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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학로 복합예술유희공간 딱지소굴입니다

홍예원, 양동탁

제248호

2023.12.21

1. 딱지소굴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딱지소굴입니다. 저는 ‘배우고 익히고 갈고 다듬고 만나고 쉬고 놀고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저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정의했어요. 그렇지만 다들 ‘연습실’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대학로 대명거리 포크랜드 골목 열린극장이 있는 빨간 벽돌 건물 3층에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제 자랑을 해보자면, 저는 인기가 많습니다.

저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합니다. “사진보다 더 좋네”, “사진보다 더 크네” 햇살이 들어오는 45평 크기의 탄성마루 플로어, 예쁜 가구들과 센스 있는 소품들, 향기 나는 화장실, 방음과 단열에 최적화된 이중창. ㅇㅇ프로젝트의 양ㅇㅇ배우는 저를 처음 만난 날 “요즘 한국 연극계에서 좋은 작품이 안 나오는 이유는 모두들 안 좋은 환경의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좁고 지저분한 지하에 한두 달씩 틀어박혀 연습을 하니 무슨 창조적 영감이 생기겠나. 이렇게 쾌적하고 머물고 싶은, 영감이 샘솟는 연습실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딱지에게 얘기했는걸요! 이렇게 저에게 반해버린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딱지소굴 멤버십이지요. 매달 또는 분기별로 신청을 해서 다른 멤버십 회원들과 함께 딱지소굴을 따로 또 같이 사용하는 제도인데요. 혼자 조용히 훈련을 하거나 다른 회원들과 공간을 나누어 쓸 수 있고, 딱지소굴에서 기획하는 다양한 워크숍과 행사에 대한 할인혜택을 받을 수도 있어요.

비어있는 딱지소굴의 전경이다. 나무바닥과 흰 벽으로 구성되어 쾌적한 느낌을 주며, 왼편 벽은 전체가 거울로 덮여있다. 
        전면 벽에 난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 실내의 조명을 켜지 않았음에도 공간이 환하다.

저의 잘빠진 외모에 많은 분들이 반하곤 하지만 제가 사랑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와 함께하며 영감을 얻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또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이 모든 과정들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 중에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지금까지 딱지소굴에서는 움직임 워크숍_상호주체성의 흐름과 접촉(김윤규), 원서강독_샌포드 마이즈너 테크닉 1~4(딱지), 스트릿 댄스_락킹(두락), 내 마음을 안아주는 공감대화(미경), 마임테라피(이두성), 존재의 즉흥, 액션씨어터(이종무), 판소리가 조아라-광대가 워크숍(조아라), 펠든크라이스 메소드(김원복), 스트릿 댄스_왁킹(히든), 신체훈련 몸,부림(딱지), 보이스 워크숍(이상욱), 스트릿 댄스_락킹(릴스타), 신체마임(이은지), 마이즈너 테크닉 실습 part 1~2(최원) 등의 워크숍이 이루어졌습니다. 약 1년 3개월 동안 참 다양한 배움의 장이 열렸었네요. 관리자 딱지는 ‘배우는 죽을 때까지 배우니까 배우다’는 말을 가끔 하는데, 이렇게 배우려는 배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배우 아니 매우 뿌듯했어요.

저는 공연연습이나 워크숍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두 관리자 딱지와 뇽의 또 다른 정체성을 반영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딱지는 배우이면서 탱고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탱고 수업도 하고 밀롱가(모여서 탱고를 추는 행사, 장소 등을 일컫는 말)를 열기도 합니다. 또 다른 관리자 뇽은 페미니스트이자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하 성반연)의 구성원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반연의 회의나 세미나, 행사준비를 위한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작년에 연극in 웹진 현장 코너에 실린 「상식은 바뀌었다. 우리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_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미투 이후 다시 말하기> 퍼포먼스 합평회」1)에도 제가 소개됐었지요. :) 짝꿍 사이인 두 관리자는 보드게임을 핑계로 썸을 타기 시작했을 만큼 보드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보드게임파티도 열립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건 딱지소굴의 공동대표이자 관리자인 뇽과 딱지가 열심히 나를 운영하기 때문이에요. 둘은 프로그램 운영도 열심히 하지만 청소나 소품 관리에도 진심입니다. 뇽은 관리자가 공간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느껴지면 방문하는 사람도 그 공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대요. 그래서 작은 부분에도 정성을 들이는데요, 이걸 발견하고 감동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쁩니다.

딱지소굴에서 열린 위크숍을 촬영한 사진 여덟 장이 4X2 배열로 배치되어 있다. 
      첫 줄 가장 왼쪽부터 공감대화, 마이즈너 테크닉 실습, 스트릿 댄스-왁킹, 보이스, 액션씨어터, 몸, 부림, 펠든크라이스, 원서강독의 사진이 배치되어 있으며 각 사진에는 워크숍의 이름이 적혀 있다. 
      워크숍에 따라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거나 몸을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다.

두 관리자의 정성만큼 저를 방문하는 많은 분들도 저를 아껴주시는데요. 매번 맛있는 간식을 가져오는 친구들, 제 생각이 났다며 예쁜 소품을 가져오는 친구들 덕에 저는 다른 분들과 간식도 나누고 더 예뻐진 공간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저의 많은 부분은 사실 뇽, 딱지의 동료들이 함께 만든 공간이에요. 딱지와 뇽의 동료들이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일 때부터 저와 함께해주었어요. 페인트칠이나 흡음재 붙이기 같은 기초적인 공사에도 함께 해주었고 제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가구들, 책상, 신발장, 의자, 테이블, 선반, 스탠드, 요가매트 등은 모두 동료들에게 선물 받은 것들이에요.

오늘도 뇽과 딱지는 저의 마룻바닥을 손걸레질하고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쓰레기 봉지를 손에 들고 불을 끕니다. 둘은 언제나, 불이 꺼진 나에게 말해줍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소굴. 고마워 소굴.”

저는 정말로 사랑받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수 있도록 두 관리자가 계속 부지런히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조금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공유하고 그래서 더더 사랑받고 싶어요.

2. 딱지와 뇽의 이야기

우리 딱지소굴이 자기자랑이 좀 심했나요? 얼마 전 돌잔치를 하고 한창 자아가 형성되어 갈 무렵이라 다소 뽐내는 것처럼 보였더라도 너무 재수 없게 여기지 마시고 우쭈쭈 웃어넘겨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딱지소굴 운영자인 뇽과 딱지입니다. 이곳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한 지 이제 1년 하고 3개월 정도 되었는데, 진짜로 말을 주고받거나 할 수는 없지만 딱지소굴이라는 이 공간이 저희에게는 자아를 획득한 하나의 생물체처럼 여겨집니다. 그것은 우선 이 공간을 찾아내서 뚝딱뚝딱 만들고 요모조모 꾸며서 따박따박 월세를 내가며 아기자기 운영해 온 그 시간 동안 저희가 들인 노력과 정성 때문이겠지요. 마치 내 돌봄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아이나 고양이/강아지 또는 식물을 지켜보는, 그런 ‘반려’의 마음으로 공간을 대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달까요.
딱지소굴이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느끼는 것은 비단 주인장들만이 아닌 듯합니다. 멤버십으로 이용하든 수업을 들으러 오든 이곳을 찾는 손님들 중에도, 그저 잠시 머물며 사용하고 가면 그만인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이곳이 잘 성장해서 오랫동안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마음이 그저 단순히 저희 주인장들을 응원하는 데서 비롯된 것만은 아님을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딱지소굴이라는 공간 자체에 마음을 쓰며 정이 들고 있는 것이겠죠.
이 모든 마음들이 모이고 이곳에서 보내는 의미있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가며 이를 통해 딱지소굴이 자아를 형성해 가는 것 같아요.

사실 작년인 2022년 여름, 처음 연습실을 시작할 때는 미처 갖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들이에요. ‘연습실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것은 딱지의 오랜 바람이었고, 코로나 시기에 공실이 많아져 임대료가 좀 낮아진 상황이 적기라는 정보를 듣고 대학로 인근에 나온 매물들을 보러 다니다가 다소 충동적으로 계약을 하고 저질러 버린 거였거든요. 배우로서 개인 훈련이나 연습을 할 공간을 원했고, 기왕이면 탱고 수업도 할 수 있게 한 40평 정도로 널찍하면 더 좋고,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주로 배우들이니 위치는 대학로 중심일수록 더 낫겠고, 하는 김에 햇볕 들고 바람 통하는 쾌적한 지상에 있는 곳으로 해야겠다. 야 근데 뭐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다 갖춘 매물이 설마 있겠냐? 그치? 키득키득. 그렇게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눈누난나 동네 구경하듯이 둘러보는 중이었는데, 딱 맞는 물건이 의외로 금방 눈앞에 딱 나타나 버린 거죠. 솔직히 살짝 얼떨떨한 상태였지만 이거 놓치면 안 될 것 같다고 직감하고 덜컥 계약, 그 이후의 전개는 정말 그냥 급류에 휩쓸린 것처럼 운명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시시각각 닥쳐오는 일들을 해내는 식으로 정신없이 흘러갔고,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연습실이 완성되어 개업식을 하고 있었다는… 아 저희 공간은 ‘소굴’이라 정식 명칭은 개‘굴’식이었답니다.

딱지소굴 공간 인테리어 작업 과정을 촬영한 정방형 사진 두 장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왼편에는 흰 벽과 나무 바닥이 훤히 드러난 공간에 두 사람이 바닥에 박스를 깔고 앉아 흰색 자재를 재단하는 사진이 있다. 
      오른편에는 인테리어 공사에 함께 한 다섯 명의 사람들이 낮은 사다리 하나를 두고 모여 촬영한 기념 사진이 있다. 
      사다리 주변에 모인 이들은 사다리에 기대서거나 앉아 카메라를 응시한다. 
      검은 민소매를 입은 사람의 손에 실리콘을 짜 넣는 기구가 들려있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연습실을 포함하여 문화/예술 관련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기본적인 운영비용 조달, 보다 축약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어떻게 월세를 메꾸나’일 것입니다. 월세를 메꾸기 위한 연습실 운영자들의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 것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스페이스 클라우드 같은 공간대관 전문 어플은 물론 OTR, 필름메이커스, 액터길드 등등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 만한 인터넷 게시판에 대관 홍보글을 수시로 올리고 또 끌어올리고. 그렇게 해서 비는 시간 없이 최대한 많은 시간을 대관으로 돌려야 겨우 월세를 뽑아내는 그런 극한직업. 오죽했으면 뇽의 절친인 송김모 연출이 “딱지가 연습실 하겠다고 하면 너랑 헤어진 다음에 하라고 해”라고 뇽에게 얘기했을까요. 안 그래도 뇽은 연습실을 만들었다 2년도 채 운영하지 못하고 접은 경험이 있었거든요. 아무튼 연습실을 운영하는 자에게 월세란 피할 수 없는 굴레이자 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것입니다. 매달 말일까지 열심히 돌을 굴려 산꼭대기에 올리면 월세는 잔고에서 빠져나가고 돌은 데굴데굴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다시 새로운 달 1일이 되죠.
저희는 대관 회전율로 승부를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아니, 포기했다기보다는 애초부터 대관으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아니, 애시당초 외부 대관 위주로 운영할 생각이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네요. 공연팀 연습 대관이나 불특정 다수 사용자 상대 대관을 통한 운영이라는 일반적 방식이 아닌, 자체 교육프로그램 기획과 멤버십 회원제를 통한 운영. 이것이 애초의 구상이었고, 이걸로 과연 유지가 가능할까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자 실천을 계속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대체 뭘로 월세를 내겠다는 거야?”, “안 망하고 운영이 되냐?” 같은 지인들의 의문과 염려의 말들을 밥 먹었냐는 인사말보다 더 자주 듣는 것이 일상입니다. 대학로 한복판에 위치한 지상 3층의 40평 넘는 공간이라 임대료도 여느 연습실보다 훨씬 높은 것이 사실이니 사람들의 걱정은 너무나도 타당한 것이겠죠. 그런 사람들의 걱정 어린 물음에 “아직까지는 적자 안 보고 운영이 되고 있다”고 답할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그러고 나서 전해지는 진심 어린 안도의 미소와 격려의 눈빛을 받노라면, 좀 거창한 단어라 쑥스럽지만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걸 느낍니다. 결코 망하지 않고 계속 의미 있는 활동들을 일궈가며 오래오래 딱지소굴이 멋지게 나이 먹어 가도록 잘해 나가겠습니다. 기대해 주시고, 지켜봐 주시고, 아직 안 와보셨다면 구경 와주세요.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2)나 SNS3)로 확인해주시길.

딱지소굴 공간에서 두 명의 아이와 한 명의 어른이 뛰어노는 모습이다. 
     흰 티셔츠를 입은 아이 두 명이 맨발로 공간을 뛰어가고 있고, 그 뒤를 천으로 된 둥그렇고 커다란 물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성인 남성이 따라간다.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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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원

홍예원
뇽. 사람1, 고양이3과 함께 도봉동에 살고 있습니다. 딱지소굴의 운영자이자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의 구성원입니다. 팬데믹 시기에 연극을 그만두고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되어보려 했지만 2023년부터 다시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연극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지금은 식물을 키우면서 연극을 하는 사람입니다. 움직임연출, 연출, 드라마터그 등 주로 스태프로서 작업을 합니다. ‘멋진 사람’에 집중하면서 40년을 살았는데 남은 삶은 ‘좋은 사람’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양동탁

양동탁
한국문학을 공부했고 여러 종류의 글을 쓰고 있다. 현재는 공연/전시에 집중하고 있고, 영화/문학 등에 대한 연구와 평론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주중에는 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쓰고 싶은 글들 혹은 써야 하는 글들을 쓰고 있다. 매번 실패하는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나선 늘 부끄러워하고 있다. 이 확신 없는 쓰기가, 세계 안에서-세계를 바라보는 ‘나들’의 몸과 시선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 인스타그램 @sung.wo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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