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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가 만들어가는 들판

김진복

제242호

2023.09.21

협동조합 아트컴퍼니 드레

2018년에 설립한 아트컴퍼니 드레는 연극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만든 협동조합 법인입니다. 10년 넘게 극단 생활을 하던 친구도 있고 프리랜서로 배우나 연출을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마음 맞는 사람들과 극단을 창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극단과는 다른 성격의 조직이 필요했고, 그래서 찾은 것이 수평적인 운영방식의 협동조합이었습니다.
극단이 예술 활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라면 협동조합은 경제적인 활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라는 점이 가장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만들까?’라는 질문이 시작이 아니라, ‘우리는 공연과 알바를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하는 불안한 환경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없나? 우리에게도 안정적인 울타리가 필요한데?’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단체라는 것이죠.
예술인복지재단이 이런 일들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공공의 기관이라면 드레는 예술가들이 직접 이런 고민을 해결해가는 조직입니다.

무대 위에 다섯 명의 사람이 일렬로 서 있고, 뒤편 스크린에는 커다랗게 두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이미지가 띄워져 있다. 
      ‘READ ME: D/re X 킥킥, part2 멋진 신세계, 디스토피아가 된 유토피아’라는 행사의 제목이 보인다. 
      무대 위의 다섯 사람은 서로서로 눈을 맞추고 있고, 그들의 왼편으로 흰색, 빨간색, 검은색 의자가 놓여있으며, 의자 너머로는 밴드가 위치해 있다. 
      밴드는 두 대의 건반과 베이스, 일렉기타, 드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의 하단에는 어둠에 잠긴 관객석이 보인다.
드레의 첫 비즈니스 모델
다원인문콘서트 ‘리드미 시리즈’

처음에는 어떻게 경제활동을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사업 초기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인큐베이팅 사업과 비즈니스 모델 개발 사업의 도움을 받았고, 지금은 극장운영과 공연 유통 사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조합원들과 참여 예술인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확장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지만, 구성원 모두가 연극 전공자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공연을 만드는 일만 하던 친구들이니 사업의 ‘사’자만 나와도 뭘 해야 하는지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는지 막막해지는 게 당연합니다. 어떻게 6년을 이렇게 유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신기할 따름입니다.
누굴 다시 경영학과에 보낼 수도 없고 경영자를 스카우트할 수도 없으니, 세무서적을 보고 경영서적을 보고 IR 발표나 마케팅 관련 워크숍에 가고, 우리가 왜 이런 걸 하고 있지? 라는 현타를 수없이 받으며 지금까지 운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자주 현타가 오지만 조합원들의 4대 보험료가 회사 계좌에서 나갈 때는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필요에 의해서 (대부분 예술인 대상 지원사업을 받기 위해, 법적인 문제가 없는 선에서) 4대 보험을 들었다가 빠졌다가 하는 조합원들을 볼 때도 ‘조합이 우리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나 더 붙여본다면, 가장 최근에 드레의 보람 있는 일은 드레에서 함께 일을 하는 친구가 4대 보험 가입자로서 은행 대출의 문턱을 넘어 자가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이게 무슨 보람이냐고 할 수 있지만, 저희에게는 극단이 창작 지원금을 받은 것 같은 (비교가 좀 이상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었습니다. 이제 기쁜 마음으로 그 친구의 집들이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협동조합 아트컴퍼니 드레가 더 많은 동료와 선후배님에게도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참 많은데… 누군가 배우는 계속 배우라고 배우라던데, 정말 배우로 살아가기 위해선 배울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드레: 모두가 뛰어 놀 수 있는 들판이 되고 싶은 드레

드레는 우리말로 들판을 뜻합니다. 누구든 마음껏 놀고 싶은 들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할 때 조합명을 드레라고 지었습니다.
누구나 마음껏 놀 수 있는 판! 누구나 마음껏 뛰어놀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마음이 놓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말 판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판을 깔아야 할까? 어떻게 판을 벌일 수 있을까? 연극 하다가 모인 친구들이니 주머니 사정은 말하나 마나 뻔했습니다. 우리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농담입니다) 수유동 기사식당 돈까스 맛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정말 우연히 판을 깔 수 있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예전에 알고 있던, 지금도 조명 일을 하는 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이라 어색한 인사를 나누다 ‘아직도 연극 하지? 그럼 극장 한번 해볼래?’라는 갑작스런 제안에 어떤 의식의 흐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한번 해볼게요!’라고 대답을 했고, 며칠 뒤 우리는 대학로 소극장 예술공간 혜화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일입니다. 그렇게 지금 소극장 예술공간 혜화가 그 판, 그리고 드레의 들판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차가 큰 계단식 공간에 등받이 의자가 줄지어 놓여있다. 
        사진 가운데에 검은 토시와 앞치마를 한 사람이 허리를 숙여 원탁의 상판을 노란 페인트로 칠하고 있다. 
        그의 주변으로 페인트통이 놓인 의자와 가림막, 나무 합판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페인트를 담은 그릇과 붓을 든 두 사람이 파란색 벽 앞에 서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한 사람은 무언가를 밟고 올라선 듯, 다른 한 사람보다 훨씬 높은 곳에 서있다. 그들이 칠하는 벽의 오른편에 방음스펀지가 붙은 벽이 보인다.
극장 공사 중

극장을 인수하고 극장에 서는 배우의 입장으로 극장 구석구석을 직접 공사하고 바꿔 나갔습니다. 지금 예술공간 혜화는 조합원들의 예술활동 공간이기도 하고, 많지 않은 제작비로 공연을 만드는 창작자들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대학로에서 가장 대관료가 저렴한 극장일 겁니다. 처음 인수했을 때 책정한 대관료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주변에서는 전기요금이 인상되었으니 대관료를 올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드레는 지금의 대관료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술공간 혜화가 누구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판이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D/RE: 해체와 조립의 실험 공간 드레

D/RE는 원자력 언어로 해체와 조립을 뜻합니다. 드레는 경제적 활동을 위해서 만들기도 했지만, 조합원들이 누구와든 마음껏 실험하고 공연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결국에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즐거운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니까요.
조합원들은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작업이 있으면 시작하면 됩니다. 그럼 그 작업이 공연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은 최대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지원금이 없어도 하고 싶은 공연을 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공연이 <나의 투정>, <그린 자이언트>, <룰>입니다.

벽면에 노란색 메모지가 빈틈없이 붙어 있고, 세 사람이 그 앞에 서거나 쪼그려 앉아 각자 펜으로 무언가를 적고 있다. 
        절반쯤 되는 메모지에는 색색의 펜으로 글씨가 쓰여 있는데, 큰 글씨로 명확히 알아볼 수 있는 것들로, “4.16 기억”, “평화”, “국가보안법” 등이 있다.
<나의 투정>
무대는 사각형의 공간으로, 그 사각형의 테두리는 흰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등의 사각형으로 구획되어 보드게임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테두리 안쪽의 무대는 4X4 모양의 회색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색 구역 안에는 양복 셔츠와 바지를 입은 두 사람이 각자 양손으로 권총을 쥐고 하늘을 겨냥한 채 있다. 그들의 옆으로 침대와 상자 등이 놓여 있다.
<룰>

조합원들이 원하면 꼭 드레에서 공연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드레와 함께 그리고 드레를 이용해서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공연을 만들면 됩니다. 드레 조합원들은 각자 극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편적 극단, 극단 불한당들의 세계사, 극단 엘보우.
조합원과 극단과 드레가 하나의 예술 활동에서 만나는 과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보편적 극단과는 공연 <옥상 위 카우보이>를 공동제작하고 공연 유통사업을 함께 했습니다. 잘 만들어진 공연을 지역에 유통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불한당들의 세계사와는 청소년을 위한 낭독 공연 사업을 하면서 관계 맺은 소설 『원 테이블 식당』을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을 함께 했고, 더 많은 곳에서 공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엘보우와는 올해 민간에서 지원하는 창작희곡 공연을 공동으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두 개의 희곡이 새로 만들어지고 낭독공연과 본 공연까지 올려질 예정입니다.
기존 공연의 유통과정부터 새로운 공연의 창작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드레와 함께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더 많은 예술가들이 드레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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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김진복
협동조합 아트컴퍼니 드레 이사장과 예술공간 혜화 극장장, 그리고 보편적 극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함께 먹고 살 거리를 찾으며 행복하게 연극을 하기 위해 오늘도 이것저것 배우고 또 배우고 있는, 예술지원 기준 청년은 이제 아니지만 아직 배울 게 많은 청년입니다. boggi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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