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큐레이션
귀신을 찾습니다
2025년 10-11월, 연희문학창작촌은 ‘문학으로 모이는 방법들’이라는 만남의 자리를 열었습니다. 그중 5회차로 진행된 11월 29일의 행사 ‘같이 읽기 - 웹진 《비유》를 중심으로’에서 다뤄진 작품들을 이번 ‘큐레이션’ 코너에서 재구성해 소개합니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오석화, 소설가 이미상, 비평가 이하나의 글은 각기 다른 관점과 해석을 통해, 《비유》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기를 제안합니다.
“바다에 가 보는 일”이 “나이와는 상관없”듯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슬픔을 간직하는 것도 나이와는 무관하다. 어른들은 곧잘 “아이들을 깡통 따개로 따서 안에 뭐가 들어 있나 보면서 그 안을 더 쓸모 있는 잼으로 바꿔줘야 하는 게 아닌가”2) 기회를 엿보지만, 어른 각자의 삶이 단지 한 가지 열매만을 졸인 잼이 아니듯, 어린이의 삶 역시 한 가지 맛으로 단언할 수 없는 복잡함이 있다. 어른‘만큼’이나 어른‘보다’라고 비교하지 않고, 다만 어른‘처럼’ 그러할 뿐이다.아! 바다에 가 보는 일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일인가 봐. 아름다운 바다에 가 보는 일!
―신소영, 『단어의 여왕』 부분1)
“환자, 외국인, 반에서 뚱뚱한 남자애, 아무도 춤추자고 하지 않는 사람들”4). 그런 존재에게 친밀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학교에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이상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너희처럼 평범한 아이라는 걸 매분 매초 증명해야 해.”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5) 김지완 동화 「친환경 방수 종이 우주선」 속 저 멀리 무카산스카 행성에서 온 ‘니닝치’의 이 말은 세계와 불화하는, 내가 이 “세계와 맞지 않”6)는 존재라는 이질감을 느끼는 어린이라면 인간/비인간 종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학교’로 대표되는 공적 질서, 규범적 사회 안에서 눈에 띄지 않는 전학생 ‘지유’와 외계인 니닝치가 교감하고, 그럼으로써 친구가 될 수 있는 공통점은 ‘내가 여기 속하지 않은 존재’라는 정서 이방인(affective aliens)으로서의 감각이다.“바다가 이상한 것 같지? 그냥 조금 다른 바다야.”
―최현진, 「무엇이 된다 해도」 부분3)
입원으로 떨어져 살게 된 엄마와의 이별만큼, 때로는 엄마와의 이별보다 더, 반려 토끼 ‘보드리’와의 이별이 슬픈 어린이, 세상을 떠난 엄마가 그립다가도 이따금 문득 웃고 있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어린이, 동성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상한” 거냐고 반려 로봇에게 남몰래 속삭이는 어린이8)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화들이 있다.정소정은 어떨 때는 슬펐고 어떨 때는 견딜 만했다. 그래서 아빠가 물어볼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오늘은 별로 안 슬펐기 때문에. 오늘은 엄마 생각을 많이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아주 큰 소리로 많이 웃어 버렸기 때문에.
―김지완, 「점박이우산귀신」 부분7)
「점박이우산귀신」에서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어린이 앞에 나타나 잘못을 고백하라고 묻는 귀신은 ‘정소정’에게 찾아와 말한다.
“정소정 님, 진짜 잘못을 고백하십시오. 듣겠습니다.”9)
귀신이 “12년간 살아오면서 가장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일을, 소리 내어 말하”라고 하는 이유는 장례식장에서 정소정을 혼낸 할아버지(곧, ‘남성’/‘노인’/‘인간’)처럼 어린이를 벌주려는 것이 아니라 화나고, 두렵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서 꽁꽁 숨기고 싶은 감정을 어린이가 언어화할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려주고, 들어주기 위해서다.
점박이우산귀신은 슬프고 외로운 어린이의 곁에서 그 어린이가 혼자서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나눠 쓰고 함께 갑시다.”10)라고 말을 건넨다. 이 동화에서 우산을 ‘들어주는’ 동작은 이야기를 ‘들어주는(listen)’ 감각과 중첩되고, 우산을 ‘나눠 쓰는’ 행위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독자’와 ‘작가’가 함께 ‘쓰는(write)’ 공동의 작업임을 연상케 한다. 『컵라면은 절대로 불어선 안 돼』에 실린 이야기들은 어른 독자에게는 어린이 인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경청의 서사’, 어린이 독자에게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소리 내어 말하게 되는 ‘발화의 서사’로 수렴한다.11)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시계태엽을 잠시 뒤로 감는다. 신소영 동화 『단어의 여왕』에서 바다에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주인공은 멀리 떨어져 살게 된 강아지를 다시 만나러 바다로 찾아가는 날을 꿈꾸며, “만날 수 없는데 보고 싶을” 때면 “아주 작고 어두운 방에서 시를” 쓴다.13)만날 수 없는데 보고 싶을 땐 어떡해야 할까요?
―최현진, 「무엇이 된다 해도」 부분12)
이 동화는 어린이를 ‘위한다’는 말로 어린이에게서 외로움을 섣불리 빼앗아가지 않는다. 어린이가 외로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것이 가능하도록 시를 손에 쥐여줄 뿐이다. 동화의 첫 장면, 바다에 다녀온 경험을 그려야 하는 교실에서 혼자 소외감을 느끼던 ‘나’는 ‘시’라는 새로운 세계를 조우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은 곁에 없는 강아지 눈동자 속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강아지 눈 속에서 ‘잔잔히 출렁일 바다’를 강아지가 ‘글썽일 눈물’로 연결 짓는다. 사랑하는 친구가 부재하는 외로움 속에서, 어린이는 이제껏 가본 적 없는 바다의 아름다움을 처음 발견한다. 강아지가 떠난 나무 아래에 홀로 눈을 감고 서 있으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어느새 파도 소리로 들린다. 어린이가 지금 여기 없는 아름다움을 재현해낼 역량이 부재로부터 촉발한다. 이 동화는 어린이를 ‘외로움’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아름다움’으로 초대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알쏭달쏭하지?”
어느 날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은 시집을 펼쳐 시 한 편을 읽어 주었다. 그 시는 정말 알쏭달쏭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했고, 영 모를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뭔가가 출렁이는 게 느껴졌다. 이 느낌을 뭐라고 할까? 나는 머릿속에서 단어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름답지 않니?”
―신소영, 『단어의 여왕』 부분14)
어린이문학에서 어린이 독자를 보호하기 위해 슬픔과 외로움, 애도와 상실, 가난과 폭력을 숨겨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상정하는 어린이 독자가 ‘어떤’ 어린이 독자인지 되묻고 싶다. 어른 작가/독자가 막연히 추정한 가상의 어린이 독자, 혹은 특정한 계급이나 특정한 환경에 속한 균질한 어린이 독자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바깥에 있는 무수한 어린이는 비가시화될 위기에 처한다. 문학에서마저 어린이가 책으로부터 소외되는 ‘노 키즈 존’이 생겨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된다. 문학 밖 현실에 만연한 주류의 시선으로 놓치기 쉬운 ‘틈새’와 ‘그늘’의 어린이를 알아보는 문학적 실천은 아무리 거듭하더라도 완수를 확신하기 이르다.
노 키즈 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이유를 들곤 하지만, 그 아래 감춰둔 실상은 ‘배제’다. 어린이를 보호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다는 이유를 명분 삼아 배제하는 것은 어른 입장에서 손쉽게 택하는 무책임한 방편에 그친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른 독자, 어른 작가를 위한 변명이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어린이에게 세상의 이면을 보여주는 일은 물론 어렵고, 그렇기에 신중을 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도 된다는 의미일 리는 없다. 어린이가 목격하는 세계의 아픔을 은닉하지 않고, 어린이가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어린이문학을 함께 읽고 쓰는 어른의 몫이기도 할 터이다.
류재향 동화 「우리에게 펭귄이란」에서 기후 위기로 위험에 처한 펭귄을 구하기 위해 남극으로 떠나려는 일곱 살 ‘용민이’의 말을 어른 보호자들은 무심히 웃어넘기고 만다. 오직 누나 ‘수민이’만이 용민이의 약속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함께 남극에 가기로 결심한다. 미리 겁먹고 도망치는 쪽은 어른일지 모른다. 어린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회피하고자 「우리에게 펭귄이란」 속 어른들처럼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기려 한다면 독자는 그 기미를 앞서 감지한다. 함부로 넘겨짚거나 외면하지 않고, 정확한 언어로 어린이의 세계를 존중해서 그려내려는 노력은 어른/작가가 창작자로서 스스로를 갱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학 또한 그 여정에서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 선형의 시간관과 성장관을 해체하는 탈중심적 사유의 실마리를 어린이로부터 배울 수 있다.“적당히 꾸며 내면요, 우리가 다 믿을 것 같아요?”
(…)
나는 고개를 들고 한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떠났다가 꼭 돌아오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용민이는.”
아무도 말이 없었어요. 나는 나중에 기회를 봐서, 직접 동생을 데리고 남극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류재향, 「우리에게 펭귄이란」 부분15)
어린이의 앞에서 어린이를 ‘마주 보려’ 할 때 볼 수 있는 표정이 있듯, 어린이의 곁에서 나란히 ‘함께 보려’ 할 때 비로소 열리는 시야가 있다. 어린이문학의 자리는 고정된 어느 한 점에 머무르기보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동시에, 어린이‘와’ 바라보며 율동하는 파동에 가깝다. 그 파동을 그리는 연속체의 일원으로 어린이를 ‘보호’하는 보호자로서의 어른 독자뿐 아니라, 어린이의 독자(獨自)적인 독자성(讀者性)을 ‘수호’하는 연대자로서의 어른 독자들을 초대하고 싶다. 이번에는 시계태엽을 앞으로 감는다. 우리가 만날 미래의 어느 날엔 비가 내릴 것 같다. 아마 우산을 든 귀신이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관련 작품 바로가기
① 최현진, 「무엇이 된다 해도」 click
② 류재향, 「우리에게 펭귄이란」 click
이하나
2021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에 당선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입술 모양의 그늘』을 쓰고, 그림책 『가을에게, 봄에게』 등을 옮겼다. 장래 희망은 등대지기. 외딴섬, 먼바다, 긴긴밤이 한 단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26/02/18
- 1
- 신소영, 『단어의 여왕』, 비룡소, 2023, 83-84쪽.
- 2
-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박현주 옮김, 마음산책, 2005, 74쪽.
- 3
- 최현진, 「무엇이 된다 해도」, 웹진 《비유》 77호, 2026년 2월 4일.
- 4
- 페터 회, 같은 책, 71쪽.
- 5
- 김지완, 「친환경 방수 종이 우주선」, 『컵라면은 절대로 불어선 안 돼』, 문학동네, 2025, 19쪽.
- 6
- 진은영,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마음산책, 2024.
- 7
- 김지완, 「점박이우산귀신」, 같은 책, 118쪽.
- 8
- 김지완, 「우리가 티티새라면」, 같은 책, 77쪽.
- 9
- 김지완, 「점박이우산귀신」, 같은 책, 118쪽.
- 10
- 김지완, 같은 글, 114쪽.
- 11
- 김건형, 「독서들로부터: 페미니즘과 청소년 독서 교육 현장」, 《문학동네》 2021년 봄호 참조.
- 12
- 최현진, 같은 글.
- 13
- 신소영, 같은 책, 159쪽.
- 14
- 신소영, 같은 책, 26쪽.
- 15
- 류재향, 「우리에게 펭귄이란」, 《비유》 28호, 2020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