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황신묘씨가 말하길 / 빗방울공장 공장장의 편지
황신묘씨가 말하길
나는 분수에서 실 뽑아 물옷 짜는 아주머니도 알고
소낙비 싹둑 잘라 국수 삶아먹는 아저씨들도 알아
고양이 정전기로 파마하는 누나도 알고
개구리 수레를 타고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알지
폭풍이 몰려오는 여름날
반짝 빛나는 번개 속으로 가려면
콩 구워먹는 꿩을 찾아가
꿩은 천둥을 냄비에 넣고 뚜껑을 닫느라 실랑이를 할 거야
그럼 좀 도와줘
먹구름을 뭉쳐다가 꼭꼭 덮어줘
빗방울 공장에 선풍기처럼 버튼이 달려있는 걸
너희들은 잘 모르지
소나기 안개비 보슬비 부슬비 장대비 는개……
꾀꼬리와 뻐꾸기가 내 오르골을 삼킨 건 아무도 몰라
걔네들이 잠깐씩 쉬는 건 태엽을 감느라 그런 거야
빨간 살구와 보라색 참외
별 모양 복숭아와 땅에 사는 물고기
아 참, 수박은 박수를 받아야만 해
모래로 물을 만들어 냈잖아
사람이 열리는 나무에서 아기를 따와서 재워두었어
아기가 잠에서 깨기 전에
얼른 소금을 버무렸어야 하는데 울어버리잖아
해바라기의 허영심은 끝이 없어서
이파리로 자꾸 해를 가리면서
가짜 해만 만들고 있더라
벼락에 꿀을 발라서 조림을 하고
천둥소리를 병에 담아다 절임을 하자
우리의 식탁은 우르릉 쾅쾅 이야
바보야, 이제 어떡할래
와르르르 쿵쾅 쾅쾅
모든 것이 무너지면서
아름답게 다시 포개지고 있잖아
빗방울공장 공장장의 편지
미안해 먹구름들아
그때 화가 좀 나 있었어
공장의 기계가 고장이 나서
수리공을 불렀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오지 않지 뭐니?
수리공이라고 술이 잔뜩 취한 주정뱅이가 왔더구나
기계가 오래되어서 손볼 곳이 많다느니
무지개 기계를 새로 들여놓으라느니 어찌나 허풍을 떨어대던지
손을 덜덜 떨면서 나사 하나 제대로 못 박더라니까
속이 터져 꼭 죽는 줄 알았어
기계를 다 뜯어놓고는
드렁 드르렁
코까지 골며 잠들어버리더라니까
기가 막혀서 당장 회사에 전화를 할까 했지만
그 사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편지가 떨어지지 뭐야
아빠,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사랑해요.
간신히 참았지만
강물들이 숨 막힌다고 꿈틀대지
물고기들은 입 벌리고 구조신호를 보내지
겨우 그 주정뱅이를 깨워
어찌어찌 기계를 고쳤단다
그래서 이제야 기계가 돌아가지 뭐니?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잤어
너희들이 아무리 몰려와서 놀자고 해도
그놈의 주정뱅이 수리공 때문에 말이야
이제 수리가 끝났으니
꼭 다시 놀러 와
송진권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색깔로 덧칠을 해도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 무쇠 기둥 같은 현실을,
나는 쓴다.
꿈과 현실이 서로 만나서 하이파이브하는 날이 곧 오리니.
2019/09/24
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