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큐레이션
웹진 《비유》는 웹진 《비유》에 실릴 수 있을까?
세금-기획-예술로서의 웹진 《비유》
2025년 10-11월, 연희문학창작촌은 ‘문학으로 모이는 방법들’이라는 만남의 자리를 열었습니다. 그중 5회차로 진행된 11월 29일의 행사 ‘같이 읽기 - 웹진 《비유》를 중심으로’에서 다뤄진 작품들을 이번 ‘큐레이션’ 코너에서 재구성해 소개합니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오석화, 소설가 이미상, 비평가 이하나의 글은 각기 다른 관점과 해석을 통해, 《비유》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기를 제안합니다.
현금 지원 받고, 지면 지원 더
민구홍은 웹사이트에 적힌 글자가 아니라, 웹사이트 자체로 문학하기의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이 온당한 지적에 영감을 받아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 보자. 만약 웹진 《비유》가 한 해에 비/미등단 작가의 작품 ‘백 편’을 실어준다고 치자. 소문을 들은 웹진 《비유》가 그 자신, 한 편의 작품으로서 심사대에 기어 올라가 ‘나를 뽑아주십시오’ 내장을 벌리고 활자를 쏟아낸다면, 과연 우리의 《비유》는 당선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당선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이제 웹사이트를 매체로 삼는 작가 또한 엄연히, 그리고 마땅히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할 때입니다. 웹사이트를 문학답게 문학으로 포섭하는 것, 문학이 ‘오늘’과 어깨동무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제2, 제3의 한강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길일 테고요.
―민구홍, 「자주 하는 질문: 코드로 쓰는 시, 하이퍼링크로 쓰는 소설」 부분
조건을 말하기에 앞서 ‘한 해에 백 편’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2017년 서울문화재단은 청년예술인 창작지원사업 최초예술지원 문학 분야(문학청년 활동지원)를 통해 시, 소설, 동시, 동화, 희곡, 평론, 기타 분야를 합쳐 총 백 건을 선정해 오십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특별한 점은 현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면도 지원했다는 것이다. 2018년에 발간한 웹진 《비유》에 당선자 중 희망하는 사람에게 게재 기회를 주었다. 이것은 내 데뷔 경로이기도 하다. 같은 사업으로 웹진 《비유》에 첫 소설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컴퓨터로 읽는 분은 시선을 오른쪽 상단으로 올리면 ‘호별 보기’가 보일 것이다. 그것을 클릭해 1호(2018. 1)로 가면 소설이 무려 일곱 편이 실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 내내 대체로 대여섯 편의 소설이 실리다가 2019년 1월부터 두 편으로 줄어든다. 사업이 끝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당시 기획자들은 작품이 노출되는 방식에도 섬세했다. 웹진에 등단 작가와 비/미등단 작가의 글이 순서 구분 없이 실리고, 통상 등단 연도와 지면, 수상 경력이 포함되는 전통적인 작가소개도 자유 형식으로 바꾸었다. 현재의 작가소개를 보면 전통적 방식과 자유 형식이 섞여 있다. 한국문학의 애독자가 아닌 이상 글만으로는 작가의 등단 여부를 알 수 없었다.
웹진 《비유》에서 작가소개 파트를 좋아한다. 누군가는 작가소개를 소설의 일부로 활용한다. 은밀한 프로파간다나 집필 후기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기획자들의 선택이 강제한, 또는 해방시킨 자유로운 작가소개라는 곁다리가 본질에 해당하는 문학에 영향을 미친다. 문학에서 거창한 실험을 하지 않아도 이런 소소한 재미, 아이디어, 꾀, 서프라이즈를 보면, 독자로서도 동료 작가로서도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그러나 내가 웹진 《비유》 원년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지원 규모다. 백 명, 백 명이 너무 좋다!
다시, ‘웹진 《비유》는 웹진 《비유》에 실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아마 당선될 것이다. 올해는 떨어져도 내년에는 될 것이다. 심사자들은 과도하게 고심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문학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모조리 갖췄는지 집요하게 따지지 않을 것이다. 완성도가 떨어져도, 일부만 끝내줘도, 조금만 신선해도, 세상에 내보이기로 결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백 편을 뽑으니까. 올해 낙선해도 괜찮다. 내년에 또 백 편을 뽑는다. 십 년이면 천 편이다. 대체로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 있다. 물론 동화, 동시, 희곡, 시, 소설 등 하위 분야로 나뉘기에 경쟁이 녹록지 않지만 그래도 소설에 국한하면 한 해에 대략 서른다섯 편의 작품이 발표될 기회를 얻는다.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처럼 한 편만 뽑아야 한다면 영원히 만나기 어렵다. 유일을 찾는다면 심사 기준이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못 썼지만 새로운 소설과 새롭지 않지만 잘 쓴 소설(이런 이분법, 허구지만……) 가운데 후자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그러니 소위 말하는 ‘안전한 선택’이란 심사자의 안목과 취향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더럽게 못 썼지만 왠지 좋아 미치겠는 문학을 보고 싶은가? 그럼 백 편을 뽑으면 된다.
등단 기회를 1위가 독식하는 잔인함을 희석하고자 본심에 오른 ‘TOP 10’까지 발표의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심사평을 읽다가 당선작보다 낙선작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결함이라고 지적된 부분이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TOP 10’도 바늘귀 같은 기준을 통과한 수작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새로운, 의도된 섬세한 새로움이 아니라,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초짜들의 본의 아니게 너무 새로운 소설도 읽고 싶다. 그러려면 한 해에 문학 장르마다 백 편씩 뽑아야 하지만 인력의 문제가 뒤따르기에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주의할 점은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학 웹진 《비유》에 비/미등단 작품 백 편을 싣는 이유가, 각광받을 1인을 만들기 위함이어서는 곤란하다. 위대한 작가를 만들기 위해 많은 예비 작가를 양성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만고만한 이들로 이루어진 막대한 풀에서 거장을 뽑아내잔 게 아니다. 너른 품의 마련은 다양함을 위해서다. 기준을 넓혀 우르르 들어올 글들이 문단문학의 경계를 확장한다. 문학작품의 대량 공급은 무엇보다 문학에 이롭다.
새로운 노동문학이 가능해지려면
문학에서 새로움을 기대하는 독자는 실망할 운명을 타고났다. 한 작가를 열렬히 좋아하다가도 결국에는 그를 지겨워한다. ‘또, 또, 같은 소리.’ 팬일수록 작가의 패턴에 익숙하기에 더욱 진저리치며 이별을 고하고 애정하던 작품에서 졸업한다. 많은 작가가 전작을 능가하기보다 전작과 다르게 쓰길 꿈꾼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수원지가 같기에 변화의 폭은 매우 좁다. 필립 로스는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다. “먼저 출판했던 책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데, 새 작품의 첫 부분은 이전 책에서 벗어나기보다는 그 책에 대한 무의식적인 패러디에 가깝”다고.나는 왜 더이상 동시대 한국문학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 (…) 이 글에서 동시대 한국문학이란 문예지에 게재되었다가 그것을 하나의 작품집으로 묶는 일련의 공정을 거쳐 독자에게 도달하는 작품들의 집합을 뜻한다. (…) 왜 한국문학은 이리도 적재적소에 발견되고 또 등장하는 것인가? ‘한국의 퀴어문학에는 레즈비언의 목소리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이 나올 때쯤이면 뒤이어 레즈비언 퀴어소설이 등장하고 그 소설이 문학상을 휩쓴다. (…) 마치 한국문학의 흐름이 비평에 의해 한발 먼저 결정되어 있으며……
―진송, 「한국문학에서 동시대적 화자의 재구성」 부분
진송은, 비평의 점지에 맞춤하게 쓰이는 한국문학에 흥미를 잃었음을 고백한다. 나도 비슷하게 느낀다. 차이가 있다면 (이것이 더욱 문제인 것 같은데) 창작자들이, 비평의 점지와 담론의 무르익음을 기다릴 필요 없이 이미 내부에 각광받을 주제에 대한 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거 웬만큼 나왔으니 다음에는 이거 나와 줘야지’ 하는 촉을 지닌 채 각자의 기질과 지향에 따라 그 촉을 세우거나 꺾거나 아예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의 이러한 ‘촉-부림’이 개인적으로는 비판의 지점이 아니라 또 하나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어찌 되었든 현재의 한국문학에 불만족하고 새로움을 원한다면 이미 있는 작가에게 없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없던 작가를 있게 만드는 것, 일 년에 비/미등단 작가 백 편의 글을 모아 낼 판을 만드는 쪽이 나을 것이다. 문학도 빼어난 한 편이 제 안에서 홀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건 재미없어 할 것이다. 온갖 글이 부글대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게다가 백 편은 단순히 완결된 글로서의 백 편이 아니다. 십만 편의 씨앗이다. 글은 언제나 다른 글의 영향을 받는다. 한 편이 있으면 그 한 편만 쫓는다. 백 편이 있으면 백 편의 부분을 뜯어 먹은 십만 편의 새로운 글이 생성된다.
시민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최근에 나는 신작 소설을 위해 친구를 인터뷰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친구‘도’ 소설을 써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친구의 이야기에 기대어 나도 내 글을 썼지만, 친구도 친구의 글을 쓸 필요가 있었다. 한 이야기에서 두 소설이 파생되어야 궤가 맞는다고 느꼈다. 비록 친구는 나의 권유를 귀찮아하였지만…… 그래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친구가 소설을 썼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을 어디에 발표할 수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읽히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온라인 개인 공간에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편집자와의 협업을 통하여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공식적인 공간에 글이 등록되는 일은, 블로그에 소설을 올리는 것과 다른 경험이다.
최근 한국 소설계에서 각광받는 미개척지는 남성성과 노동이다. 설문조사를 돌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생각은 그렇다. 한국에서 새로운 ‘노동문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어려운 문제다. 소설이 타자를 대리해 그의 경험을 소설화하는 시대가 끝났다. ‘쿠팡 소설’을 쓴다면 어떻게 써야 할까? 한겨레21의 현장 취재 기사보다 노동 현장을 생생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출근 셔틀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오프닝 장면을 바닥을 향해 흔들리는 앵글로 찍은 무수한 쿠팡 알바 후기 브이로그와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까. 소설에는 인물의 인생이 담긴다고 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많은 당사자 브이로그가 퇴근 후 ‘방바닥에 놓인 맥주 캔 앵글’로, 얼굴을 노출하지 않은 채, 자기가 왜 물류 일을 하게 되었는지 썰을 푼다. 그렇기에 내가 기다리는 새로운 노동소설은 시급 안 틀리고 업계 용어 능수능란하게 부리는 소설만이 아니라, 르포 기사와 당사자-창작자들의 브이로그 작품과의 변별점을 발견하는 데 성공하는 소설이다. 아직 오지 않은 소설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뭘 하고 있으면 좋을까?
민구홍이 웹사이트를 문학에 포섭시키듯, 르포 기사와 브이로그도 문학이 잡아먹어 자신의 몸체를 불렸으면 좋겠다. 최근에 내가 가장 좋게 읽은 노동문학은 기자 류석우가 쓴 “10시간 쉬지 않고 계단 뛰었다... 죽음의 새벽배송 “쓰러지기 전까진 ‘그때’를 모른다”-쿠팡 심야-주간 14일 택배노동 일기”1)였다. 이것이 문학이 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젊작’을 수상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언론지가 아니라 문학의 틀에 가두면 위의 글은 문학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새로운 노동문학은, 각자의 노동 조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1인 1문학 하는 것에서 출발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떠받치는 플랫폼은 일 년에 백 편, 이 년에 이백 편, 십 년에 천 편을 받을 너른 품과 여러 가능성을 건지는 성긴 구멍이어야 할 것이다.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시민의 삶에 보탬이 될 필요가 있는 《비유》가 ‘다시’ 그 몫을 받아 안기를 기대한다. 문학을 위해서뿐 아니라 시민 복지의 차원에서도.
나는 백 명의 새로운 작가를 찾아 나섰던 옛 웹진 《비유》에게 문학상을 주고 싶다. 그러니 다시 백 명을 뽑기를. ‘너무 많나?’ 싶은 생각과 동시에, 단 하나의 기념비적인 완벽한 수로 느껴지는 그 개운한 명수(名數)로 돌아오기를. 많은 새로운 사람이 우리에게, 문학에게 올 수 있도록.우리가 문학을 통해 잘할 수 있는 일들을 등단과 미등단, 문인과 독자, 여성과 남성 등으로 무수히 구분해오진 않았는지 돌이켜보았습니다. 이 구분들은 강물이 많이 흐르거나 넘치지 않게 가두고 있는 오래된 둑 같지는 않나요. 우리에게는 좋은 문학인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언젠가는 둑이 턱 터져, 흘러야 마땅했던 물결처럼 작가들이 밀려오는 상상을 합니다. 《비유》는 문학으로 함께 교류하고 공감하는 모든 일들을 만들어갑니다.
―1기 편집위원, 웹진 《비유》 1호 「기획의 말」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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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민구홍, 「자주 하는 질문: 코드로 쓰는 시, 하이퍼링크로 쓰는 소설」 click
② 진송, 「한국문학에서 동시대적 화자의 재구성」 click
③ 1기 편집위원, 웹진 《비유》 1호 「기획의 말」 click
이미상
문학은 안 읽고 교보문고에 서서 작가 소개, 집필 후기, 수상 소감만 주로 읽는다.
202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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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석우, “10시간 쉬지 않고 계단 뛰었다... 죽음의 새벽배송 “쓰러지기 전까진 ‘그때’를 모른다”-쿠팡 심야-주간 14일 택배노동 일기”, 한겨레21 1592호, 2025년 12월 5일.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