를 그려보기 위함이다. 후이늠이 결코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 주제를 선정한 주최 측 역시 알고 있는 듯하다. “이토록 완벽해보이는 ‘후이늠’에도 “인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제한된 이해나 오만함” 등이 존재해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과연 ‘후이늠’이 이상적인 존재이자 우리가 꿈꾸는 세계가 맞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 기획 의도에 지난 도서전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023 서울국제도서전의 개막식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후이늠에 대한 명백한 모방이었다. 이성에 의한 대처라고 판단했을지 모를 일이나 그것은 이곳이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임을 반증하는 행위였다. 책 축제에서 작가를 내쫓는 기이한 사태는 그야말로 주객전도라고 할만했다. 욕망을 저버리지 못한 야후는 그것을 이성으로 탈바꿈하고 자기 자신만이 인정한 후이늠이 된다. 사태를 목도하고도 ‘후이늠이 이상적인 존재이자 우리가 꿈꾸는 세계가 맞는지’라는 의문을 품는 일에는 상당히 모순되는 지점이 있다. 또한 이번 축제가 예년과 달리 홍보대사 위촉, 즉 ‘도서전의 얼굴’ 없이 진행되는 것은 지난번과 같은 논란의 씨앗조차 만들지 않고자 하는 손쉬운 해결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기획 의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이러니 속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이 말하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괴연 무엇일지, 그것이 정말로 함께 그리고자 하는 모습이 맞을지, 그들의 ‘우리’ 속에 현장의 참여자인 우리가 정말로 포함되어 있을지 같은 끝없는 물음이 피어올랐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여러 키워드로 우리의 후이늠을 찾아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여러 번 눈에 띄는 단어는 바로 ‘평화’였다. 후이늠은 정말로 평화로운 나라일까? 『걸리버 여행기』 안에서라면 이성이라는 거대한 질서 아래 수립된 모든 것의 총체를 평화롭다고 여겼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평화를 우리는 원하는가? 아니라면 우리가 찾는 평화가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무엇이 우리의 평화를 방해하는가?
  나는 우리가 찾는 후이늠이 있다면, 그곳은 후이늠이 아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앞선 이야기들을 제외하고도 근거는 충분하다. 후이늠의 사회는 기본적인 법과 규율조차도 기록할 필요가 없으므로, 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의 기록도 필요치 않다. 모든 판단은 이성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것을 제외한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사롭게 감정을 표출해야 할 일도 없다. 분노, 절망, 두려움과 같이 이성적 판단을 저해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기쁨과 행복 등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있어 모든 사건의 발생은―하물며 죽음마저도―자연적이고 논리적인 것이기에 그렇다. 때문에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사소하리만치 일상적인 장면을 담아내는 문학은, 그리고 그것의 기록물인 책은 어쩌면 후이늠에서 가장 불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더군다나 지금보다 엄청난 기술의 발전을 이룩한 미래의 후이늠에서는 더욱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과거, 현재, 미래 어느 시간에서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닿을 수 없는 여러 나라를 인간의 상상력으로 여행했듯,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자를 들여다보고,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피고, 우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생태학적 사유의 전환을 끌어내는 길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책은 이성으로 꼼꼼하게 재단할 수 없는 미세한 한 끗 차이를 인정하는 유일한 세계로 유효하다.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러한 책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가슴 뛰는 축제다. 약 350개의 국내 출판사 및 출판 관련 단체뿐만 아니라 해외 17개국 90여 개 출판사의 책과 전시, 강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말이다.5) 으레 읽기라는 행위는 개인적이며 독자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나 이곳에서 관객은 그러한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연결 주체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창작자와 생산자, 그리고 소비자가 한데 모여 각자의 책을 우리의 책으로 만들고, 책과 맞닿아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함께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은 의미 있는 장소이다. 그것이 더욱 의미 있게 여겨지는 까닭은 작가와 책, 독자 사이의 교차적인 만남이 다채로운 감각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책의 물성을 손끝으로 매만지고, 손에서 손으로 건네어지는 촉각적 행위야말로 서울국제도서전이 가지는 현장성의 두드러지는 장점이 아닐까. 이는 무엇보다 종이책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사양 산업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출판계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여 이와 같은 활력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독립 출판사라고 할 수 있을 테다. 대형 출판사의 책보다 접근성이 떨어지기에 비교적 관심이 덜한 독립 출판물을 한데 모아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으므로 더욱 값지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성공은 당연히 많은 수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객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갔을 때, 그것은 미래를 향한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일 년에 한 번뿐인 다음 도서전을 기다리는 것뿐만 아니라 지엽적으로 행해지는 소규모 북페어 활성화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트인북스, 각양각책, 제주 북페어 등 개성 있게 꾸려지는 작은 축제들에 대한 관심은 출판의 다양성과 예술의 확산의 기회를 넓힌다. 따라서 서울국제도서전의 성공은 책을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행사들의 활성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에 제안하고 싶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도서전이 좀 더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행사이기를 바란다. 도서전을 찾는 관람객의 대부분은 청년 그리고 중년층으로 그 외의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 확대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는 추세이긴 하나 그 밖의 장년, 노년층 대상의 프로그램은 거의 없거나 전무하다. 고령 사회로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지금, 노년층 대상의 프로그램의 확대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써도 필수적이며, 해당 계층에서 문학적 열정으로 가득한 실버문학이 나날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또한 문학계에서 점차 지평을 넓혀 나가는 영 어덜트, 청소년 독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성장기 청소년에게 영 어덜트 문학이 줄 수 있는 힘은 실로 한 사람의 손길만큼의 역할을 하므로. 이처럼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및 토크 등의 프로그램이 출판사 부스와 도서전 전체를 대상으로 구성된다면 보다 전 연령의 독자들이 정말 축제처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제안은 체험형 프로그램의 확대다. 이는 도서전이라는 행사의 현장성을 더욱 살리면서도 책과 독서에 대한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겨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책을 경험하는 일이 단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모객 증진을 위해서는 도서정가제에 대한 타협이 필요하다. 도서정가제 시행 후 열렸던 2015 서울국제도서전은 예년보다 참여 부스가 적었고, 관객도 크게 감소했었다. 출판사 입장에서 이전까지 도서전은 잘 팔리지 않는 책의 재고를 처리할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어 서로에게 좋은 기회였으나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어느 쪽의 요구도 충족할 수 없게 된 탓이다. 해당 제도에는 명암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서울국제도서전, 나아가 책을 판매하는 여러 행사에 있어서는 마냥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된 현실이다. 책을 판매하는 행사 내에서 수용 가능한 방안으로 도서정가제에 대한 조율이 가능하다면, 관람객의 관심 역시 이전과 같이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의 개선이 최우선일지는 많은 고민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멀리 돌아왔지만 도서전이라는 행사에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물론 그렇다는 것이다. 단, 그 안의 책만이 기준점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다. 말해왔던 대로 창작자와 생산자, 그리고 소비자가 마주치는 모든 순간이 우리가 그릴 수 있는 미래를 향한 한 걸음이 아닐까. 그 현장을 경험한 자만이 우리가 찾는 세상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바라는 세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어렵더라도, 우리의 후이늠은 그런 곳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계는 정치적 자유와 예술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초대받지 않은 자의 주인 행세를 허용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위해 나머지의 입을 틀어막지 않는다. 올해의 도서전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장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곳에는 지원금 문제로 부당한 위치에 놓였지만 행사 개최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실무진이 있고, 독자들을 만날 기대로 적지 않은 준비를 한 출판사가 있고, 일 년에 한 번뿐인 행사를 기다려온 이들이 있을 것이기에. 축제 기간인 5일은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기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지만, 그 모두가 모인 공간에서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여행길에 오른 걸리버의 마음으로, 지금 여기에서.

소유정

문학평론가. 산문집 『세 개의 바늘』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5월 말. 도서전 개최는 6월 말이며, 글이 발표될 시점은 7월의 어느 날이다. 이미 축제가 끝난 뒤에 다시 돌아볼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러운 한편 기대가 된다. 걸리버는 여행하고 싶은 세계를 찾았을까?

2024/08/07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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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4년 5월 27일 기사, 〈정부 ‘도서전 수익금 반납’ 통지…출협 “블랙리스트 징후” 행정소송〉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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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의 구조적인 문제는 정부와 주최 간뿐만 아니라 주최와 참가사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가령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립출판사를 대상으로 한 ‘책마을’ 섹션의 참가비는 지난해 40만 원보다 약 33% 인상된 60만 원이다.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를 지급하는 대가로는 과하다는 참가사들의 항의와 반발은 출협의 참가비 폭취에 대한 의혹으로 불거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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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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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국제도서전 역대 프로그램 주제전시 〈후이늠 Houyhnhnm〉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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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골라야할지 고민이 된다면 매년 네 분야에서 엄선된 ‘한국에서 가장’ 수상작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네 분야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으로 이를 통틀어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이라 부른다. “우리가 책을 통해 느끼는 아름다움, 즐거움과 재미, 그리고 지혜에 관한 관점은 늘 주관적”이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기준도 다르지만” “각 선정작이 지닌 고유한 매력을 살펴보며 좋은 책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더 넓은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수상작을 선정한다.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