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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변방: 항구港口 편

유성희

제255호

2024.06.13

2024년 서울변방연극제(이하 ‘변방’)의 [변방의 변방: 항구港口] 프로그램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작년 변방의 서울 밖 이동 거리를 대략 계산해 보았다. 사무국이 있었던 혜화동을 기준으로 평택, 고양, 양평, 공주까지 최단 편도 거리를 합산하니 약 292km였다. 올해는 조금 더 멀리 이동하고 있다. 2023년의 변방을 마무리하면서 낯선 여정을 제안한 예술감독과 자신의 작업을 끊임없이 이동시키며 천천히 사람과 자연과 시간을 담는다고 표현하는 예술가가 만나는 [변방의 변방: 항구港口]는, 2024년 변방 을지로 사무국을 기준으로 약 360km 거리에 있는 목포에 닿았다.
본격적인 항구港口의 기록은 2023년 10월 10일 시작되었다. 1박 2일 일정으로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 기차를 타고 종착역인 목포역에 도착했다. 목포역에서 도로로 이동할 수 있는 원도심의 주거지역은 도로와 인도 사이에 경계턱이 없었고, 골목 사이에 보이는 어선과 바다 내음을 따라 걷다 보니 목포항이 있었다. 그날의 하늘과 바람은 선명했다. 종착역에 도착해서 다시 어딘가로 떠나는 항구를 만나는 이곳은 끝이자 시작이라는 경계를 물리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날 저녁, 마르세유를 떠나 서울을 거쳐 목포를 처음 방문한 정현지, 고향인 목포를 떠나 서울에 머물다 목포로 돌아와 빌롱 서점을 운영하는 배수진, 그리고 변방이 만났다. 서로가 지나온 시간과 작업 이야기를 촘촘하게 나누며 앞으로 목포에서 머무를 날들을 느슨하게 그려갔다. 최소 한 달은 머물며 리서치가 필요하다는 정현지 작가의 작업에, 일회적이고 집중적인 하나의 순간을 공유하는 방식이 아닌, 순환하고 지속되는 다양한 존재와 범주들을 만나고 확장하는 과정으로 변방이 동행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분주해졌다. 2023년 이동하며 축제를 만난 경험 위에, 예상되는 질문들이 변방 구성원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사유되고 변형되며 쌓였다. 2024년 변방의 태도인 ‘접촉-전이-연루’를 관통하며 항구港口를 ‘중간 거점’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 의미가 부여되는 ‘구멍’으로 해석했다. 개방성이 지배할 때는 교류와 환대의 공간이 되지만, 폐쇄성이 주가 될 때는 착취와 지배가 시작되는 공간. 바다와 육지의 경계이면서 국경을 가르는 장소가 되며, 국적 유무에 따라 삶과 죽음, 환대와 추방의 경계가 되는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바로 그 환대와 추방의 경계를 감각하는 ‘잠시’ ‘머물기’ 레지던시 프로그램 [변방의 변방: 항구港口]가 시작되었다.

양쪽 공간 사이에 있는 나무 문턱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사진. 문턱 한 귀퉁이에는 자그마한 흰 종이 위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연극과 연극, 연극과 삶의 경계에서 균열과 아름다움을 사유하는. ‘연극과 삶의 경계’, ‘균열과 아름다움을 사유’라는 문구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2024년 1월부터 3월까지는 먼저 변방 구성원들이 각자에게 맞는 속도로 1935년에 지어진 작은 주택, 변방의 항구港口에서 머물기를 시도했다. 앞으로 방문할 존재들의 사유와 작업으로 항구港口가 채워지기를 바라며 최소한의 물건들만 옮겨두었다. 혼자 머물며 집의 상태와 보일러를 시험해 보기도 하고, 팀 작업의 연장선을 목포로 옮겨 오기도 했다. 하루 종일 집 안에 머물려 고요함을 곁에 두기도 했다. 아침이면 뒷집 경로당으로 나오시는 어머님들의 목소리에 잠이 깨는 날들도 있었다. 내가 경험한 목포의 겨울은 가을과 달리 눈과 비가 자주 왔으며 습하고 추웠다. 겨울 방학을 맞은 아이와 함께 머무는 동안 아이는 처음 가본 근대역사박물관과 거리, 상점들, 빌롱 서점을 놀이터처럼 혼자 누비고 다녔다. 핸드폰이 없는 아이는 나와 길이 엇갈려 동네를 헤매다 처음 들어간 카페에서 주인의 전화를 빌려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도 했다. 혼자 낯선 곳을 방문하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경계를 확인하는 듯하였다. 앞으로 방문할 작업자들도 변방의 항구港口와 만나는 순간이 안전하기를 바랐다.
4월 정현지 작가를 시작으로 5월부터 7월까지 공모를 통해 매달 1~2인 또는 팀으로 참여자를 만나고 있다. 변방에 관심 있는 누구나 연극, 무용, 시각, 음악 등 장르 및 국적, 지역에 상관없이 참여 가능하다. 단, 레지던시가 끝나는 시점에 자유 형식의 마무리 공유회 1회와 9월 축제 기간 중 공유 발표 1회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권서령 운영매니저가 제안하는 미션 수행하기와 공식·비공식의 경계를 오가는 인터뷰 프로젝트도 준비되어있다. 4월 26은 집들이와 4월 작가 공유회가 있었다. 연희팀 와락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항구港口로 모인 이웃과 동료들이 변방의 집들이를 축하했고 항구港口의 시간을 응원했다. 4월 정현지 작가의 공유회에서는 작가가 머물렀던 공간을 중심으로 낯섦을 마주하는 작가의 다정한 태도가 배어 있는 영상이 전시 형태로 공유되었다. 5월 초반부는 조제인 작가가, 후반부는 구자혜 작가가 각자 2주간의 시간을 보냈다. 두 작가의 공유회는 5월 25일 진행되었다. 조제인 작가는 글쓰기의 파편들이 있는, 방해받을 장치가 구동되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했고 구자혜 작가는 폐지되는 학생인권 조례안을 낭독하며 공유회를 시작했다. 지금은 6월 입주자 제람 작가가 항구港口에 머물고 있다. 어떤 형태일지 현시점에서 정확히 표기할 수는 없으나 확고한 당위성을 가지고 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람 작가의 공유회는 6월 30일 오후 2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아직 7월 입주 작가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4월부터 연속된 항구港口의 시간이 어떻게 전이되어 9월 공유 발표회로 이어질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해가 되지 않게 닿고 싶은 심정으로, 조심스레 살포시 뒤꿈치를 들고 걷는 모습으로, 그렇게 시작한 항구港口와 연루된 경험을 하지 않았던 때와 그것이 같은 농도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불확실하지만 존재하는 변방의 최전방으로 가닿기를 바라며 [변방의 변방: 항구港口]를 이어갈 것이다.

[사진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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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유성희
사람을 모이게 하고 생각을 나누게 만드는 공연이 좋아 여전히 이 동네를 맴돌고 있습니다. 조명디자이너, 안단테 아츠 대표, 축제 기술감독 작업을 하고 있는 중에 최전방 서울변방연극제를 만났습니다.
boratea4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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