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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존재감은 삶의 방식을 바꾼다

손성연

제240호

2023.08.24

* 기일과 함께 대화를 하고, 그 대화 내용을 재구성하여 글을 썼습니다.

사회는 반드시 광기와의 대화를 시작해야만 한다.
-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1)

미친존재감: “변수밖에 없어요, 상수가 없어”

미친존재감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갈까. 미친존재감은 계속해서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자, 삶이라고 말했다. “미쳤네?”는 욕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고 그냥 삶이라고. 동료인 민조가 재미있는 말을 해줬다. “미친존재감은 변수밖에 없어요. 상수가 없어”. 맞는 말이다. 미쳤다는 것은 통제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의료적으로 통제하면서, 미친 건 훼손되었다.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과 직면한다. 전문가처럼 서로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 짓고 우아하게 계획을 짜고 안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미친존재감에 없다. 하지만 미친존재감은 변수에 맞춰 계획을 바꾼다.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매번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도 간다. 그 길이 매번 달라서 능숙해진다는 게 불가능하지만, 그 길로 가면 함께 걸을 수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적 가치’와 ‘재미’를 느끼며2),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미친존재감은 그동안 미쳤다는 것을 정체성으로 탐색하는 ‘우리는 미쳤다!’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탈시설/탈원화가 미친존재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탐색하는 ‘미친집으로 초대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친회사다. 미친회사의 첫 번째 사업은 ‘미친식당’이다. 미친식당의 멤버는 기일, 민조, 성연, 왈왈, 윤희, 은정, 유선, 지우, 진산이다. 미친식당은 함께 요리하고 함께 밥을 먹는 ‘일’을 꾸준히 반복한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찾아가고 할 수 있는 일, 하지 못하는 일(남겨진 일), 재미있는 일을 발견해 나가는 중이다. 며칠 전 처음으로 일을 함께했다. 미친존재감의 ‘현장’ 아니, ‘현실’로 초대합니다.

다섯 명의 사람들이 기다란 식탁에 둘씩, 셋씩 마주 보고 앉아 카레라이스를 먹는다. 
      식탁의 중앙에는 카레가 담긴 커다란 웍과 냄비가 하나씩 놓여 있다. 검은 옷을 입은 성연이 카레를 국자로 퍼 자신의 그릇에 옮겨 담는다. 
      벽면 게시판에 ‘해방촌 공유부엌’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다.
비건 카레라이스와 논비건 카레라이스를 맛있게 먹었다.

자연스럽게 ‘일’을 하면서 정해진다

비건 카레라이스와 논비건 카레라이스를 함께 요리하고 함께 먹었다. 이것이 처음으로 한 일이다. 요리를 하기 전에 치열한 회의를 했다. 회의를 통해서 정해진 것은 ‘메뉴’, ‘리더’, ‘팀 구성’, ‘재료’, ‘안전수칙’이었다. 기일은 회사 업무로 인해 일정이 꼬여서 늦게 왔다. 기일은 지쳤지만 웃으며 들어왔다. 모든 멤버가 박수를 쳐줬다. 아직도 이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기일은 3시간 내내 회의한 멤버들에게 일에 지친 표정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회의를 해도 정해지지 않는 건 업무 분담이었다. 뭔가 정하기가 애매했다.

성연
처음 일한 거 어땠어요?
기일
일일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게 많아서 좋았어요. MT 가면 되게 친해지잖아요. 술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회계를 맡고 누군가 요리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설거지를 하고 누군가는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재미있는 얘기를 해준다든지, 이런 일을 하면서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일할 때 그게 가장 좋았어요.

식재료를 마트에서 사오기, 식재료를 물에 씻기, 식재료의 껍질을 깎고 벗겨내기, 칼로 식재료 다듬고 손질하기, 재료를 볶기, 카레 가루와 물을 넣고 중불에 끓이기, 재료가 잘 익었는지 살펴보고 맛도 보기,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기, 밥을 그릇에 담기, 같이 밥 먹을 수 있게 식탁 정리하기, 함께 밥 먹기… 뒷정리하기 등 이 많은 일들이 자연스럽게 나뉘고, 누군가 그 일을 못 해 남겨진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그 빈틈을 메운다. 일을 1/n로 정확히 나누지 않는다. 누가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그 일을 더 잘한다면, 대신 해주면 된다. 함께 요리하고 밥을 먹는 이유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함께 있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 함께 있기가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 무슨 일들이 펼쳐질지 예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의 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으로 생각해보면,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 아참! 한 가지가 정해졌다. ‘대형마트에는 사람도 많고, 창문도 없고, 시계도 없어 불안하니깐, 이젠 작은 마트를 가자!’ 이렇게 반걸음씩 가보기로 한다.

네 명의 사람들이 아일랜드 식탁에 모여 니트릴 장갑을 낀 채 재료의 껍질을 깎거나 자르고, 
      그릇에 옮겨 담는 등 카레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식탁 위에는 식용유, 코코넛밀크, 햇반 등이 놓여 있고, 당근과 파프리카, 양송이 버섯, 양파 등이 채반에 담겨 있다.
다들 요리하면서 얘기를 나눴다. 모든 멤버가 다 모이지 못했지만! 이번 주에 또 만나서 요리할 거라 괜찮다.

모두가 비전문가다

성연
역할을 찾아 나간다는 느낌.
기일
그것밖에 방법이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긴 아무도 전문가가 없잖아. 연극을 안 하니깐…
이걸 정리하고 정립하려고 하면 더 재미없어지고 시간이 멈춰질 것 같은 거예요. 정하면 편해질 것 같지만 실상 부딪히면서 겪어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성연
다 모른다는 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모두 불안감이 있을 텐데, 그걸 안고 가는 느낌이 뭔가 되게 좋으면서도 (사이) 묘한 느낌인 것 같아요.

여기선 그 누구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른다. 멤버들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선명한 색깔들의 선이 뒤죽박죽 엉켜 있다. 그 색깔 하나, 하나가 눈에 띈다. 겹쳤다가 어느새 멀어진다. 미쳤다는 것은 정말 다양하다. 동일한 언어로 존재할 수가 없다. 언어가 순식간에 변하기도 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익숙해지기 위해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비비드한 차원을 넘나들 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모두가 비전문가다. ‘역할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까?’ 부대끼지 않고선 알 수가 없다. 몸과 마음이 엉켜야 하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과 삶이 분리되어 있다. 여기선 일과 삶이 합쳐져 있다. 점점 서로가 신경 쓰이고 걱정도 되고 어느 순간, 서로의 삶에 가까워져, 감정이 요동칠 때도 있다. 짜증 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다. 모두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건 끝이 없다. 그래도 점점 쌓인다, 점점 찾아진다, 휴~ 살만하다.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어딘지는 모른다. 이게 미친존재감의 연극이다.

“미안해요” “쉬세요”

미친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뭘까. (다양한 의미로 가득하지만…) 현실적으로 미안한 일이 많아지는 거다. 미쳤다는 것은 미친존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고, 이러한 변화는 미친존재가 직면한 상황과 상호작용한다. 갑자기 불안한데, 왜 불안한지 모르겠다. 목소리가 들려서 집중이 안 된다. 느닷없이 말을 자른다.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것에 더 집중한다. 이 사람은 분명 날 싫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유가 발견된다. 죽고 싶다는 말이 계속해서 나온다. 그러다 또 살고 싶어지고 모든 게 맘대로 안 된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고 어렵다. 우울해서 집 밖에 나가기 싫다. 또 지각이다,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이것 말고도 정말 다양한 상황들이 나타난다. 이런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서 정신의학은 ‘증상’이라고 했다. 미쳤다는 게 삶이자, 정체성이라면 어떻게 해야 될까? 죽고 싶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될까. 불안하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될까? 나도 미쳤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난 어떻게 해야 편해지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고 나 또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럴 때 자연스럽게 이 말이 나온다. “쉬세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이 말을 할 때도, 들을 때도 기분이 편치 않다. 민폐를 끼쳤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게 정말 미친존재로 살아가기 때문인 걸까? “쉬세요”라는 말은 미친존재를 정중하게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언제, 어디서든, (미친존재도) 누구라도 쓸 수 있다. 미친존재는 언제나 이 상태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동적인 위치에 머문다. 노동 현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당한 편의제공의 한계는, 그 편의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낙인’이기 때문이다. 미쳤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인식개선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인식을 개선하는 일, 정말 중요하지만 너무 거대한 일이다. 인식개선이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지금 당장 해야 되는 일은 무엇일까.

미친회사 프로젝트의 구성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다. 커다란 ‘매드마불’ 게임판을 다 함께 들고 카메라를 보며 웃음 짓고 있다.
오리엔테이션 마지막 회차 끝나고 기념사진

미친존재의 영향력이 확장된다

기일
거친 상상으로 말하자면 당사자의 지시대로 일하는 날.
성연
오! 그거 재미있겠다.
기일
지시 없으면 아무것도 안 해.
성연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 이거 공유작업 노트에 있었던 내용이네, 기일이 썼던 거.
기일
미친존재가 없으면 미치지 않은 존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성연
아 그럼 최고죠.
기일
당사자의 영향력.
성연
당사자의 힘.
기일
함께 요리하고 밥 먹는 일을 하면서 점점 당사자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대화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 대화는 뭉뚝한 단어를 세세한 단어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3) 예전에 민조, 진산, 기일과 회의를 했을 때가 떠오른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누군가 “지금 이렇게 한다고 해도 뭐 다음엔 또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죠”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기록집을 내면 반전 드라마가 될 것 같아”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찾아간다. 선택하고 결정하기보다 찾아간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 미친존재와 ‘함께 있기’란 단어가 미친존재의 ‘영향력 확장하기’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미친존재가 “미안해요”란 말을 대신해 “불안해요! 아, 오늘은 함께 휴식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미친존재의 영향력이 확장된다는 것은 미친존재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향력은 혼자가 아니다. 영향력은 함께 있다. 함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일이다. 익숙했던 삶의 방식을 ‘반복’적으로 조금씩 바꿔 나간다. ‘삶의 방식을 바꾼다’와 ‘현실을 바꾼다’ 이 두 개의 문장이 같은 문장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필자 제공]

  1. 모하메드 아부일레일 라셰드, 송승연·유기훈 옮김,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오월의 봄, 2023, 494쪽.
  2. 기시 마사히코, 정세경 옮김, 『망고와 수류탄: 생활사 이론』, 두번째테제, 2021, 35쪽.
  3. 기시 마사히코, 위의 책,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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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연

손성연
공연예술 독립기획자입니다. 성인 ADHD와 불안장애랑 요란하게 삽니다. 미친존재감 프로젝트에서 공연들을 기획·제작하고 있습니다. 미친 얘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인스타그램 @madpre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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