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것이 제한된 상황에서, 대만에 있던 저에게 《비유》는 한국어로 된 문학과 담론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창구였습니다. 시와 소설처럼 장르의 이름으로 통칭되는 글도 물론 많았지만 ‘하다’ 프로젝트나 ‘묻다’에 실린 다양한 갈래의 활동과 글 또한 《비유》의 중요한 특징이었지요. 만다린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외국인으로서의 일과를 마친 뒤 스크롤을 넘기고, 때로 어떤 문장을 소리 내어 여러 번 읽다 보면 깊은 안도가 찾아왔어요. 약간의 시차나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함께 있다는 감각 덕분에요.
  그래서인지 이듬해 《비유》의 일원이 되었을 때 저에게 이미 《비유》는 웹사이트나 문예지로만 표현하기에는 어쩐지 아쉬운, 공동체와 같은 공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이들이 문학을 매개로 함께할 수 있는 곳. 오늘 저는 《비유》의 지난 프로젝트와 코너 속 문장들을 빌려, 제가 개편 과정에서 마주친 ‘우리’의 장면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합니다.

개편이 막 논의되기 시작했을 즈음 저에게는 분명 초심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맥락 없는 용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비유》의 새로운 미래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용기. 물론 그 용기만으로 무작정 부딪히기에 기획의 벽은 무척 높았고 스스로의 부족함에 좌절하던 날도 있었지요. 하지만 《비유》 안에서 “나란히 선” 동료들을 떠올려보면 그때 그 용기에도 자연스레 당위성이 생겨나는 듯합니다. 덕분에 작년 한 해 저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혼자 고민할 필요” 없이 질문하는 시간이 늘었고, 함께 무언가 만들어나가는 일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어요. 겪기 전까지 알 수 없던 노고를 곁에서 실감하기도 하면서요.

일반적으로 번역은 혼자 하는 작업이라 생각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번역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제가 그동안 크고 작은 번역들을 하면서 여러분들 의견을 종종 물었던 것처럼. 그러면 또 여러분들이 함께 고민해준 것처럼.(웃음) 그런데 이렇게 함께 번역할 판을 벌이고 나니 나란히 선 동지들이 생긴 것 같아서 정말 든든했어요.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흡사, 「여자애처럼 크게 이기는 법」 (‘번_역에서’1) 1화) 부분

무수한 개편 과정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일은 단연 《비유》의 지난 글을 새로운 웹사이트로 옮기는 업무였습니다. 달라진 서식과 재구성한 카테고리에 알맞게 글을 분류하고 다듬기 위해서는 그 모든 페이지를 톺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했는데요. 1,100여 편의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저는 이삿짐을 꾸리는 사람처럼, 정확히는 그러다 발견한 편지 상자 앞에 주저앉아 반나절을 보내는 사람처럼 골몰하기도 했습니다.
  그 상자 속 편지들은 때로 시공간을 넘어서서 한 시절 한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비유》에는 문학을 둘러싼 여러 사건을 기록하고 복기하는 글들이 있습니다. 이곳에 적힌 “각각의 기억의 모양”은 독립된 조각인 동시에, 웹이라는 특성과 《비유》의 구조 안에서 “입체성”을 이루는 ‘우리’의 출렁이는 얼굴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곳에서 세월호라는 단어가 포함된 스무 편의 글을 줄지어 읽어보거나, 2018년 권창섭 시인의 글 「지붕을 잃은 본가궁중족발에 다시 지붕을」에서 2022년 ‘을지OB베어를 되찾기 위한 현장 낭독회’를 나란히 포개어보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날에 대한 기록, 정확히는 그날을 떠올리는 오늘의 기억(이자 기록)이다. 우리가 같은 것을 겪었어도 저마다 다른 것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구성된 각각의 기억의 모양은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이렇게 모여 입체성을 이룬다.

—선우은실, 「우리가 그날을 기억하는 방법」2) 부분

새로워진 《비유》에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역시 디자인일 것입니다. 처음 시안을 보던 날 기획 단계부터 추진된 접근성 기능(크게 보기, 어둡게 보기, 쉽게 보기)을 비롯한 다채로운 레이아웃 속 게시글 상세 페이지를 보고 잠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때부터 접해왔던 ‘보편적’인 웹사이트에 비해 아주-혹은 너무 커다란 글씨 크기가 저를 반기고 있었거든요. 실제로 앞서 말한 전체 게시글을 읽는 과정에서 이 페이지에 적응하기 위한 약간의 연습이 필요하기도 했고, 개편 이후에도 글씨 크기와 관련한 문의를 종종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접근성 기능뿐 아니라 표준 모드가 시력 약자를 어느 정도 포함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홍은주, 김형재 디자이너님의 의도를 들었을 때, 60대가 된 우리 집 부부의 휴대전화 속 아주-혹은 너무 컸던 글씨 크기가 잇따라 떠올랐을 때, 저는 그동안 ‘보편성’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라는 표현을 어디까지 공유하고 있는지에 관한 성찰과도 맞닿아 있겠지요.

한편 이 책 보면서 제게 습관이 생겼어요. 거리를 걸을 때 ‘여기를 과연 휠체어가 갈 수 있을까?’ ‘여기를 과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안전하게 갈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모든 사람을 위해 건설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요.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세상이고 거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B&M Friend, 「“저는 뭉텅거리는 단어를 좋아해요”」 (‘you,a sentence’3) 2화) 부분

글을 마무리하며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가치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나 아닌 더 멀리까지 나와 함께 그러모아 호명하는 방식. 그 순간 생겨나는 넉넉하고 커다란 원에 대해서요. 《비유》를 떠나면서도 조금 덜 슬픈 이유는 이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이곳에서는 마음껏 ‘우리’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부디 《비유》가 그런 플랫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것, 문학으로 《비유》

우리가 하는 것은 문학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문학과 말합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가진 생각을 문학에 빗대는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웹진 《비유》 슬로건

관련 작품 바로가기
① 흡사, 「여자애처럼 크게 이기는 법」click
② 선우은실, 「우리가 그날을 기억하는 방법」click
③ B&M Friend, 「“저는 뭉텅거리는 단어를 좋아해요”」click

임고은

2021년 3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연희문학창작촌 청년문화행정가와 웹진 《비유》의 코디네이터로 일했습니다. 20여 개 호 모든 원고에 태그를 달아 서식을 완성하고, 설문조사 답변을 읽고 또 읽으며 웹사이트를 기획하거나, 새로운 《비유》의 구석구석을 다듬고 고치는 일을 주로 맡았습니다.

202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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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_역에서’는 여성, 퀴어, 장애, 이주, 공동체, 다섯 가지의 키워드로 선정한 영미시를 공동 번역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네 명의 번역가는 대화를 나누며 시 한 편을 한국어로 번역하기까지의 고민을 나누어 갖고 영상 제작자는 이렇게 번역된 시를 영상으로 제작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독자와 함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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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실린 ‘공동(체)’ 코너는 과거의 사건으로 지나쳐서는 안 되는 일들을 ‘지금’ 다르게 사유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묻고,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였습니다. 58호(2022. 10)부터 61호(2023. 1)에서는 ‘304 낭독회’ 100회를 맞이하여 그간 낭독되었던 시와, 100회 동안의 발자취를 담은 에세이를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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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a sentence’는 책의 구절이나 영화 속 명대사가 아닌 주변인 7명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 멤버들은 편집하기 어려운 필름 카메라와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해, 편리성을 위해 도려내지는 작은 대사나 이야기, 날것 속의 진실을 주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