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원
사고가 있기 두 시간 전, 해원은 야구공을 잃어버렸다. 가볍게 던졌으나 방향이 좋지 않았다. 아이가 잡기에는 너무 먼 데다가 떨어진 자리도 나빴다. 덤불이 우거진 곳이었다.
“이쪽이에요, 엄마. 이쪽으로 날아갔어요."
언덕과 맞닿은 수로 쪽을 노아가 가리켰다. 경사가 없어서 다행히 멀리 굴러갈 일은 없었다. 대신 얕게 고인 물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거의 흐르지 않았다. 무언지 모를 부유물도 떠다녔다. 이끼나 벌레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만한 것들. 노아는 고개를 한껏 내밀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언제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야."
아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짚으며 해원이 말했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낮은 관목들은 가지가 억셌다. 먹을 수 없는 붉은 열매가 맺혀 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든 해가 될 수 있는 것들이 공원을 둘러싸고 촘촘하게 조경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깊어질수록 덤불과 엉켜 더 짙고 어두워졌다. 선명한 경계. 들어가지 마시오. 해원은 노아를 안전한 ‘바깥쪽’에 세워두었다.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넌 아니야. 너는 들어갈 수 없어. 해원은 아이가 자신의 말을 잘 지키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수로 쪽으로 건너갔다.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되도록 빨리 찾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이는 초조해할 것이다. 사물마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할 만한 나이였으니까. 한번은 곤충도감을 읽다가 ‘멸종’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그 무렵에는 바퀴목과 사마귀목, 집게벌레목을 구분할 줄 알았다. 거미는 이로운 곤충이라고 고집을 부리던 날도 있었다. 보이는 모든 벌레를 직접 손바닥 위에 올리고 관찰하고 싶어했다. 그때마다 해원은 혹시라도 입에 넣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도대체가 어디에 이롭다는 건가. 길앞잡이, 톱사슴벌레, 점박이꽃무지, 큰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 가뢰, 거위벌레…… 고작 아동용 학습 도서일 뿐인데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아놓은 게 아닌가. 해원으로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들이었다. 이후로 화분 아래 시커먼 개미 떼를 보고도 해원은 참아야 했다. 노아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개미가 멸종이라도 될 것처럼 겁을 내는 모습을 차마 모른 척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원은 수로 건너편에서 기다리는 아이를 다시 돌아보았다. 작고 심각한 얼굴을 향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발견할 수 없다면? 고작 야구공 하나로 잃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윤재가 주입했던 것들, 야구공 하나로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 아버지로서의 권위, 존경심, 경외감, 단순히 파울볼 하나에서 시작된 연쇄반응들. 능숙한 외야수처럼, 그것도 맨손으로 잡아냈다고 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놀라운 능력.
“대단해요, 아빠!”
야구공을 건네받은 노아는 소리쳤을 것이다. 윤재는 경기 내내 갖가지 상황을 예측하고 설명했을 것이다. 복잡한 경기 규칙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어쩌면 나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중계에 몰입할 때도 윤재는 자주 부주의해졌으니까. 그때마다 해원은 경고했다. 손닿는 아무 곳이나 소리나게 때렸다.
“조심해, 애가 듣잖아.”
그러나 해원은 당시 그곳에 없었다. 주자 1, 3루 투아웃. 초구를 타격한 좌타자의 공이 3루 쪽 내야펜스를 넘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있었다면 아마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너무 위험하다고, 하마터면 우리애가 다칠 뻔하지 않았느냐고.
그날 저녁, 해원이 보지 못한 그 굉장한 사건에 대해 노아는 되도록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어떤 부분은 반복했고 과장된 부분이 많았다. 덧붙여 자신이 새롭게 배운 경기 규칙과 출전 선수 명단을 해원에게 읊어주기도 했다.
“이해했어요?"
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재의 동작을 서툴게 흉내내며 정말, 알아듣는 거예요? 물으면 진짜는 그렇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해원은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아이의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묘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윤재를 바라보았다. 그런 감정은 누구라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스포츠 케이블 방송에서는 오늘의 경기를 요약해주고 있었다. 그곳 어디에도 대단한 파울볼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 엄청난 일화에 해원만 누락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완벽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왠지 서운했다.
공원은 비교적 잘 관리되어 있었다. 반면 보이지 않는 쪽은 그렇지 않았다. 함부로 자란 풀 더미 사이로 벌레가 꼬였다. 버려진 것들이 많았다. 깨진 도기 그릇도 있었는데 심어놓은 듯 흙을 반쯤 덮고 있었다. 드러난 부분은 뼛조각처럼 하얬다. 무심코 해원의 몸이 움찔거렸다.
“찾았어요?”
줄곧 제 엄마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노아가 물었다.
“아직.”
해원이 대답했다.
“하지만 괜찮아. ‘아직’ 여기에 있을 거야.”
그러나 아이의 걱정스러운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결정되지 않은 일에 대해 벌써부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모든 걸 잃은 듯이 상심해했다. 야구공을 잃어버림으로써 야구공과 관련된 기억들도 함께 잃어버릴 것처럼 굴었다. 정확히는 아빠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한번은 노아가 부주의하게 식탁 의자를 넘어뜨린 적이 있었다. 거기에 올려둔 그릇들도 함께 쏟아지는 바람에 크게 다칠 뻔했다. 해원은 놀란 마음에 아이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발등이 붉었으나 상처가 남을 건 같지는 않았다. 노아는 울지 않았다. 다만 차분하게 깨진 그릇 조각을 줍기만 했다. 이후로도 해원은 그런 장면들을 자주 목격해야만 했다.
“괜찮아요.”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자주 말했다. 그런 얼굴을 해원은 또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장례를 마치고 아이는 부쩍 더 자라버린 것 같았다. 무언가를 견디는 법을 스스로 깨달아 버렸다. 이따금 아직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제법 어른스럽게 전후 상황을 설명할 줄도 알았다.
“아니요, 아빠는 이제 여기 안 계세요. 얼마 전에 멸종 됐거든요.”
잃어버린 것은 본래의 의미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게 분명했다. 해원은 어떻게든 찾아주고 싶었다. 찾기만 한다면,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게 될 기회였다. 노력과 최선을 말할 때 함께 들려줄 만한 좋은 사례.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었다.
“그것 봐, 엄마가 뭐랬어?”
실제로, 해원은 방금 잃어버린 야구공을 발견해냈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는 덤불 건너편에서 불안하게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올해로 열 살이 되었고, 이제 해원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될 터였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나 조금은 의기양양하게, 해원이 노아의 이름을 불렀다.
해원은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거의 비슷한 이유로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결국엔 어떻게든 알게 될 테지만, 되도록 느지막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쪽이 더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얼마 전, 학교에서 돌아온 노아가 물었다.
“남자끼리 손을 잡는 게 이상한 거예요?”
겨우 한 학년이 올랐을 뿐인데 달라지는 것들이 생겼다. 늘 하던 것을 했을 뿐인데 문제가 되었다. 당연한 것들이 다른 상황에서는 낯설게 되는 경우를 노아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라면 언제든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윤재가 살아 있을 때는 윤재에게 대신 미룰 수 있었다. 적어도 난감한 문제에 대해 상의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에는 인내심과 자제력을 필요로 했다. 공공장소에서 어린 자녀의 뺨을 때리는 젊은 엄마를 본 적도 있었다. 거리 한복판에 아이를 세워둔 채 여자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이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놀이로 변환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유리벽 안에 있는 동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한 나이였다. 두드리고 주의를 받았다.
“좀더 크게 말해봐. 안 들려. 아, 진짜. 가만 좀 있어. 엄마가 지금 통화 중이잖니! 아니, 애가 옆에 있어서. 우리 애라고, 애한테 한 소리라니까. 됐어, 하던 말이나 계속 해봐,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주눅이 든다. 부모가 소리를 지르는 이유와 원인을 빠르게 파악한다. 방금 내가 무얼 했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한다.
“정신 사나우니까 제발 그만 좀 해.”
그와 동시에 해도 괜찮을 만한 것을 찾아낸다. 이를 테면 소리 내지 않고 유리벽에 진동을 주는 방법을 스스로 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다른 방식의 ‘두드리기’를 시작한다. 무기력한 애완견들이 몸을 뒤척이거나 꼬리를 움직일 때마다 일종의 알고리듬 패턴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기가 그 유리벽 안에 있는 기분을 느낀다. 무언가를 견뎌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몇 번을 말해. 그만 좀 해!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아주 순식간에 여자는 아이의 뺨을 두 번 때렸다. 빠르고 간결한 동작이었다. 그러고는 작고 얇은 팔을 허공에 낚아챘다. 유리벽을 두드리던 아이 몸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었다.
해원은 언제든 자신도 그런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참을성 없이 감정에 휘둘릴 수 있는 경우를 경계했다.
“짜증나게 좀 하지 마!"
소리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다시 한번 설명해볼래?”
들키지 않게 심호흡 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되도록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거의 대부분의 육아 서적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친구 모드와 권위 모드를 균형 있게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칭찬하기, 만들어주지 말고 함께 만들기, 혼자 재우기, 부탁하듯이 말하기, 조건 없이 베풀기. 워킹맘을 위한 구체적인 조언들도 있었다. 퇴근 후 힘들이지 않고 아이와 놀아주는 일곱 가지 방법.
그러나 문제는 열 쌍의 부모가 같은 도서를 읽었다고 했을 때, 서로 다른 열 권을 읽은 것과 거의 같은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먼저 지적한다.
“애한테 큰소리로 화 좀 내지 마. 차분해진 ‘다음’에, 당신 감정을 조금 누그러뜨린 후에 뭐가 잘못됐는지 설명하란 말이야.”
그러나 상대방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소리야, 잘못을 했는데 지적하지 말라고? 다음이라고? 다음에 언제? 그렇게 되면 내가 다른 이유 때문에 화를 내는 거라고 오해할 거야. 이유도 없이 지금 자기가 괜한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고 받아들일 거라고. 우리 애가 그렇게 크길 바란다는 거야?”
이 경우, 두 부부는 같은 저자의 기사에서 서로 다른 문장에 주목했을 확률이 크다. 무엇보다 이런 경험적인 자료들이 모여, 모든 자녀는 개별적으로 특별하며 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것은 결국 나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해버린다. 결과적으로 어떤 전문가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조언이 되지 않는다.
노아가 다시 물었다.
“남자끼리 손을 잡는 게 이상한 거냐구요.”
“왜 그렇게 묻는 거니? 네 의견은 어떤데?”
아이는 생각에 잠겼다. 고작 100개월 남짓의 경험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해원도 적절한 답을 찾아야 했다. 아이가 먼저 좋은 해답을 찾고 그녀가 동의와 칭찬을 곁들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아이는 부모의 말에 매우 의지한다. 만약,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부모를 대상으로 한 실망감을 배운다. 언제고 알게 되겠지만, 적어도 유예를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해원은 그런 상황을 대비해 노아의 네 배 가까운 경험들을 되새기며 적절한 선택항을 미리 준비해놔야 했다.
“잘 모르겠어요.”
아이는 주눅이든 표정으로 말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은 대개 실패에 익숙하지 않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아이의 가치관 결정에 어떻게 자연스러운 영향을 미치느냐였다.
“내 생각엔 잘못된 일은 아닌 거 같구나.”
해원은 노아를 자기 품으로 오게 했다. 아직 작고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아직은 견딜 만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맞닥뜨릴 게 거의 분명한 질문들에 비하면 가벼운 편에 속했다. 언젠가 이 아이도 자라서 피임에 대해 궁금해 하겠지? 아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손을 잡고 싶을 땐 친구에게 먼저 꼭 물어보는 게 어떻겠니? 상대방이 불편해 한다면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청유형의 문장에는 자기 암시적인 요소가 있어서 설득력을 높일 수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필요하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 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가까이 오지 마.”
그러나 이번에는 해원도 참지 못하고 명령했다. 거기 있으라고 했잖아! 아이는 벌써 덤불 안쪽으로 몇 걸음 들어와 있었다.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뒤뚱거리며 더 안쪽으로 들어오려 했다. 해원의 눈에는 몹시 성급하고 위태로운 동작으로 보였다.
“찾았어요?”
노아는 자기 눈으로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했다. 안 된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자기 쪽으로 던져주기를 바랐다.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니까 어서 나가.”
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새였다. 정확히는 깃털이 해체되고 부패한 새였다. 잘못 본 게 아닐까? 진짜는 그냥 공일수도 있잖아. 죽은 새를 공으로 오해한 것처럼 실은 반대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녀는 방금 자신이 본 게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쪽으로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뭐예요? 아이는 집요하게 물을 것이다. 거기 뭐가 있는데요?
노아는 영리한 아이였다. 무엇보다 하나를 배우고 다른 부분을 추론하거나 응용해내는 데 뛰어났다. 그런 아이들의 단점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노아는 죽은 새를 통해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할 염려가 있었다. 마른 사체와 우글거리는 벌레를 뚫어지게 보면서 두려워할 것이다. 그리고 질문을 하겠지.
“아빠도 저렇게 된 거예요?”
자, 이제 우리 그만 쳐다볼까.
빌어먹을 청유형은 그때 가서는 하나도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공원에서 돌아온 해원은 노아를 먼저 욕실로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거실에 혼자 남아,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려 했다. 아이가 너무 일찍 씻고 나오지는 않을까 해원은 초조해졌다. 윤재가 옆에 있었더라면, 아마 그녀를 안심 시켰을 것이다. 그냥 공일뿐이잖아. 그러나 윤재는 없고 윤재의 자리를 대신하던 공이었다. 해원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공일뿐이야. 네 아빠가 아니라.”
아이는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해원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것과 무관한 사람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해원은 윤재의 죽음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뇌간에서 시작한 종양이 척수를 타고 폐와 간으로 흘러가는 동안 윤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무서운 속도로 증발하기 시작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데운 물에 수건을 적셔 몸을 닦아줄 때마다 해원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자기 뒤에 숨겨놓는 조악한 마술처럼 비둘기, 토끼, 동전, 포커 카드, 매일매일 다른 것이 되어갔다. 그러나 해원이 알고 싶은 것은 의학적인 소견이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가 잘못한 게 무엇이었나. 무얼 하고, 무얼 하지 말았어야 했지?
나쁜 상황을 가정하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쪽은 언제나 해원이었다. 한 벌의 카드를 임의로 섞었을 때, 본래의 배열 그대로 돌아올 경우는 거의 없었다. 확률상으로 분명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해원은 조심스러운 사람이었고, 아주 작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자기 인생 중 어느 때,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올 수 있다고 믿었다.
뉴스에서 언젠가 가본 적이 있는 관광지가 나올 때도 그런 기분이었다. 연휴를 맞아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했고, 나들이 행객, 일가족, 충돌, 전복과 사망 등의 단어가 이어졌다.
“괜한 걱정 좀 제발 하지 마.”
그때마다 해원을 설득하는 것은 윤재의 몫이었다. 그러나 윤재는 틀렸고 그녀가 옳았다. 윤재는 죽었고 그녀가 살아남았다. 이제 와서는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런 일은 너무 쉽게 일어나버린다. 아무 잘못도 없이, 아무 조짐도 없이.
전혀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모든 것이 이유가 되어버렸다. 차라리 그때 우리도 사고를 당했더라면 어땠을까. 다치고 부러지고 했더라면. 전복되고 충돌했다면. 병들어 아주 죽지 않고 다만 크게 다치기만 했더라면. 왜 그러지 못했나.
무엇보다 해원이 염려하는 부분은 노아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이었다. 어떻게든 제 아빠를 이해하고 싶어했다. 윤재가 아니었다면 해원은 아이에게 이렇게 경고 했을 것이다.
“손을 씻어,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자주 손을 씻어야 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랬다면, 아이는 여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의미들을 더할 게 분명했다.
“손을 씻어! 너도 네 아빠처럼 되지 않으려면 당장 손을 씻으라고!”
고민 끝에 해원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에는 삼단 높이의 서랍장이 딸려 있었고 가장 크고 깊은 맨 아래 쪽을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여러 권의 노트가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그중 아직 다 쓰지 않은 것 몇 권을 따로 골라냈다. 아주 새것보다는 절반쯤 사용한 것이 적당하다고 해원은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뒤, 욕실에서 아이가 막 빠져나왔을 때 해원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를 좀 도와주겠니?”
저녁 메뉴를 고르게 하고 조리에 필요한 식자재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밖의 부족한 것들, 거실과 화장실로 공간을 한정하고 각각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러고는 노아가 주도적으로 구매 목록을 작성하도록 유도했다. 방금 꺼내온 노트를 펼쳐 그곳에 적게 했다.
마트는 넓고 많은 것이 있었다. 운이 좋다면, 야구공을 대체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아이는 지금 윤재가 쓰던 노트에 무언가를 함께 쓰고 있었다.
“좋아, 이만하면 된 것 같구나.”
나중에는 윤재의 필체를 흉내내려 할지도 몰랐다. 그것으로 아이가 제 아빠를 아주 잃게 된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을 갖기를 기대했다.
그들 모녀는 다시 외출을 준비했다. 간소한 차림이었다. 마트까지는 멀지 않았다. 고작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야 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그 첫번째 신호등이 바뀌었을 때 해원은 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약국과 제과점 사이를 지나는 동안에도 아이의 머리카락은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줄 수 있겠니?”
몸을 숙이며 해원이 말했다.
“금방이면 돼.”
야구공을 잃어버리고 두 시간 뒤, 해원은 챙겨야 할 무언가를 잊어버렸다. 사소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주 중요한 것. 정육 코너에 들를 계획이었다. 그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 해원에게는 있었다. 할인율이 아주 크지는 않았으나 모아놓고 보면 제법 되는 금액이었다. 정해진 기한이 있었고 해원은 매번 그것을 놓쳤다. 그때마다 어딘가 손해를 본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너무 멀리 가기 전에 그것을 떠올린 것을 해원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노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원이 말했다.
“잠깐이야, 금방 다녀올게.”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해원은 텔레비전 왼쪽에 놓인 서랍장을 서둘러 살폈다. 고지서와 영수증, 찾을 때마다 보이지 않던 배달 음식점의 전단지들이 있었다. 다음 칸에는 조그맣고 당장은 쓸모없는 것들, 건전지와 오래된 기념품들, 어디에서 떨어져나온 것 같은 장식도 있었다. 그러나 할인 쿠폰은 보이지 않았다. 해원은 마지막 칸을 마저 모두 열어본 뒤에야 다시 처음의 서랍으로 돌아가 그것을 찾을 수 있었다. 처음 열었던 서랍의 전단지들 사이에 접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트럭은 사거리 초입으로 막 들어서는 중이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뒤였다. 해원은 당시 상황 중 어느 것도 보지 못했다. 대신 다른 목격자가 많았다. 전면이 찌그러진 트럭이 견인차에 옮겨지고 있었다. 젊은 경찰관 두 명은 남은 상황을 수습 중이었다. 갑자기 인도로 달려들었어요. 노아와 자주 가던 제과점의 점원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가로수를 들이받았으나 만약 상가가 밀집한 반대쪽이었더라면 더 큰 사고로 이어졌을 거라고도 했다. 그러고는 멀지 않은 곳에서 노아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해원을 알아보았다.
“저기, 그 아이 엄마예요.”
점원이 해원을 가리켰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당장 해원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응급실로 이송된 아이는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졌다고 담당자는 설명했다. 그러고는 해원에게 수속에 필요한 절차와 원무실의 위치를 안내해주었다. 그뿐이었다. 누구도 노아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말해주지는 않았다. 해원은 그게 가장 두려웠다. 어떤 말이 돌아올 줄 몰랐으므로 함부로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가볍게 할 수 있는 말, 별일 아니다, 괜찮을 것이다, 낙관하는 위로를 누구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자꾸 나빠지는 데에는 어딘가 시작이 되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에 걸 맞는 원인이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게 가장 문제였을 거라고 해원은 생각했다. 그리고 결제를 위해 지갑을 열던 해원은 결국 로비 앞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지금의 이 상황을 설명해줄 무언가를 해원은 방금 발견했던 것이다. 지갑 안에는 정기적으로 마트에서 나눠주는 할인 쿠폰이 들어 있었다.
자정에 가까워서야 해원은 병원을 빠져나왔다. 수술은 예정보다 길어졌다. 어쩌면 예정에 맞게 길어졌을 뿐인지도 몰랐다. 모르는 사이에 위급한 순간이 이미 몇 차례 지나갔고 결국에는 가장 나쁜 상황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해원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공원은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만 낮에 보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덤불은 더 짙고 수로는 더 깊어 보였다. 그럼에도 해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바닥을 더듬기 시작했다. 분명 이쯤이라고 생각했던 곳에는 축축한 풀과 나뭇잎뿐이었다. 주변이 어두워서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으나 해원이 찾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 누굽니까?”
해원의 뒤쪽으로 밝은 불빛이 비추어졌다.
“이 밤에 거기서 뭐해요? 뭐 잃어버린 거라도 있어요?”
공원의 관리인이었다. 해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빛을 도움 삼아 하던 일을 계속하려 했다. 억센 가지에 몸 이곳저곳을 다쳤으나 개의치 않았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이 손바닥을 찌르는데도 만지고 더듬고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덤불 안쪽으로 들어온 관리인이 해원의 얼굴을 비췄다.
“도대체 뭘 찾으려는 겁니까. 낮에 다시 와요. 이 밤에 뭐가 보인다고……”
해원은 자신을 말리는 관리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해원이 무엇을 찾는지, 그게 왜 그녀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되었는지.
“우리 아이가 많이 다쳤어요.”
그러고는 다시 바닥을 더듬었다. 노아에게 낮에 본 그것을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다 썩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그것을 가리키며 지금이라도 똑똑히 말해줄 것이다. 보라고, 이게 뭔지 너도 이제 알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너는 절대 죽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무슨 일이든 해원은 당장 하고 싶었다. 관리인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돕는 것도 아니었다. 해원이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손전등을 따라 옮겨줄 뿐이었다.
임현
자기소개 정도는 고민하지 않고 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부담이 된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