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우리’가 되지 못한 이들과
김신재
활자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나날이었습니다. 한동안 책과 영화는커녕 일상적인 일조차 손에 잡히지 않아 은은한 초조함으로 뉴스 피드를 스크롤 하기 일쑤였지요. 차라리 광장에 나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어요. 광장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다양한 몸들과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광장은 발화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는 민주주의의 공간인 동시에, 서로 다른 정체성과 조건을 지닌 존재들과 감응을 통해 관계 맺을 수 있는 실천의 현장이었어요. 자신의 젠더, 장애, 국적, 계급, 연령 등 교차적인 정체성과 위치성을 드러내고, 상호 의존적인 존재로서 서로를 지지하고 조율하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배움이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웹진 《비유》 74호에 수록된 글들은 정체성과 의제를 가로지르는 이러한 연대, 그리고 다름을 포용하는 환대의 순간들이 스민 각자의 몸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이후를 상상하게 합니다. 윤성은의 동화에서 ‘도우리’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이웃 할머니, 그리고 굼벵이와 지렁이에게 나눠줍니다. 이재문의 동화는 부정적인 감정을 배제하지 않고 온전히 겪어야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연결을 그립니다. 양슬기의 동시와 송희지, 허연의 시는 몸의 경험이 시어로 여과되는 과정을 떠올려보게 합니다. 하가람의 소설은 울산을 배경으로 “지나간 계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지만, “어떤 날은 기록하지 않아도 영원히 기억된다는” 시간의 양면성을 비춰냅니다. 이희우의 비평은 실존을 가혹하리만치 “돈 아니면 몸으로 환원”하는 한국 사회라는 자본주의적 디스토피아에서 정치적인 장소로서의 몸을 둘러싼 ‘현실’이 리얼리즘 소설의 규범을 초과하는 동시대 한국소설에서의 징후와 함의를 다룹니다.
광장이 그러하듯 우리의 몸 역시 마냥 유쾌하고 무결한 공간이 아니라, 시끄럽고 “우악스러운 경험”과 “때로 두려운 접촉”(하은빈)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폭력이나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는 선을 지키고 잡음을 내지 않는 것만이 방법일까요? ‘비평 교환’에서 하은빈은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손나예, 김원영과 진행한 장애인-비장애인 움직임 워크숍 ‘안녕히 엉키기’를 통해 저마다의 취약성을 가진 신체들이 사적 영역을 넘어 서로에게 해(害)와 폐(弊)를 주고받으며 ‘접촉’을 탐구했던 경험을 나눕니다. 신현아는 탄핵 이후에도 여전히 철창 안, 공장 옥상, 고가 다리, 철탑 위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느라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기하며 자신의 삶을 바꾸는 용기를 길어 올리는 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 윤자영은 촉각적인 꿈의 잔상에서 출발해 몸 안에 남아 만져지기를 요청하는 이미지, 언어와 긴밀하게 얽힌 이미지의 덩어리를 들여다봅니다. 윤자영의 꿈에서 촉발된 류한솔의 드로잉은 증식하는 내장과 터져 나오는 지방, 절단되어 자유로워진 혀를 비롯한 신체의 단면이 활기차게 운동하는 상상을 펼쳐놓습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에서 성현아는 PC주의에 대한 문학장 안팎의 비판이 정치적 올바름과 무해함에 대한 요구를 단순화하여 페미니즘 및 퀴어 문학을 ‘이른 반성’으로 내몰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유해함을 묵인하는 무해함이 아닌, 은폐된 유해함을 드러내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윤리적 요청으로서의 무해함을 제안합니다. ‘판도’의 임현진은 성과보다는 동료 간 배움을 추구하는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이 위계를 넘어 아시아의 다른 국가 및 도시를 아우르며 자원을 공유하고, 상호 돌봄과 우정을 나눴던 경험을 짚어냅니다.
광화문 광장에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서울 바깥에서는 산과 공장이 불에 탔고 일터에서 죽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하나 헤드바는 「아픈 여자 이론(Sick Woman Theory)」에서 만성 질환을 앓으며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 소리를 들은 침대 위의 경험을 떠올리며, 일을 해야 하거나 질병과 장애를 가져서, 혹은 누군가를 돌봐야 해서 시위 현장에 나서지 못한 사람들, 보이지 않는 몸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시위나 집회 같은 연대의 현장에서 발화되지 않은 목소리들, 움직일 수 없었던 몸들의 존재는 ‘우리’의 경계가 언제나 불완전하고 가변적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광장 이후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혐오, 차별, 적대, 반동, 양극화로부터 안전하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대신 광장에서의 감각을 기억하는 우리의 몸은 여전히 다름을 수용하고 연대를 실험하는 장소로서의 가능성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웹진 《비유》 74호에 수록된 글들은 정체성과 의제를 가로지르는 이러한 연대, 그리고 다름을 포용하는 환대의 순간들이 스민 각자의 몸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이후를 상상하게 합니다. 윤성은의 동화에서 ‘도우리’는 자신이 받은 도움을 이웃 할머니, 그리고 굼벵이와 지렁이에게 나눠줍니다. 이재문의 동화는 부정적인 감정을 배제하지 않고 온전히 겪어야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연결을 그립니다. 양슬기의 동시와 송희지, 허연의 시는 몸의 경험이 시어로 여과되는 과정을 떠올려보게 합니다. 하가람의 소설은 울산을 배경으로 “지나간 계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지만, “어떤 날은 기록하지 않아도 영원히 기억된다는” 시간의 양면성을 비춰냅니다. 이희우의 비평은 실존을 가혹하리만치 “돈 아니면 몸으로 환원”하는 한국 사회라는 자본주의적 디스토피아에서 정치적인 장소로서의 몸을 둘러싼 ‘현실’이 리얼리즘 소설의 규범을 초과하는 동시대 한국소설에서의 징후와 함의를 다룹니다.
광장이 그러하듯 우리의 몸 역시 마냥 유쾌하고 무결한 공간이 아니라, 시끄럽고 “우악스러운 경험”과 “때로 두려운 접촉”(하은빈)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폭력이나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는 선을 지키고 잡음을 내지 않는 것만이 방법일까요? ‘비평 교환’에서 하은빈은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손나예, 김원영과 진행한 장애인-비장애인 움직임 워크숍 ‘안녕히 엉키기’를 통해 저마다의 취약성을 가진 신체들이 사적 영역을 넘어 서로에게 해(害)와 폐(弊)를 주고받으며 ‘접촉’을 탐구했던 경험을 나눕니다. 신현아는 탄핵 이후에도 여전히 철창 안, 공장 옥상, 고가 다리, 철탑 위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느라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기하며 자신의 삶을 바꾸는 용기를 길어 올리는 일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 윤자영은 촉각적인 꿈의 잔상에서 출발해 몸 안에 남아 만져지기를 요청하는 이미지, 언어와 긴밀하게 얽힌 이미지의 덩어리를 들여다봅니다. 윤자영의 꿈에서 촉발된 류한솔의 드로잉은 증식하는 내장과 터져 나오는 지방, 절단되어 자유로워진 혀를 비롯한 신체의 단면이 활기차게 운동하는 상상을 펼쳐놓습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에서 성현아는 PC주의에 대한 문학장 안팎의 비판이 정치적 올바름과 무해함에 대한 요구를 단순화하여 페미니즘 및 퀴어 문학을 ‘이른 반성’으로 내몰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유해함을 묵인하는 무해함이 아닌, 은폐된 유해함을 드러내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윤리적 요청으로서의 무해함을 제안합니다. ‘판도’의 임현진은 성과보다는 동료 간 배움을 추구하는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이 위계를 넘어 아시아의 다른 국가 및 도시를 아우르며 자원을 공유하고, 상호 돌봄과 우정을 나눴던 경험을 짚어냅니다.
광화문 광장에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서울 바깥에서는 산과 공장이 불에 탔고 일터에서 죽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하나 헤드바는 「아픈 여자 이론(Sick Woman Theory)」에서 만성 질환을 앓으며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 소리를 들은 침대 위의 경험을 떠올리며, 일을 해야 하거나 질병과 장애를 가져서, 혹은 누군가를 돌봐야 해서 시위 현장에 나서지 못한 사람들, 보이지 않는 몸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시위나 집회 같은 연대의 현장에서 발화되지 않은 목소리들, 움직일 수 없었던 몸들의 존재는 ‘우리’의 경계가 언제나 불완전하고 가변적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광장 이후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혐오, 차별, 적대, 반동, 양극화로부터 안전하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대신 광장에서의 감각을 기억하는 우리의 몸은 여전히 다름을 수용하고 연대를 실험하는 장소로서의 가능성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