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는 사람들
출판사는 작가를 ‘고용’했는가
출간 계약서를 체결할 때 저자는 계약 주체 ‘갑’으로, 출판사(정확히는 출판사 대표자)는 ‘을’로 표기한다. 저자는 출판사의 청탁을 받아 계약을 체결하고, 개인이 감당하지 못하는 출판사의 인프라를 차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저자는 실질적으로 ‘갑’일까. 물론 출판사의 인프라와 밸류를 고를 수 있는 작가라면 출판사를 선택해 이런 실무를 맡긴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출판사가 제작 비용 이상을 회수할 수 있는 작가에게 ‘청탁’하기에 저자는 채택되어 업무를 의뢰받는 ‘을’의 입장이다.
저자 중에서 편집 및 출간 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출판사를 ‘부리는’ 작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실존했다 해도 요즘과 같은 출판 불황에 ‘갑질’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갑질’로 불릴 문제적 행동을 일삼는 저자도 있(었)다고는 하는데, 활동 경력이 길지 않은 나로선 판타지 소설 속 요정 얘기를 듣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 된다. 태곳적 100만 부 베스트셀러가 제법 흔해 저자가 왕이던 시절이라니, 마치 용이 황제와 짬짜미하던 시절 얘기인 것만 같다.
엄밀하게 자성하자면 나도 ‘갑질’한 작가로 불렸겠다 싶은 상황이 있다. 지난해 두 개의 출판 계약을 해지했다. 한 군데는 2차 저작 분배 비율을 높여달라고 요청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아 계약서 논의 중에 미체결했고, 또 한군데는 출판사 사정으로 계약서에 명시된 출간 시점을 넘겼기에 해지를 요청했다. 매번 업계 관례라 생각하며 넘어갈 수 없단 생각이었지만 둘 다 원고 집필을 끝내고도 파기했기에 속상하고 우울했다. 나와 소통을 담당한 편집자들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나를 두고 출판사 사정도 모르고 저자 입장(혹은 원칙)만 주장하는 예민한 작가라거나 심지어 갑질하는 작가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렇잖아도 편집부 직원들 늘 과로로 힘든데 잘 팔리지도 않는 작가가 괜히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대도 이해한다.
의도야 어쨌든 이런 행동이 갑질로 불린다면 반문하고 싶다. 이 선택으로 작가가 얻은 결과는 무엇일까? 하나는 애써 집필한 원고가 출간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편집자들이나 출판사들 사이에 까다로운 사람으로 소문이 나서 다음 출간에 영향을 받는 정도일 터다. 그런데 이건 작가가 계약 주체의 ‘을’이라는 입장을 고스란히 증명하는 셈 아닌가. 내가 고집한 것이 표준계약서 수준의 조건과 그 준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허탈하다. 본래는 협상하거나 논의할 내용도 아닌 걸 두고 나는 내 선택이 ‘갑’의 위치인지 성찰하고 있다.
그래서 설령 요즘도 갑질하는 작가가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표준계약서에서만큼은 계약 주체를 ‘을’로 명시하는 게 적어도 표준적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출판사를 고용하거나 업무에 대해 지시하지 못한다. 출판사는 (옥고를 청탁한다는 류의 존중하는 표현을 취하긴 하니 지시라고는 표현하지 못할지언정) 저자에 업무 과정을 위탁한다.
집필에 든 시간과 번 돈 얘기를 해보겠다. 책을 한 권 쓰면 얼마를 버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계약금 명목의 선인세 100만 원입니다. 인쇄한 분량이 팔리지 않으면 이걸로 끝날 가능성도 높습니다.1) 비소설은 계약금이 더 적은 경우도 많고요.”
그렇다면 한 권을 집필하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나는 현재 전업 작가이고 평균적으로 매월 300매 수준의 완성된 글을 써서 발표(혹은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간혹 두 달 만에 장편용 600매 한 권 분량 초고를 완성하는 기적적인 일을 만들어내고 뿌듯할 때도 있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결과물을 빚어내면 어김없이 며칠 앓아눕는다. 참고로 나는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집필에 사용하고 있고 내 글에 대한 기준이 높지 않아서 동종업자 중에선 생산량이 좋은 편에 속한다. 질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현재 출판 환경 속에서 생존하려면 양적 성취가 그나마 지속성을 보장한다 생각해 현재는 이런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과 보상을 생각해보면 기적적으로 두 달에 한 권 분량을 써서 즉시 계약한다고 쳐도 월 50만 원가량의 수익을 창출했다는 뜻이 된다. 생업을 따로 두거나 강연 등을 병행하는 작가가 많은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표준계약을 준수하는 출판사를 만나 초판 인쇄분을 지급받는다면 출간 후 약 300만 원 남짓의 수익을 얻게 되는데, 출간과 정산이 즉각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 완고를 다 제출하고도 이 돈을 받는 데에 반년에서 일 년이 넘어가는 일은 디폴트다. 초판 인쇄와 재쇄 타이밍 등의 사유로 정산이 연체(미지급)되는 것이 출판 업계의 대표적인 관례인데 다른 노동시장에서라면 임금체불에 지연이자를 적용할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필 노동자의 연봉 계산도 힘들다.
출판사의 인쇄 및 출간, 홍보 스케줄이나 지급 정산 시기 등은 저자가 어찌할 수 없다. 즉, 저자는 출판사 사정에 종속되는 존재다. 저작물의 권리가 저자에게 있고 업무 시간 등에 자율성이 있다는 이유로 계약서에 ‘갑’으로 명시되는 것이지만 계약 이행에 있어서 실질적인 ‘을’인 또 다른 이유다.
최저임금(약 2,516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나는 집필로만 평균 소득 연 2,400만 원 수준을 벌고 있다. 글별 단가로 계산해보면 이는 매월 단편소설 한 편 이상을 어딘가에 발표해서 1,200만 원을 벌고, 이에 더해 권당 300만 원 수준의 장편 등 단독 저서를 연 4건 더 수행해 1,200만 원을 벌어야 가능한 금액이다. 3쇄 인세 수익을 내는 출간물이 많지 않고2) 문학, 특히 장르문학을 발표할 지면이나 매체가 너무 적은 현재 시장 상황을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집필만으로 벌어들인 이 소득은 기적에 가깝다. (플랫폼 연재 그리고 타 매체 협업 등 단가가 높은 프로젝트가 몇 건 포함되어 가능했다. 최근 장르문학의 수요가 늘고 있고 각 플랫폼 오리지널 레이블이나 구독형 서비스, 연극·영화·전시 등 타 예술 분야와의 협업 등이 늘어난 것이 내 수익에도 조금 도움이 되었다.)
지난해 작가노조 준비위원회에서 200여 명의 작가를 대상으로 ‘작가노동 실태조사 2025’를 실시했다. 지난 3년 평균 ‘집필노동 연평균 소득’에 대한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0%가 2,000만 원 이하, 33.66%가 500만 원 이하를 받았다고 답했다.3)
‘전업 작가 활동을 위해 필요한 희망 연봉’이라는 설문도 있었다. 이 내용을 준비하던 작가노조 설문기획팀 회의 때 참여 작가들이 웃었다.
“이건 데이터로 가치가 있다기보다 재밌는 설문 수준이겠죠?”
웬걸. 글로 중위 소득 이상의 연봉을 꿈꾼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44.39% 작가가 연봉 2-3천만 원만 되어도 집필 노동만을 하며 생활할 수 있겠다고 답했다. 나처럼 최저임금 수준만 보장되어도 작가 대부분은 전업을 꿈꾼다는 뜻이자 동시에 그것이 현재 실현되지 않음을 드러내는 지표였다. 글만 써서는 먹고 살 수 없는 현장의 현실을 말해주는 데이터가 되었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사는 빈곤층이 우리 사회엔 작가 외에도 많다는 것이 위안이자 슬픔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출간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결심은 곧 가난해지는 일이다.
그런데 글 값(계약금, 인세율)은 태곳적부터 이런 금액이었다. 출간 제작 비용에서 글 값이 저임금으로 책정되어 심지어 지불 후순위로 고정된 것도 출판 시장이 지금과 달랐을 때 정해진 기준일 터다. 상황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집필 노동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최저 임금과 비교할 여지라도 생길까.
작가별로 집필 기간과 겸업 등 생계 상황이 제각각이라 일률적으로 말하기 매우 어렵지만 웹소설 작가, 장르 작가 등 생산성이 제법 높아 시간과 결과물을 정량화할 수 있는 작가 입장에선, 전통적 노동방식 기준으로라도 우선 4대 보험과 산재, 실업 급여 등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물론 집필 노동의 특성상 딱 시간과 글자 수로만 가치가 측정되지 않고, 구상, 취재, 이동, 저작물에 수반되는 번외 활동 등을 포괄하지 못하면 노동 가치를 측정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너무 넓어진다. 그래도 전통적인 시간 중심 노동에 빗대어서라도 집필 노동자의 4대 보험 등을 적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당사자성 요구기도 하지만 작가의 노동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집필이 영원히 노동으로 정의되지 못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웹소설 작가는 주 5일 매일 20-30매를 연재한다. 이를 합산하면 매월 출판 서적 기준 책 한 권, 약 400-600매 수준의 글을 집필한다. 자료 조사, 구상, 수정, 퇴고, 교정 등 집필에 소요되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매일 과로하는 수준임은 명약관화다. 주변의 SF 등 장르 작가 중에 겸업 작가가 많은데 직장인 작가는 새벽 시간이나 퇴근 후 자기 시간을 총동원한다. 이러다 누가 죽은 뒤에야 그가 처한 노동 환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제발 그만했으면 한다. 이미 웹툰, 웹소설 작가들의 사망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현상은 내가 기술한 대로다. 그러면 이들의 건강권과 실업, 재취업 등은 어떤 고용주가 책임져야 하는가. 그런데 고용주……? 저자의 고용주가 있나? 지금의 계약 조건상 저자를 고용한 주체가 존재하는가?
작가의 고용보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용주는 누구인가?
연말의 한 송년회 자리에서 예술인 고용보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작가는 예술인 고용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용보험 가입을 제시한 출판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고도 말했다. (출간 계약은 한 출판사에서 월 소득 50만 원 이상 지속적으로 지급받는 고용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조건도 충족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던 1인 출판사 사장이 단정적으로 물었다.
“왜 출판사가 고용보험을 부담해야 하죠? 원하시면 100% 본인 부담으로 예술인 보험에 가입하시면 되어요.”
출판사가 작가의 고용보험을 부담할 의무가 없다는 거였다. 한 출판사에서 관리하는 수십 수백 명의 저자군을 꾸준히 종속적으로 고용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임을 이해하지만 나는 이 대화가 출판계와 집필 노동자가 봉착한 현재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느꼈다.
출판사는 저자를 ‘모신다’고 표현하지 고용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저자가 출간 계약을 했다고 출퇴근과 같은 방식으로 시간제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저자가 계약 기간 중 딱 하나의 출판사에만 얽매이는 것은 아니기에 특정 출판사 하나가 자신의 노동방식과 건강권을 온전히 책임질 주요 ‘고용주’라고 인지하지도 않는다. 노동 형태와 업무 방식이 유연하기에 전통적 시간제 노동, 정규 노동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런 상황을 전제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이게 맞나, 싶다. 나는 1년에 5개 정도의 출판사와 크고 작은 단발성 계약을 맺는다. 단편 계약은 (청탁 시점과 마감 기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빠르면 1개월 안에 업무를 완료하기도 하고, 장편일 경우엔 집필부터 출간까지 약 2년 이상 계약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각각은 단가가 낮기에 한두 개만으로는 생계 영위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유사한 작업 내용을 다양한 출판사와 동시 진행해 1년 내내 노동한다.
집필 노동을 하느라 근골격계 질환이 악화되고 있지만 내가 신체적 질병을 얻는다 해도 산재로 적용되기 어렵고 과로나 질병으로 인해 잠시 업무를 중단한다 해도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다. 다른 겸업 없이 오로지 이 출판 업계에서 동일한 내용의 작업 방식을 전업으로 하고 있음에도 나를 고용한 사업주가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순 계산을 해보고 싶다. 내가 1년에 5개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면 내 고용 상태와 과로와 해고(실업 상태)에 대해 적어도 한 출판사가 5분의 1 수준의 책임을 지길 원한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이뤄진 적이 없다. 애초에 작가가 노동자로 정의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저자의 노동을 정량화할 수 없다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계약서상 ‘갑’이라는 이름 속에서 집필이 노동이라는 사실, 작가가 출판사에 고용되어 업무를 수탁한다는 사실은 외면받거나 무시되어왔다.
나는 출간 계약 체결 시 저자의 권익을 보장받을 방식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출판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판분야 표준계약서가 일률적, 강제적으로 출판사에 적용되지 않는 현재로서는 어떤 계약서도 협상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저자(특히 신인 작가)는 출판사의 요구나 상황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베스트셀러 한두 작품에 출판사의 사활이 걸려 있는 구도 속에서 출판사도 저자도 모두가 일종의 행운을 향해 달려간다. 그 사이에 작가를 갈아 넣는 일들은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선택으로 슬쩍 미뤄진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선택, 누군가는 즐기듯 기꺼이 할 수 있는 업무라는 이유로 이렇게 방치되어도 좋은 걸까.
출판사는 작가를 고용했다
출간 계약 체결 과정에서 드러나는 갑과 을의 비대칭 문제의 원인은 그동안 출판사가 작가를 노동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을 의뢰하고 고용했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집필 업무가 고용주의 직접 관리하에 놓이지 않는 것은 플랫폼 노동 등 최근의 특수고용노동자와 유사하다. 저자를 모신다는 표현, 옥고를 청탁한다는 허울뿐인 표현은 필요 없다. 집필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 언제부터 관례가 된 건지 알 수 없는 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집필 노동자의 생존과 지속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나눠서 져야 한다. AI 저작물 때문에 쥐꼬리만 한 수익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누군가는 저지해야 한다. 그 주체는 개별 출판사에 더해 출판협회와 노동부, 문화체육부, 정부, 그리고 그 모두여야 할 것이다. 이 사각지대가 은폐해온 폐해를 작은 출판사나 저자에게만 그냥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저자 중에서 편집 및 출간 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출판사를 ‘부리는’ 작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실존했다 해도 요즘과 같은 출판 불황에 ‘갑질’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갑질’로 불릴 문제적 행동을 일삼는 저자도 있(었)다고는 하는데, 활동 경력이 길지 않은 나로선 판타지 소설 속 요정 얘기를 듣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 된다. 태곳적 100만 부 베스트셀러가 제법 흔해 저자가 왕이던 시절이라니, 마치 용이 황제와 짬짜미하던 시절 얘기인 것만 같다.
엄밀하게 자성하자면 나도 ‘갑질’한 작가로 불렸겠다 싶은 상황이 있다. 지난해 두 개의 출판 계약을 해지했다. 한 군데는 2차 저작 분배 비율을 높여달라고 요청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아 계약서 논의 중에 미체결했고, 또 한군데는 출판사 사정으로 계약서에 명시된 출간 시점을 넘겼기에 해지를 요청했다. 매번 업계 관례라 생각하며 넘어갈 수 없단 생각이었지만 둘 다 원고 집필을 끝내고도 파기했기에 속상하고 우울했다. 나와 소통을 담당한 편집자들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나를 두고 출판사 사정도 모르고 저자 입장(혹은 원칙)만 주장하는 예민한 작가라거나 심지어 갑질하는 작가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렇잖아도 편집부 직원들 늘 과로로 힘든데 잘 팔리지도 않는 작가가 괜히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대도 이해한다.
의도야 어쨌든 이런 행동이 갑질로 불린다면 반문하고 싶다. 이 선택으로 작가가 얻은 결과는 무엇일까? 하나는 애써 집필한 원고가 출간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편집자들이나 출판사들 사이에 까다로운 사람으로 소문이 나서 다음 출간에 영향을 받는 정도일 터다. 그런데 이건 작가가 계약 주체의 ‘을’이라는 입장을 고스란히 증명하는 셈 아닌가. 내가 고집한 것이 표준계약서 수준의 조건과 그 준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허탈하다. 본래는 협상하거나 논의할 내용도 아닌 걸 두고 나는 내 선택이 ‘갑’의 위치인지 성찰하고 있다.
그래서 설령 요즘도 갑질하는 작가가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표준계약서에서만큼은 계약 주체를 ‘을’로 명시하는 게 적어도 표준적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출판사를 고용하거나 업무에 대해 지시하지 못한다. 출판사는 (옥고를 청탁한다는 류의 존중하는 표현을 취하긴 하니 지시라고는 표현하지 못할지언정) 저자에 업무 과정을 위탁한다.
집필에 든 시간과 번 돈 얘기를 해보겠다. 책을 한 권 쓰면 얼마를 버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계약금 명목의 선인세 100만 원입니다. 인쇄한 분량이 팔리지 않으면 이걸로 끝날 가능성도 높습니다.1) 비소설은 계약금이 더 적은 경우도 많고요.”
그렇다면 한 권을 집필하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나는 현재 전업 작가이고 평균적으로 매월 300매 수준의 완성된 글을 써서 발표(혹은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간혹 두 달 만에 장편용 600매 한 권 분량 초고를 완성하는 기적적인 일을 만들어내고 뿌듯할 때도 있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결과물을 빚어내면 어김없이 며칠 앓아눕는다. 참고로 나는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집필에 사용하고 있고 내 글에 대한 기준이 높지 않아서 동종업자 중에선 생산량이 좋은 편에 속한다. 질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현재 출판 환경 속에서 생존하려면 양적 성취가 그나마 지속성을 보장한다 생각해 현재는 이런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과 보상을 생각해보면 기적적으로 두 달에 한 권 분량을 써서 즉시 계약한다고 쳐도 월 50만 원가량의 수익을 창출했다는 뜻이 된다. 생업을 따로 두거나 강연 등을 병행하는 작가가 많은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표준계약을 준수하는 출판사를 만나 초판 인쇄분을 지급받는다면 출간 후 약 300만 원 남짓의 수익을 얻게 되는데, 출간과 정산이 즉각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 완고를 다 제출하고도 이 돈을 받는 데에 반년에서 일 년이 넘어가는 일은 디폴트다. 초판 인쇄와 재쇄 타이밍 등의 사유로 정산이 연체(미지급)되는 것이 출판 업계의 대표적인 관례인데 다른 노동시장에서라면 임금체불에 지연이자를 적용할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필 노동자의 연봉 계산도 힘들다.
출판사의 인쇄 및 출간, 홍보 스케줄이나 지급 정산 시기 등은 저자가 어찌할 수 없다. 즉, 저자는 출판사 사정에 종속되는 존재다. 저작물의 권리가 저자에게 있고 업무 시간 등에 자율성이 있다는 이유로 계약서에 ‘갑’으로 명시되는 것이지만 계약 이행에 있어서 실질적인 ‘을’인 또 다른 이유다.
최저임금(약 2,516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나는 집필로만 평균 소득 연 2,400만 원 수준을 벌고 있다. 글별 단가로 계산해보면 이는 매월 단편소설 한 편 이상을 어딘가에 발표해서 1,200만 원을 벌고, 이에 더해 권당 300만 원 수준의 장편 등 단독 저서를 연 4건 더 수행해 1,200만 원을 벌어야 가능한 금액이다. 3쇄 인세 수익을 내는 출간물이 많지 않고2) 문학, 특히 장르문학을 발표할 지면이나 매체가 너무 적은 현재 시장 상황을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집필만으로 벌어들인 이 소득은 기적에 가깝다. (플랫폼 연재 그리고 타 매체 협업 등 단가가 높은 프로젝트가 몇 건 포함되어 가능했다. 최근 장르문학의 수요가 늘고 있고 각 플랫폼 오리지널 레이블이나 구독형 서비스, 연극·영화·전시 등 타 예술 분야와의 협업 등이 늘어난 것이 내 수익에도 조금 도움이 되었다.)
지난해 작가노조 준비위원회에서 200여 명의 작가를 대상으로 ‘작가노동 실태조사 2025’를 실시했다. 지난 3년 평균 ‘집필노동 연평균 소득’에 대한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0%가 2,000만 원 이하, 33.66%가 500만 원 이하를 받았다고 답했다.3)
‘전업 작가 활동을 위해 필요한 희망 연봉’이라는 설문도 있었다. 이 내용을 준비하던 작가노조 설문기획팀 회의 때 참여 작가들이 웃었다.
“이건 데이터로 가치가 있다기보다 재밌는 설문 수준이겠죠?”
웬걸. 글로 중위 소득 이상의 연봉을 꿈꾼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44.39% 작가가 연봉 2-3천만 원만 되어도 집필 노동만을 하며 생활할 수 있겠다고 답했다. 나처럼 최저임금 수준만 보장되어도 작가 대부분은 전업을 꿈꾼다는 뜻이자 동시에 그것이 현재 실현되지 않음을 드러내는 지표였다. 글만 써서는 먹고 살 수 없는 현장의 현실을 말해주는 데이터가 되었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사는 빈곤층이 우리 사회엔 작가 외에도 많다는 것이 위안이자 슬픔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출간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결심은 곧 가난해지는 일이다.
그런데 글 값(계약금, 인세율)은 태곳적부터 이런 금액이었다. 출간 제작 비용에서 글 값이 저임금으로 책정되어 심지어 지불 후순위로 고정된 것도 출판 시장이 지금과 달랐을 때 정해진 기준일 터다. 상황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집필 노동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최저 임금과 비교할 여지라도 생길까.
작가별로 집필 기간과 겸업 등 생계 상황이 제각각이라 일률적으로 말하기 매우 어렵지만 웹소설 작가, 장르 작가 등 생산성이 제법 높아 시간과 결과물을 정량화할 수 있는 작가 입장에선, 전통적 노동방식 기준으로라도 우선 4대 보험과 산재, 실업 급여 등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물론 집필 노동의 특성상 딱 시간과 글자 수로만 가치가 측정되지 않고, 구상, 취재, 이동, 저작물에 수반되는 번외 활동 등을 포괄하지 못하면 노동 가치를 측정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너무 넓어진다. 그래도 전통적인 시간 중심 노동에 빗대어서라도 집필 노동자의 4대 보험 등을 적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당사자성 요구기도 하지만 작가의 노동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집필이 영원히 노동으로 정의되지 못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웹소설 작가는 주 5일 매일 20-30매를 연재한다. 이를 합산하면 매월 출판 서적 기준 책 한 권, 약 400-600매 수준의 글을 집필한다. 자료 조사, 구상, 수정, 퇴고, 교정 등 집필에 소요되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매일 과로하는 수준임은 명약관화다. 주변의 SF 등 장르 작가 중에 겸업 작가가 많은데 직장인 작가는 새벽 시간이나 퇴근 후 자기 시간을 총동원한다. 이러다 누가 죽은 뒤에야 그가 처한 노동 환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제발 그만했으면 한다. 이미 웹툰, 웹소설 작가들의 사망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현상은 내가 기술한 대로다. 그러면 이들의 건강권과 실업, 재취업 등은 어떤 고용주가 책임져야 하는가. 그런데 고용주……? 저자의 고용주가 있나? 지금의 계약 조건상 저자를 고용한 주체가 존재하는가?
작가의 고용보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용주는 누구인가?
연말의 한 송년회 자리에서 예술인 고용보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작가는 예술인 고용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용보험 가입을 제시한 출판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고도 말했다. (출간 계약은 한 출판사에서 월 소득 50만 원 이상 지속적으로 지급받는 고용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조건도 충족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던 1인 출판사 사장이 단정적으로 물었다.
“왜 출판사가 고용보험을 부담해야 하죠? 원하시면 100% 본인 부담으로 예술인 보험에 가입하시면 되어요.”
출판사가 작가의 고용보험을 부담할 의무가 없다는 거였다. 한 출판사에서 관리하는 수십 수백 명의 저자군을 꾸준히 종속적으로 고용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임을 이해하지만 나는 이 대화가 출판계와 집필 노동자가 봉착한 현재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느꼈다.
출판사는 저자를 ‘모신다’고 표현하지 고용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저자가 출간 계약을 했다고 출퇴근과 같은 방식으로 시간제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저자가 계약 기간 중 딱 하나의 출판사에만 얽매이는 것은 아니기에 특정 출판사 하나가 자신의 노동방식과 건강권을 온전히 책임질 주요 ‘고용주’라고 인지하지도 않는다. 노동 형태와 업무 방식이 유연하기에 전통적 시간제 노동, 정규 노동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런 상황을 전제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이게 맞나, 싶다. 나는 1년에 5개 정도의 출판사와 크고 작은 단발성 계약을 맺는다. 단편 계약은 (청탁 시점과 마감 기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빠르면 1개월 안에 업무를 완료하기도 하고, 장편일 경우엔 집필부터 출간까지 약 2년 이상 계약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각각은 단가가 낮기에 한두 개만으로는 생계 영위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유사한 작업 내용을 다양한 출판사와 동시 진행해 1년 내내 노동한다.
집필 노동을 하느라 근골격계 질환이 악화되고 있지만 내가 신체적 질병을 얻는다 해도 산재로 적용되기 어렵고 과로나 질병으로 인해 잠시 업무를 중단한다 해도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다. 다른 겸업 없이 오로지 이 출판 업계에서 동일한 내용의 작업 방식을 전업으로 하고 있음에도 나를 고용한 사업주가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순 계산을 해보고 싶다. 내가 1년에 5개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면 내 고용 상태와 과로와 해고(실업 상태)에 대해 적어도 한 출판사가 5분의 1 수준의 책임을 지길 원한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이뤄진 적이 없다. 애초에 작가가 노동자로 정의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저자의 노동을 정량화할 수 없다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계약서상 ‘갑’이라는 이름 속에서 집필이 노동이라는 사실, 작가가 출판사에 고용되어 업무를 수탁한다는 사실은 외면받거나 무시되어왔다.
나는 출간 계약 체결 시 저자의 권익을 보장받을 방식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출판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판분야 표준계약서가 일률적, 강제적으로 출판사에 적용되지 않는 현재로서는 어떤 계약서도 협상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저자(특히 신인 작가)는 출판사의 요구나 상황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베스트셀러 한두 작품에 출판사의 사활이 걸려 있는 구도 속에서 출판사도 저자도 모두가 일종의 행운을 향해 달려간다. 그 사이에 작가를 갈아 넣는 일들은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선택으로 슬쩍 미뤄진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선택, 누군가는 즐기듯 기꺼이 할 수 있는 업무라는 이유로 이렇게 방치되어도 좋은 걸까.
출판사는 작가를 고용했다
출간 계약 체결 과정에서 드러나는 갑과 을의 비대칭 문제의 원인은 그동안 출판사가 작가를 노동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업을 의뢰하고 고용했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집필 업무가 고용주의 직접 관리하에 놓이지 않는 것은 플랫폼 노동 등 최근의 특수고용노동자와 유사하다. 저자를 모신다는 표현, 옥고를 청탁한다는 허울뿐인 표현은 필요 없다. 집필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 언제부터 관례가 된 건지 알 수 없는 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집필 노동자의 생존과 지속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나눠서 져야 한다. AI 저작물 때문에 쥐꼬리만 한 수익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누군가는 저지해야 한다. 그 주체는 개별 출판사에 더해 출판협회와 노동부, 문화체육부, 정부, 그리고 그 모두여야 할 것이다. 이 사각지대가 은폐해온 폐해를 작은 출판사나 저자에게만 그냥 떠넘겨서는 안 된다.
황모과
소설집 『밤의 얼굴들』 『스위트 솔티』, 중편 『클락워크 도깨비』 『10초는 영원히』 『노바디 인 더 미러』 『언더 더 독』, 장편 소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서브플롯』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그린 레터』 등을 출간했다.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2021년과 2024년에 SF어워드를 수상했다.
작가노조는 2026년 2월 28일 창립총회를 열고 독자노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26/04/01
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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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판 인쇄분 인세를 지급하지 않고 선인세 지급에 그치는 것은 표준계약 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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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쇄분 인세는 3쇄가 결정되어야 지급된다. 즉 2쇄분이 다 팔리기 전에는 인세를 미지급하는 출판사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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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작가노동 실태조사 2025’ 보고서(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