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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서로를 응원하기 - 관객과 연극, 창작자를 잇는 축제

2023 서울연극센터 공간개방축제 <연극✱하기와 보기>

임진환

제246호

2023.11.30

나는 왜 연극을 좋아할까, 생각해 볼 때가 있죠. 나는 연극의 ‘무엇’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찬찬히 뜯어보고 곰곰이 생각해 볼 때 더 빛이 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그저 막연한 ‘좋아함’의 상태로 두는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확한 언어로 설명하고 싶은 기분.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몇 가지 이유들을 계속해서 가꾸어가고 싶은 마음.

어쩌면 저는 외로워서 연극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연극을 만드는 작업은 보통 팀으로 이루어지지요. 과정이 매번 순탄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함께 도모하는 ‘팀’이 되는 일은 퍽 신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 연극을 만드는 창작자들뿐만 아니라 연극 자체도 일종의 ‘팀’이 되곤 합니다. 그곳이 극장이든 공원이든, 어디선가 어떤 연극이 시작되면 관객과 창작자가 일종의 임시적인 ‘공동체’를 이루곤 하니까요. 어쩌면 저는 그렇게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아서 계속 연극을 만들고 보고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길 건너편에서 바라본 서울연극센터 외관. 4층 건물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유리 가득 <연극✱하기와 보기>의 투명한 홍보 일러스트가 부착되어 있다. 
        두 사람이 팔을 쑥 내밀어 원을 만든 모양새로, 원 안쪽에는 빨간색 커튼이 열려 있고, 열린 커튼 틈 사이로 ‘연극’ ‘하기’ ‘보기’라는 단어들이 드러나 있다. 
        건물 앞쪽으로 거리의 포장마차가 위치해 있고 초록색의 마을버스가 지나간다.

서울연극센터의 재개관을 기념하는 공간개방축제 <연극✱하기와 보기>가 지난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이루어졌습니다. 연극 자체가 아니라 연극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 그 사이의 사람들이 보였던 축제였어요. 창작자와 관객, 시민이 모이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게 될 앞으로의 서울연극센터가 기대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축제는 크게 창작자들의 공연 프로그램과 ‘연극파는 팝업스토어’로 이루어졌습니다. 창작자들은 새롭게 단장한 서울연극센터의 여러 공간들을 탐색하며 그곳들을 연극적 장소로 탈바꿈해나갔고, 팝업스토어에 참여한 여러 팀들은 각자의 기획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뜨겁게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축제에서 제가 관람한 작품은 <초대>, <일상 관극 매뉴얼>, <연극 안 하기 - 연극 했다고 치기>까지 세 작품이었습니다. 세 작품 모두 관객을 작품의 (진)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시작해 서울연극센터의 1층과 2층을 거쳐 스튜디오의 극장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초대>는 무대가 모두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온 세상 무대가 되는 것, 세상 곳곳 무대로 만드는 것,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게 소원이라는 지니의 노래를 들으면서 ‘무대에서 또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울연극센터의 옥상에서 진행된 <일상 관극 매뉴얼>은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혜화역 인근의 풍경을 연극적 공간으로 사용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관객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퍼포머를 함께 찾아내면서 적극적으로 ‘풍경’을 ‘연극’으로 바꾸어 읽게 되었어요. 특히 목소리가 ‘암전’이라고 말하면 관객 각자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커튼콜’이라고 말하면 센터 밖의 퍼포머들에게 박수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작품의 마지막 순간이 참 좋았습니다.

<일상 관극 매뉴얼> 공연 사진. 서울연극센터 옥상의 통유리 안쪽에서 한낮의 대학로 거리를 내려다보는 관객들의 뒷모습. 
      사람들 뒤쪽으로 키가 큰 삼각대 위에 카메라 한 대가 놓여 있고, 그 옆쪽으로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는 대학로 거리가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커다란 모니터가 위치해 있다.

<연극 안 하기 - 연극 했다고 치기>는 말 그대로 ‘연극을 했다고 치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콘셉트의 공연이었습니다. 연출과 배우, 번역가로 등장한 퍼포머들의 답변만큼이나 관객의 질문이 재밌었습니다. 관객들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공연 너무 잘 봤습니다”라고 말문을 열면서도, 자신의 빙고를 완성하기 위해 빙고판에 놓인 다소 엉뚱한 맥락의 단어들을 능청스럽게 사용하며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관객과의 대화를 들으면서 ‘보지 않은 공연’에 대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연극에 있어 ‘결과’라는 건 결국 각자의 마음속에 남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팝업스토어에서는 연극을 하는 사람과 연극을 보는 사람을 ‘연결하려는’ 시도들이 엿보였습니다. 희곡전문서점 인스크립트는 준비한 여러 희곡집과 연극 관련 서적들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팝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옆에는 창작자를 위한 작업복을 만드는 웬유스마일의 팝업과 창작자의 입장에서 ‘리서치’를 키워드로 관객을 만나려는 무늬만씨어터의 리서치하는팝업스토어가 진행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연극을 하는 사람끼리의 연결을 도모한 팝업들도 엿보였습니다. 이나라도움, 행정, 정산부터 접근성 관련 문의까지 공연과 관련한 여러 고민을 나누는 연극인력사무솔 팝업도 있었고요. 연극에 필요한 여러 소품과 의상을 공유하는 공연 무대용품 공동이용 플랫폼 리스테이지 서울의 소개 팝업에서는 준비된 의상과 소품을 직접 착용해보면서 인증샷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공연예술창작자를 위한 티켓관리솔루션 공기는 예술인들에게 자신들의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티하우스 시즌드시즌의 따뜻한 차와 오베흐트의 비건 도넛도 함께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연극인을 위한 속세의 달콤함”이라는 오베흐트의 소개 멘트가 인상적이었어요.

팝업에 참여한 분들 중에서도 무늬만씨어터의 김유진 연출님, 희곡전문서점 인스크립트의 박세인, 권주영 대표님, 공연관리솔루션 공기의 김세희 대표님, 최자연 매니저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면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늬만씨어터: 리서치하는팝업스토어]

Q
무늬만씨어터와 이번 팝업에서 진행 중인 ‘리서치’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보는 사람’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겐 ‘연극’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던 것 같아요. 이번 축제의 팝업에서는 축제에 오신 분들에게 책이나 영상 등의 여러 다큐먼트 형식으로 저희들의 경험을 나누고, 오신 분들의 생각이나 경험을 묻는 ‘리서치하는 팝업 스토어’를 준비해봤습니다.
‘리서치’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이번 축제에 오신 분들 중에는 연극을 ‘하는’ 창작자도 있고 연극을 ‘보는’ 관람객도 있잖아요. “당신의 연극을 수집합니다”라는 이름으로 그들 모두에게 ‘연극’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리서치가 한 편으로 이루어지고 있고요.
무늬만 씨어터에서 2년여간 준비 중인 버베이텀 공연, <여자는 울어야 할 뿐>을 위한 리서치의 일환으로 ‘혐오’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오신 분들의 혐오에 대한 기억이나 생각, 경험 등을 단어, 문장, 글로 받고 있어요.
Q
리서치는 잘 진행되어가고 있나요?
A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기꺼이 리서치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처음엔 많은 분들이 장벽이나 거리감을 느끼실 것 같아서, 참여하는 과정을 되게 고심해서 설계했어요. 어떻게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안내할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경험을 나누고 또 수집할지 많이 고민했는데, 정말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서 진지하게 참여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기획한 입장으로 아주 행복했습니다.
사실 창작자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공연’뿐이잖아요. 그건 창작자들끼리도 마찬가지고요. 공연 외에 소통할 수 있는 자리는 극히 드물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가깝게 소통하기는 어려운데 이번 축제에서는, 한 편의 ‘공연’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 연극을 왜 좋아하는지, 연극의 어떤 순간을 좋아하는지, 또 앞으로 어떤 걸 해보고 싶은지를 나눌 수 있는 판을 벌여 주셔서 즐거웠습니다.
무늬만씨어터의 리서치하는 팝업스토어 부스. 
      1미터 정도 되는 하얀색 철제 선반과 책꽂이에 각종 책들이 꽂혀 있다. 선반 위쪽에 꽂힌 책들은 페이지 사이사이 인덱스가 붙여져 있고, 
      여러 책들 중간에는 집게로 철해진 종이 뭉치가 꽂혀 있다. 아래쪽에는 여러 권의 책들이 눕혀진 채로 삐뚤빼뚤 쌓여 있다. 
      책장의 책들은 책 앞표지가 보이도록 전시되어 있는데, 하단에는 같은 디자인으로 제본된 여러 리서치 기록집들이 꽂혀 있다. 
      책장 왼쪽으로는 형광 연두색, 주황색, 보라색의 바코드 모양이 부착된 검은 상자들이 쌓여 있다.

[희곡전문서점 인스크립트(Inscript)]

Q
처음 ‘희곡전문서점’을 오픈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사실 인스크립트를 운영하는 저희 둘 다 원래 직업은 배우입니다. 희곡을 보면 대형 서점이든 독립서점이든 있긴 있지만 엄청 구석에 있거나 흩어져 있잖아요. 그 희곡들을 꺼내서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그치만 고민도 많았어요. 우리는 작가도 아니고 배우인데 이런 걸 해도 되나, 하는 고민이었죠. 그래도 일단 ‘저질러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벌써 몇 개월이 지나 있네요. 그래도 오픈한 이후로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시고, 연극과 희곡 좋아하는 분들이 입소문도 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팝업에 참여해보시니 어떠신가요?
A
관객분들이 책도 많이 사주셨고요. 계속 연희동에 있다가 대학로에서 팝업을 열어보니, 확실히 대학로가 연극의 중심지라는 느낌이 확연하게 드는 것 같아요. 처음 인스크립트를 연희동에서 오픈한 이유는 오히려 연극 기반이 좀 약한 서울 서쪽에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더 힘써보고 싶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연희동에 있을 때도 물론 너무 좋고 지금 잘하고 있지만요. 확실히 대학로의 관객들은 이미 희곡에 대한 관심이 분명히 있다 보니까, 운영하면서 행복했습니다.
Q
혹시 내년에도 이런 축제가 이루어지거나 비슷한 기회가 생긴다면 앞으로 더 시도해보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A
저희 서점에서도 사실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낭독서 모임’이라는 제목으로 희곡 낭독 모임도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는 작은 발표회 같은 과정 공유회라든지, 연극과 관련한 여러 모임 프로그램도 진행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함께 무언가를 기획하고 싶은 창작자 분들이라면 언제든 인스크립트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저희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웃음).

[공연관리솔루션 공기]

Q
공연관리솔루션 공기는 어떤 서비스인가요?
A
간단하게 설명드린다면, 공연 티켓 팀을 ‘고용’한다고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창작자들의 공연이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다양한 티켓 판매처를 소개해드리고 컨설팅해드리는 것까지 함께 합니다. 그리고 판매 페이지 오픈부터 운영, 정산이나 현장 관리까지 한번에 도와드리는 솔루션입니다.
Q
공기는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진짜 공연을 잘 만드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정말 매력적인 솔루션인 것 같아요. 그럼 이번 축제 팝업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저희의 예비 고객은 ‘예술인’이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예술인들이 모이는 곳에 항상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티켓 예매도 홍보도 모두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런 쪽에 어려움을 느끼는 예술인들이 많이 있으시니까요. 그런 분들을 저희가 직접 만나서 말씀도 나누고 저희 서비스를 소개할 수 있으면 좋을 기회가 될 것 같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Q
그럼 팝업을 통해 만난 예술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어떤 분은 되게 좋아해주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호기심에 오셨다가 반신반의하면서 돌아가시기도 했어요. 티켓 관리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걸 아직까지 상상해보기 어려우신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사실 작은 공연일수록 창작자가 ‘일당백’이 되어야 하잖아요. 모든 걸 다 신경 쓰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작업 말고도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보니 작업에 집중하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거죠. 그 부분을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다는 점을 더 중점적으로 홍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Q
주변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창작자가 있다면 추천하겠습니다.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연극센터 1층에 마련된 ‘연극파는 팝업스토어’ 전경. 캔버스 천과 목재로 만들어진 폭 1.5미터 정도의 접이식 홍보 부스가 늘어서 있다. 
      부스마다 테이블 위에 각종 홍보물이 올려져 있고, 하단 캔버스에는 참여 팀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부스 안쪽에는 담당자들이 대기 중이다.

축제를 만든 이들도, 축제를 보러 온 이들도 모두 ‘좋아하는 마음’을 그대로 두지 않고 열심히 지키고 나누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우리는 영화를 만들면서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서로 격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지요. 축제와 함께하면서 저는 구로사와의 이 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연극을 만들고 보면서 살아가는 ‘같은 동네 친구들’이라고, 함께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좋아하는 걸 계속해나가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혜화역 4번 출구에 위치한 서울연극센터는 2007년 개관해 2020년, 리모델링을 위해 잠시 문을 닫기 전까지 연간 약 13만 명의 방문객이 찾아오는 대학로 연극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리모델링 이후 서울연극센터는 연극인을 위한 세미나실, 공유랩 등의 작업 공간과 쇼케이스,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한 스튜디오 등을 갖춘 공간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앞으로도 서울연극센터에서 다양한 ‘작당’들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저도 그 작당이란 것 참 좋아하는데 말이죠).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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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환

임진환
기획하고 쓰고 찍고 만들고 편집합니다. 스크린과 무대, 지면과 화면을 넘나드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습니다. 연극이라는 시공간에 대해, 연극을 통해 가끔 주어지는 임시적인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연극 <비어가는 방> 작/연출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3) 연극 <발자국 듣기> 외
인스타그램 @jjinkuunn / ljhspp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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