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탈출을 말하는 청년 투자자들

20-30대 금융투자자들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거의 매번 ‘탈출’과 ‘경제적 자유’라는 테마와 마주치게 된다. 금융투자를 통해 조기 은퇴(‘졸업’)를 꿈꾸는 야심 찬 파이어(FIRE)1)족이 아니더라도, 이들은 자신의 금융투자를 일종의 ‘탈출구’이자 자유를 향한 실천으로 묘사하는 데 익숙하다. 주식, 암호화폐, 부동산, 어떤 형태의 투자이든, 그 목적에 대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든지, ‘더 이상 불안을 느끼고 싶지 않다’ 혹은 ‘언젠가는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와 같이 표현하는 일은 인터뷰마다 반복해서 등장한다.
  아마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혹자의 말을 빌자면, ‘탈출(exit)’은 포스트-신자유주의(post-neoliberal)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자 해방의 은유가 되었기 때문이다.2) 글로벌 사우스의 이민자들이 전쟁과 경제적 곤궁을 피해 자신의 땅을 떠나는 동안, 슈퍼리치들은 카리브해의 조세피난처로 탈출하며, 밀려드는 이민자에 지친 이들이 ‘브렉시트’에 표를 던질 때, 우파 정치인들은 국민-국가를 조각내 민주주의의 견제에서 벗어날 아이디어를 고심한다.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자본의 간택을 통해 ‘엑시트’를 열망할 때, 실리콘 밸리의 억만장자들은 아예 지구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기도 한다.3) 이런 상황에서 금융투자 성공을 통해 졸업을 꿈꾼다는 것이 뭐 그리 새삼스러운 일일까.
  우리에게 좀 더 흥미로운 것은, 탈출의 은유는 언제나 ‘어디에서 어디로의 탈출’이라는 규정, 즉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4) 내가 만난 20-30대 투자자들에게 탈출하고자 하는 세계는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노동과 오늘날 그것이 상징하는 모든 것―시간의 박탈, 불안정성, 고됨, 지루함, 갑질, 통제 등등―으로부터의 탈출과 졸업. 물론 소위 ‘야수의 심장’을 가진 공격적 투자자들이 없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청년 투자자들은 투자를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기보다는 낮은 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돈의 가치 하락을 걱정하고, 불안정한 노동소득으로 규범화된 생애주기를 쫓아갈 수 있을지 불안해하며 투자에 뛰어든 이들이었다. 탈출에 대한 열망에는 많은 경우 ‘추방(eviction)’에 대한 공포가 은밀히 반영되어 있다는 한 비평가의 지적처럼,5) ‘마지못해’ 금융화에 뛰어든 이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적인 정서는 현재의 노동에 대한 불안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금융투자는 거창한 부자의 꿈을 향한 직행 티켓이라기보다는, 최소한 지금의 ‘갇힌’ 상태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동아줄 정도의 의미로 새겨진다. 현장연구에서 만난 20대 여성 A는 투자의 목표로 밝힌 ‘경제적 자유’를 정의해달라는 연구자의 요청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커피 한 잔 사면서 일일이 가격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라 답했다. 여러모로 청년들의 투기 실천에 대해 한 선행 연구자가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좇는 ‘경제적 자유’라는 관념은 결국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돈 때문에 더는 속 끓이고 싶지 않다는, 삶의 안정을 향한 열망인 셈이다.”6) 이들은 투기라는 기다림의 예술(art) 혹은 ‘존버’를 실천하면서, 금융이라는 탈출구에서 기회를 기다리며 불안정하고 지루하며 때로는 굴욕적인 노동 세계를 버텨나간다.


2. 탈출의 역설과 남겨진 것들

여기까지의 논의가 너무 익숙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전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속에 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되고, 노동소득의 증가가 자산소득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일관되게 자산시장 부양을 우선시하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노동과 금융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상당 부분 변화했다는 진단은 여러 차례 제기되어왔다. 불과 한두 세대 전만 해도 노동은 안정적인 소득원으로, 금융투자는 자칫 잘못 손댔다가 패가망신하는 불안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면, 오늘날 등장하고 있는 자산경제(the asset economy)에서는 노동소득이 오히려 “단기적이고 불안정한 것으로 간주되며”,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투자는 ‘결국에는 우상향하는’ 보다 “장기적이고 확장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것”으로 상상된다.7) 어지러워진 현재의 노동에 대한 탈출구로 미래를 향한 금융 투자가 장려되는 동안, 노동은 이 탈출구에 접근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드머니를 제공하는 역할로 축소된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을 추가로 고려하면, 노동에서 금융으로 혹은 현재에서 미래로라는 이 일직선적 탈출 서사는 숨겨진 아이러니를 드러내며 복잡해진다. 먼저 투자 혹은 투기 자체가 단순히 미래를 반영하고 예측하는 행위를 넘어, 그 자체로 ‘수행성(performativity)’을 가지는 ‘미래-만들기(future-making)’의 실천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8) 미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현재의 삶도 재조직해내는 이러한 투자의 수행적 속성은, 때로는 투자자의 현재와 미래를 뒤섞어 둘 모두를 불확실한 장소에 묶어둔다.
  현장연구 중에 만난 30대 후반 여성 B는 자칭 ‘디지털 노마드’로,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유럽 등을 오가며 활동하는 통번역사다. 그는 이 전문직 노동이 가져다주는 자유를 동경하고 또 누려왔지만, 팬데믹 시기 일감이 끊기는 경험을 하면서 이 자유는 “불안정한 삶의 형태”로 재해석되었다. 뒤늦게 암호화폐 투자 등을 고민하던 그는 현재 엔비디아(Nvidia)를 포함한 AI 기술 관련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B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여기서 발견되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통번역사라는 자신의 노동과 자유를 위협하는 변화를 주도하고 가속화하는 기업들에 노동을 통해 번 돈을 투자하는 것. 미래의 자신에게 현재의 자신을 담보로 맡긴 B는 과연 어디에서 어디로 탈출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군수산업 기업 팔란티어에 투자하고 있는 20대 후반 전기직 공무원 남성 C의 사례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9) C는 “세계 정치 공부라도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팔란티어에 투자했지만, 가파르게 상승하는 가격에 추가 투자를 했고 현재는 자신의 돈 대부분이 팔란티어에 묶여 있다. C 자신은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에 비판적이고 팔란티어 창립자인 피터 틸이나 알렉스 카프의 호전적 입장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미국이 난리를 치고” 전쟁과 지정학적 충돌이 격화될수록 “팔란티어의 주식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확신하고 있다. “아직 예비군도 끝나지 않아서” 심상치 않은 세계정세가 때로는 불안하다는 C에게, 금융투자라는 탈출구가 열어주는 미래는 어떠한 모습일까?
  이러한 역설은 단지 개인 차원의 딜레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차원에서도 반복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진행된 소위 ‘주주가치 혁명’은, 오늘날 노동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전세계적 금융화와 대중투자문화의 부상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다. 주주의 배타적 권리를 강조하고 잉여가치의 주주로의 이전을 정당화하는 주주가치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기업이 사모펀드 등에 의해 사고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 변화하면서 노동의 불안정성은 한층 더 심화되었다.10) 이러한 역사를 고려할 때, 불안정한 노동의 탈출구를 금융투자에서 찾는 해법은, 사실 자신의 불안정한 조건을 심화시킨 원인에 대한 투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묘하고 아이러니한 실천의 형태를 띠게 된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의 원인이고 무엇이 탈출구인지 알 수 없게 뒤엉킨 이러한 모순적 현실은 차치하고서라도, 궁극적으로 이들은 어디론가 탈출할 수 있을까? ‘탈출(exit)’과 ‘항의(voice)’를 대비시킨 고전적 논의에서, 앨버트 허시먼은 탈출 이후에도 우리 삶에 끈덕지게 달라붙는 문제들에 대해 논한다. 예컨대, 많은 이들이 공교육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여 자신의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허시먼은 바로 그 선택의 결과로 “공교육의 질은 한층 더 떨어지게” 되고, 이는 그 공동체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부모와 학생의 삶에 장기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사적 시민은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냄으로써 공교육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동시에 그와 그 아이의 삶이 공교육의 질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에서는 빠져나올 수 없다”.11)
  허시먼은 대중교통, 치안, 공중보건과 같은 공공재뿐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시민권처럼, 사람들이 그것을 제공하는 공동체를 떠나지 않는 한 그 사용을 피할 수 없는 조건 하에서는 개인적 탈출이 제약되고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로라 와델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모두가 사적 보험을 택할 때 재난에 대처하는 공공의 역량은 오히려 약화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탈출할 때, 결국에 남겨지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진다.12) 이 질문은 외계로의 탈출을 꿈꾸지 않는 이상(어쩌면 그때에도) 우리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을, 어쩌면 탈출 가능성 자체보다 더 진지하게 답해져야 하는 물음일 것이다. 그리고 금융을 통한 탈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몇몇 개인이 주식과 코인, 부동산으로 탈출을 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금융시장의 확대에 따라 악화되는 사회의 노동조건, 주거 환경, 공공서비스의 질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이 ‘남겨진 것들’은 계속해서 삶에 달라붙어 탈출의 비용을 높이고, 그에 따라 더더욱 어려워진 탈출을 열망하게 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3. 보편성의 정치, 착륙의 상상력

어쩌면 우리는 개인적 차원의 합리적 실천과 사회적 차원의 비합리적 결과 간의 모순이라는, 자본주의에서 반복되어온 익숙한 문제와 다시 한번 마주한 것일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고민해온 이 역설을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까? 만약 금융이 거짓된 출구일 가능성이 있다면, 다시 노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답일까?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인 이 물음에, 이 짧은 글에서 상세히 논하기는 어렵다.13) 다만 현재 진행중인 이 고민에 다음과 같은 반론은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노동으로의 귀환이 해법으로 제시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노동을 상정하고 있는가? 적어도 역사적으로 노동이 항상 안정적이거나 해방적인 경험으로 작동해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에도 노동은 착취, 위계, 굴욕의 경험과 결부되어왔고, 이러한 조건들이야말로 금융을 통한 경제적 자유와 독립이라는 탈출의 욕망을 자극해온 배경이기도 하다. 오늘날 노동으로의 귀환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이러한 기존 조건들을 지양하는 시도를 포함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금융에 대한 탈출구로서 다시 노동을 호출하는 것은 탈출과 구원의 진자운동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아마도 노동이냐 금융이냐 혹은 탈출이냐 항의냐라는 이분법적 선택에 놓여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핵심은 현재 개별화되고 특권화된 형태로 꿈꾸어지는 탈주와 탈출을 어떻게 집합적이고 보편적인 ‘엑소더스(exodus)’로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닐까?14) ‘모두’ ‘누구나’의 이름으로 점유될 수 있는 텅 빈 자리로서의 보편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대를 열어젖힌 정치적 자유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몇몇 이들의 특권으로 주어지던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보호, 자유와 탈출이라는 선택지가 모두가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로 제기된 것은, 그 자체로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 이 꿈같은 아이디어는 오랜 기간의 투쟁을 거쳐 오늘날 부족하나마 법치, 보통선거권, 언론과 집회결사의 자유 등으로 제도화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현재 금융시장 주변을 부유하는 ‘경제적 자유’라는 기표 역시, 소수만 이용가능한 특권화된 탈출의 선택지를 넘어 모두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권리의 언어로 재구성될 수 있을까?
  다행히도 우리에게 이와 관련된 제안과 아이디어가 부족하지는 않다. 예컨대, 주주 배당이라는 금융의 상상력을 비틀어, ‘공유부의 배당’으로 모두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 주택과 토지를 투자와 자산의 영역에서 빼내어 공공재로 재구성하려는 토지의 탈자산화 운동도 가능할 것이다. 화폐 자체를 투자의 도구가 아니라 민주적 통제의 대상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은 어떤가? 협동조합의 지분을 보편적 기본자산으로 제공해, 현재의 주식회사 시스템을 협동조합의 연합으로 재조직하려는 시도도 상상가능하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금융자본의 만트라를 재전유해, 모두의 자금이라 할 수 있는 연금기금의 투자를 통해 회사를 집산화·사회화하려는 연기금 사회주의의 모델은 가능할까?15) 탈출을 개인의 선택에서 모두를 위한 제도와 권리의 문제로 재정위하는 이러한 실천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운동이거나 오랜 시간 진지하게 검토되어 온 아이디어이다.
  이처럼 보편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엑소더스는, 역설적으로 탈출이라기보다는 브루노 라투르가 이야기하는 ‘착륙’과 ‘감싸기(envelopment)’의 실천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라투르는 “가능한 한 빨리 연대의 부담을 모두 없애” 위기에 처한 지구의 현실에 더는 개의치 않고 “외계로의(out of this world)” 탈출을 꿈꾸는 엘리트들의 탈출 정치에 맞서, 오늘날 보다 시급한 질문은 ‘어디로 탈출할 것인가’가 아닌 ‘어디에 착륙할 것인가’라고 지적한다.16) 이러한 착륙과 감싸기의 정치는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이미 충분히 불안정한 우리들의 삶을 수선하며 여기 함께 남아있기 위한 조건을 되묻고 재구성하는 지난한 작업에 가깝다. 누군가는 탈출하고 다른 이는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착륙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소수의 경제적 자유가 아닌 모두의 경제적 ‘의존성’과 자유에 대해 고민하기. 오늘날 금융자본주의를 둘러싼 정치가 시작되어야 할 지점은 어쩌면 바로 여기일 것이다.

이승철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금융화로 변화된 한국 사회의 일상을 추적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써 왔고, 『푸코의 맑스』 『관용』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파이코인에 투자하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던 중, 2030 세대의 투기 실천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실 금융을 통한 탈출에 대한 상상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투기가 삶의 한 조건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세금을 잘 내자’거나 ‘착한 투자를 하자’라는 도덕적 요청과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2026/03/04
78호

1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 2010년대 미국에서 확산된 운동으로, 현재 한국에서도 금융투자자 집단의 한 부류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파이어족 간 실천 양상의 차이에 대해서는, 김명수, 「급진적 파이어 투자자의 탄생: 한국 파이어 운동의 자산전략과 도덕경제」, 《경제와 사회》 114호, 2024를 참고.
2
Harrison Smith and Roger Burrows, “Software, Sovereignty, and the Post-Neoliberal Politics of Exit,” Theory, Culture & Society 38(6), 2021.
3
가브리엘 주크먼, 『국가의 잃어버린 부』, 오트르망 옮김, 앨피, 2016; 퀸 슬로보디언, 『크랙업 캐피탈리즘』, 김승우 옮김, 아르테, 2024. Douglas Rushkoff, Survival of the Richest: Escape Fantasies of the Tech Billionaires, W.W. Norton & Company, 2023.
4
브루노 라투르, 『나는 어디에 있는가?』, 김예령 옮김, 이음, 2021.
5
Laura Waddell, Exit, Bloomsbury, 2020.
6
김수현, 「개미투자자가 하는 일」, 《한편》 5호, 2021, 21쪽.
7
Lisa Adkins, Melinda Cooper and Martijn Konings, The Asset Economy, Polity, 2020, p. 72.
8
류연미, 「금융화된 생애 기획과 미래 만들기: 한국 청년의 노동-금융 주체성 형성과정」,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6. 투자와 투기의 차이에 대해서는 이승철·전경모, 「물질적인 혹은 투기적인: 현대 금융시장 연구를 위한 이론적 검토」, 《경제와 사회》 140호, 2023 참고.
9
팔란티어(Palantir)는 미국의 데이터 분석 기업으로, 안보·군사 영역에서의 알고리즘 의사결정 지원을 핵심 사업으로 한다. 미군 및 미정보기관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트럼프 정권의 국가 안보 프로젝트들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는 전쟁과 지정학적 위기를 항구적인 조건으로 전제하는 강경한 우파 현실주의적 입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10
주주가치 혁명이 월스트리트와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캐런 호, 『호모 인베스투스』, 유강은 옮김, 이매진, 2013을 참고. 사모펀드 등 금융기관에 의해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사회적 삶에 대해서는 Brett Christophers, Our Lives in Their Portfolios, Verso, 2023을 볼 것.
11
앨버트 허시먼,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강명구 옮김, 나무연필, 2016, 188-189쪽.
12
Laura Waddell, Ibid., p. 95.
13
이 논쟁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는, 케이시 윅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제현주 옮김, 동녘, 2016을 참고.
14
빠올로 비르노, 『다중』, 김상운 옮김, 갈무리, 2004. 비르노는 허시먼이 구분한 탈출과 항의를 종합하여, “참여적 거부(engaged withdrawal)”로서 엑소더스에 대해 말한다. 문제의 상황을 불변적인 지평으로 전제하는 개별적 탈주와 달리, 집합적 탈주인 엑소더스는 “문제가 생겨나는 맥락 자체를 변화”시키는 실천이다. 빠올로 비르노, 같은 책, 218쪽.
15
각각의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바로가기); 토지+자유연구소(바로가기); 화폐민주주의 연대(바로가기); 김종철, 『기본소득은 틀렸다: 대안은 기본자산제다』, 개마고원, 2020; 곽노완, 「연기금사회주의의 한계와 가능성」, 《사회이론》 31호, 2007을 참고.
16
브루노 라투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박범순 옮김, 이음, 2021, 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